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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예의
공지영
창비 199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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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사랑하는 당신께
2. 꿈
3. 인간에 대한 예의
4. 무엇을 할 것인가
5. 무거운 가방
6. 절망을 건너는 법
7. 잃어버린 보석
8. 손님
9. 동트는 새벽

해설 순진성에서 자기됨으로/손경목
후기

저자 소개 1

孔枝泳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는『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봉순이 언니』『착한 여자 1?2』『우리들의 행복한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창작과 비평》에 구치소 수감 중 집필한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1989년 첫 장편『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다뤄 새로운 여성문학, 여성주의의 문을 열었다. 1994년에는『고등어』『인간에 대한 예의』가 잇달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명실공히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으로 장편소설『봉순이 언니』『착한 여자 1?2』『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높고 푸른 사다리』『해리 1?2』『먼 바다』등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산문집『상처 없는 영혼』『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딸에게 주는 레시피』『시인의 밥상』『그럼에도 불구하고』등이 있다.

2001년 21세기문학상, 2002년 한국소설문학상, 2004년 오영수문학상, 2007년 한국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 부문), 2006년에는 엠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1년에는 단편「맨발로 글목을 돌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2018년『해리 1·2』가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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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4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6436308

책 속으로

지금 막 청소를 마쳤습니다. 그릇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옷장 속의 옷들을 차곡차곡 개어놓고 먹다 남은 냉장고의 음식들도 버렸습니다. 빨래하는 내 손이 안쓰럽다며 당신이 손수 골라주셨던 하늘색 세탁기 속에 들어 있는 빨래는 어떻게 하나, 생각하다가 사실은 조금 혼자서 웃기도 했습니다. 왜냐구요? 빨래라니요. 사실 이 밤중에 내가 쓰던 물건들을 장리하면서, 그것도 이웃에서 행여 눈치챌까봐 조심조심 그릇들을 챙기고 내 삶을 정리하면서, 그러면서 빨래라니요......그런 자신이 조금 어처구니 없고 그랬기 때문에 웃었던 것이었습니다. 하기는 그보다 더 우스운 일은 그 다음에 생겨났습니다. 저는 세탁물을 뒤졌지요. 쿰쿰한 냄새가 나는 빨래 속에서 당신의 팬티와 런닝셔츠를 발견하고 그것을 손으로 문질러 빨았습니다. 언제나처럼......하기는 그 옷을 손으로 빨기 전에 대야를 챙기고 비누를 꺼내들면서, 저를 비난하던 한 친구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중독이라구요......제가 당신을 위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는 것, 그녀는 그런 일들을 중독이라고 불렀습니다.

--- pp.5-6

너는 도망친 사람이니 입을 다물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도 입을 다물지도 모르지만, 무서워서 도망친 비겁자라고 욕한다면 진심으로 그들에게 나의 비겁함에 대해 사죄할 용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 역시 팔십년대의 아들이며 딸이었다. 팔십년대의 아들이며 딸들은, 어떤 상황이라 하더라도 옳으면 승리한다는, 아아, 너무도 단순했지만 너무도 굳게, 결국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었다.

--- 루카치를 교지에 실었다는 이유로 강제징집을 당하는 선배를 보면서, 학내 시위 사실을 학교 신문에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친구를 보면서, 누군가 작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나면 뒤에 오는 이들은 좀더 큰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다는 신념, 우리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신념을 배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랬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서 동구권을 빼고 나면 정말 한숨과 체념과 방탕과 그런 것들만 남았던 것인가? 그런가 --- (p. 93)

--- p.

나는 왜 이민자에게 갔었나? 전혀 좋아하지 않는 데스크의 청탁을 왜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을까. 받아들여서 권오규란 사람의 책을 다음 달에 소개해도 좋다고 나는 왜 생각하나. ……그건 작은 일이니까. 내가 권오규 선생을 이번 호에 싣든 이민자를 이번 호에 싣든 세상은 어쨌든 그렇고 그렇게 돌아갈 테니까? ……나는 벌써 팔십년대를, 내 이십대가 고스란히 놓여 있는 그 팔십년대를 벗어난 걸까.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은 풀려난 사람들이고…… 잡지를 읽는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그런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건 이젠 철 지난 유행가니까. 그래서?

--- p.91

그가 세번째 고시마저 떨어졌을 때 아내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약병을 내밀었다. 약병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알약들이 어지러이 섞여 있었다.

'영양제에요. 파란 것은 강한 거니까 저녁때만 드세요.'

그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그것을 먹었다. 이상하게 정신이 맑아지고 공부가 잘 되어다. 어느날 옆방에 있는 그 또래의 고시생이 놀러왔다가 그에게 말했다.

'허어 참, 형씨도 엔간히 다급했던 모양이오. 그래도 과하게는 하지 말아요. 몸 망친 사람 많으니까..... 나도 처음엔 그걸 먹어보려고 했는데 영 안 좋습니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고시생은 말했다. 거기에는 경멸과 동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섣불리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는 자 특유의 웃음을 웃었다. 다음 일요일 그는 읍내 약방으로 내려가 그 약에 대해 물었다.

'아니, 어디서 이걸 이렇게 많이 모으셨어요? 한번에 두세 알 이상은 안 파는 건데....'

그 약은 각성제였다. 강제로 사람의 뇌를 깨어 있게 하는 약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아내가 왔을 때 그는 파란 알약을 날짜수만큼 버렸다. 아내에게 몇번이나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안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다. 아내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다음에 면회를 왔을 때 아내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괜찮느냐고, 몸이 아프거나 어지러운 증세가 없느냐고 자꾸만 물었다. 그는 아주 건강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내는 안심하는 듯한 얼굴을 했고 그 다음번 면회 때엔 파란 약이 두배로 더 많이 든 병을 내밀었다.

'이제 그만해! 제발!'

하지만 그는 그 소리를 뱉어버리지 못했다. 그의 가슴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이리저리 울렸다.

--- pp.15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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