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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던 새 본다
2. 숭어 3. 바람 아래 4. 行魚 5. 1996 겨울 6. 입덧 7. 우리가 산다는 것은 8. 달팽이를 위하여 9. 아름다운 시절 10. 은사시나무 겨울 발문/유용주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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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절도 업던 스물일곱의 가을, 살갗이 시린 어느날 갑자기 먼곳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이년째 집과 두절된 상태에 있었는데 나를 이끄는 어떤 힘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무작정 전라선 기차를 탔다. 그 기차 안에서 느꼈던 기분은 무엇으로 설명이 될까. 무궁화호 기차는 논산 전주 순천을 거쳐 마침내 종착역에 도착했고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새로 이사간 곳을 여기저기 전화로 물어봐가며 정신없이 찾아헤맸다. 드디어 집에 도착해보니 큰손자를 알뜰하게 기다리셨던 할머니는 이미 네 시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손아귀를 만져보며 사람의 삶이란 이렇듯 한 발자국씩 뒤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설 때 새라도 울었으면 싶었다. 평생을 굴절과 연민 속에서 살다 가신 할머니께, 십년 만에, 그래도 된다면, 이 책을 바친다.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몹쓸 병을 하나씩 달고 다니고 좋아 뵈는 집안 내력도 듣고 보면 콩가루 파탄이 따로 없을 지경이라, 누구 말처럼 무덤 하나에 세계사 한편이 딱 들어맞는다. 그런 통증들이 세상을 살아내게 만드는 근본이려니 싶다. 하여 작가란 제 상처를 만지고 노는 아이들처럼 기쁨보다는 슬픔을, 승리보다는 패배를 붙들고 뒹구는 존재일 것이다. 팔잔가 몰라도 오랫동안 삶의 원천을 불화(不和)에 두고 살아왔다. 불화로써 나는 자유스러웠고 불화로써 찬바람 버티는 디딤돌을 삼았다. 부끄러울 때 많았지만 그러나 겨우 서른여섯, 돌아볼 나이는 아니다. 오랜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가족들과 마음을 함께 나눈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얻었던 상처는 제각기 이름을 달고 딱지가 앉아 삶을 향한 튼튼한 뿌리가 될 것이다. 심연(深淵)은 절망의 끝까지 가본 자들의 것. 그것을 얻음으로 인하여 아름다울 수 있을 것. ---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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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많던 숭어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참 별스런 일이었다. 그렇게도 많이 잡히던 숭어 숫자가 줄어든 게 한 육칠년 전부터였고 누가 훔쳐가기라도 한 듯 해마다 줄어들더니 삼사년 전부터는 마을마다 숫제 숭엇배가 모두 없어져버렸다. 남쪽 섬에는 십이월부터 초여름까지 숭어가 왔다. 숭어떼가 오면 당연히 숭엇배가 앞다투어 떴다. 선장이 키를 잡고 경험 많은 선원이 히끼를 보며 배를 몰아갔다. 조용하던 바다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문환이가 탔던 숭엇배는 2톤 반짜리로 50코 그물목에 길이 250미터짜리 그물을 가지고 숭어를 잡았다. 히끼를 보고 떼거리를 따라 디젤엔진 소음기를 빼고 빵을 때리며 인정사정 없이 전진 후진을 해대면 땅땅땅땅 시끄러운 소리에 놈들은 혼비백산 주르르 한쪽으로 쏠렸고 배위 사람들은 바람맞은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손에는 그물, 눈으로는 숭어떼를 쫓았따. 네코, 신호가 오면 그물을 풀어 잽싸게 고기떼를 말았다. 그리고는 그물이 땅에 들러붙기 전에 아바를 잡는 고물쪽에 둘, 넷이서 그물을 끄집어올렸다. 그러면 보통 오백마리에서 많게는 이천마리씩 들 때도 있었다.
--- pp.5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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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창훈(韓昌勳)씨는 1963년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한남대 지역개발학과를 졸업했고 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작품을 이끌어가는 구성력, 인물을 매만지는 품새, 인정물태의 기미를 섬세하게 살필 줄 아는 수굿한 문체 등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저자는 90년대 작가에게서는 보기 드문 걸쭉하고 능청스런 입담을 통해 발전과 풍요에서 소외된 서민층의 삶을 경쾌한 해학으로 그리고 있으며, 농어촌이나 도시 변두리에서 따분하고 비속한 듯 보이는 서민들의 일상 속에서 따스한 훈기를 가진 인간적 유대가 살아 있음을 간파해내고 있습니다. 표제작 「가던 새 본다」는 화자인 `나`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셋집 주인 할매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서민의 험난한 일생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 종살이까지 한 주인 할매의 굴곡 많은 일생을 보여주며 똥이 변소간에서 독이 걸러지듯 그러한 일생을 통해 할매의 영혼은 독을 빼고 이제 맑은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숭어」는 뱃일로 살아가는 섬사람이 뭍에서 데리고 온 여자를 자신의 곁에 붙들어두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줍니다. 문환은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집으로 데리고 온 성자가 평생 섬에서 썩을 것을 두려워해 섬을 떠나려고 하자 갖은 정성으로 그녀를 달랩니다. 성자가 자신의 친구와 어머니에게 퉁명스럽게 대해도 성질을 누그러뜨리며 그녀를 이해해주고, 자신의 아이를 떼었어도 그녀를 따스히 감싸며, 그녀가 먹고 싶어하는 숭어를 구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숭어라고 우기며 그녀와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섬사람의 소박한 인간적 풍모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수로 시집을 가 잘살고 있을 줄 알았던 젊은 날의 연인을 홍합배에서 다시 만나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행어(行魚)」, 염전에서 일하는 노인과 이 노인이 쫓아다니는 술집 논다니 출신의 성심네, 그리고 성심네와 형 아우 하며 지내는 어은댁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점차 힘들어지는 어촌의 삶을 드러낸 「아름다운 시절」, 이본 동시상영 극장에서 터럭 하나 보여주지 않는 에로물을 불평하다 만난 공단 잡부, 삼수생, 이름없는 소설가를 통해 낙오자의 모습을 그린 「1996 겨울」 등에서 저자는 특유의 해학으로 하층민들의 따뜻한 인정의 기류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바닷가에서 자살하려는 여인에게서 고생만 하다 죽은 누이를 떠올리는 「바람 아래」, 농촌의 황폐함과 그 속에서의 희망을 그린 「입덧」, 군대 갔다와 시골집에서 빈둥대는 용이와 그 어머니가 `나`의 돌아갈 차비 때문에 싸우는 모습을 그린 「우리가 산다는 것은」, `세상이 돌았다`고 하며 야당선거운 동만 하고 가계를 돌보지 않은 아버지와 이와는 대조적인 삶을 산 아들을 그린 「달팽이를 위하여」, `나`의 방랑생활을 그린 「은사시나무 겨울」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구수한 말솜씨를 가진 재능있는 작가 한창훈씨의 두번째 소설집 『가던 새 본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