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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물과 대상 선명하게 드러낸 김동준의 세번째 시집『물의 집』
김동준 시인의『물의 집』은 5년 만에 출간한 세번째 시집이다. 김동준의 시는, 밤새 뒤척이는 먼 섬의 이마를 짚었을 때 전해오는 잔잔한 미열의 울림이 있다. 쉼 없이 기슭을 치는 물결처럼 오래 시를 매만진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시는 ‘물푸레나무 가지 사이’에 그리움의 가족사부터 도시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겹겹의 서사의 거미줄을 걸어놓고 온갖 삶의 근심과 욕망을 포획하고 있다. 그의 시가 사물을 낯설게 분장하거나 말을 크게 비틀지 않고도 대상에 선명하게 다가가는 힘이 느껴지는 건 바로 그런 시인의 예민한 포충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이면 좋겠어 뻐꾸기 울어대는 산골이면 좋겠어 마루가 있는 외딴집이면 좋겠어 명지바람 부는 마당에는 앵두화 속절없이 벙글고 따스한 햇살 홑청처럼 깔린 마루에는 돌쩌귀처럼 맞댄 아랫도리 열불 나고 뻐꾸기 소리인지 곰팡이 슨 목울대에서 울리는 소리인지 모를 신음소리에 놀라 장독대 옆 누렁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그대로 마루에 벌렁 누워 아지랑이 몽롱한 한나절 늘어지게 낮잠 자면 좋겠어 그렇게 가벼운 농담처럼 사흘만 -「가벼운 농담」전문 『물의 집』에 실린 시들의 거의 모든 주제나 토로대상은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 하찮고 미미한 것, 눈에 띄지 않고 더러 소홀히 여겨지는 현상과 사물, 관념에 집중된다. 그러기에 가녀린, 가난한, 고단한, 핍박받는, 순수한 대상들과 소통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집에 대한 시인의 진지한 성찰과 탐구는 결국 소박한 삶이 대접받는 낙관적인 세상의 도래를 꿈꾸면서 그러한 기대는 추측에서 확신으로 옮아간다. 이 점에서 이 시집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는 몸, 밥, 집 같은 연결된 개념의 미덕은 구체성을 드러낸다. 지금처럼 혼미한 시대 시인의 꿈은 그리 거창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이런 모티브에는 생명력과 역동성이 깃들어 있으며 삶의 본질과 핵심을 비추는 강력한 의미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속도의 욕망과 내재된 폭력을 선명하게 부감하는 ‘그늘의 힘’ 제3부의 첫 작품「불륜」은 제목부터 직선적이며 도발적이다. 두번째 시집『우기의 숲』제2부에 실린 몇 편과는 다소 유사한 주제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 시집에 이르러 훨씬 대담해지고 자유로워진 표현이 눈에 띈다. ‘살짝 살얼음 얼은 상태에서 차량 15대가 잇따라 추돌하면서 3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는 아나운서 음성이 샤워 소리에 감겨 축축하게 들려온다 화면에는 거대한 트럭이 후배위 자세로 봉고차를 올라타고 있다 티브이만 켜진 방안은 수족관 같다 욕실 문 열리자 젖은 빛살 일렁인다 침대 모서리 도다리처럼 배 깔고 엎드려 있는 겨드랑이 사이 더운 팔목이 감긴다 등판에 뭉클하게 눌리는 젖가슴 오늘 따라 뱀 살갗 같다 달콤하게 절여진 익숙한 라벤더 향에도 불꽃이 쉽게 일지 않는다 아내 같은 애인, 불어터진 면발처럼 끈기 없이 엉긴다 살얼음판 마다않고 조마조마 딛던 발끝걸음 지그시 힘이 실린다 -「불륜」 전문 읽는 이마다 각기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다. 지극히 감각적이고 관능으로 치닫는가 하면 한 걸음 물러서서 냉담하면서 관조적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시인의 시선은 대단히 바삐 움직인다. 서술이 종결되지 않고 무엇인가 이야기가 남아 있는가 싶은데 시는 끝나고 만다. 김동준 시집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것은 문명과 속도를 비껴서서 질주의 바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질주 바깥의 지향은 시간의 내부를 증폭시켜 존재 자체의 가치를 발견하는 유폐의 시간을 시 안에 절묘하게 확보하고 있다. 자본의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는 자발적 유폐의 시간은 조작되고 균질화된 시대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늘의 안쪽에 가 닿은 시인의 시선은 속도에의 저항을 통해 자기만의 속도에 도달하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질주 시대 속도의 욕망과 내재된 폭력을 선명하게 부감하는 그늘의 힘은 속도에 관한 시인의 사유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