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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뜻해지는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사물을 만지면 그와 관련된 기억이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사야카. 어느 날 집 마당에 귀중한 무언가가 묻혀있다고, 흙을 파도 되겠냐는 편지를 받는다. 인생에 빛이 차오르는 치유의 순간들을 기묘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낸, 요시모토 바나나의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소설.
2018.06.12.
소설/시 PD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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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한 편지 7
2. 숨겨진 과거 103 3. 소중한 것 191 4. 기묘한 꿈 281 5. 발리 재방문 357 후기 415 |
Banana Yoshimoto,よしもと ばなな,吉本 眞秀子,본명:요시모토 마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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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가 내게 온 것은 진짜 우연, 운명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그걸 알기에는 내 인생 경험이 너무 짧았다. 보다 큰 무언가가 파도를 일으키거나 누군가의 작은 소원이 점점 큰 바람이 되어 이런 일이 생겼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을 듯한 기분이었다. 뭘까. 뭐가 시작되고, 뭐가 끝나는 것일까? --- p.17~18 역시 가슴이 설렜다. 아니, 설렌다기보다 달콤한 욱신거림 같은 것. 그리고 옛 상처도 아팠다. 굽은 채 펴지지 않는 왼손 엄지손가락. 그렇게 눈에 띄는 곳이 아니라서 평소에는 잊고 지낼 정도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 간혹 움찔하는 경우가 있다. --- p.53~54 “네 손,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아팠겠구나.” 시어머니가 놀란 표정을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아, 이런 말을 듣고 싶었던 거야. 나는 넘쳐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말해 주기를 바랐다. 책임이나 상처나 장애가 어떻다느니 하는 말이 아니라. --- p.168 비석 앞에서 눈을 감고 있는 짧은 시간에 나는 사토루를 회상했다. 내가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라는 결심을 했을 때다. 나는 그날 밤 바에서 사토루의 얘기를 듣고 엉엉 울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하겠다, 발리에 가서 몸에 좋은 자무를 처방받아 오겠다, 그러니 죽지 마라, 나는 친구가 많지 않으니까, 하는 말을 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눈앞에 있는 사토루는 건강하고 기운도 넘쳤으니까. --- p.208 뭐랄까, 아주 낯선 감각을 경험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완벽하게 용서하고 배려해 주는 듯한 감각. 성적인 사랑도 아니고, 부모 자식 간의 정도 아닌데, 정말 정당하게 한 인간으로, 생물로 사랑과 배려 속에 있다는 느낌이. --- p.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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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이상한 편지가 도착한다
이는 비참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놓는데… 시부모님 집의 2층에서 어린 딸 미치루와 나름 평온하게 지내고 있는 사야카. 성인이 될 때까지 자유롭게 발리에서 성장했던 그녀지만 뜬금없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한 지인으로부터 아이를 낳아 달라는 엉뚱한 부탁을 수락하여 일본에 머물고 있다. 그런 사야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명 사이코메트리다. “사물에 손을 대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차례차례 떠오르는 이미지를 흘려보내면 상당히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5쪽) 어느 날, 평온한 일상을 깨는 기묘한 편지가 도착한다. 댁의 마당에 소중한 무언가가 묻혀 있으니 조금 파내도 되겠느냐는. 더 놀라운 것은 편지를 보낸 사람이 사야카의 옛 연인 이치로라는 것. 사야카는 몰래 마당의 흙을 파 히비스커스 나무 아래 있는 꾸러미 하나를 발견한다. 풀어보니 작은 뼛조각이 소중하게 감싸여 있다. 재능을 발휘해 뼈에게 말을 걸어 본다. “사물과의 대화는 귀 기울여 들으려 하면 멀어지고 외면하고 있으면 속삭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아아, 이건 틀림없이 이치로 형제의 뼈일 거야. 이치로에게 형제가 있지만 그 사람은 아니다. 어려서 죽은 아이의 뼈겠지.” (54쪽) 기꺼이 가족이 되어 준 사야카를 마치 친딸처럼 돌보는 시어머니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전 남편 사토루가 남긴 아름다운 추억 속에 안온하게 있던 사야카. 어느 날 그녀의 인생에 옛 연인 이치로가 나타나면서 인생의 다음 단계가 조심스럽게 시작되려 한다. 과연 뼈에 얽힌 사연은 무엇일까. 이치로는 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저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회복되어 있는 삶의 기적 “나는 사물을 접하면 그 주인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을 접할 때는 아예 목석이다.” (109쪽)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이코메트러지만 현실에서는 다소 눈치 없고 어리어리한 사야카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일본에 돌아와서는 매번 남의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면서도 매 순간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잘 아는 씩씩한 여자다. “어중간한 상태에 있지만, 그 상태가 조금도 싫지 않다. 오히려 이대로 시간이 마냥 흘러 인생이 끝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이 행복하고 추억 속에 살고 싶다. 추억을 기반으로 한 미래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내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었다.” 한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마음에 여유로운 공간이 생겼다. 이 책은 회복이 시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했다. 인생에는 누구나 회복을 위해 잠시 웅크려야 할 시기가 있다. 얼른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세상이지만 나른하게 천천히, 때로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추억을 보듬고 있다 보면 어느새 많이 나아져 있는, 인생의 다음 단계를 나아갈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신작 『서커스 나이트』를 통해 어딘가 어중간하고 서툰 사람들이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추억을 안고 살아가던 사야카가 다시 조심스럽게 다음 스텝을 밝게 되는 과정,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자신의 길을 분명하게 보기 시작한 이치로, 이들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시어머니, 또 언제나 먼 곳에서 이들을 응원하는 발리의 아저씨와 아주머니,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이다 아저씨 등. 제각각의 사연과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이끌어 주면서 서서히 미래로 나아간다. 자연과 호흡하는 리듬이 은은하게 스며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름다운 사유가 담긴 문장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번 신작은 밤의 내음이 풍겨오는 듯한 발리의 이국적인 풍경과 사물의 기억을 읽어 내는 독특한 능력이 어우러져 이전 소설과 또 다른 낯섦을 선사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오물 범벅인 것과 청결하게 반짝이는 것, 모든 게 있다. 이쪽에서 밤을 쳐다보고 있으면, 밤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들도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일본에서는 잊고 있던 그런 감각이 되살아난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에 배어나는 대자연의 힘이 묵직하게 스토리 전체를 받치고 있는 느낌이다. “자연 속에 사는 무수한 생물에게 있는 가능성이란 게 그렇지. 싫어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제는 끝이다 싶은 경우도 많지만,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시간이 알아서 흘러가 숨통이 트이는 곳으로 나와 있곤 하잖니. 그래도 안 될 때는 주저앉는 수밖에 없겠지만.” “발리에 오면 일본에서 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두 물거품처럼 여겨진다. 자잘하고 하찮게. 그럴 정도로 이 섬에서는 마치 강물이 콸콸 흐르는 것처럼 무언가 거대한 것이 흐르고 있다.” 어느 덧 중년이 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한층 성숙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미스터리를 읽는 듯한 흥미진진함과 동시에 사이코메트리라는 다소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도 고요하고 단단하게, 서서히 마음을 풀어 주며 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감동이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