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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00년 한국 고대사 통설의 문제점
2. 새로운 한국 고대사 체계를 통해 본 사료에 대한 인식 3. 한국 초기 국가의 형성 신화(설화) 4. 새로운 한구 고대사 체계를 통해 본 금석문 연구 5. 인류학 이론의 수용과 새로운 고대사 체계 6.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체계 |
李鍾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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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출발점이 통설과는 다르다는 것은 <삼국지> '한전' 중심의 역사 연구가 아니라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통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한국 학계에서 <삼국지> '한전'의 신빙성에 대한 연구는 물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가 없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물론 한국 학계는 백제 고이왕 27, 28sus(260, 261), 신라 내물왕(356 - 402)부터는 신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일본 학계의 견해보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중 신용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렸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마저 본격적인 사료 비판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지금까지도 한국 학계가 일본 황국 사관(한국학계에서는 주로 식민 사관이라고 하여 왔다)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왜의 한반도 남부 침략과 지배, 임나 일본부설을 부정한 것만으로 일본 황국 사관(소위 식민 사관)이 극복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통설에 의한 연구 체계는 정당한 한국 고대사 연구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한국사 연구가들이 중시해 온 문헌 비판(또는 고증) 중심의 소위 실증 사학마저 포기한 것임을 잘 보여 준다. 한국 고대사를 빼앗기 위하여 일본 황국 사관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론을 제기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 학계에서 어느 누구도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문헌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일본 황국 사관으로 왜곡된 한국 고대사 체계의 근본적 문제를 없애지 않고는 한국 고대사 연구는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현재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 대한 수정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수정론의 뿌리는 부정론에 있다. 초기 기록에 대한 부정론은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 고대사 연구를 가롬가은 통설이 되어 왔다. 그와 같은 통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사료적 가치를 부정하고 대신 <삼국지> '동이전'의 가치를 신빙하는 것이다. 필자는 통설과는 달리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사료로 이용해 통설에서 포기한 300여 년 이상의 백제사, 400여 년 이상의 신라사를 한국 고대사 체계로 재구성해 살려내는 작업을 해 왔다. 이 같은 필자의 작업은 한국 고대사를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해명하는 연구 방법론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필자는 통설과는 다른 한국 고대사 체계(또는 페러다임)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한국 고대사 체계를 세우고자 금석문 자료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였고, 건국 신화를 역사 연구의 자료로 받아들였다. 또한 인류학 이론을 토대로 한국 초기 국가의 새로운 정치, 사회 발전론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학 이론을 도입해 새로운 정치 발전론에 대한 비판이 지니는 문제점을 알아보았고, 통설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부 체제설'의 문제점도 비판할 수 있었다. 한편, 필자는 한국 고대사 연구를 위한 새로운 사료 발굴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중에는 <화랑세기>가 있다. 다른 연구자들이 위작이라고 하는 <화랑세기>를 김대문이 저술한 <화랑세기>의 필사본이라고 주장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화랑세기>의 신빙성뿐 아니라, 위작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 결과 <화랑세기>에서 지금까지는 위작 가능성을 찾을 수 없었다. 비록 이 책에 <화랑세기>에 대한 논문이 실리지 않았지만, 새로운 사료를 찾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두기로 한다. 하지만 필자의 모든 연구는 <화랑세기>와 별도로 가치가 있는 점도 밝힌다. 아울러 <화랑세기>는 100년 통설의 또다른 문제들을 밝혀낼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직감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한국 고대사 체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통설과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한국 고대사 체계(또는 패러다임)에 대해 변론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 고대사의 통설 모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에서 비롯된 소위 한국 고대사의 통설은 필자의 한국 고대사 체계와는거리를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있음이 분명하다. 필자가 20세기의 통설을 비판하게 된 데는 통설보다 사료에서 출발한 연구를 함으로써 통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통설을 비판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하고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없었다면 필자의 연구는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