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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전
추억충 왕의 넋 가말록의 탈출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겨자씨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들에 관하여 작가의 말 |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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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땅 속에 묻힌 지 보름쯤 지난 날 밤이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멀리서 대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저음으로 웅웅 울리는 남자 목소리가 났어요.
자정이 한참 지난 한밤중에 누가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짜증이 난 저는 이불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별당까지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바깥 행랑채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한밤중에 남의 집 앞에서 저 난리냔 말입니다. 하품을 하며 안채 쪽으로 걸어 나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열린 중문 너머로 집안 여자들과 종과 머슴 들이 몰려나와 있는 게 보였는데 아무도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어요. 다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멈칫거리며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밤바람에 정신이 맑아지자 저 역시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_「구부전」 --- p.25~26 물에 젖은 흐릿한 욕실 거울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 없이 칫솔을 꺼내던 윤정은 갑자기 깜짝 놀라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흐릿하게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모든 것들이 그 순간 한꺼번에 정리되고 명확해졌다. 나는 사랑에 빠졌어, 윤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내 것이 아니야. _「추억충」 --- p.108~109 신 교수는 뒤늦게 신성과학자의 얼굴에 생긴 반짝이는 긴 상처를 눈치챘다. 상처는 왼쪽 눈 밑에서 시작해 뺨을 가로질러 목 뒤에서 끝났다. 과학자는 신 교수의 시선을 눈치채고 엄지로 상처를 쓱 문질렀다. “영생파 광신도 짓이에요. 두 달 되었어요. 많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제자 한 명은 다리를 하나 잃을 뻔 했어요. 다행히도 요새는 의술이 많이 좋아졌지요. 그 미치광이는 알렉산드리아 경찰이 사살했어요.” “죽고 나서 영혼이 천국으로 날아가던가요?” “살아있을 때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영생파 신도들만 있는 천국이라니, 끔찍하지 않습니까? 왜들 그렇게 자신의 불멸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영생파는 동방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이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모든 사람들은 죽은 뒤에 심판을 받고 둘 중 하나로 들어가 영원히 격리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당연히 모든 과학자들을 싫어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천문학자들도 싫겠지만 영혼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신성과학자들은 더 싫었다. 그 신성과학자가 탤런트 보유자라면 더욱 그랬다. _「왕의 넋」 --- p.135~136 다섯 시간 뒤, 시립경기장 지하실에 이동 우리를 설치한 보안회사 직원들은 라두들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컨테이너에서 나와 이동 우리로 들어 간 라두들은 목이 짧고 머리가 조금 더 둥글고 컸으며 날개가 없을 뿐 그림책에 나오는 용과 같았다. 그들은 우리 안을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가둔 창살의 냄새를 맡았다. 둔하게 번들거리는 그들의 붉은 눈은 안에 발광체를 박은 유리알처럼 무표정했다. 오히려 그들 등에 심은 전자문신 쪽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 직원이 컴퓨터로 지시를 내리자 라두들의 넓적한 등짝에는 맥주회사 광고가 번뜩거렸다. 우리 문 하나가 열리고 가말록이 기어 나와 몸을 일으키자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가말록은 컸다. 아무리 작게 봐도 8미터는 넘을 것 같았다. _「가말록의 탈출」 --- p.156~157 오늘 딸을 돌려보냈다. 해초로 만든 옷을 입고 보트 위에 누워 있는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예뻐 보였다. 해초밭에 도착하자 우리는 항아리에 담아온 물고기의 진액을 아이의 몸에 뿌리고 서서히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스물을 세기도 전에 진액 냄새를 맡고 온 작은 물고기들이 아이의 옷과 살을 물어뜯었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얼굴이 물고기 떼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나는 딸의 끝을 봐야했다. 집에 돌아와 내가 목탄으로 그린 아이의 초상화를 꺼냈다. 아내는 말렸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화로 속에서 그림이 불타는 동안 아내는 울면서 내 등을 후려쳤다. 나는 아내를 애써 무시하며 불타고 남은 재를 그러모았다. 나는 밖으로 나가 재를 바람에 날렸다. 마지막 한 줌의 재가 허공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내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아내의 상실감을 이해한다. 누군들 자기 아이의 장례식을 치르고 싶겠는가. 누군들 그 참혹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들 초상화와 이름을 붙들고 그 아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환상을 만들고 유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세계는 같지 않다. 죽은 자들을 받아들이면 우린 그 대가로 우리의 삶을 바쳐야 한다. _「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 p.181~182 약간의 운과 몇억 년의 시간이 더해져 겨자씨에 자생 문명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할까? 나는 겨자씨 저편에서 태어난 지적 생명체들이 적도 대륙의 해안을 타고 대장정을 떠나는 모습을 상상한다. 서쪽으로 가는 동안 그들은 지평선 너머의 거대한 무언가가 구름 뒤에 가려져 있는 걸 볼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언덕이나 산일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산처럼 보이던 것은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고 점점 거대해진다. 한참을 걸은 뒤에야 그것이 그들의 태양을 삼킬 만큼 거대한 천체라는 걸 알아차리겠지. 티타니아가 하늘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용감한 몇 명은 겨자씨에서 가장 높은 산인 헬레나의 꼭대기로 올라가볼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지금까지 구름 속에 가려져 있던 티타니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에 거꾸로 박힌 둥그렇고 거대한 세계. 그들은 공포에 질릴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닥친 경외감 때문에 겁먹는 것조차 잊어버릴까. _「겨자씨」 --- p.227~228 “당신이 온 세계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줘, 마법사.” 길잡이가 말했다.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왜?” 마법사가 웅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니까. 어떻게 세상이 공 모양일 수가 있어?” “중력 때문이야.” “여기도 중력이 있잖아. 그런데 왜 세상이 둥글지 않아? “여긴 원래 그런 곳이니까.” “당신네 세계에선 커다란 불덩어리 주변을 둥근 돌들이 돈다고? 그 돌들 위에서 사람들이 산다고?” “응.” “어디에 가면 그 돌덩어리를 볼 수 있어?” “못 봐.” “당신은 거기서 여기로 왔잖아. 왜 나는 당신네 세계로 못 가는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난 그 세계에서 온 게 아니야. 그 세계에서 여기로 온 꿈을 꾸는 거지.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_「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 p.279~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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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눈앞에 펼쳐보이는
치밀한 논리와 기막힌 입담의 SF 7편! 「구부전」 지금이야 “뱀파이어”라는 편리한 말이 있어서 설명하기 쉽지만, 조선 시대에 피를 빨아야 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면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 소설은 조선 시대에 느닷없이 일어난 뱀파이어 사건을 요새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회고록 형식을 취한다. 아흔아홉 칸 대저택의 며느리로 시집간 한 소녀가 기막힌 입담으로 시댁 식구들과 치렀던 피 튀기는 한판 전쟁을 들려주는데. 어쩌면 조선과 세계의 역사가 뒤바뀔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추억충」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음을 갑작스럽게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 감정이 나의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추억충’이라는 외계 미생물이 바이러스처럼 퍼지며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긴다. 꿈결처럼 누군가 다른 이의 시각으로 그가 사랑하는 상대를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차분하게 그 감정의 진원지를 좇는 섬세한 SF. 「왕의 넋」 바티칸 교황청과 그들의 ‘신성과학’이 전 세계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는 세계. 왕조를 유지하던 조선은 세속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왕의 목을 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바티칸 신성과학자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은 대륙을 가로질러 함박눈이 내리는 한양의 연구소에 도착하는데. 대체 역사의 기이한 분위기 속 환상적인 묘사가 압권인 소설. 「가말록의 탈출」 고대 검투사들처럼 경기장 안에서 혈투를 벌이는 외계의 거대 괴물들. 인간들은 둥근 것만 보면 둥지로 가져오는 그들의 습성을 이용해 ‘가녹’이라는 게임을 착안한다. 괴물들을 여섯 마리씩 묶어 경기장에 내놓고 하늘에서 공을 떨어뜨리면 이들은 공에 무서운 집착을 보이며 서로를 물어뜯고 싸운다. 어느 날 한 괴물이 탈출에 성공하고, 그를 좇던 경관들은 괴물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하는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순수한 집념, 그것은 인간만의 것일까?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다도해가 아름다운 외계 행성에서 일곱 해를 간신히 채우고 죽은 딸아이의 장례식이 열린다. 해초로 만든 옷을 입히고 물고기의 진액을 바른 아이의 몸이 바다로 밀려 내려간다. 이곳은 천 년 전 핵전쟁으로 문명이 파괴된 행성. 살아남은 자들은 오직 생명과 현재만을 믿는 ‘반종교적’ 종교를 믿고 살아간다. 이 행성의 폐허 지역에 여행 상품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겨자씨」 현란한 색으로 번쩍이는 구름들 속으로 가오리처럼 생긴 어미 로봇이 들어간다. 가오리의 입 속에서 새끼들이 하나둘 기어 나오고, 그들은 곧 어미 로봇의 훈련에 따라 이 행성에 적응할 것이다. 이곳은 인간과 로봇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외계 행성 ‘겨자씨’다. 이들은 피에 물든 공포와 죽음을 겨자씨의 하늘에 도입하려 한다. 살육과 기아를 통해 유지되는, 지구의 그것과 같은 생태계.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마법사와 길잡이가 잠든 여왕을 깨우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판타지 세계. 검은 안개를 뚫고 괴수와 싸우며 성에 당도하는 긴 여정에서 길잡이는 마법사에게 묻는다. “당신이 온 세계 이야기를 들려줘.” 그곳은 세상이 둥근 공 모양이고, 커다란 불덩어리 주변을 둥근 돌들이 도는 세계다. 그곳은 단순하지만 기적을 허용하지 않는, 과학으로 작동하는 우리의 우주다. 그렇다면 그들이 모험을 펼치는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우리의 우주와 판타지 세계가 절묘하게 결합된 놀라운 S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