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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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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 고즈넉할 무렵 바위 비탈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그 모든 것을 처음으로 뚜렷이 느꼈다. 이를 골똘히 생각할수록 나 자신이 수수께끼처럼 보였을 때, 불현듯 그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적 어렴풋이 맛봤던 저 낯설고 경이로운 시간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 기억과 더불어 눈부시게 맑은 시간이 되돌아왔다. 감정들이 거의 유리처럼 환하게 내비쳐서 어느 감정이든 아무 가식이 없었고, 어떤 감정도 고통이나 행복을 품지 않고 오로지 힘과 울림과 흐름만을 의미했다. 내 고조된 느낌들이 일렁거리고 아른거리고 맞싸우면서 음악이 생겨났다.
인생사와 인간사란, 이것은 미워하고 저것은 사랑하며, 이자는 존경하고 저자는 경멸하면서 그리 손쉽게 헤쳐 나갈 수 없다. 세상만사는 얽히고설켜 있어서 거의 떼어놓을 수 없고 어떤 때는 거의 분간할 수 없다. “청춘이란 속임수입니다. 신문이나 교과서에서 떠드는 진짜 속임수예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라니! 노인들이 하는 일이 내게는 훨씬 더 만족스러워 보입니다. 청춘은 인생에서 가장 고달픈 때입니다. 이를테면 나이가 지긋해지면 자살하는 일이 거의 없지요.” “우리 노인들은 당연히 그 반대라고 말하지. 하지만 네 친구는 무언가 진리를 알아챘구나.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청춘과 노년 사이에 경계를 뚜렷이 그을 수 있다. 청춘은 이기심이 없어지면서 끝나며, 노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면서 시작되거든. 무슨 말인가 하면,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인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숱하게 겪는다. 어떤 소원이든 어떤 생각이든 소중하며, 어떤 기쁨이든 끝까지 즐기지만 어떤 고통이든 끝까지 겪기도 한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곧바로 인생 전체를 내던지는 젊은이들도 있지. 이것이 청춘이다..... 가장 정열적이었던 젊은이가 가장 훌륭한 노인이 되는 법이다. 학교 다닐 적부터 애늙은이처럼 행동했던 젊은이는 오히려 그렇지 못하지.” “제대로 된 예술가라면 인생이 불행할 수밖에 없네. 배가 고파서 자루를 열어 보면 그 안에는 늘 진주만 들어 있으니까!” “어떤 철학자는 같은 시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개인주의를 생각해 내고, 다른 철학자는 홀로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지. 우리의 외로운 감정은 일종의 병일지도 몰라. 다만 이를 어떻게 해볼 수 없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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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교 학생인 쿤은 학창 시절 여자 친구와 장난치며 썰매를 타다가 불구가 된다. 연주자의 길과 작곡가의 길을 놓고 고민하던 그는 알프스 산악 마을을 찾아가 그곳에서 작곡의 영감을 얻고 작곡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작곡한 실내악이 음악계에서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쿤은 궁정 오페라 가수인 무오트와 알게 된다. 변덕스럽고 거들먹거리며 바람둥이에 제멋대로 구는 무오트의 첫인상은 쿤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무오트가 쿤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위악적인 겉모습 속에 예술에 대한 열정과 깊이 있는 사고가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어 기질적으로 정반대인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무명의 초보 작곡가인 쿤은 무오트의 소개로 오페라하우스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입단하게 되고 거기에서 만난 동료 타이저에게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소개해 격찬을 받는다. 타이저의 소개로 임토르의 집에서 개최되는 실내악의 밤에 초대된 쿤은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한 뒤 임토르의 딸인 게르트루트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쿤은 무오트를 위해 준비해왔던 오페라 곡을 쓰기 시작하고 오페라 곡 연습을 계기로 무오트와 게르트루트는 만나게 된다. 쿤이 게르트루트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암시하자 게르트루트는 쿤에게 당분간은 친구 관계로 지내자고 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게르트루트와 무오트가 사귄다는 걸 알게 된 쿤은 변덕스러운 무오트와 게르트루트의 결합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사랑의 경쟁은 포기하고 자신이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양보한다. 그러한 갈등과 긴장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는 성공적으로 공연되고 쿤은 성공의 여운을 한동안 만끽하며 보낸다. 얼마 뒤 임토리의 집을 찾은 쿤은 무오트와 게르트루트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음을 듣게 되고 두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별거하게 된다. 게르트루트를 애타게 찾던 무오트는 게르트루트가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자 쿤에게 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무오트가 주문한 게르트루트의 초상화를 옆에 두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단잠을 자던 쿤은 새벽에 하인이 다급하게 불러 무오트의 방에 가보는데 방 안에 자살한 무오트의 모습이 침대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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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늑대』는 196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문학계에 ‘헤세 르네상스’를 불러온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작품이다.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헤세의 문학세계에 평단이 월계관을 씌워주었지만 헤세가 쓴 책들의 판매는 그의 사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존 체제와 관습에 저항하는 청년 문화가 확산되고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 삶의 대안을 모색하던 문화 그룹들이 헤세의 『황야의 늑대』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것이 헤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산되었다. 『황야의 늑대』는 헤세의 작품 중 연극, 음악, 영화 등의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대에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미국의 대표적 극단으로 인정받고 있는 ‘매직 시어터’와 ‘스테픈울프 시어터 컴퍼니’는 『황야의 늑대』에 등장하는 가공의 무대와 주인공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고 작품과 동명의 밴드와 앨범, 노래, 영화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황야의 늑대』는 헤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기법이 매우 현대적이다. 일반적인 내러티브와는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시민사회의 한 아웃사이더를 1인칭 시점, 관찰자의 시점, 소논문의 세 요소로 입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후반의 실재인지 환각인지 분명치 않은 ‘마술 극장’ 장면의 분위기는 서정과 낭만이 넘치는 초기작들과는 사뭇 다른 카니발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황야의 늑대』의 집필 동기는 헤세가 1차 대전 당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하리 할러는 시민사회의 시민성이 비겁함과 속물성과 안전제일주의로 흐르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하지만 자신이 완전한 늑대로서 야생에서 살 수도 없기 때문에 그는 시민사회의 경계에 아웃사이더로서 머물려 한다. 황야의 늑대도 시민사회의 건전한 시민도 될 수 없는 하리 할러의 딜레마는 원천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1차 대전 당시 헤세는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가 독일 국민들과 언론들로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전쟁이라는 악을 방지하는 데 시민사회가 보인 무력감과 이성의 상실은 헤세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작품 속에서 하리 할러가 어느 교수의 집을 방문했다가 교수가 자신이 쓴 반전 신문 기사를 거론하며 필자를 욕하는 말을 듣는 장면과 보수적이고 선동적인 신문으로부터 신랄하게 공격받는 대목은 1차 대전 중 겪은 헤세의 체험의 직접적인 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