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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3

원저토머스 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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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ore

영국의 대법관이자 인문주의자이며 주저인 『유토피아Utopia』로 인해 유토피아 사상의 창시자로 평가고 있는 인물이다. 1478년 2월 6일 런던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성 앤서니 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를 중퇴한 후 링컨 법학원에서 공부했다. 1501년 정식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률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신학, 철학, 예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한때 성소를 느끼고 이에 응답하고자 4년 동안 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의 영성 수련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평신도의 길을 선택했고 일생 동안 기도와 단식을 충실히 함으
영국의 대법관이자 인문주의자이며 주저인 『유토피아Utopia』로 인해 유토피아 사상의 창시자로 평가고 있는 인물이다. 1478년 2월 6일 런던에서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나 성 앤서니 학교를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를 중퇴한 후 링컨 법학원에서 공부했다. 1501년 정식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률가로서의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신학, 철학, 예술,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한때 성소를 느끼고 이에 응답하고자 4년 동안 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의 영성 수련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평신도의 길을 선택했고 일생 동안 기도와 단식을 충실히 함으로써 하느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둔 참된 신앙인으로 살았다. 헨리 8세가 영국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에 반대하여 1535년 7월 6일 반역죄로 참수형에 처해진 그는 1935년 5월 20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피코 델라 미란돌라전傳』(1510년)과 『유토피아』(1516년), 그리고 미완성인 채로 남았지만 후대 역사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리처드 3세전傳』(154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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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시몽 바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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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Bailly

1993년생으로,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프랑스 로렌의 고등예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만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의 중간쯤 되는 독특한 스타일로 『뉴욕타임스』 『리베라시옹』 등 다양한 신문과 잡지에 그림을 실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책 속에 책 속에 책』 『생태계 공생의 법칙』 『제1차 세계 동물 정상 회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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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앙드레 말로에 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 8대학 철학박사 과정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에 대한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귀국 후 출판사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그래픽노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비밀일기』 『자이 자이 자이 자이』 『오리엔탈 피아노』 『최초의 인간』 등 여러 권의 그래픽노블뿐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몇 편의 프랑스 철학책, 그리고 『올망졸망 철학교실』 『유토피아』 『이건 내 나무야』 『조금 많이』 『내 친구 수지』 등의 어린이책을 우리말로 옮겼고 최근에는 창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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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0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72쪽 | 640g | 230*310*12mm
ISBN13
9791186921876

줄거리

왕은 이미 거대한 왕궁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호화로운 두 번째 왕궁을 짓고자 백성에게서 무거운 세금을 거둬들이고자 합니다. 왕의 작가였던 토머스는 왕의 욕심에 분노해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비판하자 왕은 그를 잡아들이고자 합니다. 영리한 토머스는 왕에게 잡히기 전에 배를 타고 멀리 달아납니다. 토머스는 선장에게서 모두가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섬나라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유토피아’라는 그 이상적인 나라에 도착해 그 나라 왕자님과 백성을 만납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엄청나게 강력한 왕의 군대가 유토피아에 쳐들어온 것이죠... 왕의 군대와 왕자님의 백성은 한바탕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유토피아와 토머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출판사 리뷰

토머스 모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1535)는 법학자였던 존 모어의 아들로 태어나 열세 살 때부터 켄터베리 대주교이자 대법관이었던 존 모튼의 집에서 비서로 일했습니다. 모튼은 총명한 모어를 무척 아꼈고, 그가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수 있게 여러 가지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자기 뒤를 이어 법학자가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는 모어를 런던 법학전문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했습니다. 모어는 이 학교에서도 재치 있고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인기가 많았지만, 법학자보다는 성직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거친 옷을 입고, 초라한 음식을 먹고, 힘들게 노동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금욕주의 수도승이 되고자 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어는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녀 제인 콜트를 만나자 사랑에 빠져 수도승의 꿈도 버리고 아름다운 제인과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낳으며 행복하게 살았지만 얼마 뒤에 제인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어는 자녀에게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앨리스 미들턴이라는 부유한 여성과 재혼했습니다. 앨리스는 세상을 떠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셋이나 있었지만 모어의 세 자녀도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26살 국회의원 시절에 토머스 모어는 당시 왕이었던 헨리 7세가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다며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몹시 화가 난 헨리 7세는 토머스 모어의 아버지를 런던탑에 가두고, 모어에게는 벌금을 내게 했습니다. 모어는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나 변호사 생활에 열중했습니다. 하지만 모어의 능력을 믿었던 헨리 8세는 왕이 되자 그를 다시 불러내 일하게 했습니다. 모어는 정직하고 능력 있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전 유럽을 돌아다니며 외교 업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공을 많이 세워 왕실에서 귀족 작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헨리 8세의 비서였던 모어를 캐서린 왕비도 좋아했고, 모어가 대법관이 되자 런던의 제빵사였던 할아버지와 법학자였던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됐습니다.

젊은 시절 모어가 헨리 7세에게 저항했던 것은 국왕 한 사람에게만 권력이 집중되면 전쟁 같은 불행이 국민에게 닥칠 수 있으므로 견제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어가 상상한 ‘유토피아’라는 섬에서는 권력이 어느 한 곳에 집중되지도 않고,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교육받고,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돈도 필요 없고 자기 땅도 필요 없이 모두가 똑같은 집에서 살면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놀고, 농사지은 것을 시장에 가져가 무료로 나눠줍니다.

『유토피아』는 당시 유럽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평등하고 공정한 가톨릭 공동체를 꿈꿨던 모어의 생각은 소설에 그대로 반영됐고, 이는 그가 종교적 갈등에 휘말리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종교 문제에서 헨리 8세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였습니다. 가톨릭 성향이 강했던 그는 신교주의자 마틴 루터와 논쟁을 벌였고, 교황은 이를 흐뭇하게 여겨 헨리 8세를 칭찬했습니다. 모어는 루터와 개신교를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악의 무리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다가 헨리 8세는 교황과 갈등을 겪게 됐습니다.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볼린과 재혼하겠다고 하자, 교황은 물론이고 신하들도 모두 반대했습니다. 모어는 헨리 8세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끝내 헨리 8세가 교황권을 부정하자, 신교 세력을 지원하고 교황을 부정하는 헨리 8세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헨리 8세가 스스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수장령을 선포하자 모어는 이를 ‘전제 군주’가 되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나라의 평화를 파괴하는 행동으로 간주했습니다. 모어는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 취소를 요청하는 편지에 서명하기를 거부했고, 헨리 8세는 교황을 지지하는 성직자들을 숙청했습니다.

결국 모어는 건강을 이유로 사임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앤 볼린의 왕비 대관식 참석을 거부하자 정적들은 이를 빌미로 모어를 모함했고 모어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됐습니다. 그리고 앤 볼린을 왕비로 인정하는 의회 선언에 동참하지 않자 결국 왕의 명령으로 런던탑에 갇혔습니다. 1535년 7월 1일, 모어는 재판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닷새 뒤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반역죄로 처형당한 모어의 머리는 런던 브리지에 한 달 넘게 걸려 있었습니다. 모어는 처형장에서 사라졌지만 그의 작품 『유토피아』는 여전히 전 세계인이 즐겨 읽는 명작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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