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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 권
- 머리말 / 17 - 서론 ‘미국예외주의’의 비밀 / 27 제1장 공자와 미국의 국부들 제1절 “유교적 혁명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공자 학습과 중국연구 1.1. 프랭클린의 유교적 수신과 공자철학의 보급 활동 / 77 · 프랭클린의 중국학습 노력 / 78 · 프랭클린의 「자유와 필연, 쾌락과 고통에 관한 논고」 / 80 · 프랭클린의 최초의 유교적 수신 시도 / 87 · 『중국철학자 공자의 도덕』의 내용분석 / 90 · 자기도야를 위한 프랭클린의 13개 덕목 리스트 / 97 · 식민지 주민에 대한 프랭클린의 도덕·정치철학 교육과 수신기술의 보급 / 121 · 유교적 덕성주의에 대한 프랭클린의 확신과 덕성철학의 보급 노력 / 139 · ‘미국유생’ 프랭클린의 ‘효제·효자’·‘신상紳商’으로서의 삶 / 143 1.2. 공자의 “정자정야政者正也”와 프랭클린의 “정직은 최선의 정치다” / 145 · “Honesty is the best policy”의 유교적 전의: ‘진실’에서 ‘도의’로 / 156 · “Honest is the best policy”는 개신교 윤리인가? / 169 1.3. 프랭클린의 중국통치제도 연구와 활용 / 182 · 「중국으로부터의 편지(A Letter from China)」(1788) / 183 · 중국사법司法에 대한 프랭클린의 관심과 중국법전 입수를 위한 외교 구상 / 189 · 중국의 국가통계제도에 대한 프랭클린의 관심과 통계제도 도입 촉구 / 192 · 중국의 영예상향 원칙을 활용한 프랭클린의 ‘귀족공화국’의 저지 / 193 ·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프랭클린의 관심과 도입노력 / 209 · 노예해방의 원칙수립과 관철노력 / 211 1.4. 프랭클린의 중국농업·산업기술 연구와 보급 / 220 · 프랭클린의 중국식물 도입 / 221 · 도자기와 도예기술에 대한 프랭클린의 관심과 연구 / 230 · 중국 양잠기술의 연구와 도입 / 232 · 중국식 난방시스템의 도입과 개량 / 239 · 중국 항해·제지기술의 연구와 만리장성의 축성 계획 및 중국 연鳶의 모방 / 244 제2절토마스 제퍼슨의 공자철학과 시누아즈리 2.1. 토마스 제퍼슨의 공자철학과의 접촉 / 251 · 토마스 제퍼슨의 정치철학과 공자철학의 연속성과 친화성 / 252 · 제퍼슨과 공자철학의 이른 조우와 활용 / 254 2.2. 공자철학과 제퍼슨의 계몽철학 간의 구체적 연관 / 261 · 공자의 “정자정야”와 제퍼슨의 “통치의 전 기술은 정직함의 기술에 있다” / 261 ·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개진된 유교적 도덕원칙 / 270 · 제퍼슨의 유교적 종교관 / 276 · 제퍼슨의 유교적 종교자유론 / 292 · “A Benign Religion”의 정체 / 298 · 제퍼슨의 유교적 선정善政 개념 / 305 · 제퍼슨의 유교적 행복국가론 / 311 · 대통령 제퍼슨의 스크랩북과 「아주 오래된 중국 송시」 / 313 2.3. 중국 신사제도와 제퍼슨의 ‘자연적 귀족’ 개념 및 교육이론 / 327 · 중국의 ‘신사’와 제퍼슨의 ‘자연적 귀족’ / 328 · 신시나티협회의 귀족제 도입 기도에 대한 제퍼슨의 저지 / 358 · 제퍼슨의 중국식 근대 교육제도 법안 / 376 · 제퍼슨의 버지니아대학교 설립 / 400 · 제퍼슨의 근대적 학교제도 법안의 전위적 성격과 사후적 실현 / 408 2.4. 봉건적 장원 청산과 노예제 폐지를 위한 제퍼슨의 분투 / 412 · 제퍼슨이 읽은 르콩트와 뒤알드의 중국론: “노비 없는 소농사회” / 413 · 17-18세기 중국의 “노예 없는 소농사회”, 그 형성과 발전 / 423 · 버지니아 토지개혁과 소농체계 수립을 위한 제퍼슨의 분투 / 437 · 노예제 폐지를 위한 제퍼슨의 입법화 투쟁 / 453 2.5. 제퍼슨의 시누아즈리와 중국정원의 애호 / 473 · 제퍼슨의 시누아즈리 건물과 정원 / 475 · 시누아즈리 농작물 코친차이나산 산도(밭벼)의 도입 / 481 제3절 다른 국부들의 공자숭배와 시누아즈리 3.1.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의 중국애호심과 시누아즈리 / 491 · 조지 워싱턴의 대對중국 직접교역과 중국모방적 고립주의 및 시누아즈리 / 491 · 위싱턴의 중국적 미감과 시누아즈리 / 501 · 존 애덤스의 중국애호주의와 공자철학 지식 / 509 3.2. 존 제이와 알렉산더 해밀턴의 중국중시론과 공자숭배 / 516 · 존 제이의 은연한 공자숭배와 중국관심 / 516 · 알렉산더 해밀턴의 중국중시론 / 525 3.3. 제임스 매디슨, 토마스 페인과 벤저민 러시의 중국열광 / 530 · 제임스 매디슨의 중국지식과 공자추앙 / 530 · 토마스 페인의 공자숭배 / 533 · 벤저민 러시의 공자숭배와 중국애호 / 539 제4절 건국 전후 미국 철학자·과학자·문인들의 공자추앙 4.1. 바트램, 로건, 발로우, 모스, 드링커의 공자숭배 / 545 · 식물학자 바트램의 공자숭배 / 546 · 책을 사랑한 철학자 제임스 로건의 공자숭배 / 549 · 시를 쓴 법조인 조엘 발로우의 공자 존승 / 551 · 인문지리학자 제디디어 모스의 공자 찬양 / 552 · 엘리자베스 드링커의 공자찬양 / 561 · 익명 또는 가명 필자들의 공자숭배 / 562 4.2. ‘미국의 공자’ 랄프 왈도 에머슨의 유교적 도덕·정치철학 / 565 · 랄프 에머슨의 초월주의와 공자철학의 결합 / 568 · 공맹철학과 중국 정치제도에 대한 에머슨의 찬양과 추종 / 583 · 에머슨의 최초의 저서 『자연본성』에 스며있는 공자 논지들 / 608 · 에머슨의 공자주의적 우정友情 이론 / 637 · 에머슨의 총괄적 공자상 / 653 4.3. ‘미국 유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공자철학 / 660 · ‘미공간 초고’ 속의 96개 공맹어록의 영역문에 대한 분석 / 663 · 『시민불복종』의 유교적 본질: ‘무도은둔’으로서의 ‘시민불복종’ / 708 제2장 공자철학과 미국 독립사상의 형성 제1절 공맹의 자유·평등·혁명철학과 귀천 없는 중국사회 1.1. 공자의 태생적 자유철학과 극동의 백성자치 사회 / 745 · 치자의 ‘무위이치無爲而治’ 이념: 백성의 소극적 자유의 전제 / 746 · 백성의 적극적 자유로서의 ‘백성자치’ 이념과 자치제도 / 776 · 무위無爲경제와 자유교역: 자유시장의 이념과 제도 / 799 1.2. 공자의 태생적 평등철학과 귀천 없는 중국사회 / 822 · 공자의 자연적·태생적 평등이념(무생귀자無生貴者·무류균등無類均等) / 823 · 교육과 관직의 기회균등(有敎無類·士無世官) 원칙 / 832 · 노비제의 철폐와 완전 평등사회의 구현 / 844 · 남녀·부부·부자·군신 간의 구별과 평등 / 846 · 선후관계·상하관계·지배관계의 구분 / 847 · 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균제 정책 / 898 |
黃台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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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공자와 미국의 건국 유교적 민주공화국의 탄생』 제1-2권의 출간으로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300여 년 간 지속된 유교문명의 서천西遷과 서구 계몽주의 간의 관계, 또는 ‘공자와 근대국가의 역사적 연관’을 추적하는 도덕철학적·정치사상적 대장정이 일단락된다. 『공자와 미국의 건국(1-2)』은 5부작 전 8권의 종결편이다. 이 5부작 전8권은 『공자와 미국의 건국(1-2)』 외에 16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까지 공자철학과 유교문명의 서천을 집중 탐구한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1-2)』(2019), 17-18세기 서구 각국의 공자수용과 계몽철학의 전개를 탐구한 세 개의 저작 『17-18세기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1-2)』(2020), 『근대 프랑스의 공자 열광과 계몽철학』(2020),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2020) 등으로 이루어졌다.
15년간 진행된 이 연구를 연작連作으로 출판하려는 집필계획을 처음 수립했던 4-5년 전에는 이 집필 작업이 일필휘지로 손쉽게 완수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수집된 방대한 사료와 자료들을 섭렵하며 집필을 더해갈수록 범위가 계속 확장되어 세 권이 네 권이 되고, 네 권이 여섯 권이 되고, 여섯 권이 여덟 권이 되었고, 집필 중간단계에서는 과연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 하는 의문마저 들 정도였다. 이 종결작 『공자와 미국의 건국(1-2)』과 씨름할 때는 더욱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 연구대상을 과감하게 좁히고 한정해 마침내 단 두 권으로 압축해 완결할 수 있었다. ‘근대의 이론적 재구성’과 ‘근대적 국가제도의 유교적 유래’에 대한 거대한 연구 과업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번의 5부작의 출간으로 이 방향의 연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 ‘중간결산’을 본 셈이다. 미국은 사상초유의 근대국가로서 언뜻 보면 공자와 가장 무관한 국가처럼 생각되는 국가다. 그러나 유럽의 잔재를 최대로 지우고 그 대신 그 반칸을 유교적 내용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던 미국은 뜻밖에도 중국문명과 공자철학으로부터 서구제국보다 더 큰 영향을 받은 나라다. 이 영향의 수준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유교국가의 리메이크’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본질구성적’인 것이었다. 미국 국부들과 차세대 미국지식인들은 미국을 ‘반反유럽·반反청교도’의 관점에서 정의하고, 유럽적인 모든 것을 구체제적(앙시앵레짐적)인 것으로 털어낸 빈자리에 중국적·유교적인 것을 채워 넣어갔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민주공화국은 ‘유교적 민주공화국’이었고, 키어스텐 데이비스(Kiersten L. Davis)의 표현대로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마스 제퍼슨은 “유교적 혁명가(the Confucian Revolutionaries)”였고, 카일 시몬스의 표현대로 에머슨은 “미국의 공자(the American Confucius)”였고, 소로는 ‘미국의 유생’이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후세대 미국지식인들은 미국의 이런 독특성을 아예 ‘미국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는 개념으로 범주화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예외주의’는 ‘미국 유교주의’인 셈이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아돌프 라이히바인의 말대로 유럽에서 공자는 “계몽주의의 수호성인”이었다. 17-18세기 유럽만이 아니라 식민지 미국과 독립국가 미국도 데이비드 포터(David Porter)에 의하면 “중국화(sinicizing)”되었고, 존 패스모어(John A. Passmore)에 의하면, “유교화·공자화(Confucianized)”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국화”와 “유교화”의 정도가 유럽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강했던 것이다. 미국의 이 ‘더 강한 중국화·유교화’는 주지하다시피 미국에서 ‘미국예외주의’로 나타났다. 오늘날 이 유교적·반反청교도적 미국예외주의는 미국의 학계·문화·언론계 전반과 민주당 지지층의 정치문화에 의해 대변되는 반면, 미국 국부들의 유교적 건국정신과 배치되는 청교도주의는 미국 공화당과 그 지지층, 그리고 보수적 복음주의 종파들 사이에 퍼져있다. ‘Confucianism’, 또는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제도·정치철학·경제철학·예론禮論·인식론·역학 및 각종 시무론時務論(정치·행정·경세론)의 비非종교적·반反형이상학적·감성주의적·현세주의적·유물주의적 종합체계다. 이 공자체계에 경천敬天행사·조상신숭배와 같은 종교적·형이상학적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세속적·현세적 중심요소들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난 한계요소이거나 오늘날의 국경일기념행사·올림픽기념제전 등과 같은 시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공자주의’는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300년간 저항과 마찰이 없지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아무런 유혈갈등 없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처럼 서천西遷함으로써 기독교세계를 공자화(유교화)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기독교는 약화·희석되어 중심적 권위와 결정력을 잃었고 서구사회는 빠르게 탈脫기독교화·탈脫주술화·세속화되었다. 물론 기독교세계의 유교화는 서양 전역에서 균등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다. 대서양과 지중해에 가까운 11개 극서極西국가들만이 유교의 수용에 열을 올렸고, 기타 동구·남구지역 국가들은 이를 등한히 한 채 여전히 개신교·가톨릭·정교 등 각종 기독교종파 속에 찌들어 있었다. 따라서 이 11개 극서국가만이 유교화를 통해 ‘낮은 근대(low modernity)’에 도달했고, 이어 ‘낮은 근대’를 넘어 ‘높은 근대(high modernity)’를 이룩했다. 송대宋代이래 ‘유교적 근대’로서의 ‘초기 근대(early modernity)’ 또는 ‘낮은 근대’에 먼저 도달해 있던 유교본산 한·중·일 3국은 극서지역으로부터 ‘높은 근대’의 서세西勢가 동점東漸하는 가운데 반세기 또는 1세기 만에 열화와 같은 서구화 정책을 통해 서구의 ‘높은 근대’를 따라잡거나 추월했다. 일단 이 역사 진행에서 제일 먼저 중시해야 할 대목은 종교가 아닌 비종교적 학문체계 ‘유교’가 기독교적 종교사회를 탈종교화·세속화시켜 근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또 중요한 사실은 극서 11개국에 대한 유교의 근대화 효과가 11개국의 종파(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벨기에의 구교, 미국·영국·독일·스웨덴·덴마크의 신교, 네덜란드·스위스의 신구新舊 혼잡)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이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중요한 사실은 전 세계에서 오직 극서 11개국과 극동 3국만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종교적 학문체계 유교가 기독교 종교를 희석시키고 세속화시켰다는 첫 번째 사실은 막스 베버의 ‘종교결정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유교의 과학적 지식과 반反형이상학적 도덕철학 및 시무기술·과학의 종합적 윤리·인식·지식체계가 기독교라는 ‘종교’를 이기고 서구사회를 ‘세속화’와 현세적 인간해방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유교가 신구종파를 가리지 않고 11개국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두 번째 사실은 베버의 ‘개신교 자본주의’ 테제만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확장·변형태인(폴 케네디, 헌팅턴 등의) ‘기독교 자본주의’ 테제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오직 유교를 수용한 극서와 극동, 이 두 지역만이 상호 패치워크(접붙이기와 짜깁기) 작용 속에서 ‘낮은 근대’와 ‘높은 근대’에 연달아 도달했다는 세 번째 사실은 동서세계의 ‘근대화 DNA’가 신들린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가 아니라, “귀신을 공경해서 멀리하는(敬鬼神而遠之)” 비非종교적 지식·윤리체계로서의 유교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환언하면, 이것은 세계의 여러 지역들 가운데 ‘유교화’가 더 많이 진행된 지역일수록 더 근대화된 반면, 유교화가 덜 진전된 지역이거나 아예 유교화를 모르는 지역일수록 전근대와 비非근대의 상태에 깊이 빠져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다음에 나올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 서구문명의 유교적 근대화와 유교국가의 서구적 근대화』에서 집중적으로 논구되는 ‘유교적 근대화의 법칙’이다. 지금까지 제시한 세 가지 관점을 종합하면, 1980년 이래 동아시아의 이른바 ‘네 마리 용’(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의 자본주의적 흥기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유교적 자본주의’라는 개념도 베버의 테제와 마찬가지로 그릇된 사이비개념으로 폐기처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교적 자본주의’는 19세기말에 자본주의를 이룩한 일본과, 1920년대에 이미 세계 4대 무역대국으로 복귀한 중국을 부당하게 빼고 유교문명권의 ‘네 마리 용’만을 실례로 제시해 유교윤리의 바탕 위에서도 자본주의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신조어였다. 이 ‘유교적 자본주의’는 중국의 낙후성을 유교 탓으로 돌린 베버의 유교분석을 기각하고 ‘개신교 자본주의’와 다른 유형의 자본주의로서 유교적 유형도 나란히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막스 베버의 역사날조적 개신교자본주의론을 수정했다. 그러나 이 유교자본주의론은 ①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이미 ‘높은 근대’에 도달한 일본과 중국을 이론에서 배제하고, ② 베버의 그릇된 종교결정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③ 개신교윤리가 근대자본주의를 낳았다는 베버의 그릇된 테제를 전제로 인정하고, ④ ‘개신교’ 자리에다 ‘유교’를 갖다놓는 점에서 베버처럼 유교를 ‘종교’로 간주한 사중四重오류의 이론이다. 나아가 ‘극동’과 ‘극서’, 이 두 지역에서만 달성된 ‘근대화’의 ‘일반적 DNA’를 ‘유교’라는 비非종교적 단일요소로 규명해낸 필자의 연구지평에서 보면, 극동·극서의 ‘근대화’나 ‘근대 자본주의’는 공히 본질적으로 ‘유교적’일 따름이다. 이 때문에 ‘유교적 자본주의’란 단순히 사중오류의 이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어반복의 쓸데없는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유교자본주의론’은 그간 이런 그릇되고 쓸데없는 언어유희 속에서 이광요처럼 공자철학의 민유방본民惟邦本·백성자치론百姓自治論에서 유래한 근대 서구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의 유교적 본질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서양 것’으로 부정하고 유교문화의 성리학적 권위주의 잔재殘滓의 복원을 꿈꾸는 반동정치를 뒷바라지하는 사이비이론으로 기능해왔다. 이 책 이 거의 탈고될 무렵 필자는 중국 인민일보사가 2019년 12월 15일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개최한 「한중일 유명기자 간담회(中日韓名記者對話會)」에 이 신문사의 초청으로 참석해 5부작의 내용을 요약하는 기조연설을 한 바 있다. 이 기조발제문의 제목은 「공자철학은 한중일 3국의 문화적 긍지이자 공존공영의 공동자산이다」였다.(이 발제문의 대강은 이 책의 ‘결어’ 속에 복원되어 있고, 강연동영상은 유튜브 ‘황태연아카데미아’에서 볼 수 있다.) 사천 성도에서 중국 청중들은 필자의 이 연설에 충격을 받고 흥분을 감추지 않으면서 필자에게 연달아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사천 인민일보는 2019년 12월 15일 연설 직후 2시간 뒤 바로 이 발제문 전문을 보도했고, 북경의 인민일보도 다음날 간담회 소식을 전하면서 필자의 연설문만을 따로 떼어 전국 인터넷망에 전문을 전재全載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유명기자간담회 소식을 전하면서 인터넷신문에 연설문 전문을 개재했다. 그리고 중국외문국中國外文局 산하 ‘백만장百万庄통신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일정에 맞춰 이 기조발제문의 요약문을 2019년 12월 23일자 인터넷 통신망에 게재했다. 이 기조발제문은 한중일 유명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예영준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제언과 배려에 따라 절반 분량으로 줄여져 중앙일보 2020년 1월 8일자 ‘차이나 인사이트’ 난에도 게재되었다. 짧은 연설로 한 달 가까이 긴 각광을 받은 셈이다. 중국 지식인들은 이 연설을 진심으로 환호했다. 복도를 오가면서, 그리고 만찬장에서 방강산方江山 인민일보편집부국장(차관급)을 비롯한 중국 고위층들과 한국·중국 기자들로부터 연설내용에 감사하고 필자의 노고를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 찬사들은 그간 서구사대주의와 숭미주의 풍조에 심적으로 억눌려 살았던 극동지식인들이 문명적 해방감을 분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필자의 연구가 공자철학과 유교문명의 과거의 영광과 영향력을 되돌아보는 것은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필자의 연구관심은 철저히 미래지향적으로 유발된 것이다. 극동이 재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누가 보아도 21세기 이후 미래는 극동제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0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극동은 세계를 평화롭게 이끌었으나 서구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세계를 경략하고 유린·파괴했다. 21세기부터는 극동이 세계를 다시 인정仁政·대도大道로 다스려 평천하平天下를 이룩할 것이다. 이 미래시대를 내다보면서 필자는 극동지식인들로 하여금 극동제국의 유교적 영광을 되돌아보고 문명적 자부심을 회복하게 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극동제국의 세계주의적·인도주의적 평천하를 사상적·도덕적·정치적으로 준비하게 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해야 하는 급선무는 일단 극동지식인들이 유교문명에 대한 만연된 자멸自蔑의식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지금 세계적으로 막 꽃피기 시작한 ‘한류韓流(The Korean Waves)’를 지원하려면 역사학적으로 한국인들의 자학사관自虐史觀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필자는 수 년 전 한국근대사를 연구할 때 먼저 한국인들의 자학사관을 극복코자 각별히 노력했다. 자학사관은 친일매국 사상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사상사를 연구하면서는 극동 지식인들의 문화적 자멸自蔑의식과 숭미주의·서구추종주의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공자와 서구의 관계를 다룬 이 5부작 전8권이 완결된 마당에 필자의 유일한 소망은 극동지식인들이 사상사에 대한 극악한 무지에서 생겨난 그 구질구질한 자멸의식을 떨쳐버리고 떳떳한 근대적 문명주체로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극동인들이 바야흐로 극동 부흥의 세계사적 진운을 맞아 유교문명에 대한 이런 자멸의식을 털어내고 미래의 세계문명을 유교의 평화적·인도적 방식으로 주도하는 길을 개척하는 것, 이것이 필자가 근 15년 동안 심혈을 쏟아 부은 ‘공자철학과 근대화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누구보다도 이 연구에 호응하고 이 연구를 성원하는 모든 독자들이 한국과 극동제국의 새로운 미래를 앞장서 타개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탈脫기독교화와 세속화 속에서 탄생한 서구적 근대의 ‘반反기독교적·유교적’ 본질에 대해 까맣게 모른 채 기독교추종주의와 복음주의적 숭미주의에 찌들어 유교문명을 자멸自蔑하는 ‘찌질이 양물洋物들’에게서는 다시 흥기하는 극동의 미래와 관련하여 그 어떤 새로운 길의 타개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하겠다. 필자의 지금까지 연구도 이미 동서양 학계에서 지난 100년 동안 가물에 콩 나듯 단편적으로 진행된 ‘유교문명 서천사西遷史’에 대한 연구의 총량을 월등히 뛰어넘는 방대한 규모에 해당하는 것으로서,외람되지만 객관적으로 아마 세계 최초,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자부한다. 이 연구과정은 필자에게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그 결과물이 ‘5부작 전8권’으로서 워낙 방대한 양이라 광범한 독자층의 호응을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학자들과 중국·일본학자들에 앞서 한국 정치철학자 1인이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한 이 ‘5부작 전8권’을 유명하지만 잘 읽히지 않는 방대한 ‘팔만대장경’처럼 엄정하고 심오한 과학적 탐구와 철저한 추적조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장서로라도 남기는 것은 대한민국과 극동국가들을 위해 두고두고 학술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4월 송파 바람들이에서 죽림竹林 황태연 지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