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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연 학술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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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 5
서론
■ ‘서구문명의 유교화’와 서구적 근대의 유교적 기원 / 37
■ 서구중심적 근대이론의 근본적 문제점 / 46
■ 대안: 동서의 교호적 문명패치워크로서의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 / 47
■ 19세기 중국의 일시적 낙후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과 올바른 규명 / 49

제1장 서구사회의 유교적 세속화와 근대화
제1절 근대의 본질: 만인의 자유와 평등에 입각한 인간해방

1.1. 근대의 공통된 본질요소들 / 54
■ 무엇이 ‘공통된’ 근대성의 요소들인가? / 56
⑴ 정치적 근대화 / 57
⑵ 군사적 근대화 / 58
⑶ 경제의 근대화 / 59
⑷ 국가정책(국가역할)의 근대화 / 62
⑸ 사법의 근대화 / 63
⑹ 사회의 근대화와 시민사회의 출현 / 66
⑺ 윤리도덕의 근대화 / 66
⑻ 종교·문화·예술의 근대화 / 66
⑼ 학문의 근대화 / 67
⑽ 생태학적 인간­자연 관계의 근대화 / 69
■ 근대사회의 ‘모델’로서의 중국 / 70

1.2. 공자철학과 18세기 경험철학의 헤게모니 / 72
■ 유럽철학의 ‘공자화’와 기독교로부터의 해방 / 72
■ 공자철학에 열광한 계몽주의자들의 실질적 영향력 / 78
■ 예수회 선교사들과 철학자들의 아이러니컬한 협력관계 / 80

1.3. 유럽의 ‘유교화’와 ‘중국화’: ‘서구의 모델’로서의 극동 / 82
■ 계몽사상의 ‘본질구성적’ 요소로서의 공자철학 / 83
■ ‘유럽의 모델’을 뛰어넘는 “진짜 약속의 땅”으로서의 극동아시아 / 100
■ 에드워드 사이드의 포스트모던적 오리엔탈리즘 테제를 넘어 / 15
■ 공자숭배와 중국열광의 극치 / 119

제2절 유럽사회의 세속화와 탈희랍적·탈기독교적 인간해방

2.1. 유럽철학의 탈희랍화(탈헬레니즘화)와 경험과학 / 126
■ 유럽중심적·희랍지향적 거대문명담론의 허구성 / 127
■ 공자열풍과 탈희랍화로서의 유럽근대사 / 133
- 탈희랍화의 제1단계: 헬레니즘에 대한 중국문명의 비교우위 선언 / 134
- 탈희랍화의 제2단계: 헬레니즘의 비판·격하와 공자숭배·중국열광 / 143
■ 희랍적대적 유교화로서의 ‘Modern Europe’과 진보사관의 탄생 / 162

2.2. 공감적 인애철학의 확산과 탈합리주의적 경험과학 / 166
■ 공자의 경험주의와 공감적 해석학 / 166
■ ‘이성’을 ‘공감’과 ‘인애’로 대체한 계몽철학과 철학적 탈희랍화 / 169

2.3. 서구 도덕의 세속화(탈주술화)와 탈기독교화 / 172
■ 공자와 세속적 윤리학 / 172
■ 유럽의 세속적 도덕철학의 창시자: 섀프츠베리와 볼테르 / 174

제3절 막스 베버의 근대이론과 그 파탄

3.1. 베버의 몽매주의(반계몽주의): “탈주술화로서의 재再주술화” / 181
■ 베버의 유럽중심주의적 ‘탈주술화’ 개념과 자가당착 / 181
■ ‘세속화’와 무관한 베버의 ‘탈주술화’와 ‘서양의 양면성’의 몰각 / 190

3.2. 역사적 진실: 공자철학의 충격에 의한 서양의 세속화 / 192
■ 유럽사회의 세속화와 탈기독화에 대한 극동 정치문화의 영향 / 192
■ 계몽주의적 자유사상가들의 공자숭배와 기독교비판 / 194

3.3. 베버의 근대자본주의론과 제문제 / 212
■ 칼뱅주의의 탈脫칼뱅주의적 자유개신교로의 변신 / 243
■ 베버의 물구나무선 원시적 자본축적의 동화童話 / 252
■ “Honesty is the best policy”와 공자의 “정자정야政者正也” / 272
■ 근대자본주의는 합리적 자본주의인가? / 292
■ ‘모험적 자본주의’로서의 진짜 ‘근대자본주의’ / 313
■ 수리적 계산성이 합리성? / 330
■ 자본주의 발달에서의 복식부기의 부차적·수단적·선택적 위치가 / 332
■ 중국·한국·일본의 복식부기와 베버의 중국부기부재론 / 357
■ 프로테스탄트 자본주의 테제와 그 근본적 오류성 / 343

제4절 현대의 베버주의적 근대문명론과 그 오류들

4.1. 새뮤얼 헌팅턴의 베버주의적 문명충돌론과 자가당착 / 360
■ 헌팅턴의 개신교민주주의론과 유교민주주의불가론 / 361
■ ‘문명충돌’이냐, ‘문명패치워크’냐? / 375
■ 유교가 ‘권위와 질서에 대한 무조건 존중’을 가르치나? / 395
■ 이광요의 ‘아시아적 가치’론에 대한 김대중의 비판 / 398

4.2. 복수적 근대성 이론의 제문제 / 405
■ ‘복수적 근대들’ 또는 ‘중층적 근대들’? / 405
- ‘복수적 근대성’ 테제와 ‘대안적 근대성’ 테제에 대한 비판 / 406
- 중층근대성론에 대한 비판 / 419

제2장 중국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와 자생적 고도근대

제1절 극동은 왜 서구에 (잠시) 뒤졌던가?

1.1. 맥닐·케네디·포어의 베버주의적 중국자본주의불발론 / 430
■ 개관 / 430
■ 윌리엄 맥닐의 베버주의적 중국자본주의불발론 / 433
■ 폴 케네디의 설명 시도 / 438
■ 데이비드 포어의 설명시도 / 446
- 의례적 계약제도와 법률의 결여 / 447
- 근대적 ‘공장’의 부재?-‘하부계약제’ 또는 ‘내부계약제’의 성격 / 452
- 중국의 가족적·씨족적 계약관행과 그 효율성 / 469
- 유교와 자본주의 간의 구체적·규정적 관계 / 484

1.2. 막스 베버의 중국자본주의불가론에 대한 비판 / 490
■ 중국적 자본주의의 흥기를 가로막은 유교의 4대 정조 / 492
⑴ 주술적 미신의 연대적 보존으로 인한 종교적 불합리성 / 492
⑵ 비인격적·공식적 관계를 배제하는 대인적 인격관계의 윤리 / 497
⑶ 보편적 인간애의 결함과 보편적 불신 / 505
⑷ 유교윤리의 무조건적 세계적응 정조 / 511
■ 공자의 현세주의와 세속적 종교관에 대한 베버의 평가절하 / 516
- 유교는 과학인가, 종교인가? / 533
- 중국사회의 세속성과 현세성에 대한 베버의 평가절하 / 546
■ 자본주의 가능성의 3대 요소와 유교적 정조로 인한 좌절 / 554
⑴ 중국의 신분해방 및 광범한 경제적 자유와 상거래의 자유화 / 554
⑵ 중국의 경제적 자유방임 정조와 유교적 복지국가 이념 / 558
⑶ 화식적 부에 대한 유교적 지지 정조 / 563
■ 근대자본주의의 필수적 요소의 부재 / 568
⑴ 계산가능한 합리적 법규의 부재 / 568
⑵ 합리적 전문관료체제의 부재 / 578
⑶ 시민계급(부르주아지)의 부재와 도시자치권의 결여 / 584
⑷ 부기제도의 결여 / 590
⑸ 합리적 과학기술의 부재 / 591
⑹ 전쟁자본주의와 대외적 노획자본주의의 부재 / 598
■ 베버와 베버주의자들의 중국연구 방법에 대한 비판 / 606

1.3. 마크 엘빈과 케네스 포머란츠의 탈脫유럽중심주의적 설명시도 / 612
■ 마크 엘빈의 반反베버주의적·탈유럽중심주의적 설명시도 / 612
- 인구증가와 수요축소의 문제 / 614
- 엘빈·차오·후앙에 대한 반론 / 624
- ‘고차원 평형의 함정’이란 것이 있기나 했나? / 627
- 공장제를 기피한 중국의 대안: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 / 632
■ 케네스 포머란츠의 생태·경제학적 설명시도 / 642
- 세계 최부국 중국 / 642
- 생태문화적 유물론: 영국의 우연한 성공과 중국의 우연한 실패 / 646
- 비판적 검토 / 649

1.4. 중국의 100년 장기불황의 원인: 서양 수입대체산업의 급성장 / 654
■ 패치워크문명의 법칙 / 655
■ 16-18세기 중국제품의 제조와 수출입의 천문학적 규모 / 660

저자 소개 1

黃台淵

황태연黃台淵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헤겔에 있어서의 전쟁의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복무 후 1984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1991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Johan Wolfgang von Goethe-Universitat zu Frankfurt am Main)에서 《최신 기술변동 속에서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4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30년 동안 동서양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연
황태연黃台淵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헤겔에 있어서의 전쟁의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군복무 후 1984년에는 독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여 1991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Johan Wolfgang von Goethe-Universitat zu Frankfurt am Main)에서 《최신 기술변동 속에서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4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30년 동안 동서양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며 가르쳤고, 2022년 3월부로 명예교수가 되었다. 그는 지금도 동국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를 계속하며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한국정치연구회 부회장(1997-1999)을 역임하고, 지금은 한국정치학회, 정치사상학회, 한국국제정치학회의 명예이사이고, 김대중학술원 회원이다.

그는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원(1977-1980), 한겨레신문 프랑크푸르트 통신원(1989-1992),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1998-2003),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소장(2003-2004), 민주당국가전략연구소 소장(2007-2008) 등을 역임했다. 그간 한국일보 · 서울신문 · 조선일보 · 동아일보 · 중앙일보 등 여러 신문에서 칼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2025년 7월부터 광복80년기념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근 반세기 동안 동서고금의 정치철학과 제諸학문을 폭넓게 탐구하면서 공자철학과 한국·중국근대사에 관한 광범하고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공자철학의 서천西遷을 통한 서구 계몽주의의 흥기와 서양 근대국가 및 근대화에 관한 연구에 헌신해 왔다. 그는 반세기 동안 총 87권의 책을 썼다.

동서정치철학 또는 공자철학연구서로는 『실증주역(상 · 하)』(2008), 『공자와 세계(1-5)』(2011),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1-2)』(2014·2015), 『패치워크문명의 이론』(2016), 『공자의 인식론과 역학』(2018),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1-2)』(2019), 『근대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2020·2023),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2020·2023),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2020·2023),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하)』(2020·2023),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상·하)』(2021·2023) 등이 있다. 그리고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2021)에 이어 『공자의 충격과 서구 자유·평등사회의 탄생(1-3)』(2022)과 『극동의 격몽과 서구관용국가의 탄생』(2022), 『유교제국의 충격과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1-3)』(2022) 등이 연달아 공간되었다. 공자 관련 저서는 15부작 전29권이다. 해외로 번역된 책으로는 중국 인민일보 출판사가 『공자와 세계』 제2권의 대중판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2015)를 중역中譯·출판한 『孔夫子與歐洲思想?蒙』(2020)이 있다.

서양정치 분야에서는 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최신 기술변동 속에서의 지배와 노동, Frankfurt/Paris/New York: 1992), 『환경정치학』(1992), 『포스트사회론과 비판이론』(공저, 1992), 『지배와 이성』(1994), 『분권형 대통령제 연구』(공저, 2003), 『계몽의 기획』(2004), 『서양 근대정치사상사』(공저, 2007)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그리고 2023년에는 『놀이하는 인간』(2023), 12월경에는 방대한 저작 『도덕의 일반이론: 도덕철학에서 도덕과학으로(상·하)』를 공간했다. 2025년 초반에는 『분권형 대통령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나누기』와 『정의국가에서 인의국가로: 국가변동의 일반이론(상·하)』을 거의 동시에 공간했다.

한국정치철학 및 한국정치사·한국정치사상사 분야로는 『지역패권의 나라』(1997), 『사상체질과 리더십』(2003),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2008), 『조선시대 공공성의 구조변동』(공저, 2016),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2016), 『갑오왜란과 아관망명』(2017),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2017), 『갑진왜란과 국민전쟁』(2017), 『한국근대화의 정치사상』(2018), 『일제종족주의』(공저, 2019·2023), 『중도적 진보, 행복국가로 가는 길』(2021·2023), 『사상체질, 사람과 세계가 보인다』(2021·2023), 『대한민국 국호와 태극기의 유래』(2023) 등 여러 저서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 금속활자의 실크로드』(2022)와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상·하)』(2023)을 공간했다. 2026년 현재는 『동학애국전쟁과 아관망명의 정치혁명(상·하)』, 『‘대한민국’이라 불린 만백성의 나라 대한제국』, 『고종의 거의밀지와 대한독립의군의 국민전쟁(상·하)』, 『한국 근대화의 정치철학과 개혁(상 · 하)』 등 근대사 4부작 전8권이 편집에 들어가 있다.

저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오픈강의 중이고, 이 강의는 유튜브 <황태연아카데미아>로 송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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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678쪽 | 150*225*35mm
ISBN13
9791190583374

출판사 리뷰

이 책은 ㉮ ‘극서제국極西諸國의 유교적 근대화’ 과정과 ㉯‘유교제국의 서구적 고도근대화’ 과정을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법칙’에 의해 체계적으로 논증한 순수이론서다. 이 순수이론의 명칭은 다름 아닌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Confucian modernity)’이다.
‘서구제국의 유교적 근대화’와 ‘유교제국의 신구新舊절충적 서구화로서의 고도근대화’는 동서 간의 교호적 문명패치워크(짜깁기·접붙이기)를 통해 차례로 이루어졌다. 유교문명의 서천西遷과 서구 계몽주의의 흥기, 그리고 계몽운동을 통한 극서제국의 근대적 변혁과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 한 마디로, ‘서구제국의 유교적 근대화’는 앞서 공간된 5부작 전8권의 저서들에서 이미 자세하게 규명되었다. 서구문명의 유교적 근대화 과정을 추적·분석한 5부작은 다음과 같다.
⑴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하)』(2019).
16-17세기 유교문명의 서천으로 발원한 유럽 계몽주의의 유래를 탐구한 책.
⑵ 『17-18세기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2020).
영국 모럴리스트들의 공자숭배와 계몽주의를 탐구한 책.
⑶ 『근대 프랑스의 공자 열광과 계몽철학』(2020).
17-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의 공자철학적 기원을 탐구한 책.
⑷ 『근대 독일과 스위스의 유교적 계몽주의』(2020).
푸펜도르프·라이프니츠·볼프·유스티·프리드리히2세·요셉2세·알브레히트 폰 할러의 계몽철학에 대한 공자철학적 영향을 탐구한 책.
⑸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하)』(2020).
프랭클린·제퍼슨·매디슨·페인을 비롯한 미국 국부들의 유교적 도덕·정치철학과 미국독립선언문·헌법·국가제도의 공자철학적 유래를 탐구한 책.
남은 과제는 이 5부작 전8권에서 역사적으로 추적된 ‘서구문명의 유교적 근대화’와 서구적 리메이크를 통한 ‘높은 근대(고도근대)’로의 도약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야 하는 또 다른 추가 작업은 ‘유교제국의 신구절충적 서구화로서의 고도근대화’ 과정의 이론화다.
19세기 조선·월남·일본은 송대 이래 발전된 ‘낮은 근대’의 궁극단계에 도달해 있었고, 중국은 초입단계의 ‘높은 근대’를 달성한 상태였다. 유교제국은 극서제국에서 일반화된 정상頂上수준의 ‘고도근대’ 문물들을 신속히 수용해 각국의 기旣달성된 ‘낮은 유교적 근대’ 또는 초입단계의 ‘유교적 고도근대’의 문물과 짜깁기하는 ‘신구절충 방식의 서구화’ 정책으로 정상수준의 ‘고도근대’를 달성했다. 따라서 19세기 극동제국의 근대화 과업은 흔히 얘기되듯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도약’이 아니라, ‘낮은 근대 또는 초보적 고도근대로부터 정상수준의 고도근대’로의 도약이었다.
이 책의 핵심목표는 새로운 근대이론으로서의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의 수립이다. 이 일반이론은 유교문화의 서천과 문명패치워크를 통한 ‘서구제국의 유교적 근대화’와 ‘유교제국의 신구절충적 서구화’에 대한 논증을 완결함으로써만 정립할 수 있다. 이 책은 극서와 극동의 ‘낮은 근대(초기근대)’와 ‘높은 근대(고도근대)’의 연달은 2단계 근대화 과정으로부터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이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일반적으로 근대화는 각국의 유교화 수준에 비례한다’는 법칙, 즉 ‘유교화와 근대화의 일반적 비례법칙’에 의해 ‘서구문명의 유교적 근대화’와 ‘유교제국의 서구적 고도근대화’의 양면에 대한 일관된 설명을 수행한다. 나아가 ‘유교화와 근대화의 일반적 비례법칙’으로써 극동·극서 외의 나머지 전 세계(동구·남구제국, 남미제국; 아프리카제국, 동남아·중앙아시아제국과 중동제국)의 전근대적·비非근대적·저低근대적 정체停滯상태와,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가르치는 강성剛性종교의 이슬람세계에 확산된 ‘반反근대적·반反서구적 대결의식’도 일관되게 설명한다.
주지하다시피 1840-70년대에 마르크스는 - 궁극적으로 1980·90년대 미국 브랜드자본주의의 흥기와 IT에 기초한 지식기반경제의 흥기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 - ‘공장제 자본주의’를 ‘근대 자본주의’의 유일무이한 항구적 생산방식으로 ‘과잉일반화’했다. 또 베버는 ‘근대 기업자본주의’의 발생을 ‘개신교윤리’ 덕택으로 돌히는 한편, 인구 많은 중국에 ‘공장기업이 없다’는 이유에서 청대 중국의 경제상황을 ‘근대 자본주의의 부재’로 단정하고 이를 ‘유교’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청말淸末 중국경제는 마르크스 자신이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노골적 노예제(Sklaverei sans phrase)”를 “주춧돌”로 전제한 “은폐된 노예제(verhullte Sklaverei)”로 규정한 자본집약적·노동절약적(고용파괴적) 공장제 자본주의를 건너뛰고, 명조 후기로부터 전래된 자호字號(브랜드)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 생산방식의 브랜드 자본주의를 1870년대부터 급속히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베버가 개신교자본주의론과 중국자본주의부재론을 전개하던) 1910-20대에 이미 세계 4대 무역대국으로 복귀해 있었다. 중국 특유의 고도근대(높은 근대) 생산방식에 속하는 이 ‘자호상인들의 광역 네트워크 생산방식의 브랜드 자본주의’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소매 혁명(retail revolution)’과 함께 생겨난 ‘브랜드 (리테일) 빅바이어(brand [retail] big buyer)’가 주도하는 ‘국제적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 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와 상통한다. 말하자면 중국은 미국보다 100년 앞서 초超근대적(현대적) ‘브랜드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미국·유럽·한국·대만·일본의 ‘국제적 OEM 네트워크 생산방식’은 1970년대 이래 미국에서 발달해 전 세계로 확산된 생산방식이다. 브랜드 빅바이어는 Walmart, GAP, Costco, Nike, Reebok, Carf, Beta, Aosom(이상 미국), Kingfisher(영국), HSE24(독일), EEZEEMARKETING(프랑스), Abodee(네덜란드), Nestle(스위스), Ikea(스웨덴), living and dining(호주), 홈플러스, E-Mart, G마켓, 카페24, K-푸드(이상 한국), Murata, LAOX, AEON, Dinos Cecile Co.(이상 일본), DERWAYS, Vita, Tarra Nava LLC, Yuterra, Sima-Land, Aktiv(이상 러시아), Tanvi International, 하드캠(이상 인도) 등과 같이 브랜드네임을 얻은 초대형 소매상업자본가(mega-size retail commercial capitalists)를 말한다. 가령 월마트(Walmart)는 미국 국내에만 3000여 개소의 초대형 마트·쇼핑몰·백화점을 엮은 전국적 소매 네트워크를 가진 세계적 메가사이즈 브랜드 빅바이어다. 아마존·구글·알리바바 등은 전자상거래와 결합된 세계적 ‘모바일 브랜드 빅바이어들’이다. 이 ‘모바일 브랜드’는 최근 ‘플랫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자호상인 또는 브랜드 빅바이어들이 주도하는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에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브랜드 자본’이다. 아담 스미스·마르크스·베버는 말할 것도 없고 케인즈·하이에크·프리드먼도 이 ‘브랜드 자본’과 그 역사적·보편적 실존 자체를 알지 못했다. 네트워크 소매업체가 제공하는 소매상품의 좋은 품질·가격을 증빙하는 네트워크 ‘상호’에 대한 오랜 대중적 신뢰에서 생겨난 이 ‘브랜드 자본’은 쉽사리 화폐자본으로도 현금화될 수 있는 엄연한 자본주의적 자산이다. 따라서 이 ‘브랜드 자본’은 화폐자본의 유동성(liquidity) 보장에 대한 대중적 신뢰에서 나오는 ‘신용자본’과 다른 것이다. 중국에서 법적으로 보호된 420여 년 역사의 ‘브랜드 자본’은 오늘날 IT기술·인터넷·각종 SNS와 전자상거래 네트워크와 결합하면서 ‘모바일 브랜드 자본’으로 거듭나고, 더 나아가 ‘플랫폼 자본’으로 발전 중인 전도양양한 자본이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근대자본주의론에 맞서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유교’와 현세주의적 ‘유교문화’를 서구와 극동의 공통된 ‘근대화 DNA’로 지목한다. 따라서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마르크스처럼 한시적으로 지배하던 ‘공장제’를 유일한 근대적 생산방식으로 일반화하지도 않지만, 베버처럼 ‘종교’를, 따라서 초현세주의적·내세주의적 기독교나 개신교를 문명사회의 결정요소로 보지도 않고, 개신교를 근대화의 심리적 동력으로 보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오히려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가톨릭만이 아니라 개신교도 근대화와 자본주의 발달을 저해한 ‘반反근대’ 요소로 입증한다.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을 근대화의 결정적 동력으로 설정하고, 서구를 세속화시켜 주술로부터 탈피시킨 유교 또는 유학을 현대 서양과학 이전의 유일한 ‘과학’으로, 현세적 세속주의의 정치·도덕·자연철학과 시무론時務論(통치술과 정치경제론)으로 구성된 종합적 ‘인간과학’으로 간주한다. 서구와 극동을 차례로 근대화시킨 유학의 과학적·현세적 세속주의와 현세주의는 “인간의 의미에 힘쓰면서 귀신을 공경해 멀리하는 것(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을 ⑴ “지식이라고 할 만하다(可謂知矣)”고 함으로써 학문과 주술을 명변明辨하여 ‘과학적 지식’을 세속적으로 규정하고, ⑵ “귀신을 잘 섬기기에 앞서 (산) 사람을 먼저 잘 섬기라(未能事人 焉能事鬼)”고 가르침으로써 제사도 현세화한 『논어』의 두 명제에서 압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이론’은 마르크스와 베버의 두 자본주의적 근대이론, 즉 공장제 자본주의론과 개신교자본주의론을 통해 좌우학계에 굳게 뿌리박은 유럽중심적 근대화 ‘미신’에 대한 전면적·총체적 안티테제다. 지금도 서양학자들은 거의 다 서구중심주의자들이고, 이들의 영향 아래 들어있는 극동의 서구추종 학자들과 지식인들도 덩달아 대對서방 사대주의적 서구중심주의자들이다. 심지어 한국의 사가들마저도 대부분 서양사를 기준으로 우리 역사를 재단하며 마르크스·베버주의적 ‘자멸·자학사관自蔑自虐史觀’에 무젖어 있거나 지금은 심지어 같잖은 ‘탈脫민족주의(post-nationalism)’와 매국적 ‘신新친일주의’에 빠져 있다. 이 노골적이거나 은연한 서구중심주의자들은 모두 다 ‘근대’가 서양의 고유한 산물이라고 망상한다.
그러나 ‘세계사’라는 인류보편사가 개막된 10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900년 동안 세계는 유럽이 아니라 극동을 기축으로 돌아가는 ‘극동중심 세계’였다. 그리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도 세계역사상 최초로 극동에서 개막되었다.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최초의 근대가 시작된 곳, 즉 ‘보편사적 근대’가 발단한 곳은 바로 송대 중국(960-1279)이었기 때문이다. 이 테제는 오늘날 동서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된다.
송대 이후 800-900년의 세계사는 원대元代를 거쳐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한 ‘초기근대(early modernity)’ 또는 ‘낮은 근대(저低근대; low modernity)’의 중국문물이 동서남북으로 전파되는 동천東遷·서천西遷·남천南遷·북천北遷과정이었다. 서천과정에서 극서제국은 15-16세기 르네상스와 17-18세기 계몽주의 운동을 일으켜 서구의 ‘초기근대’ 또는 ‘낮은 근대’를 개막했고, 19세기로의 세기전환기에는 ‘낮은 근대’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자체동력을 얻어 ‘높은 근대’ 또는 ‘고도근대(high modernity)’로 도약했다. 12세기 이래 송·금·원·명대 중국문물을 수입해 일어난 서구의 15-16세기 르네상스운동은 유럽을 가톨릭성직자들이 지배한 ‘기독교신정체제’로부터 인간세계로 깨어나게 했고, 명·청대 중국문물을 패치워크한 17-18세기 계몽주의 사상운동은 서양사회를 유교화·탈脫기독교화·탈주술화함으로써 ‘비非주술적·세속적 근대사회’로 전변시키고, 기독교와 종교 문제를 중국과 한국처럼 ‘개인적 자유’의 문제로 격하시켜 ‘프라이버시’ 속에 가두었다.
특히 18세기에 절정에 이른 계몽주의운동은 마침내 미국·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벨기에·스위스 등 극서지역의 11개 국가에서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 시민혁명과 이에 뒤따른 독일의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극서제국은 산업혁명과 나란히 진행된 이 일련의 근대화혁명을 통해 이른바 ‘높은 근대’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했다. 극서제국을 ‘높은 근대’로 도약시킨 이 근대화혁명은 혁명사상의 전통이 전무했던 유럽에서 공맹의 역성혁명·반정反正(폭군방벌)사상과 중국의 혁명역사를 배워 발발한 것이었다. 18세기말과 19세기 초 이 일련의 근대화혁명과 기술혁명을 통해 19세기 유럽은 마침내 극동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1·2차 아편전쟁(1842-1860)에서 영불연합군의 승리와 중국의 패배는 극서가 극동을 경제적·산업기술적·정치적으로 앞질렀다는 사실보다 단지 ‘군사기술’과 ‘기계’에서 앞섰다는 것을 확인해 준 사건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군사기술은 생산기술이 아니라 파괴기술에 불과하고 공장의 ‘기계’는 불필요한 ‘루브 골드버그 기계(Rube Goldberg machines)’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중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자본절약적·노동집약적 브랜드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극구 찬양해 마지않은 ‘기계’와 ‘기계제 자동공장’이 무용지물의 ‘루브 골드버그 기계’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마르크스 자신도 이미 이윤율 하락의 법칙으로 입증했던 바다. 마르크스는 대공장의 기계를 찬미하기만 하다가 기계 일반이 반경제적(낭비적)인 골드버그 기계라는 것을 자신이 공장제 자본주의의 이윤율 법칙의 발견으로 증명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다 알다시피 ‘루브 골드버그 기계’는 가령 책장을 넘기는 것을 자동으로 하게 하는 ‘책장 넘기기 자동기계’처럼 간단한 일을 복잡한 메커니즘에 의해 수행하는 값비싼 자원낭비적 자동기계를 말한다. ‘공장제’는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에 따르면 이런 ‘골드버그 기계’에 지나지 않았고, 제국주의와 노예제를 강요하는 점에서 골드버그 기계보다 더 흉악한 생산방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1·2차 아편전쟁(1842-1860)으로부터 세계사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련의 근대화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재탄생한 새로운 유럽, 즉 이른바 ‘근대 유럽’은 19세기 중반 극동제국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당시 중국은 1780-1860년대의 90년 장기불황(소위 가경·도광·함풍 불황)에 강력히 대처하는 노력 속에서 ‘브랜드 자본주의’의 고속발달 덕택에 ‘높은 근대’도 뛰어넘는 ‘현대’ 단계에 도달해 있었지만, 조선과 일본은 ‘낮은 근대’의 ‘궁극’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중국의 90년 장기불황은 중국산 수입품들을 모조·대체하는 극서제국의 수입대체산업이 흥기하고 이로 인해 중국산 고가高價사치품들에 대한 유럽제국의 수요가 격감하다가 끝내 소멸함으로 인해 야기되었다.
그러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군사적·정치적 위기 속에서 극동제국은 일제히 서구의 정상급頂上級 ‘고도근대’를 학습해 짜깁기·접붙이기(패치워크)하는 신구절충의 서구화 과정을 통해 속속 ‘낮은 근대’의 궁극단계(조선과 일본) 또는 ‘높은 근대’의 브랜드자본주의 단계(중국)에서 ‘높은 근대’의 정상頂上단계로 도약했다. 그리하여 북한을 제외한 한국·중국·일본·대만·월남·싱가포르 등 극동제국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말까지 100년 동안 치열한 근대화 운동을 통해 극서제국과 대등하거나 부분적으로 극서제국을 능가할 수준으로까지 ‘고도로 근대화’되었다. 이로써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개막된 ‘현대(the contemporary modernity)’는 극서·극동제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달아 ‘높은 근대(고도근대)’를 달성함으로써 개막된 것이다. 따라서 극동제국이 ‘고도근대’(높은 근대)로의 도약에서 시간적으로 극서제국에 뒤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극동제국이 ‘현대’를 극서제국과 ‘함께’ 발전시킨 셈이다.
공자철학과 유교문명의 서천과정에서 전해진 과학사상과 문물은 모두 오늘날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다. 자유·평등·관용의 정치사상, 유럽사회의 현세적 탈脫기독교화와 세속화, 자유시장과 복지국가, 혁명사상, 관료제, 필기시험, 만민평등교육과 학교제도 등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와 베버는 자기들의 자본주의론과 근대이론에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한 근대의 핵심이념들인 ­ 주인(노예주와 귀족과 왕)의 자유·평등이 아니라 ­ ‘백성’의 자유와 평등, 만인의 종교적·사상적 관용, 세속화와 탈주술화·탈기독교화, 복지국가,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혁명사상의 궁극적 출처와 동력원動力源에 대해 철저히 무지했다. 앞서 언급한 5부작 전8권에서 상론한대로 유럽의 근대적 자유시장과 관료제는 미국·영국과 독일에서 중국의 관료제와 무위無爲시장을 모방해서 발전시킨 것이고, 근대적 필기시험제도와 공무원임용고시제는 중국의 과거제와 각급 학교의 입학·기말·졸업시험에서 유래한 것이고, 3단계 학교제도와 의무교육은 유교국가의 사학社學(+ 학숙學塾 + 사학私塾, 조선: 서당·학당)·유학儒學(조선: 향교·사학四學)·대학大學(국자감, 조선: 성균관)의 3단계 학제 학교제도, 그리고 “천자에서 서인까지 하나로 다 수신을 본으로 삼는다(“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修身爲本”)”는 『대학』의 보편교육 이념과 『논어』의 평등교육(“有敎無類”) 이념을 결합한 극동의 만민평등교육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상술한 5부작 전8권에서 상론한대로 근대의 핵심이념인 ‘자유롭고 평등한 국민’, 종교적·사상적 관용, 현세주의적 세속화와 탈주술화·탈기독교화, 복지국가, 그리고 정치적·사회적 혁명사상의 궁극적 출처는 공자와 유교제국이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18-19세기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해 있었다. 다만 중국은 자유평등국가 중국에 맞지 않은 군대식 수직독재로 ‘은폐된 노예제’의 ‘공장제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호상인 주도’의 ‘수평적 광역 네트워크’ 방식의 자유로운 ‘브랜드 자본주의’를 채택했을 뿐이다. 중국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는 1840-60년대에 영국의 대포에 의해 국내시장을 개방당하고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곧 급속한 확장을 통해 성장기조를 회복한 뒤 중국 내수시장에 쇄도하던 영국 공장제품들의 국내침투를 완봉해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서구 부르주아지의 저렴한 공장제품이 중국 만리장성을 무너뜨린 “중重대포”라고 천명하고 서구 공장제 자본주의의 세계제패를 호언했다. 그리고 개신교적 유럽중심주의자 베버는 중국에서 ‘공장기업’만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중국에는 자본주의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자유시장에 기초한 자유임금노동, 프로테스탄티즘에 기초한 ‘합리적’ 자본주의, ‘합리적 법률’, ‘정밀기계’처럼 작동하는 ’합리적 관료제’ 등이 오직 서구의 고유한 산물이고, 중국에는 합리적 관료제, 합리적 법률, 회계·복식부기 등이 결여되었다고 주장하고, 이 결여의 근본원인을 유교로 돌리며 결국 유교문화 때문에 ‘합리적’ 자본주의가 불발不發했다는 ‘대하소설’을 썼다. 또 미셀 푸코는 심지어 필기시험조차도 근대유럽의 고유한 산물로 여기고 시험을 통해 근대적 개인을 ‘제조된 주체’, 또는 ‘시험성적에 관한 문서기록에 못 박힌 근대적 개인’으로 분석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반反역사적 주장들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와 베버는 ‘근대유럽’이 희랍·로마 헬레니즘과 기독교 히브리이즘으로부터 일직선적으로 발전되어 나왔다는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전제주의적 동양·중국관을 노골적으로 설파하거나 음양으로 전제했다. 그러나 ­ 박스터·워턴·디포·페넬롱·말브랑쉬·몽테스키외 등 극소수의 기독교독단주의적 ‘유럽판 위정척사衛正斥邪 세력’을 제외하면 ­ 18세기말까지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중국전제주의론은 유럽에서 출몰한 적이 없었다. 18세기말까지는 공자숭배와 중국찬양 무드가 여전히 극서제국을 석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부정적 중국관은 100년 불황에 빠져든 19세기 중국의 정치경제적 난국을 1000년 전으로까지 소급시켜 지어낸 ‘역사날조’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장제 자본주의의 세계제패론과 아시아적 생산양식 및 동양적 전제주의 이론은 이런 서구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부정적 중국관의 날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아시아노예제·동양전제주의 개념은 공자를 숭배한 중국열광자 프랑수와 베르니에(Fran?ois Bernier, 1620-1688)가 무굴제국 기행문에서 기술한 인도전제정을 전 아시아로 확대한 ‘부당한 일반화’의 소산이고, 또 프랑스 대귀족 몽테스키외의 귀족이데올로기적 중국비방을 순진하게 사실로 믿은 지적 편식의 소산이었을 뿐이다. 저 5부작에서 상론했듯이, 몽테스키외는 루이 14·15세가 중국제국의 귀천 없는 평등사회와 중앙집권제를 모델로 삼아 지방 대귀족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중앙집권화 정책에 내몰려 몰락위기에 처한 대귀족의 신분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루이 14·15세에 대한 반동의 일환으로 중국을 비방했던 것이다. 볼테르·케네·흄·유스티를 비롯한 거의 모든 동시대 계몽철학자들은 한결같이 몽테스키외의 이 귀족편향적 중국비방에 날선 비판을 가했었다.
막스 베버의 개신교자본주의론과, 유교로 인한 중국 자본주의 불발에 관한 그의 설명은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부정적 중국관의 날조를 완성하는 ‘종결자’ 역할을 했다. 베버는 서구의 ‘합리적’ 자본주의의 흥기를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 덕택으로 돌리고 중국자본주의의 불발을 유교 탓으로 돌리는 관념론적 종교문화론을 구축했지만, 그 결론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견해와 유사했다.
이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전제주의적 중국관을 미국과 유럽에 확산시키는 데 ‘홍보활동’을 담당한 자들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트로츠키계열의 마르크스주의자 카를 비트포겔과 전후 미국의 교육철학자들이었다. 비트포겔은 중국 전제정의 기원을 중앙집권적 치수治水사업으로부터 도출하는 수력사회론(theory of hydraulic society)을 설파했다. 그리고 무명의 무수한 미국 교육철학자들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패권국가로 떠오르자 세계 각지로부터 미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거대한 물결의 이민자들을 정치적·사회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근대 유럽’이 헬레니즘과 히브리이즘(고대그리스 철학과 유대·기독교주의)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을 교과서화해서 집중적으로 퍼트리고 미국의 고등교육과 대학 교양강좌 커리큘럼을 이 방향으로 재조정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시대에 유행하다가 한물간 희랍어·라틴어 강좌와 그리스철학 강좌가 전후 미국에서 갑자기 ‘르네상스’를 맞았다.
그러나 중국전제정론과 비트포겔의 중국수력사회론은 곧 모든 중국전문가들에 의해 배척당했다.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에서 상론했듯이 비트포겔의 수력사회적 중국전제론은 역사학적으로 분쇄되었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의 저렴한 공장제품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외국인들에 대한 야만인들의 완강한 증오심조차도 분쇄했다는 마르크스의 공장제 자본주의의 세계제패론은 전 세계 지식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완강하게 버티고 있고, 베버의 개신교 자본주의 테제와 유교귀책적 중국자본주의불발론은 아직도 여세를 떨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그리고 마르크스-베버주의자들(Marx-Weberrians)의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중국관을 논파함과 동시에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을 새로운 근대이론으로 제시하고, 중국 고유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를 발굴해 이론화한다. 오늘날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이론과 유교귀책적 중국자본주의불발론을 대변하는 ‘마르크스-베버주의자들’은 윌리엄 맥닐, 새뮤얼 헌팅턴, 폴 케네디, 존 홀, 마이클 만, 데이비드 포어 등인데, 이 책에서는 이들의 이론도 상세하게 분석하고 논파한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마크 엘빈, 오스터함멜, 빈 옹(R. Bin Wong), 케네스 포머란츠, 게리 해밀턴 등 수많은 중국전문가들과 존 홉슨, 앙드레 프랑크 등 세계사가들이 맞서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중국전문가들과 세계사가들의 이론도 우호적 비판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17세기에 출현하여 18-19세기에 신속하게 발전된 중국의 ‘자호상인 주도 네트워크 브랜드자본주의’는 영국의 산업혁명적 공장제 자본주의와 비등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생산성을 기록했고, 전제적·수직적 공장제보다 더 평등하고 더 인간적이고 더 친환경적이었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의 제품들은 마르크스의 허풍스런 단정과 정반대로 영국의 공장제품들보다 더 저렴하고 품질이 더 좋았다. 이런 까닭에 당시 중국인들은 1·2차 아편전쟁으로 국내시장까지 완전히 개방당한 뒤에도 거의 국산품만을 애용했다. 마르크스의 주장과 정반대로 중국의 만리장성은 저렴한 공장제품의 “중대포”에 의해 ‘경제적’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단지 진짜 대포에 의해 ‘군사적’으로 무너졌을 뿐이다. 중국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는 영불英佛의 대포에 의해 중국 무역장벽이 격파되어 국내시장이 개방되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이 해외개방을 기회로 삼아 급성장해서 중국경제 전체를 ‘높은 근대’로 현대화하고 세계로 진출했다. 그리하여 중국은 한국·일본·동남아·미국·러시아 등 세계로 뻗어 나가는 자호상인 주도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를 발판으로 1910-20년대에 이미 세계 4대 수출대국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후반에 홍콩·대만·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에 잔존하거나 중국대륙에서 한때 극성이었던 극좌 ·병영(배급제)공산주의를 견디고 되살아난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는 한편으로 1970년대에 중국과 별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미국의 브랜드 빅바이어 주도의 국제적 OEM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와 얽히고설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IT·SNS·전자상거래와 결합하면서 마르크스가 유일시한 ‘공장제 자본주의’를 덧없는 생산방식으로서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출시켰다. 그리고 이 420여 년 역사의 네트워크 브랜드 자본주의는 각종 모바일 기술로 뒷받침되어 ‘플랫폼 자본주의’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현대자본주의로 우뚝 섰다. 전자상거래망網 위주의 ‘알리바바’는 ‘아마존’·‘구글’ 등과 더불어 오늘날 대표적인 ‘플랫폼 자본’이다. 향후 10년내 전 세계의 부富의 70% 이상은 이 ‘플랫폼 자본가들’에 의해 소유될 것이다. 가령 2019년 구글의 연年순수익은 460조 원이 넘었다.
마르크스와 베버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중국 고유의 ‘자호상인 주도의 광역 네트워크 생산방식’은 그들이 전개한 ‘공장제 기업자본주의’의 세계제패론과 유교귀책적 ‘중국자본주의불발론’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에서는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과 이와 관련된 새로운 사료들을 대량으로 제시하고 거듭거듭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르크스와 베버의 중국자본주의불발론을 철저히 논파할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의 궁극목적은 이런 비판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베버의 그릇된 근대이론을 대체하는 대안이론의 구성이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공장제·개신교자본주의적 근대이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새로운 근대이론은 동서문명 간의 교호적 패치워크를 통한 서구문명의 유교적 근대화와 극동 유교제국諸國의 신구절충적·동서절충적 근대화, 즉 유교문명권이 서구제국의 수준급 ‘고도근대’를 패치워킹함으로써 연달아 달성한 ‘고도근대화’를 설명하는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이론’이다.
이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이론은 전 세계에서 오로지 11개 극서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스웨덴·스위스)과 6개 극동제국(한국·중국·일본·대만·월남·싱가포르)만이 근대화했던 반면, 그 밖의 수많은 국가는 오늘날도 여전히 전근대·비근대·저低근대의 기형적 혼잡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적 인식을 반성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전근대·비근대·저低근대의 기형적 혼잡상태’란 시장경제·사회해방·민주주의 면에서 ‘근대화’는커녕 ‘저근대’에도 미달한 상태에서 산발적으로 첨단기술제품들을 들여다 쓰는 봉건적·전근대적·비근대적·저근대적 사회상태를 가리킨다.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이론은 이런 분단된 세계상황에 대한 발견적 인식을 근거로 유교문명을 가장 열심히 받아들인 극서제국과 유교문명의 본산인 극동지역의 옛 유교국가들만이 상호 패치워크를 통해 ‘높은 근대’에 연달아 도달했음을 논증한다.
극동과 극서, 이 두 지역만이 근대화되었고 둘 다 성공적으로 ‘높은 근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극동과 극서의 공통된 근대화 DNA가 유교라는 사실을 함의한다. 동시에 세계에서 이 두 지역만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서구적 근대화’ 방향으로 근대화되고 있다는 ‘대중적 착각’을 분쇄한다. 힌두·불교제국은 빈곤에 허덕이면서도 오히려 ‘근대화’에 초연하거나 무관심하고, 이슬람제국은 심지어 ‘근대화’를 ‘서구화’로 낙인찍고 오히려 극렬 적대해 왔고, 남미의 기독교제국은 근대화를 위해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태 근대적 경제성장은커녕 안정적 국가체제도 갖추지 못했으며, 200여 년 동안 성심을 다해 개신교만 믿어온 13개 아프리카제국도 마찬가지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론’은 하나의 법칙을 찾고 이 하나의 법칙으로 모든 사실들을 일관되게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명제들의 체계로 정의된다. 전 세계의 근대화 상황을 총괄하고 세계적 근대-비근대의 분단상황에 주목하면,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사회주의 변혁이나 ‘공산화’가 사회를 근대화하거나 근대를 넘어서게 한 것도 아니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리고 ‘높은 근대’에 도달한 극서지역의 11개 국가 중 구교국가(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벨기에)와 무종교국가(네덜란드)가 신교국가(미국·영국·독일·스웨덴·덴마크)와 수적으로 백중세를 보이는 데다 이 중 3개국(독일·스웨덴·덴마크)의 국민은 자본의 이윤과 이자를 적대하는 루터주의 개신교를 믿는 국가들이고 스위스는 종교인구면에서 칼뱅주의 개신교와 구교의 분포가 엇비슷하다. 게다가 국민의 80-90% 이상이 200년간 개신교를 믿어온 13개 아프리카 신교국가들(남아공·우간다·케냐·가나·나미비아·중아국·잠비아·카메룬·보츠와나·모잠비크·말라위·탄자니아·마다가스카르)은 모두 다 적빈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을 종합할 때, 베버의 역사날조와 정반대로 개신교는 결코 근대화의 동력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오히려 세계의 국가들은 유교적이면 유교적일수록 오히려 더 근대화된 반면, 유교화와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덜 근대화되었다. 앞서 잠시 시사한 바와 같이, ‘근대화 는 유교화와 비례한다.’ 이것이 바로 ‘유교적 근대화의 일반법칙’이다. 이 법칙에 따른 요약명제는 ‘유교화는 근대화다’라는 명제다. 오늘날은 줄곧 서구를 숭배해온 일본 사가들까지도 이 법칙적 명제를 자인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논증하는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말하자면 이 ‘유교적 근대화의 법칙’ 하나로 극서·극동의 고도근대화 상태와 기타 지역의 전근대·비근대·저근대 상황을 둘 다 설명하는 명제들의 체계다.
유교의 정치도덕과 국가제도는 ‘인간과학’으로서의 유교의 ‘인도적·과학적 일반성’ 덕택에 종교적·문화적 경계를 넘어 모든 국가와 지역으로 일반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의 ‘일반성’은 궁극적으로 유학의 ‘과학적’ 일반성으로 귀인歸因한다. 이런 까닭에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도 ‘유교’ 자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국가와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반면, 마르크스의 공장제자본주의론이나 베버의 개신교자본주의론은 혹시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식민지 없는 나라나 개신교를 안 믿는 나라에 적용될 수 없는 편파적·편향적 ‘특수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엄격히 의거할 때 공장제 자본주의는 식민지의 “노골적 노예제”를 주춧돌로 전제하는 까닭에 식민지를 영유한 적이 없는 한국·중국·싱가포르와 기타 비非제국주의 국가들로 이식될 수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공장제자본주의론은 단지 식민지의 “노골적 노예제”를 거느린 “은폐된 노예제”로서의 공장제 자본주의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고, 식민지 없는 여러 나라에서 번창하는 자본주의를 전혀 설명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마르크스의 공장제자본주의론은 19세기 서구의 제국주의적 지평에 갇힌 ‘편파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엄정과학의 견지에서 베버의 개신교자본주의론은 근대 기업자본주의가 비非개신교 지역으로 이식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해야만 한다. 이런 까닭에 칼뱅주의의 주술적 예정설에 목을 거는, 이런 한에서 그 자체로서도 주술화될 수밖에 없는 개신교자본주의론, 정확히는 칼뱅주의적 개신교(청교도)자본주의론은 프랑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벨기에 등과 같은 가톨릭제국과 독일·덴마크·스웨덴 등과 같은 루터주의개신교제국이나 극동 유교제국의 번영하는 고도자본주의를 설명에서 배제하지 않을 수 없는 ‘절름발이 이론’이다.
이에 반해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유교의 명실상부한 ‘과학적 일반성’에 바탕을 두는 까닭에 식민지의 유무나 종교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공자철학에 열광하고 유교를 열성적으로 수용했던 서구제국의 경우에 개신교를 믿는 나라든 안 믿는 나라든, 식민지가 있는 나라든 없는 나라든 가리지 않고 이 모든 나라의 고도근대화를 잘 설명할 수 있고, 식민지를 가진 적이 없는 중국·한국·대만·싱가포르 등 유교본산의 고도근대화도 잘 설명할 수 있다.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자유를 지향하고 경제를 중시하는 유교적 인간과학과 경험과학을 근대화 동력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유학은 어떤 이데올로기든, 어떤 종교든 가리지 않고 뛰어넘거나 삼투해 들어갈 수 있다. 왜냐하면 유학은 어떤 종교적·주술적 편견도 없이 인간본성의 해방과 진성盡性, 자유시장과 자유로운 현세적·세속적 이익추구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양민養民과 복지의 균제均齊를 추구하는 인도적 ‘인간과학’이자 ‘통치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한에서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특수한’ 시대에 한정된 식민지와 공장제를 근대자본주의의 두 기둥으로 삼은 마르크스의 ‘특수한’ 근대자본주의론을 ‘반편 이론’으로 물리친다. ‘공장의 신화’에 사로잡힌 마르크스의 공장제자본주의론은 서구의 몇몇 식민제국과 제국주의 국가들이 특정시기에 발전시킨 ‘기계적 노예제 자본주의’의 기술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식민지 없는 모든 나라에 대해 자본주의 발전의 전망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편향적 특수이론일 뿐이다.
그리고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은 성서를 부정하는 ‘엽기적’ 개신교윤리를 근대 기업자본주의의 정신적 동력으로 설정한 베버의 ‘특수한’ 근대자본주의론도 사악한 궤변으로 기각한다. 왜냐하면 베버의 개신교자본주의론은 모든 ‘석두들’의 혼을 빼는 교언巧言으로 유혈낭자한 악덕자본들을 개신교적 금욕의 소산으로 ‘돈세탁’해주고 유럽·남미 가톨릭제국과 이슬람제국·아시아제국을 몽땅 ‘자본주의 불가의 형벌’에 처한 편향된 ‘주술적’ 괴설怪說이자, 엽기적 ‘개신교이데올로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베버의 개신교이데올로기의 ‘엽기성’은 주술적·반反계몽주의적 ‘개신교윤리’를 계몽주의적 ‘자본주의 정신’으로 둔갑시키려고 갖은 교설巧說을 쥐어짜내는 데 있다. “우연이라고 불리는 은총의 선택(Gnadenwahl)에 의해 미리 이승에서 구원과 저주, 그리고 빈부(결핍·예종과 향유·권력)가 예정되어 있고” 근면노동과 금욕적 검약의 윤리로 축적된 부의 크기를 기준으로 구원받을 선민選民 여부가 확인된다는 칼뱅주의의 핵심교리부터가 이자·이윤과 부의 축적을 용납하지 않는 성서의 모든 기본지침을 깡그리 부정하는 ‘반기독교적 주술’이다. 그리고 베버 자신이 자폭自爆하듯 인정하는 것처럼, ‘자신이 구원의 은총을 받을 선민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목사를 제치고 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직접 계시를 받는 전형적 ‘칼뱅주의 개신교도’는 스스로 “주술사”다. 게다가 베버 자신이 토설하는 바와 같이, 칼뱅주의는 유교적·과학적·탈脫주술적 ‘계몽주의’에 대해 “아주 현격한 대립물(so auffalliger Gegensatz)을 이루는” 몽매주의이고, 가톨릭종파보다 더 오랫동안, 17-18세기만이 아니라 19세기와 20세기 후반까지도 주술적 “마녀재판”의 “미신”을 추종해서 끔찍한 ‘마녀사냥’을 계속한 종파다.
지난 근대화시기에 극동에서 ‘양물洋物깨나 먹은 자들’은 유럽중심주의를 신봉하며 대對서방 열등의식과 자멸·자학사관에 빠져 유교와 유교문명을 비하·경멸했다. 일본의 후쿠자와유기치(福澤諭吉)는 유교망국론을 설파했고, 이 영향을 받은 중국의 일본유학생 출신 노신魯迅은 후쿠자와의 유교망국론을 중국으로 도입해 『아Q정전』(1923)에서 유자儒者를 ‘아큐’라는 바보로 그렸고, 중국 공산당의 사인방四人幇은 공자를 죽인 ‘성리학’을 공자철학으로 오해해 극렬한 ‘비공批孔’ 운동을 전개했었다. 후쿠자와·노신·사인방의 주의주장은 공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문명을 근대화시킨 공자와 유교문화를 이런 식으로 비하하는 것은 오늘날 싱가포르·홍콩·대만 등 부유한 유교지역에서 다소 엉뚱한 ‘유교자본주의론’이 나도는 마당에 한물간 광언狂言처럼 들리지만, 아직도 유교망국론의 여진은 극동에서 서구사대주의와 유교문명자학론自虐論으로 강력하게 잔존하고 있다. 따라서 5부작 전8권에 걸친 장구한 논의를 전개해온 필자의 남다른 깨달음 속에서 이들에게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상·하)』(2019)의 머리말에서 했던 ‘되갚는 말’을 반복하자면, 유가철학을 비하하는 자들이 죽어야 전 세계의 인류가 ‘잘 살게’ 될 것이다. 참고로, 우리말로 ‘잘산다’는 것은 ‘부유하게 산다’는 말이고, ‘잘’과 ‘살다’를 띄어 쓰는 ‘잘 산다’는 말은 ‘행복하게 산다’는 뜻이다.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할 수 없는 만만찮은 역사적 논쟁들로 가득한 이 책에서 필자는 복잡다단한 논변들을 하나로 꿰뚫고 새로운 논지를 나름대로 통쾌하게 전개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 보았다. 이 노력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개명의 빛을 발할지는 알 수 없다. 아무쪼록 이 책을 열독하는 독자들이 문명적 열등의식을 극복하고 미래사회를 향해 ‘본성의 빛’의 도덕과학과 인간과학으로 빛나는 공자 정신을 되살리고 극동 백성과 세계인류를 ‘잘 살게’ 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2021년 1월 서울 바람들이 토성土城에서
죽림竹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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