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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밤의 무늬 깡통 단풍 시간은 파스스 꺼져가고 산하엽 해풍 헌 애착 드러낸 살갗 낱장의 마음 하드케이스 수변공원 숨 장마에 태어나는 것들 이틀간의 침묵 의문의 독자 벨 포인트와 검은 바다 잿더미 속 착각이라는 불씨 모래와 마음이 엉키어 계절은 퍼즐처럼 괜찮다고 했잖아요 몸살 매일 밤 텔레파시 서투름 무인 서울 겨울은 이렇다 해 마중 옥상 요즘 바쁘시죠 책 읽는 죄인 투명한 것에게 묻는다 70년생이 온다 질소 중독 내게 새로운 성처를 줘 철새 시커먼 넋 어떤 관계 멎는 순간들 사소한 사랑 다시 한 살 현실의 저 반대편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숲에 하는 맹세 깨끗한 폐가 죽은 자의 온기가 남아있습니다 문장의 방 폭설 공기의 무게 누구의 애인도 아닌 혜원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구르던 주사위가 멈추고 선 안개 마을 불순물 인도에서 알게 된 것 호젓이 헤매는 마음을 나누며 약속은 어느새 연기가 되고 해 떨어지는 몽골 生의 기도 스물다섯 살 때 나는 잠깐 죽었다 불가해한 약속 의심을 깁다 몽골의 발자국 시차 상어도 천진할 수 있다 우울증이 있는 고양이의 주인 전 상서 소년 이제 살아낸다 에필로그 |
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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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찾겠다며 우리는 하늘을, 구름 사이를 한없이 헤쳐 놓았다. 너를 대신해서 바라볼 것이 있어 다행이었다.
--- p.32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해지기 위하여 일부러 불행을 택한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우울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우울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우울은 나의 적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첼로는 우울을 대신해서 나의 미움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 p.29 나는 네가 걸어가는 것을 보며 네가 밟게 될 돌을 줍고 싶었고, 네가 언제까지고 걸어갈 길을 바라보고 싶었다. 빗소리가 하는 일은 그런 내 마음을 무겁게 적시는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도리어 두려워지고 있었다. --- p.35 세상은 온통 네 이름이었다 / 그 이름이 파도 같아서 /멀리 있어도 바람을 타고 오는 파도 같아서 / 세상은 온통 네 순간이었다 / 내 삶에 갑자기 네가 들어왔던 것처럼 / 그런 순간들은 예고도 없이 / 나를 흔들고는 모른 척했다 --- p.21 서투름은 그 시절만의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서로에게 여문 것만을 보여주리라 다짐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앞모습만 보여주려고 애꿎은 신발 뒤축만 닳아갔습니다. --- p.58 이 시기가 지나면 가장 연한 색의 계절이 돌아온다. 축축하고 어두웠던 자리에서 하얗고 노란 것들이 피어난다. 경계하는 것들은 바스러지고 말간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 p.63 나무가 계절을 따라 / 어깨 위 무거운 잎들을 내려놓듯이 / 다시 제 팔에 푸른 이파리들을 피우듯이 / 너를 향한 나의 사랑도 그렇다 --- p.91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지만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꿈속에서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또 다른 내가 꾸는 꿈에선 나의 현실을 보고, 내 꿈에선 그의 현실을 보는 것이다. 아마 그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면 턱을 괴고 하얀색 펜을 끄적이는 내가 보일 것이다. --- p.93 겨울에 느끼는 봄이 있다. 아직 봄이 아닌데 착각했구나 싶은 것들이 사실은 때에 맞춰온 것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아직은 이르다며 허투루 밀어내었는가. 계절의 새들이 떠나갈 때, 나는 밀어내진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것이다. --- p.139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색깔을 지나치게 많이, 빨리 섞으려고 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게 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배우게 하고. 내가 지워진 채로 살다 보면 너한테 입혀진 나의 색이 빠질까. 순수한 농도 100%의 네가 될까. 나는 내 위로 덧칠된 너를 지우지 않으려고 한다. --- p.147 까마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을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이어져 있지만 그들만은 예외였다. 그들이 잡은 끈은 모두 끊어져 있었다. 그들이 가졌던 외로움은 아마 내가 모르는 외로움이며,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외로움의 농도를 그만큼 짙게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숙제 같았다. --- p.102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알지 않아도 괜찮았다. 연애를 시작할 때 어떤 이들은 최대한 빨리 상대의 모든 순간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만, 이런 서두름은 종종 불안한 결과를 데려오는 것처럼. 겨울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쓴다. 그의 목소리에는 여자나 남자 대신 사계가 있다. 나는 사계절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가 확실한 것만을 좇았다면 그들의 사계절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계절을 정해서 그들을 거기에 묶어두고 있었을 것이다. --- p.71 내 마음은 너무 진한 나머지 색과 향을 잃어, 당신은 느낄 수 없었다. 설렘과 질투와 싸움과 소유로 이루어진 사랑은 여러 가지 색이 섞인 폭죽이 터지는 듯했다. 그런 사랑은 흔했지만 무색무취의 사랑은 처음이었다. 특징이 없어서 지워지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아서 변하지 않았다. 당신을 보며 절망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사랑했다. --- p.19 누군가는 한 사람의 바닥을 봐야 사랑일 거라고 말했다. 이번에 배운 것을 다음번 사랑에 적용하라고,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했다. 목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만져보았다. 고개를 숙이면 무덤처럼 튀어나온 곳에 마음이 북적였다. 너를 사랑하는 것을 무언가의 발판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나와 눈을 맞추던 너도 그랬으면 한다. 돌아보며 어떤 다짐 같은 것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한번 겨울을 나누는 동안 나는 조금씩 어리숙해졌다. 그전까지 겨울은 등딱지 속에 숨어있었는데, 겨울은 푸른것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폭염이 쏟아지는데 나는 자꾸 한겨울로 샌다. 찢어진 틈마다 요란한 외풍을 붙잡고 이 시기를 견디어 내야지. 창틀 위에 버석한 흰 눈을 본다. 뭉쳐지지 않는 흰 눈이나 모락모락 김이 나는 냄비가 슬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방 안에 굴러다니는 빛을 모은다. 일어나 옷장을 연다.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 p.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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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Writing.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이병일 시인이 극찬한 아름다운 문장과 사유들. 이제 작가의 글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문장은 차분하면서도 아름답고 무딘듯하면서도 날렵한 상상력이 수일하다. 섬세한 관찰력이 삶의 고유성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평 이외에 어떤 말이 필요할까. 문득 찾아온 꽃잎과 같은 한 권의 산문집이 당신의 밤을 은은하게 밝혀 줄 것이다. "우리가 한번 겨울을 나누는 동안 나는 조금씩 어리숙해졌다. 그전까지 겨울은 등딱지 속에 숨어있었는데, 겨울은 푸른것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폭염이 쏟아지는데 나는 자꾸 한겨울로 샌다. 찢어진 틈마다 요란한 외풍을 붙잡고 이 시기를 견디어 내야지. 창틀 위에 버석한 흰 눈을 본다. 뭉쳐지지 않는 흰 눈이나 모락모락 김이 나는 냄비가 슬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방 안에 굴러다니는 빛을 모은다. 일어나 옷장을 연다. 옷을 입었으나 갈 곳이 없다." About Design. 어쩌면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이기준 디자이너가 연출한 보석같은 북디자인. 표지 전후면 특수 제작한 홀로그램을 사용하여 반짝이는 보석들 위에 서정적 감성을 입혔다. 특히 양판면의 텍스트 기울기를 달리하고, 본문 글씨 또한 검정색 아닌 별색으로 인쇄, 본문 용지에도 색지를 사용하여 새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하늘하늘한 본문의 용지의 색감, 디자인과 문장의 조화로 한 차원 높은 독서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와 더불어, 상상력 넘치는 이기준 디자이너의 그래픽 아트도 독서의 묘미를 더해준다. About Editing. '영화보다 재미가 없다면 책을 덮을 것.' - 적확한 문장과 미학적 구조, 궁극의 가독성으로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베스트셀러 『삶의 쉼표가 필요할 때』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를 담당했던 에디터가 전담, 독자들은 선명하며 몰입감 높은 독서를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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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문집은 크로키로 그리는 수채화로 되어있다. 문장은 차분하면서도 아름답고 무딘듯하면서도 날렵한 상상력이 수일하다. 작은 깨우침이 사물과 한 몸을 이루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없겠는가. 「해 떨어지는 몽골」에서 낙조만이 “죽은 것들을 붉게 안아준”다는 섬세한 관찰력이 삶의 고유성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보잘것없는 것들에게 눈길을 건네면서 삶 이후의 삶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별과 나 사이가 밝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이 작가에게도 「문장의 방」이 있을 텐데. 그이는 그 방에서 「현실의 저 반대편」에서 새로 보이는 존재를 삶의 자세로 바꾸려고 했으리라. 부서지고 깨진 것들이 있어 우리의 삶은 온전하다고 말하는 ‘이제’ 작가에게, 펜과 백지의 은총이 있기를! - 이병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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