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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 Murakami,むらかみ りゅう,村上 龍,무라카미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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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생명의 땅 쿠바에서 죽음을 말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갈망하고 추구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론 환희를, 때론 절망을 느낀다. 인간의 본능을 리비도(Libido)와 타나토스(Tanatos)로 나눈 프로이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와 문화는 얼핏 보더라도 삶에 대한 욕망인 리비도와 죽음에 대한 욕망인 타나토스가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 이 두 욕망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의 자기규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아니 가능하기는 한 걸까. 무라카미 류는 이 소설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지 냉정하게 보여준다. 문제 있는(혹은 문제에 빠진) 한 개인에게 주목하지만, 거기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절망하게 하는지, 무엇이 우리 삶을 이토록 비루하게 만드는지에 천착한다. 이 소설의 대부분은 자신의 착란을 정리하기 위해 쿠바에 왔다는 한 여배우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가자마라는 이름의 ‘나’라는 인물이 여배우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어디까지나 여배우 사쿠라이 레이코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쿠라이 레이코의 기묘한 독백은 쿠바라는 이국의 이미지와 겹쳐 소설 초반부터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다. 그래서 사쿠라이 레이코가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쿠라이 레이코는 스물네 살 때 오디션 장에서 야자키라는 남자에게 간택되어 2년 반이 넘도록 사육당하는 개처럼 지냈다. 좋아하지도 않는 야자키의 변태적 행위를 묵묵히 받아들인 것은 그를 통해 배우로 성공해 보겠다는 야심도 있었지만, 그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비하가 문제였다. 그녀가 어렸을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그녀와 동생을 상습적으로 구타했다. 레이코를 어리광과 자기 처벌욕으로 결합된 완벽한 마조히스트로 만든 것은 소녀기에 겪은 유기 불안과 아버지에게 맞기만 하면서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자긍심 결여였던 것이다.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욕망과, 바로 그 욕망과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한 사도-마조히즘에의 탐닉의 끝에서 맞부닥뜨리는 죽음 충동, 타나토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에서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전작들에 비해 어쩌면 무척 소박한 것으로, 바로 쿠바의 ‘강력한 음악과 세련된 춤’이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미친 듯이 살다가 문득 타나토스와 조우했을 때 우리의 선택지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줄거리 쿠바와 여배우, 사도-마조히즘과 타나토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쿠바의 바라데로에서 가자마는 “나는 내 착란을 어떻게든 정리하기 위해 여기 쿠바에 온 거예요”라고 말하는 반쯤 제정신이 아닌 듯한 여배우 사쿠라이 레이코를 만난다.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고백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교활하게 ‘여배우’의 본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녀의 묘한 분위기에 매력을 느낀 가자마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고백 속에서 죽음의 냄새를 눈치 채고 그녀를 치유하기 위한 순례를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산테리아(쿠바의 민속 굿)를 통해 그녀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원시 종교와 춤이 살아 있는 생명의 땅 쿠바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 욕망과 죽음의 본능이 소리 없는 전쟁을 시작한다. 바다 저편의 두꺼운 구름은 좀처럼 이쪽으로 다가오려 하지 않는다. 레이코라는 여배우의 고백을 듣다가 어느새 나는, 이제 소낙비가 오건 안 오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부터 그것은 고백을 넘어섰다. ‘선생님’이라는 사내의 대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여배우가 완전히 ‘선생님’으로 변한 것도 아니었다. 여배우는 그 역에 집중했다. (…) 있는 힘을 다해 기억을 끌어올리는 작업과 긴장을 풀고 기억을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의 틈새가 점점 좁아지면서 이윽고 그것이 그녀의 표면에서 마구 뒤섞여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 여배우는 필사적으로 연기해 나갔고, 나는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나 연기를 한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고, 단지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였다. 빨려들어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여배우가 만들어내는 둥그런 자장 속에 끌려들어 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소낙비가 오건 말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낙비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먼 바다 위에서 움직이지 않는 두꺼운 회색 구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해변이라는 말과 눈앞에 펼쳐지는 바라데로의 파랗고 하얀 풍경의 연관성도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여배우가 ‘선생님’에게 몸을 빌려줄 때만 광기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소낙비라든지 해변이라든지 땀과 같은 단어의 의미가 마구 뒤섞여버린 의식 속에서 찌꺼기 하나 없이 맑디 맑은 나 자신을 확인했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스스로를 의식한 것은 여배우가 나를 향해 말을 걸어 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퍼포먼스의 유일한 관객으로 거기에 있었다.(본문 42-43쪽) 새로운 번역, 새로운 시각으로 만나는 무라카미 류 이상북스에서 펴내는 『무라카미 류 셀렉션』은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을 선별해, 완전히 맞지는 않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부닥뜨린 여러 현상들을 소설을 통해 되짚어볼 수 있게 했다.『무라카미 류 셀렉션』은 또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에 의의를 둔다. ‘무라카미 류 최적의 번역가’로 알려진 양억관 번역가가 류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 『무라카미 류 셀렉션』 기획 의도에 적합한 작품들을 골라낸 후, 기존 번역의 오류를 수정하고 현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또한 장정일 소설가가 친절하고 가감 없는 해설을 준비했다. 그래서『무라카미 류 셀렉션』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가 장정일과 같이 읽는 독특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은 『무라카미 류 셀렉션』에 선별된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며, 진지한 성찰을 통해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치밀하게 천착하는 작가 무라카미 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