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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9p
아무도 원치 않았던 이야기 - 19p 그를 가만 내버려 두오 - 33p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 - 43p 날 봐요, 날 좀 봐요 - 57p 약속의 땅 - 69p 숨겨진 삶 - 81p 가라 요나, 내가 널 기다린다 - 93p 인터뷰 - 105p 작은 파티 드레스 - 117p 책과 사랑에 바치는 아홉 편의 글 (역자 후기) - 127p |
Christian Bo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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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는 사람들의 흰 손이 있고, 몽상하는 사람들의 섬세한 손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에는 손이라고는 아예 없는 사람들. 황금도 잉크도 박탈당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그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타자를 지향하는 글이 아니라면 흥미로운 글일 수 없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체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결코 읽지 않을 한 권의 책을 바로 그들에게 바치기 위해서이다.
--- p.17 '위대한 시인'이란 대체 뭘까.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다. 정말이지 무의미한 말이다. 자신의 글 뒤에 숨어 있는 사람의 위대함은 오로지 날 것인 삶에 대한 온전한 복종에서 오기 때문이다. 적확한 말을 찾느라 수많은 밤을 송두리째 바치는 사람은 연인들이 서로에게 쏟고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쏟는 조심스러운 염려를 내면에 키워갈 따름이다. 예술은, 예술의 진수는, 사랑하는 삶의 찌꺼기에 불과하며, 사랑하는 삶만이 유일한 삶이다. 위대하다든지 시인이라든지 문학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말이다. --- p.29 어떻게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인식하는가? 우리 안에 난데없는 정적이 깃들고, 심장에 비수가 꽂힌 듯 출혈이 이어질 때이다. 말(言)속에서 일어나는 침묵의 출혈.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이름이 없다. 우리가 멈춰 세우려고 무슨 말을 찾아내기도 전에, 그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 이름을 부르며 멈춰 세우기도 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것은 어머니 같아서, 우리를 분만한 뒤에도 천 번 만 번 다시 태어나게 한다. --- p.40 객관적인 눈으로 차분히 행하는 독서가 완벽한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가 핵심에 이르는 독서는 아니다. 그런 독서는 책의 검은 광맥을 건드리지 못한다. 책에 담겨 있고 당신의 눈과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반짝이는 진실의 핵을 건드리지 못한다. 당신의 눈 속, 삶의 저변. 즉 근원에 가 닿는 또 다른 독서만이 당신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당신 안에 자리한 책의 뿌리로 직접 가닿는 독서, 하나의 문장이 살 속 깊은 곳을 공략하는 독서. --- p.48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면 삶에서 아무것도 배울 게 없고 알아야 할 것도 없다. 물론 혼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이르려면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어떤 사랑을, 어떤 말(言)이나 얼굴을 거쳐야 한다. --- p.60 당신은 한 책에서 다른 책으로, 이 야영지에서 저 야영지로 옮겨간다. 그렇게 독서는 끝이 없다. 사랑이 그렇듯이, 희망이 그렇듯이, 실현의 가망 없이. --- p.75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의 없다. 가난한 삶만 있으면 된다. 너무 가난해 아무도 원치 않는 삶. 신 혹은 사물들을 피난처로 삼는 삶이다. 그곳에는 무(無)가 차고 넘친다. 왁자지껄한 소음과 수많은 문들로 이루어진, 자체의 풍문들로 길을 잃은 삶과는 반대되는 삶이다. 그런 삶들을 가지고는 제대로 글을 쓸 수 없다. 그런 삶에서는 말할 거리가 하나도 없으니가.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 p.91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삶으로부터 삶 자체로, 단순 현재에서 완료된 현재로 건너간다. --- p.9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려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 p.108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뿐이다. --- p.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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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사랑하는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집 〈작은 파티 드레스〉를 출간한다. 자신이 태어난 도시 크뢰조에 머물며 오로지 글쓰기에만 헌신하고 있는 이 작가는 침묵 속에서 건져 올린 깊이 있는 사유와 어린아이와 같은 그의 순수한 미소를 닮은 맑고 투명한 문체로 프랑스 문단과 언론, 독자들 모두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보뱅의 책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일상과 자연을 주시하고 예술에 감응하며 주변의 인물들에 귀 기울이는데, 이 모두는 보뱅의 시선과 문장들로 빛을 발한다.
보뱅의 산문집 〈작은 파티 드레스〉는 독서와 글쓰기로부터 출발해 고독과 침묵, 우수와 환희가 함께 어우러지는 자리를 지나 마침내 ‘사랑의 시’에 이르는 아름다운 여정이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는 삶’이며, ‘신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온갖 잡다한 것들의 축적으로 질식할 듯한 삶’이라 말하는 작가는 소음과 부산함으로 가득한 출구 없는 세상에 출구를 그리고, 깊은 사색으로부터 퍼지는 변함없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 라는 진정한 답변을 이해할 사람이 누굴까." 크리스티앙 보뱅은 말한다. 독서란 고통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현실에서보다 더 잘 보기 위해서, 잉크의 장막 밑에 놓인 유랑의 시간과 어떤 문장으로부터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에게서 물러나 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삶의 저변 즉 근원에 닿는 한 문장에 영혼이 물들기 위해서라고. 사랑이 그렇고 놀이가 그렇고 기도가 그렇듯이, 독서 역시 효율만을 추구하는 가시적인 세계에서 보면 무용한 일이지만 우리가 읽은 책은 우리가 결코 가지 않았던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고 영혼에 물이 들며 비가시적인 것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당신의 목소리와 눈빛이 걸음걸이와 행동거지가 달라’지게 되는 일이다.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여정을 따라서 우리가 되찾게 되는 삶은 ‘왁자지껄한 소음과 풍문들로 길을 잃은 삶과는 반대되는 삶. 쉴 새 없이 달리느라 피로에 절어 삶이 부족한 삶이 아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지고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은 헐벗은 삶. 사회생활의 위악에 젖기 이전의 유년기를 닮은 삶. 세계의 자연스러운 상태인 발작상태에, 세상에 유용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끊임없는 염려에 등을 돌린 삶. 다시 말해 무용한 삶, 날 것인 삶’인데, 이것은 보뱅이 말하는 글쓰기에 필요한 유일한 것 바로 ‘가난한 삶’이기도 하다. 부재와 결핍 속에서만이 제대로 보고 말할 수 있다는 작가는 그 가난한 삶 속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의미를 되찾고, 가식 없는 단순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면 삶에서 아무것도 배울 게 없고 알아야 할 것도 없다. 물론 혼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이르려면 누군가를 거쳐야 한다. 어떤 사랑을, 어떤 말이나 얼굴을 거쳐야 한다.” 짧은 서문과 잇따르는 아홉 편의 텍스트를 모아 엮은 길지 않은 산문집이지만, 멈춰 서서 매 문장의 숨결과 향기, 떨림에 몸을 맡겨야 하는, 잦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