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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리커버 에디션)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리뷰 총점9.7 리뷰 25건 | 판매지수 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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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46g | 147*218*30mm
ISBN13 9788960519091
ISBN10 89605190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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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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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장 독립적인 삶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2장 무너짐
모든 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3장 의존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리다

4장 도움
치료만이 전부가 아니다

5장 더 나은 삶
누구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6장 내려놓기
인간다운 마무리를 위한 준비

7장 어려운 대화
두렵지만 꼭 나눠야 하는 이야기들

8장 용기
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

에필로그
1부 SNS 왕국의 탄생

저자 소개 (2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서문」중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더 자주 넘어졌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짐은 오늘날의 모든 가족들이 그러듯이 자연스러운 조치를 취했다.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이다.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할머니의 뼈가 약해졌다고 진단하고 칼슘 복용을 권했다. 또한 그는 할머니가 평소에 먹는 약들의 복용량을 조정하고, 몇 가지 새로운 처방을 내렸다.

그러나 사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의사의 힘으로 고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앨리스 할머니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고, 기억이 가끔씩 가물가물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독립적인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었다.
---「독립적인 삶」중에서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모두 인지 능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했고,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의존」중에서

루 할아버지는 애원하는 눈길로 셸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일을 그만두고 내 옆에 있을 수는 없는 거니?’ 그 생각이 셸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셸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아버지를 충분히 잘 돌보는 게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루 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셸리를 따라 몇 군데 시설을 둘러보겠다고 승낙했다. 누구라도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 같았다.
---「도움」중에서

의학은 아주 작은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바로 이 부분이 고통스러운 역설을 만들어 내는데?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질병, 노화, 죽음에 따르는 여러 가지 시련은 의학적인 관심사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 기술적인 전문성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일종의 사회공학적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더 나은 삶」중에서

나는 마르쿠 박사에게 폐암 말기 환자들을 처음 만날 때 그들을 위해 무얼 해내길 바라는지 물었다. “1~2년 정도 그럭저럭 잘 지내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그가 말했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기대치입니다. 새라 같은 환자의 경우 운이 아주 좋아야 3~4년 정도예요.” 하지만 이는 환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니다. “환자들은 10~20년을 생각하고 와요. 어떤 환자를 만나도 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사실 내가 그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거예요.”
---「내려놓기」중에서

완화치료 팀이 도착한 후 소량의 모르핀을 처방하자마자 새라의 호흡이 즉시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새라의 고통이 줄어드는 걸 본 가족들은 문득 그녀를 더 이상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이제는 가족들이 의료진을 말리고 있었다.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내려놓기」중에서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어려운 대화」중에서

아버지는 우리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새 셔츠를 입히는 동안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아프세요?” “아니다.” 아버지는 일어나고 싶다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혀 뒷마당이 보이는 창문 앞으로 밀고 갔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조금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저녁식사 테이블로 밀고 갔다. 아버지는 망고, 파파야, 요구르트, 그리고 약을 먹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켰다.

“무슨 생각 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 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깨어 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용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 10만 부 판매 기념 리커버 에디션
* [뉴욕 타임스], 아마존 1위 베스트셀러
* 김하나, 정재승 강력 추천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는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날 포기하겠다는 거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라자로프에게서 서명을 받은 후 병실 밖으로 나오자 그의 아들이 따라 나오며 나를 잡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 인공호흡기에 매달린 채 임종했을 때 아버지 자신은 저렇게 죽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저렇게 고집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라자로프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술에 따르는 위험 때문이 아니라 수술을 받아도 그가 원하는 삶을 되찾을 확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변 능력, 활력 등 병이 악화되기 전에 누렸던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길고도 끔찍한 죽음을 경험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가 추구한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그는 호흡부전이 생겼고, 전신감염에 걸렸으며, 움직이지 못해서 피떡이 고였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투여한 혈액 희석제 때문에 출혈을 일으켰다. 우리는 날마다 뒤처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그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14일째 되는 날, 그의 아들은 의료진에게 이 모든 것을 그만 멈춰 달라고 말했다. _ 본문 13~14쪽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는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잊는다.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이는 부분적으로 의학과 공중 보건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났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오늘날 우리는 가능한 한 오래 살기를 꿈꾸며, 현대 의학은 바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외과 수술, 화학요법, 방사능 치료 등으로 대변되는 의학적 처치들도 죽음을 미루고 생명을 연장하려는 노력과 같은 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다. 종국에는 죽음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Being Mortal’이라는 원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의학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싸움에서 우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육체가 파괴되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마지막에는 가족과 작별의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병실에서 죽어 간다. 그 모든 것을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몇 개월에서 1~2년 정도의 생명 연장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얻은 약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남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혹독한 치료와 그에 따른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노쇠해지거나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죽어 갈 때 취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 자체는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여긴 집이 아니지 않니,
어서 집에 데려가 줘.”


윌슨이 열아홉 살 되던 해, 어머니 제시가 심한 뇌졸중을 겪었다. 당시 제시의 나이는 쉰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다. 뇌졸중으로 그녀는 몸 한쪽이 완전히 마비돼서 걷거나 서지 못했으며, 팔도 들 수가 없었다. 또한 얼굴 한쪽이 축 처졌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지능과 인지 능력에는 아무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돈을 벌러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혼자서는 씻을 수도, 요리를 할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빨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던 윌슨은 전혀 수입이 없었고, 좁은 아파트를 룸메이트와 함께 쓰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머니를 돌볼 길이 없었다.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어머니를 맡길 곳은 요양원밖에 없었다. 윌슨은 자기 대학 근처에 있는 곳을 골랐다. 안전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볼 때마다 끊임없이 요구했다. “집에 데려가 줘.” _ 본문 142쪽

더 이상 혼자 설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육체와 정신이 점점 쇠락해 가면서 더는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현대 의학과 보건 체계는 이 문제를 두 가지 방향으로 해결하려 해 왔다. 하나는 ‘요양원nursing home’이라는 보호 시설을 만들어 노인들을 안전하게 수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년에 직면하는 각종 질병들을 공격적으로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이 방식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특히 자녀들 입장에서 보면 노년에 이른 부모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질병이라도 의학이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리라는 전망은 꽤 안심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양원이나 공격적 치료에는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삶의 질’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양원’의 경우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획일화된 시설에는 ‘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빼앗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규칙과 안전에만 집중하는 탓에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이 때문에 시설에 수용된 노인들 상당수가 무력감과 우울감에 빠진다.(본문 113~124쪽)

저자는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다시 ‘가족과 가정’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삶의 질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케런 브라운 윌슨이 처음으로 도입한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은 간단히 말해 기존 요양원과 같은 도움을 제공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개념의 시설이다. 잠글 수 있는 문과 자기만의 가구가 있고, 실내 온도나 조명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원치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권리가 보장된다.

무척 간단해 보이지만,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노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존 요양원을 변화시키는 실험도 있다. 요양원 내에 동식물을 들이기도 하고, 인근 학교와 연대해 아이들의 생명력을 접목시키기도 한다. 빌 토머스가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서 한 실험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개, 고양이, 새, 식물, 아이들을 요양원 내에 들이는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본문 141~149쪽)

체이스 요양원 주민들은 비교 집단 주민들에 비해 복용하는 처방 약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할돌과 같이 불안 증세에 먹는 향정신성 제재의 처방이 특히 줄어들었다. 약 구입에 들어간 비용은 비교 집단에 비해 38%밖에 되지 않았다. 사망률도 15% 감소했다. _ 본문 193쪽

빌 토머스의 실험이 요양원 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많았지만 정반대되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치상으로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른 노인들이 삶의 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죽음을 유예시키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다운 마무리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의 공격적 치료는 더욱 큰 문제를 가져다준다.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이 모든 걸 그만 멈춰 주세요!”


“의료진이 새라에게 카테터를 삽입하고 이것저것 하려고 했어요.” 그녀의 어머니 돈이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얘기했죠. ‘아뇨, 그 애한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침대에 소변을 봐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료진은 또 혈압과 혈당 측정 등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이제 검사 결과 같은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수간호사에게 가서 이제 모든 걸 그만 멈추라고 말했죠.”

이전 3개월 동안 우리가 새라에게 한 것들?수많은 스캔, 검사, 방사능 치료, 화학요법 치료 등?은 아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그녀의 상태를 악화시키기만 했다.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면 새라는 더 오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맨 마지막 순간에나마 평화를 찾았다. _ 본문 289쪽

인공호흡기, 영양공급관,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오늘날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더 끔찍한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정신은 피폐해져 간다. 극심한 통증, 구역질, 섬망 등으로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렇듯 죽기까지의 과정을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있는 듯하다고 일갈한다. 실패라고 단언하는 까닭은 우리가 이 ‘싸움’을 통해 얻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극히 짧은 시간을 더 얻기 위해 잔인한 싸움을 계속할 뿐이다. 현대 의학은 사실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싸워 왔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체가 결국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 의사이기도 한 저자는 먼저 의료계의 변화를 촉구한다. 이 소모적인 의학적 싸움을 중단하려면 우선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할 의료계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하나는 ‘노인병학geriatrics’에 대한 관심이다. 관절염, 당뇨병, 심장질환 등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본문 62~65쪽)

둘째, 환자들과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이런저런 정보를 나열하기보다 ‘해석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고 이를 해석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306~309쪽)

해석적 태도가 중요한 까닭은 마지막에 이른 환자들이 원하는 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데만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치료에 매달리는 건 자신이 뭘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고통을 줄이고, 삶의 품위를 유지하고, 다 끝내지 못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생명을 연장하고자 한다면 바로 그 일상의 가치들을 실현하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남은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위험이 있다면, 어떤 환자도 맹목적인 생명 연장을 원하지 않는다.

“아툴, 나는 두렵다.
하지만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구나.”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 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_ 본문 324쪽

의료계의 의식 변화 외에 우리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방식으로의 사고 전환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죽음과 마지막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과 관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직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어려운 대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은 적지 않다.

저자는 악성 종양에 걸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본문 322~324쪽) 완화치료 전문가 수전 블록의 아버지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미식축구 중계를 볼 수 있는 정도’라면 견딜 만할 것 같다고 말한다.(본문 280~281쪽) 결과적으로 이 대화는 중대한 수술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환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준 것이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미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미국 위스콘신주 라 크로스 지역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1991년부터 의료진과 환자들로 하여금 삶의 마지막 시기에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이 지역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6주 동안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과 종말기 의료비용은 전국 평균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기대 수명은 전국 평균에 비해 1년이나 길었다.(본문 273~275쪽)

가족 간의 직접적인 대화가 쉽지 않다면 이를 이끌어 줄 호스피스 상담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 하면 떠올리는 것은 생을 포기하고 순전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와의 대화를 통해, 호스피스가 단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환자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의식을 유지하며 고통을 최소화하고 존엄하게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본문 248쪽) 이것이 최근 수십 년 동안 발전해 온 이른바 ‘완화치료’ 분야다.

결국 죽음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한 과정이다. 삶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일인 것이다. 죽음 자체에는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죽음이 특별하고 중대한 일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안에 우리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손주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없었고, 나는 대신 아이패드에 있는 사진을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활짝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모든 사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아버지는 다시 무의식으로 빠져들었다. 호흡이 한 번에 20~30초씩 멈추는 일이 반복됐다. 이제 끝인가 하면 호흡이 다시 시작되곤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 곁을 지키며 어머니와 여동생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오후 6시 10분쯤 결국 마지막 순간이 왔다. 나는 아버지의 호흡이 이전보다 더 오래 멈춰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가 멈춘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_ 본문 393쪽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돌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가슴 깊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이자 학자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가르침과 교훈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세계 유력지에서 꼽은 ‘세계적인 사상가’라는 사실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혹은 우리 가족과 비슷한 이들이다. 젊은 시절 공장 직공이었던 사람, 간호사였던 사람, 가게를 운영했던 사람, 한두 명의 자녀를 키우며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 왔고, 이러저런 소소한 일상의 기쁨에 만족해 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원하는 것 역시 너무나 소박한 것들이다.

가족 및 친구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고, 주말에 있을 친구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고 싶어 하고,(본문 359쪽) 사랑하는 제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피아노 레슨을 하고 싶어 한다.(본문 378쪽) 그리고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일화도 담겨 있다. 저자 자신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도 의사였지만, 그들에게도 생의 마지막 순간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저자는 나이 들어 병드는 과정에서 적어도 두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삶에 끝이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다. 이는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찾아낸 진실을 토대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용기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질병과 승산 없는 싸움을 벌이며 치료에 매달리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생명 있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희망이다. 죽음이 결국 삶의 이야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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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비로소 성립하며 가치를 지닌다. 그런데 오늘날 죽음은 누구나 삶 속에서 목격하는 자연스러운 단계가 아니라 전문가들만이 다룰 수 있는 금기와 미지의 영역이 되어 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거북한 일이며, 막상 죽음의 당사자는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 아버지는 임종의 순간까지 본인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수 개월간 응급실과 중환자실, 요양병원을 거친 뒤 코로나19로 직계 가족의 면회조차 어려울 때 돌아가셨다. 상점을 나설 때 잘 모르는 사람과도 나누는 인사를,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날들이 어쩌면 다를 수도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에 대해 사색하는 철학서가 아니다. 아툴 가완디는 안전과 생존을 최우선에 놓는 현대 의학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진단한다. 의료 시스템과 노년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보고서에 가까운 이 책은 그러나 그 어떤 책보다도 죽음과 삶의 가치, 존엄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한다.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지만 예상외로 온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큼 따뜻한 이야기들도 곳곳에 스며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개, 고양이, 식물, 잉꼬 백 마리(!)를 요양원에 들여놓은 의사 빌 토머스의 이야기다. 우리는 죽음을 삶에서 분리하지 않고 더 현명하게 껴안을 수 있다. 그 모색의 시작으로 이 책은 더없이 훌륭하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김하나(작가,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인생이 축구라면, 전반전엔 모든 선수들이 온통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답하겠다고 전력 질주 하지만, 후반전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답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골을 더 넣겠다며 애쓰는 선수도, 더 이상 실점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선수도, 승부와 상관없이 멋진 플레이로 마무리하겠다는 선수도, 결국 마지막 종료 휘슬을 들어야 하니까. 나 역시 ‘어떻게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가 가장 고민하는 인생의 화두 중 하나다.

이 어려운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 책은 가장 영감 어린 책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툴 가완디의 열렬한 팬이다. 20년 전, 그가 쓴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을 읽고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현대 의학의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의학이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죽음을 인간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모색해 온 그는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봐주는 의사였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의학서를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처음이었다.

현대 의학의 최전선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날마다 대해온 그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선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현대 의학의 역할은 환자의 목숨을 지속하고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여야 하지 않느냐고 냉정하지만 묵직한 어조로 묻는다.

이 책이 각별히 울림이 큰 것은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의 죽음을 병원에서 목도하면서 때론 의사로서, 때론 보호자로서 매우 객관적이면서 한없이 주관적으로 죽음을 성찰하고 있어서다. 병원의 긴박함과 긴장감을 수려한 문장으로 담아내면서도, 사려 깊은 성찰 끝에 얻은 깊은 통찰을 매 페이지에 담아낸다. 그는 현대 의학의 가장 냉정한 비판자이자 동시에 환자들의 가장 따뜻한 동반자이다. 이 책은 우리 삶의 책장 안에 가장 오랫동안 꽂혀 있어야 할 책이다.
- 정재승(뇌과학자, 『과학 콘서트』 『열두 발자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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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모두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죽음, 그 죽음을 대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i | 2023.01.2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설을 한 주 앞두고 여동생 내외가 부모님 댁에 들러 이틀 밤을 지내고 돌아갔다. 그 밤들 중 한 날 아버지가 토사곽란에 시달렸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갔던 엄마 또한 주저 앉아 일어서지 못하였다. 그 밤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여동생이 내 출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전화를 해 그 모습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다며;
리뷰제목

  설을 한 주 앞두고 여동생 내외가 부모님 댁에 들러 이틀 밤을 지내고 돌아갔다. 그 밤들 중 한 날 아버지가 토사곽란에 시달렸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화장실에 들어갔던 엄마 또한 주저 앉아 일어서지 못하였다. 그 밤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란 여동생이 내 출근 시간을 기다렸다가 전화를 해 그 모습을 상세히 설명했다.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다며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기세였다.

 

  나는 동생의 말이 시작될 때 잠깐 미간을 찌푸렸지만 동생의 말이 계속되면서 점점 차분해졌고, 동생이 거친 호흡과 함께 말을 끝마쳤을 때는 거의 평정의 상태가 되었다.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과 함께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거기에는 죽음의 상황도 포함되어 있다. 아버지와 나는 어떤 상황도 어떤 죽음도 받아들일 준비를 이미 오래전 끝내놓은 상태라는 말이었다. 

 

  사 년 전 폐암 4기 선고를 받은 이후 병원을 오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지난해 인지 저하 판정을 받고 희귀암의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세 달 전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 투석실에 들러야 할 때도 아버지는 대부분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 폐암을 선고받고 얼마 뒤 나는 아버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팔십 초반까지 살았으면 좋겠고, 고통 없이 떠났으면 좋겠다고 답하였다.

 

  인지저하가 시작된 작년 봄 이후 아버지는 주말을 제외한 모든 평일에 내 차를 이용해야 했다. 아버지는 작년 한 해 동안 따로 혹은 동시에 종양내과, 피부과, 신경과, 신장내과, 방사선종양학과, 피부비뇨기과, 치과 진료를 받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인지저하로 순한 아이가 된 아버지는 영문을 모른 채 그 많은 병원의 진찰실과 입원실에 들러야 했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안심시켜야 했기에 더욱 수다스러워져야 했다.

 

  아버지는 차에 타면, 지금 자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 투석 병원에 가는 중이에요, 왜 가는지, 신장 기능이 나빠져서 기계가 그 기능을 대신해야 해요, 묻는다. 투석이 끝나고 집으로 모시려고 병원에 들르면 또, 여기가 어디인지, 투석 병원이에요,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기계를 통해서 피를 교체해 주어야 힘을 내서 엄마의 집안일을 도울 수 있어요, 묻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매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병원이 18층에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여 놀란 동생을 안심시킨 다음 아버지와 엄마를 살폈다. 아버지는 내가 있는 동안 한 차례 더 토하였고, 나는 투석 병원에 전화를 해 상황을 알렸다. 투석은 다은 날로 미뤄졌고 나는 병원에 들러 장염약 처방을 받아 돌아왔다. 장염약을 드시게 한 후 죽집에 들러 아버지가 드실 죽을 사왔다. 아버지가 주무시는 것을 확인한 후 여동생과 함께 투석이 가능한 요양 병원에 들러 면담을 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 이 책,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내내 읽었다. 매일 목도하고 있는 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적인 상황과 (내 아버지를 비롯하여 이후 나도 포함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앞둔 그들이 대면할 이 사회의 시스템을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내용들은 대부분 내가 앞으로 내리게 될 결정들에 영향을 끼칠만한 것들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들 것 같지만 그렇다.

 

  나는 부모님과 관련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섣부르지 말아야 하지만 또한 마냥 유예를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삼남매의 맏이, 라는 지위(?)를 요즘만큼 실감해본 적이 없다. 사소한 결정과 중요한 결정, 결정의 초입과 결정의 중간 단계 그리고 최종적인 결정에 내가 필요해졌다. 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쇠락한 부모를 모시는 일이 처음이지만 그렇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최근의 아버지의 칭찬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두 기둥 사이에 차를 대느라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는 내게 아버지는, 너는 참 섬세하구나, 칭찬했다. 투석 병원의 간호사들에게 줄 선 선물로 쿠키를 준비한 내게 아버지는, 너는 참 생각이 깊구나, 칭찬했다. 칭찬이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 생각한 대다수의 아버지들처럼 내 아버지 또한 평생 칭찬을 해본 적이 없으셨는데...  

 

  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에 나오는 허약 시기 노인들에 나이든 부모님을 대입하여도 되지만 나 자신이나 나의 배우자를 위치시켜 놓아도 상관없다. 권할만하다는 의미에서 책의 많은 부분을 발췌하여 아래에 덧붙여 놓았다. 이것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책이 지향하는 대략의 맥락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에휴, 남의 일이 아니다...


  
  “현대 과학 기술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은 삶을, 더 오래 누리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이 들어 죽어 가는 과정은 의학적 경험으로 변질되었고, 의료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의학계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이 문제를 다룰 준비가 놀라울 정도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현실이 대체로 주목받지 못하는 까닭은 삶의 마지막 단계가 점점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1945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1980년대에 이르자 이 비율은 17%로 줄었다...” (pp.18~19)

 

  『노인병 전문의 실버스톤 박사에 따르면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리포푸신과 활성산소로 인한 손상, 무작위로 벌어지는 DNA 변형, 그리고 수많은 여타 미세포상 문제가 축적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점차적이면서도 가차 없이 진행된다.
  실버스톤 박사에게 노인병 전문가들이 재현 가능한 특정 노화 경로를 식별해 냈는지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뇨,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저 허물어질 뿐입니다.”
  몸의 쇠락은 넝쿨이 자라는 것처럼 진행된다. 하루하루 지내면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로 적응해가며 산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벌어지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p.49)

 

  『“꼭 그래야 하나요?” 신발과 양말을 벗어 달라는 요청을 받지 할머니가 물었다.
  “네.” 블루다우 과장이 답했다. 할머니가 진료실에서 나간 후 그가 말했다. “항상 발을 봐야 해요.” 그는 나비 넥타이를 맨 날렵하고 건강해 보이는 신사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발을 보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그 신사는 손이 발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서 몇 주째 발을 씻지 않고 있었다. 전체적인 관리 부재를 보여 주는 것이자 현실적인 위험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pp.69~70)

 

  “... 매년 35만 명의 미국인이 넘어져서 고관절 골절상을 입는다. 그중 40%가 결국 요양원에 들어갔고, 20%는 다시 걷지 못했다. 넘어지는 데는 세 가지 주요 원인이 있다. 균형 감각 쇠퇴, 네 가지 이상의 처방약 복용, 그리고 근육 약화다. 이런 위험 요인을 가지지 않은 노인이 1년 사이에 낙상할 확률은 12%다. 반면 이 요인들을 모두 가진 노인의 낙상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p.70)

 

  『아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일들, 다시 말해 청력, 기억력, 친구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 방식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다. 실버스톤 박사의 표현대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다. 필립 로스는 소설 《에브리맨Everyman》에서 이를 더 비통하게 표현했다. “나이가 드는 것은 투쟁이 아니다. 대학살이다.”』 (p.94)

 

  “오늘날과 같이 의료화된 시대에 장애가 있고 노쇠한 사람을 돌보는 일은 기술적인 면에서나 일상생활 면에서나 엄청난 임무다. 루 할아버지가 복용해야 하는 수많은 약들을 모두 파악하고 분류하고 다시 채우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또 만나 봐야 하는 전문의들은 어찌나 많은지 다 모아 놓으면 소대 하나는 된다. 거기에다 어떤 의사는 매주 만나야 하고, 각 의사들은 계속해서 검사와 촬영을 하며 다른 전문의를 만나야 한다고 추천한다...” (p.139)

 

  “...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p.172)

 

  “... 여기서 말하는 통찰이란 바로 노화나 질병으로 인해 심신의 능력이 쇠약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려면 종종 순수한 의학적 충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너무 깊이 개입해서 손보고, 고치고, 제어하려는 욕구를 참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이 날마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환자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어려운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고치려 애써야 할 때는 언제이고, 그러지 말아야 할 때는 언제일까?” (p.232)

 

  “심각한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다. 조사를 해 보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p.240)

 

  “과거에는 보통 죽어 간다는 것이 급격하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조기에 질병을 찾아내는 정밀 촬영, 생명을 연장시키는 처치 등 현대 의학의 개입 없이도 본래 투병 기간이 길어지는 질병이 있기는 했다. 아마도 결핵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신이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렸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를 대까지 며칠에서 몇 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pp.240~241)

 

  “... 1945년에만 해도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단연 과반수를 차지했던 것이 1980년대 말에는 17%에 그쳤다가, 1990년대부터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호스피스 케어를 이용하는 빈도도 점점 늘어나 2010년에는 미국인 사망자의 45%가 이 서비스를 받다가 임종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 절반 이상이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았고, 나머지는 호스피스 전문 시설 혹은 요양원에서 받았다...” (p.296)

 

  “... 우리는 통증 지속 시간이 짧은 쪽보다 긴 쪽이, 그리고 평균 통증 척도가 낮은 쪽보다 높은 쪽이 더 나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환자들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최종 척도를 평가할 때 통증 지속 시간은 대개 무시됐다. 대신 최종 척도를 가장 잘 예측할 수 있는 지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카너먼 박사가 말한 ‘정점과 종점 규칙Peak-End rule’이다. 이는 가장 아팠던 순간과 마지막 순간에 느낀 통증의 척도를 평균 낸 것이다...” (p.362)

 

  『삶의 마지막 단계를 제어할 수 있다는 개념을 제안한다는 것은 보통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을 진정으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물리학과 생물학, 그리고 우연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우리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용기란 이 두 가지 현실을 모두 인식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에게는 행동할 여지가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범위가 점점 더 좁아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려면 몇 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첫째, 우리가 병들고 노쇠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서 가장 잔인하게 실패한 부분은 이것이다. 그들이 단지 안전한 환경에서 더 오래 사는 것 이상의 우선순위와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둘째,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 나갈 기회를 갖는다는 건 삶의 의미를 지속시키는 데 매우 본질적이고 중요한 부분이다.
  셋째, 우리에게는 삶의 마지막 장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위해 제도와 문화, 그리고 대화 방식을 변화시켜 나갈 기회가 있다.』 (pp.370~371)

 

  “이른바 기술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학자들이 ‘죽는 자의 역할’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p.380)


아툴 가완디 Atul Gawande / 김희정 역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Being Mortal) / 부키 / 400쪽 / 2015, 20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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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k | 2022.10.03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Being Mortal) 저: 아툴 가완디 역: 김희정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15년 5월19일   외할머니가 저녁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막내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황급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는데, 그날 따라서 차가 막혔다. 밤 늦은 시간에 병원 주변은 을씨년스러웠다. Covid-19로 인해서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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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Being Mortal)

저: 아툴 가완디 역: 김희정

출판사: 부키 출판일: 2015년 5월19일

 

외할머니가 저녁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막내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황급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는데, 그날 따라서 차가 막혔다. 밤 늦은 시간에 병원 주변은 을씨년스러웠다. Covid-19로 인해서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온 몸을 두른 보호복을 입고 체온도 쟀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너무 늦었다. 하지만 아직 체온이 남은 얼굴이라도 한번 느껴보려고 중환자실로 향했다.

 

사실 거의 100세에 가까웠던 외할머니는 현대의 시점에서도 장수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호상이라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나를 놀랍게 했던 것은 중환자실의 모습이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받는 수많은 환자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완치되어 일상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의 눈빛은 이미 약에 취한 것인지 초점도 없었다. 그 모습은 내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고, 장례식을 치르는 시간 내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죽음으로써 우리의 인생은 완성된다.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낮은 생존율과 빈약한 보건위생 여건, 낙후한 의료시스템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대개는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대식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맞이했다. 젊은 사람보다도 노인이 많은 시대가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연이 설계한 수명을 휠씬 초과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전의 갑작스러운 죽임이 사라진 대신, 이제 죽음은 전체적인 인체의 시스템이 허물어지면서 서서히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서서히 무너지는 상황에서 노인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감옥과 같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요양원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존감을 가지고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한 끝까지 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바램이다. 요양원은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 즉 내가 편안하게 살아가고 익숙한 생활에서 나를 철저하게 소외시킨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즉 완치할 수 없다면 고통을 유발하는 연명치료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아마도 죽음에 대해서 받아들이고 남은 얼마 안되는 시간을 가족과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휠씬 현명할 것이다. 호스피스 케어를 선택하는 것이 화학적 연명치료를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할 만하다. 아직 나는 존엄사에 대해서 명확한 판단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간으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단계가 되었다고 본다.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란 내게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항상 곁에 있고, 노화는 우리가 반드시 거쳐가는 단계이다. 문득 망각하고 있던 죽음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추구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쯤 누구나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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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하**원 | 2022.09.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노인'을 떠올렸을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요? 하얗다. 주름. 거동이 불편하다. 고집. 노약자. 쾌쾌한 냄새. 지하철 무개념 에피소드들. 아마도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분들이 연상할 것들일 것 같습니다. 그럼 노인은 우리와 다른 종족(?)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노인'으로 한데 묶어 구분짓고 부정적 편견 하에 타자화 해도 정말 괜찮은 사람들인걸까. 전혀 그;
리뷰제목

'노인'을 떠올렸을 때 함께 생각나는 단어, 이미지는 어떤 것인가요? 하얗다. 주름. 거동이 불편하다. 고집. 노약자. 쾌쾌한 냄새. 지하철 무개념 에피소드들. 아마도 저를 포함한 적지 않은 분들이 연상할 것들일 것 같습니다.

그럼 노인은 우리와 다른 종족(?)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노인'으로 한데 묶어 구분짓고 부정적 편견 하에 타자화 해도 정말 괜찮은 사람들인걸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정확히 어디에서 내가 오해하고 있었는지 슬프게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닐거란 착각이지요. 나는 저렇게 병약하고 고집세고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하고 다른사람 도움없이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노인이 되지 않을 거라는 착각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얼마전 친가에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낸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이번엔 실제 추진이 있었고 할머니가 우셨답니다. 요양원에 갈 때만 해도 괜찮으시더니 병실이 다 차 입소가 거부되니 그제야 통곡하셨답니다. 자식들에게 천번 양보해서 간 요양원에서마저 거부당해 설움이 크셨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녀들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고민해 낸 최선의 방법이었을텐데 할머니에겐 한없이 부족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책은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의 얘기이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얘기로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나이듦의 과정에서 서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치료를 통해 나이든 몸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노인을 부양해야 할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은 그 노인의 역사, 개성, 욕구를 무시하는 처사로서 모두 제대로 남은 생을 행복하게 보내는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 위급 시 고령환자가 아닌 젊은이에게 인공호흡기 우선 처치로 인해 의사들이 윤리적 결단으로 힘들어 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같은 나라에서 101세 할머니가 코로나 완치 판정을 받았었기도 했지요. 이 할머니의 완치가 단지 노인치사율을 극복한 수치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노인, 젊은이를 초월한 존엄한 개인의 사투로 보여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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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밴딩자국 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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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k********i | 2022.11.29
평점4점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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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골드 J*y | 20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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