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상상에 불과했던 것들을 현실이 되게 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타인의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시원이 연극 내내 환기시키듯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를 계속 움직이게 했다. 아직 불안정하지만 법과 제도를 바꾸고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왔다. 우리가 서로를 더욱 크게 연결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회도 바뀌어갈 것이다. 어린이 안전에 대한 이야기가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성소수자의 권리로 다시 연결되고 비인간 동물에게로 넘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피는 일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변화를 현실로 옮겨 오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중에서
팽목항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는 시원의 태도는 참사라는 비극과 변하지 않는 현실을 자꾸만 떠올리며 불가능한 애도와 무기력을 반복하는 어른들에게 질문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2014년 생〉은 세월호 전후로 단절된 것만 같은 세계를 연결하고 세월호 사건을 보는 미래의 시점을 당겨와 노란 리본으로 잇는다. “오늘부터 노란 리본은 아동 인권이에요.”라는 시원의 대사처럼 노란 리본은 누구의 인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확장된다. 세월호 이후 세월호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보여준 소중한 작품이다.
---「제1회 이영만 연극상 작품상 선정 이유」중에서
“이제 시원이가 언니 얘기를 연극으로 해줄 거잖아. 그럼 사람들한테 무슨 얘기 해주고 싶어?”
“음……. 세월호에 의해서 사람들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그래서?”
“그래서 저거, 촛불 밝히는 거 있잖아.”
“촛불시위?”
“그거, 같이하자고 하고 싶어.”
“연극 보는 사람들이 촛불시위를 다 같이 했으면 좋겠어?”
“응. 내가 그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촛불시위를 해서 꼭 반대를 하지 않게 할 거야.”
“너무 고맙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천 명이 넘을 거야.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올 거야.”
“진짜? 시원이 덕분에 다시 세상이 전부 노란색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그럼 지구가 노란색으로 변하지 않을까?”
“그럼 언니는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언니는 세상이 다 노란색으로 변하면 어떨 것 같아?”
“그럼 모든 사람들이 언니한테 있었던 일이랑, 언니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랑 다 기억해주는 거니까, 너무 든든하고 고맙지 않을까.”
---「2014년생 시원과 2014년의 생존자 주희가 나눈 대화」중에서
그저 10년쯤 흐르니 이젠 나에게도 친구들 사진을 보며 “이때 우리 진짜 귀여웠다.”라며 흐뭇하게 웃음을 짓고, 기억교실과 기억식을 놀러가듯 다녀오고, 납골당에서 함께 생일 파티를 하며 친구들을 추억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생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친구의 말투가, 목소리가, 표정이 희미해지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기억과 추억 사이에서 나만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일 뿐.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마다의 속도로 충분히 애도하고 아파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너그러이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최소한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정하고, 책임지고, 준비하는 사회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가 말하는 ‘기억’은 그런 차원이다. 우리 모두 그날을 아프게 떠올리며 머무르자는 이야기가 아닌,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음으로써 미래에는 다시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월호 너머의 가치를 잊지 않고 기억하자는 호소이다.
---「2014년의 생존자 도연의 에세이」중에서
시원은 방대한 리서치 과정에서 주희와 도연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언니들이 겪어낸 차별과 혐오의 시간들을 묻고,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태도로 이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시원은 이태원 참사, 궁평2지하차도 참사, 고 채수근 상병 사망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는 일련의 사회 참사들을 경유해 자신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스쿨존, 노키즈존, 성평등 도서, 학생인권조례, 현장체험학습, 기후위기 등의 문제로 나아갔다. 미래 세대가 아닌 지금을 살아가는 세대로서 ‘노란 리본’의 약속이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존중하는 행동으로 재구성되기를 요청하면서.
---「작가의 말」중에서
4월 16일에는 기억교실에 갔어요. 익숙하게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시원이는 꼭 친구를 만나기로 한 것처럼 반가워 보였어요. 주희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책상과 칠판에 적힌 낙서를 읽고 교실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느 책상의 꽃이, 사진이, 선물이 바뀌었는지도 이야기해줬어요.
시원이는 이렇게나 언니 오빠들과 친해졌구나. 시원이는 내가 하지 못하는 걸 하고 있었구나. 올해는 저도 익숙한 이름을 찾아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 이제 ‘몽환의 숲’ 노래만 들으면 네가 생각나. 나도 참 좋아했던 노래였거든. 혹시 너도 디제이 소울스케이프 좋아하니?” “너는 루피를 좋아했구나. 나도 원피스 짱 좋아했는데. 나는 쵸파 좋아했어.” “너는 엄마를 참 닮았구나.”
작년에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추거나 그냥 지나갔어요. 그 조심스러움들은 무엇이었을까요. 이제는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동요되고, 말을 걸 수 있게 되었어요. 네. 그렇게 저도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리의 대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