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내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으라는 거듭된 안내 방송에 따라 당시 300여 명의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은 선내에서 속절없이 대기하고 있었다. “개념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방송을 따르지 않고 탈출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개념 없는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 엄중한 순간에 어떻게 안내방송을 따르지 않을 도리가 있단 말인가. 충실하게 그 안내를 따른 결과 고귀한 생명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이런 기막힌 내막을 알게 된 다음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이 나오기 시작했다.
--- p.3~4
사고 위험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기업의 속성 때문에 커진다. 비용 때문에 안전장치를 설치하지 않거나, 인력을 줄여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킬 수 없게 하거나, 생산성을 높이라는 압박을 가해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쓴 채 일하게 만들거나, 노동 강도를 강화해 노동자들이 실수할 확률을 높이는 식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위험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가한다.
--- p. 43
국가가 모든 사고의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진상과 원인을 규명하여 대책 실행과 피해 수습을 통해 참사의 반복을 예방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보장해야 하는 책임만큼은 피할 수 없다.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국가는 무능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국가가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피해자들과 국민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왜곡하거나, 진상파악과 대책실행을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방해한다면 범죄적이다. 따라서 4·16 참사는 사고가 아니라 범죄적 사태이기 때문에 국가의 가해책임과 피해자 권리보장의 문제를 제기해야 마땅하다.
--- p.53
세월호 참사는 일회적인 사고나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특유한 사건이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선택한다면, 어떤 나라에서건 발생 가능한 범죄적 사태다. 또한 재난방지 실패와 진상규명 방해, 피해자 권리침해를 되풀이함으로써 국민의 피해를 초래했으니, 국가범죄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한 형사정책적·피해자학적 연구대상이다.
--- p.70
재난안전과 복지안전 장치 구축을 위해 그리하여 구성원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대정신이 부여하는 기본적 공적 책임을 공동화(空洞化, hollowing out)시키며 국가시민의 시민권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퇴행적 국가, 기본적 책임규율을 내던져버린 무책임하고 무능한 국가는 공공성을 담지하는 유능한 책임국가와 대비하여 족히 ‘불량국가’라 부를 만하다. 원래 불량국가(不良國家, rogue state)는 냉전종식 이후 미국이 자국의 안전보장과 대외 군사개입의 구실을 찾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으로, 미국의 입장에서 ‘평화로운 세계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범죄국가 또는 저질국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재난 위험과 시장자본주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구성원의 생명과 존엄을 지켜야 할 국가의 공적 책임 및 그에 대한 시민권적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 복종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저질국가라는 의미로 불량국가를 확장·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판 불량국가라 해도 좋을 것이다.
--- p.100
정부는 권한은 최대한 확보하되 책임은 최소한으로 지려는 속성에 따라 책임을 지지 않는 쪽으로 제도를 변화시켜왔다. 구조역량이 전무한 해경이 그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국민안전 보장 능력은 물론 책임성도 모두 약화되었다.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능력은 시민 개개인의 역량, 정부 역량과 함수관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위험통제 관리능력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 p.123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배제를 전제로 한 경쟁과 사람이 배제된 자본을 기초로 한 ‘썩은 시스템’을 만들어왔다. 그 ‘썩은 시스템’에 익숙해져 ‘썩은 시스템’ 속의 가해자는 죄의식이 없고, 피해자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변한 결과의 합작품이 아닐까? 잘못 만들어진 시스템에 의해 우리의 사고와 행동방식이 지배당하고 있다. 또 지금도 시스템이 행하는 악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잘못을 저지른 개인들의 사소한 악행이라고 치부하고 그 개인을 처벌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126쪽(5장 세월호와 행정악, 그리고 해법 _ 김대건)
법률로는 실제로 시행할 수 있는 자세한 실천 방식이 없기 때문에 시행령을 만드는데, 시행령을 만드는 주체가 바로 관료들이다. 관료들에 의해 큰 원칙만 정해져 있는 법령의 구체적인 실천방식이 만들어진다. 일종의 법령의 모호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관료들의 권력이 막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시행령을 만들고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행령을 만드는 현직 관료들을 퇴직한 관료들이 로비를 통해 움직이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개조된 세월호가 탄생하는 것이다.
--- p.133
세월호 참사 보도가 과거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보도나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 보도와 다른 점은 권력 편향 차원의 문제였다. 삼풍백화점이 붕괴했을 때나 서해 훼리호가 침몰했을 때의 보도에 대한 학계와 업계, 언론비평매체의 비판과 비평에는 정부 편향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는 언론매체의 정권 옹호가 도마 위에 올랐다.
--- p.150
희생양 추적으로 본질 희석, 누락·축소 등을 통한 사실 왜곡, 프레임 전환을 통한 문제의 개인화가 이 행보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희생양으로 등장한 사람은 세모그룹과 관련된 다양한 유명인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다. 이들을 부덕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독자와 시청자의 공분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들 희생양이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든 더 본질적인 내용은 알아차릴 수 없도록 했다.
--- p.151
세월호 침몰 사고는 여러 요인이 얽힌 복잡계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언론은 이 사고의 원인을 단 한 사람의 행위자나 행위자 집단에 돌리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개념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경향은 “승무원 조타수의 무능력(기술 미비)과 청해진해운의 부도덕이 세월호 침몰을 초래했다”나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의 부도덕과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침몰 초기의 대응에 실패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와 같은 식으로 기술된다.
--- p.171~172
그럼에도 법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애처롭다. 왜냐하면 법은 여전히 우리의 법이 아니라 그들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독재를 몰아내고 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7년 헌법을 쟁취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독재는 진화하고 있다. 독재 2.0시대(?)에 생존하는 것은 더욱 힘겨운 일일지 모르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국민들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 언론권력의 본질을 깨닫고 분노하고 저항할 것이다. 결국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늘 각인시켜주어야 한다.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국가의 잘못에 대해서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는 한 국가 지배권력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 p.216
2014년 5월 16일 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가족들 중 어느 분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변호사들도 그동안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던 특별법의 틀이 간단하게 정리된 것이다. 물론 이날 대통령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라는 것을 거부했다. 서로 특별법의 구체적인 형태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쪽은 주장을 했고, 다른 한쪽은 반대한 것이다. 어렴풋하지만 서로가 핵심을 잡았던 것이다.
--- p. 219~220
희생자의 83.4%가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던 점은 유가족들의 동질성 형성과 유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말하자면 이들은 안산이라는 지역적 동질성, 부모들 연령대의 유사성, 사회계층상의 직업이나 세대의 유사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적 비슷한 속성을 지닌 집단이며 특히 단원고 학생의 학부모라는 통합된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었다. 자식이 참사를 당하게 된 원인도 수학여행이라는 하나의 배경이었고 따라서 유가족들은 정서적으로 비교적 손쉽게 공감 및 교감하고 빨리 친숙해지고 조직화되며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의식과 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연장선상에서 어려운 국면이 조성되더라도 쉽사리 분열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정서적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 p.269~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