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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천진 시절

[ 양장 ] 소설Q-04이동
금희 | 창비 | 2020년 01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3 리뷰 24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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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88g | 128*194*18mm
ISBN13 9788936438081
ISBN10 893643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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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과의 만남이 있기 전의 이틀, 그리고 그 뒤의 하루 동안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던 한 시절?1998년의 천진(天津), 무슬림들이 많이 모여 살던 북진구, ‘대외로는 개방하고 대내로는 개혁하자’는 등(등소평)의 이념이 유례없이 뜨겁고 처절한 가운데 심천을 필두로 한 연해 도시들이 외자 유치에 눈부신 성과를 보이던 그 혁명적인 시간 속에서 다시 사는 듯했다.
--- p.12

나는 그녀, 젊은 ‘상아’ 앞 점점 커져가는 해바라기씨 껍질 무지에 잔잔한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불과 몇시간 전에 고향을 떠났으며, 그로부터 아마 영원히 고향을 떠나게 될 그 시절의 내가 느끼는 흥분과 애틋함과 슬픔, 그리고 곧 도착할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바로 그 해바라기씨 껍질 무지와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젊고 단순하고 생명력 넘치는 열정의 시절이었다.
--- p.15

남산촌을 개척한 원로 촌장이자 가장 먼저 외화벌이를 나간 6소대 최갑부 집안 대봉이네 벽돌집이 우리 앞집이었다. 대봉이네와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선 벽돌집이 애화네였고 육계 수백마리를 기르던 조대장은 애화네 앞집, 7소대로 가는 길목의 동네 유일한 구멍가게는 봉금네 것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나의 단짝 연실이, 그리고 어린 나와 손잡고 새 신부를 보려고 달리던 말괄량이 복희가 생각난다. 그래, 그 황홀하게 아름다운 신부 이야기는 꼭 한번 해보고 싶다.
--- p.24

그러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 p.32

우리는 대체 몇년을 더 해야 미스 신만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싸구려 옷가지들을 비닐봉지에 넣고 버스에 앉아 돌아오면서 나와 정숙은 그런 생각들을 했다.
--- p.141

나는 생각했다. 항상 그게 문제지. 상대방은 순간순간 흔들리고 생각이 변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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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탈향 서사’는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변동과 긴밀하게 연동된다는 점에서 당대 리얼리즘 문학의 성취를 가늠하는 데 있어서도 관건적 위치를 점하게 된다. 금희의 『천진 시절』은 그와 같은 맥락 속에서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래를 향해 흐르는 삶의 물결에서 봉인된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 영겁회귀하는 사랑과 배신, 상승과 추락의 기억은 소시민적 삶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듯 보이는 시대와 역사의 표정을 닮아 있다.
- 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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