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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소설 결정판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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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294g | 128*198*20mm
ISBN13 9791191114003
ISBN10 119111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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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재만은 가벼운 죄의식으로 잠시 뒤척였다. 그러나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쩌면 정말 보물이 쏟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최악의 상황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도 형식이잖아. 우리는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 고위험 고수익 종목에 투자하는 거야. 어느 정도 이익이 실현되면 현금 보유 비율을 늘리고 적절히 위험을 분산하는 것뿐이야. 그건 사업의 기초라고.
--- 「보물선」중에서

도대체 아빠는 왜 오빠와 나를 낳았을까. 아니 이 질문은 엄마에게 던져야 되지 않을까? 아니 어쩌자고 나와 오빠를 낳아 이렇게 무책임하게 내팽개쳐두는 거예요? 며칠 전 나는 생각난 김에 엄마가 경영하는 함바집으로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대답 대신 국자가 날아왔다.
“시끄러, 이년아. 개시부터 재수없이. 낳아준 것만도 고마운 줄 알고 잘 살어. 네년 낳느라고 밑이 다 빠질 뻔했는데 이년이 이제 와서 뭐, 왜 낳았냐고? 니 그 잘난 애비한테 가서 물어봐라. 그 인간 말종, 개같은 자식한테.”
엄마는 그래도 아빠보다는 인간성이 좋은 편이어서 욕을 퍼부은 뒤에는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준다.
“먹어, 이년아. 근데 니 오빠는 왜 코빼기도 안 비친대?”
“오빠 살림 차렸어. 웬 기집애 손목 잡고 들어와서 눌러앉혔어. 입이 귀까지 찢어졌어.”
“니 아빠는 뭐하고?”
“뭐라 그러다 오빠한테 두들겨맞고는 끽소리 못 해. 밥도 가끔 얻어먹어. 좀 있으면 아주 며느리 행세하겠더라.”
“이것들이 정말.”
엄마는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이것들이 정말.”
--- 「오빠가 돌아왔다」중에서

미경을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미경과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함께 지내보면 까짓,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같이 아침 먹고 바쁜 그녀를 출근시키고 녹차를 마시고 소설을 쓰고 음악을 듣고 퇴근하는 그녀와 저녁을 먹는 것이다. 오늘 많이 썼어? 그녀가 물으면 나는 그녀가 나간 사이에 쓴 소설들을 보여주리라. 우리 둘 다, 더이상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한동안 살아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누군가와 옥닥복닥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어쩌면 내게도 그림자가 생길지 모른다. 그렇게 멋진 그림자가 생기면 사제관으로 불쑥 찾아가 얄밉도록 잘생긴 바오로 신부의 뒤통수를 한대 툭 치며 내 아이의 영세를 부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멋진 세례명 하나 지어줘. 바오로 같은 거 말고. 일 년에 한 번은 정식의 제사도 지내주리라. 자식도 없이 죽은 녀석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거대한 새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하늘을 본다. 이상하다. 달도 없는 밤에 웬 새 그림자.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덕분에 쓸데없는 상상은 끝. 나는 옷만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운다.
--- 「그림자를 판 사나이」중에서

“앞으로는 윤리적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새해가 되면 담배 끊는 사람들처럼 이제 묵은 관계는 청산하시고 새사람이 되시겠다?”
“미안해. 난 입만 열면 개구리가 나와.”
잘 먹고 잘살라는 말도 못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정말 머릿속에 개구리가 한 바구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속은 휑하고 귀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같이 일어나 수영장으로 갈 것이다. 이대로 무너진다면 날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정인숙! 그딴 놈 때문에 손해볼 거 하나 없어.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 거야. 행복해지는 것. 그게 바로 복수라고.
--- 「너를 사랑하고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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