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6월 1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300g | 128*188*17mm |
ISBN13 | 9788936438456 |
ISBN10 | 893643845X |
발행일 | 2021년 06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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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300g | 128*188*17mm |
ISBN13 | 9788936438456 |
ISBN10 | 893643845X |
MD 한마디
[『아몬드』 손원평 첫 소설집] 짐짓 모르는 척 한 일상의 작은 균열들이 현실로 끼쳐올 때 우리는 어떤 얼굴을 하게 되는가. 작가는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뒤틀림의 순간, 나와 타인의 민낯을 그리며, 그렇게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든 삶을, 그럼에도 겪어내고 나아가려는 작은 걸음들을 담담하게 비춘다. -소설MD 박형욱
4월의 눈 괴물들 zip 아리아드네 정원 타인의 집 상자 속의 남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열리지 않은 책방 해설 | 전기화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
"나와 남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그러면 나의 우주가 그렇듯, 타인의 우주 안에도 다양한 작동 원리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 작가의 말, 269쪽에서
표제작 「타인의 집」의 화자인 '시연'은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온 햇살"을 "가늘게 뜬 눈 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중학생 소녀 '보라'는 장례식장의 "오래되어 갈라진 벽, 그 틈" 을 통해 "검은 곰팡이, 간헐적 울음소리, 삶에 관한 이야기, 찐득한 술 냄새, 그리고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사건"을 경험한다. 활짝 드러나 너무 뻔한 것일지언정 벽, 블라인드로 가려진 '틈'을 통해 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비로소 무심히 지나쳤거나 외면되었거나 혹은 가려져 있던 것들을 볼 수 있게된다. 타인이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수히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타인의 집」은 불안한 생활의 터전으로부터 도약을 꿈꾸는이 시대 젊은 세대의 풍경이 고스란하다. 체인 어학원 상담업무로 위태로운 만족의 삶을 살아가는 '시연'은 집주인에게 세들어 사는 걸 숨기고 전세입자에게 월세를 지불하는 방에 산다. 명목상인 전대차(轉貸借)의 집이지만 "탐탁지 않을지언정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에 소속돼"있다는 위안의 장소가 되고, "엄연한 집"으로서의 만족감을 준다. 다중속에 위치해 있다는 안정감과 달리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타인과) 블렌딩 인 될 필요 없"음에 대한 욕구처럼 그 모순과 갈등의 풍경이 소소하게 풀어헤쳐진다. 창가에 서서 "각자 빛을 뿜어내며 차고 넘치도록 많은 풍경 속의 집들"을 바라보는 시연, 오늘의 젊은 세대들 시선이 시리게 다가온다.
'집'과 발음이 같은 「zip」이라는 제목을 지닌 단편에서는 막상 이렇게 소유된 집의 또 다른 측면을 보게된다. 주인공의 이름인 '영화'는, 마치 압축된 동영상 파일을 풀어 놓듯 한 여인의 작은 우주로서의 집과 절묘하게 조우하는 듯하다. 여자에게 집은 편안히 머무는 곳이 아닌 블랙홀 같은 곳, "견고하되 구멍이 많고 드나들 수 있지만 도망칠 수 없는 울타리와 지붕", 삶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굴레다. 고요했던 여자의 삶에 바람을 피우고, 재산을 탕진하는 등 "너무나 많은 드라마를 제공했던" 남편 '기한'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분노와 복수심으로, 그리곤 미움의 정열마저 태워리기엔 너무 지쳐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도망치고자 했으나 늘 회귀했던, 모든 것이 눌러 담긴 작은 우주"였던 집에 담겨 전달되는 21세기판 '여자의 일생' 압축파일이라 할까? 여자라 지녀야 했던 오래된 질서와 속박들...
"평화와 안온함의 상징, 단란하고 완결된 가족을, 때로는 뭔가를 더 완성시키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것을 어그러지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
- 「괴물들 」, 51쪽
불임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얻은 여자, 이 과정의 불화는 부부의 관계 단절로 이어지고, 사고로 생계능력을 상실한 남편을 대신해 여자는 어린이집 교사로서 고단한 삶을 꾸려간다. 쌍둥이가 함께 사용하는 듯한 다이어리에 써진 "아빠를. 죽일거야. 오늘, 저녁. 우리 손으로."라는 섬뜩한 이 소설 「괴물들」 의 첫 문장은 어쩌면 부인하고 싶은 여자의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평온함마저 변질될 수 있음을 여자는 시간이 감에 따라 느끼고 있었다."는 목소리처럼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씌워진 자본주의의 허상이 사람들을 어떻게 황폐화 시키고 있는지 그 적나라한 고백록으로 읽힌다. 어린이집 교사의 돌봄 노동의 실상까지 더해져,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 만들어지는 '마음의 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 여자로부터 오늘 우리들의 세계가 외면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괴물들은 누구일까? 교사에게 과다한 수의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 원장? 자신의 자유를 위해 아이를 맡기고는 책임만을 강요하는 아이들의 부모?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안일한 관료행정? 어린이집 교사를 범죄자 취급하는 미디어와 이기주의의 대중?
우리네 삶의 현실이 안고 있는 이러한 지배적 몰지성과 몰염치함의 현상들을 총체적으로 품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리아드네 정원」은 노인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의 계급화된 노인 구획의 가장 아래 등급 바로 위인 'D등급 유닛'에 대한 미화된, 아니 "실마리도 없는 지옥같은 미로"를 은폐하는 구역의 이야기다. 부유한 노인들이 거주하는 유닛 A로부터 점차 B,C,D,F로 하향 이동한다. 경제력도 신체와 정신력도 떨어짐에 따라 점차 야만적 원시적 구획으로 하강한다.
노인 '미화'는 유닛 C에서 유닛 D로 이동했다. 그녀는 마지막 등급인 F로의 이동을 지연시키려고, "구성원 실태에 도움되는 정보를 '민원 AI'에 전달"함으로써 화폐처럼 사용되는 '생활평가지수 RM'을 쌓기위해 노력한다. 이 점수로 소위 이야기 동무인 복지파트너를 초대해 "살아있음을 향한 본능"을 충족시키려한다. 그녀는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 되게하는 기분(느낌)을 주는 아이들"로부터 기쁨을 얻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위협적 낙폭의 출산율, 이를 해결키 위한 불가피한 이민자 수용, 남북개방 등 단일성 지배문화가 다인종 계층이 넘실대는 곳으로 변모한' 세계는 어쩌면 눈앞의 근미래에 대한 우리의 현실이라해도 무방할 듯하다. 압도적인 노령화가 야기하는 경제적 부담의 정의에 대해서, 이민자 등 다양한 계층적 차별이 야기하는 혐오와 배제등 사회 갈등에 대해서, 노인 사회가 만들어 낼 돌봄 등 인권 사각지대의 확산에 대해서, 청년 실업과 일자리 감소에 따른 세대간 질시와 분열에 대해서 등 편협한 시야를 서로 촘촘히 연결된 복합적 과제로 확장하게 이끈다. 이 작품을 sci-fi소설로 범주화하는 이들의 안일한 이해가 있는 듯하다. 닥친 과제로서 인식하지 못한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엄혹한 현실적 허구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 『타인의 집』 스위치 에디션 & 편지엽서】
"누가 도와달랬어요? 감사하다고 충분히 말했잖아요. 한번 도움을 받았다고 평생 죄인처럼 살라는 겁니까? 누가 도와달랬느냐고요..."
-「상자속의 남자」 , 180쪽
위의 인용된 문장은 작품 「상자속의 남자」 화자가 언덕에서 굴러 내리는 트럭에 무방비로 깔리는 아이를 구하고 대신 영원히 삶의 길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된 형을 대신해서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듣게되는 말이다. 감사의 마음을 너무 쉽고 빠르게 망각하는 사람들, 택배 상자를 분류하고 하루치 물량을 배송하는 택배 노동자인 '나'는 세상이 가르쳐주는 이 교훈으로부터 "굳이 남들이 감사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고마워할 만한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더 위험해지거나 손해를 본다는 뜻이니까.(181쪽)"라고 상자 속에 살기로 한다. 안전이라는 삶의 모토를 지키기위해.
이 사건을 시작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가 더해지는데, 눈앞에서 모녀인 두 여인이 잔혹하게 살해 당할 때 '나'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때 문 앞에서 무참히 스러져가는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않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경직되어 바라보는 소년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죄책감을 벗어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고 은테 안경너머 무심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예의 소년과 마주한다. 소년은 '나'에게 말한다. "알고 싶을뿐이에요.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방식에 대해서요. 거기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187쪽)" '나'의 형이 마지막처럼 남기는 "어떻게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는 말이 과연 대답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이 불가능해 보이는 답에 근접하는 것은 우리들이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한 위로의 방식이랄 수 있는 마지막 에피소드일 것 같다. 타자를 향한 내 태도만큼은 자신을 위해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이 될 수 있기를.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라면 성장하고나면 소설가 '손원평'이 되었을 것 같다고 여기고 싶은 문학소녀 '보라'가 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다. "어둠을 갈라내는 빛"을 향해 자기만의 소설을 완성해가는 씩씩함, 그리고 시니컬함 속에 위트까지 담고있,는 재치있으며 남의 속을 빤히 들여다보는 심리적 능숙함이 던져주는 즐거움 탓이었다 할까? 문학계 원로라는 그럴듯한 의상까지 걸친 소설가 윤석이 세간의 맹목적 열광을 빌어 남의 작품을 자기만의 언어로 닥아낸 후 출간하는 뻔뻔함 등 작품 내 갈등구조나 서사도 소설의 독특한 구성만큼이나 흥미롭지만 내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세계에 시선을 맞추고 자기 것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맞는 기성 권력의 추악한 위선과 기만의 양상들이며, 그리곤 호들갑을 떨어대는 세상의 방정맞음에 대해 우아하게 날리는 마지막 질책의 한 방이다.
"놀랍지만 늘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주 망각했고 또다시 처음처럼 경악했다. 그렇기에 이것은 새로워도 낡은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이야기도, 전부 똑같거나 혹은 전부 달랐다. "
-「문학이란 무엇인가」, 236쪽
이 소설집의 처음을 시작하는 「4월의 눈」속 어느 눈 녹은 날 서로 어깨를 토닥여주는 이방의 여인과 남자의 정경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이 책방을 열기 전까지" 「열리지 않은 책방」의 비 그친 길을 걸어가는 "손님이었던 한 사람과 주인이 아니었던 다른 이의 허밍이 섞여"흐르는 장면은 어느 한 폭의 그림처럼 깊은 잔상을 남긴다. 유토피아를 잊어버린, 아니 부존재라 낙인 찍었던 세상의 가능성에 도전해야 할 의미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만 같다. 무한히 다른 타자의 세계를 알아가려 할 때 아마 우리는 조금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을 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담한 정의라 해도 된다고 선언하고 싶다. 작가는 이 책이 "대중에서 시민으로, 관중에서 독자로 이끄"는 그런 훌륭한 일을 해낼 만한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 일을 해낸 작품집이 맞다!
장편 소설의 장점은 하나의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거고, 단편 소설이 가진 특징은 한 작가의 다양한 시선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거다. 작가의 다른 작품의 변주를 만날 수도 있고, 확장된 버전의 우리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사회가 이처럼 변하고 있다는 걸, 작가의 시선 속에 주어진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보게 된다.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우리 주변과 연관되어 있다. 근미래의 상황도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세계를 담았고, 집에 관한 거든 가족에 관한 이야기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았다. 작품 모두를 음미하며 작가가 가진 스토리텔링에 감탄했다.
「4월의 눈」을 읽으며 관계와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상대방에게 책임 전가를 하는 것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길 두려워하는 게 우리의 자화상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잃는다는 것, 큰 상처고 고통이다. 아이 때문에 부부가 헤어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서로의 고통을 아는 만큼 상처도 큰 법인지 각자의 아픔에 겨워하는 것 같다. 사람은 아픔이 있기 마련이다. 헤어질 위기에 처한 부부에게 먼 나라 핀란드에서 온 손님은 버거우면서도 둘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치유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이별이 먼저라 고통의 시간이 오래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장편 『아몬드』를 떠올리는 작품이 있었다. 『아몬드』의 윤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상자 속의 남자』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 그 이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면서 뛰어드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일종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다. 우리 사회가 자기밖에 모르는 집단 이기주의로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한쪽에서는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따뜻함이었다.
싸우는 부부 뒤로 아장아장 도로를 걸어가는 아이에게 오는 트럭을 향해 달렸던 형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있다. 그런 형을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이 짐작된다. 구해줬던 아이의 부모에게 무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서운한 건 서운했다. 만약 다시 그 상황으로 간다면 형은 어떤 선택을 할까. 자기는 절대 그러지 못할 거 같다. 모녀로 보이는 여자 둘에게 칼을 들고 달려간 어떤 남자와 유리창 너머로 무심하게 바라보는 남자애가 있었으니 그가 『아몬드』의 윤재라는 걸 무심코 떠올린다. 이 장면 속에 자신을 가두었던 남자가 어린 소녀의 권유로 누군가를 살리는 일에서 형에게 질문했던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작가는 또 노인 문제와 이민자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어쩐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게 되는 「아리아드네의 정원」이라는 작품이다. 근미래의 우리 자화상을 바라보게 한다. 과도한 노인들 때문에 설 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이 반기를 든다. 가족 같은 것과 진짜 가족은 다른 거다. 하지만 유사가족이라는 단어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진짜 가족보다 더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게 유사가족 제도이기도 하다. 젊었을 적 많은 걸 누렸던 사람들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공격적이었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방어적이 되어간다.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도 과거에 그랬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걸 떠올린다.
표제작이기도 한 「타인의 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입자의 세입자가 된 오늘의 청년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공간이 누구에게는 간절한 공간이 된다는 걸 말하는 작품이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거로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특히 개인 화장실은 삶의 질을 높인다. 같은 집에 사는 재화 언니에게 끝내 화장실을 내주지 않았던 자기만의 공간 확보였다. 그것만큼은 지키고 싶었으리라.
아무래도 영화감독이기도 한 작가의 영향인지 영화적인 스토리였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 우리의 미래를 한 번쯤 예상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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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장편만 읽었는데 이번에는 단편이다. 손원평 작가가 쓴 단편은 어떤 느낌일지 기대를 많이 했다. 역시나.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왔다. 모두 8편의 단편 중 가장 좋았고 기억에 남는 건 ‘아리아드네 정원’이다.
나이라는 놈은 행동에 깃든 조심성을 앗아간다. (105)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라. 변한다는 걸 빼곤 확실한 게 없으니까. (119)
가장 답답한 건 젊다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에요 (124)
늙어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125)
젊었을 때 짊어졌던 고민들, 절망이 낳은 수많은 포기와 그때의 사회가, 그때 윗세대가 남겼던 자국과 굴레애 대해 얘기하며 해명하고 싶었다. (132)
아리아드네 정원은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SF 소설이다. A등급에서 D등급으로 떨어진 민아는 자신이 그리던 노후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찾아주는 복지 파트너 이민자 청년 유리와 아인의 방문이 즐겁다. 하지만 세금을 좀 먹는 노인만을 위한 유닛이 폐지 될거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머지 않은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읽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저출생과 고령화, 이민자와 코로나로 인해 더 심해진 청년 세대의 박탈감, 그리고 노년 세대에 대한 저항감. 지금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문제점은 아닐까?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 모습이 이런 거라면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꼰대로 늙을 것인지 어른 다운 어른으로 늙을 것인지. 나이를 들면 꽤 괜찮은 어른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다 괜찮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꽤 괜찮은 어른의 표본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고령화로 인한 진짜 어른의 부재. 어떻게 나이 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