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9월 07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288g | 138*206*16mm |
ISBN13 | 9791167370624 |
ISBN10 | 1167370627 |
발행일 | 2021년 09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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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72쪽 | 288g | 138*206*16mm |
ISBN13 | 9791167370624 |
ISBN10 | 1167370627 |
청소년 문학을 추천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서인지 선정적이고 자극적 소재의 글이 피로감을 더하더라고요. 그래서 청소년이 읽기 좋으면서 산뜻하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책을 골라 보았습니다. 표지의 삽화도 따뜻하고 정세랑 작가님만의 독특한 소재,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가 기대되었답니다.
이십 대 내내 가장 힘들게 배운 것은 불안을 숨기는 법이었다고 말이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에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삼십 대 초입의 재인은 자주 마음속의 잠금 장치들을 확인했다. 본문 24쪽 중에서
가정 내 맏이인 재인은 부모와 형제의 눈치를 살피고 잘 해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 속에서 지낸 듯 합니다. 이 압박의 긍정적 작용으로 학업 능력이 꽤 괜찮았던 듯 싶어요. 재인의 고백과도 같은 이야기가 왠지 정세랑 작가를 투영한 듯 했습니다.
스무살을 지나 사회라고 하는 곳에 발을 딛게 되는 20대와 30대 초반. 어른의 티를 내려고 무던히 애쓰던 시기였던 듯 싶습니다. 직장 내에서는 신입이기에 업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학교보다는 더 짙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에 또다른 인간관계 방식에 낯설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짐짓 아닌 척, 서툴지 않은 척 했던 듯 싶습니다. 재인의 고백은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이고 오히려 10년 정도 직장생활을 해서 차석 위치에 있을 법한 시기에 겪는 고민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불안을 사방팔방에 던져놓지 않고 숨길 줄 알고 태연하게 사회생활을 해내는 그때가 어른일 것이라는 재인의 생각이 문득 와닿습니다.
R공단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재욱은 드디어 패턴을 깨달았다. 패턴은 재욱의 바깥에 있었다. 설계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잘못 시공되었을 때의 위험이 클수록 시야가 붉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재욱의 눈에 언젠가부터 트러블 감지기가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본문 37쪽 중에서
작가는 세 남매가 차례대로 초능력과 같은 비슷한 능력을 갖게 되고 감지하게 되는 시기를 그려냅니다. 재욱은 도면과 설계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트러블을 눈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 부분을 탄복하며 읽었습니다. 재욱의 능력이 현재 우리 사회에 있다면, 얼마전 붕괴된 아파트 사고, 조직 내 사람들 사이의 이기심에 의한 균열 등 물질적 혹은 정신적 영역의 균열을 찾아 붕괴하지 않도록 막아보고 싶었습니다. 트러블 감지기가 감지되었다는 재욱의 고백은 사회에서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타성에 젖어서 대충 살아갈 것인지, 타성을 깨는 아방가르드한 전위대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게 합니다.
서울의 어두운 곳 없이 환한 밤이 그리울 때는 여전히 있었다. 늦게 퇴근하는 날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를 혼자 걸어야 할 때면 그랬다. 대신 훨씬 깊이 잠들었다. 피곤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서울보다 조도가 낮은 도시에서는 잠의 질이 좋았다. 새벽의 소음도 거의 없었다.
본문 43쪽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고 문명과 최첨단을 자랑하는 곳은 서울일 것입니다. 그곳을 떠나 살 수밖에 없지만 그곳이 좋은 이유에 '조도가 낮은 도시'라고 말합니다. 도시 공간 안에 공백이 많고 도시의 볼륨이 낮으며 눈 앞의 시야는 낮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도시를 그려내는 표현이 정세랑 작가님만의 시선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위한 바이오 재료 연구'가 기획서의 제목이었다.
본문 74쪽 중에서
재인의 초능력은 손톱이었습니다. 손톱이 강해서 손톱깎이로는 잘라낼 수 없고 오히려 기계가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손톱하면 강하지만 손톱을 쥐고 양쪽으로 누르면 둥글게 눌리기도 합니다. 아마 손톱의 성질을 위하여 '웨어러블 디바이스'라는 소재를 사용하신 듯 한데 전형적인 문과생은 작가님의 상상력에 탄복합니다. 시적인 표현이 덜한 것도 아니고 서정적인 표현이 글을 훑고 가는데 이과생이나 주목할만한 소재까지도 자연스럽게 녹아내서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재인이 성공적으로 손톱을 배양하고 나서 한 실험은 방탄 실험에 가까웠다. 사실 재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 방탄 유리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드는 동영상을 돌려 보는 취미가 있었다. 물론 재인에게는 총이 없었으므로 밴딩 테스터와 망치, 송곳이 주였지면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본문 82쪽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과거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그 영역이 방대해져서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한편 자신이 쉽게 접할 수 없고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재인의 방탄 유리 회사 홍보용 영상을 떠올리며 자신과 전혀 다른 영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세상은 넓지만 이런 관심의 영역이 세상을 또한 가깝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영상을 실제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올라갔더니 엄마가 새 양말 열 켤레를 사다놓은 게 있었다. 재인은 양말 건은 넘어가기로 했다.
본문 86쪽 중에서
이 소설은 세 남매와 엄마, 아빠의 관계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재인은 자신이 싫어하는 아빠와 자신이 닮아 있다는 것에 싫은 감정을 표합니다. 또한 아들들을 향한 엄마의 무한 사랑에 모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어릴적 자신에게 좋은 양말이 생겨서 신고 벗어 놓으면 빨래가 되고 나서는 꼭 아들들 양말통에 가져다 놓는 엄마에 대한 불만을 표시합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엄마와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가 이 이야기는 엄마가 새 양말을 사다 놓으면서 화해 분위기를 타게 됩니다. 사회 분위기와 정서가 그랬는지 과거의 엄마들은 성별에 따른 차별, 아들에 대한 집착을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닿을 것 같지 않는 간극이 아직 우리 사회에도 남아 있는데 가족 안에서는 열 켤레의 양말로 그 사이가 메워집니다.
돼지 된다. 살 빼는 것도 돈 드니까 적당히 먹어.
본문 117쪽 중에서
소설의 줄거리는 세 남매가 어느날 각자 자신만의 초능력을 갖게 되고 인지하게 되면서 각기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게 됩니다. 거창한 히어로 소설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가까운 인물 혹은 가깝게 생긴 일 가운데 사람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가족이지만 살짝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을 한발짝 다가서는 노력으로 메꿔가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세 남매 외에 엄마, 굉장히 직설적이고 정없이 이야기하는 엄마의 대사가 참 찰집니다. 살이 찌니 적당히 먹으라는 말을 '돼지 된다, 살빼는 것도 돈 드니까 적당히 먹어'라고 표현합니다. 정세랑 작가님의 유머에 젖어 듭니다.
형편없음은 다른 종류의 형편없음과 언제나 일맥상통하므로 형편없음에 대한 예방주사는 일찍 맞을수록 좋으리라고 재인은 생각하곤 했다.
본문 128쪽 중에서
재인이 구하게 되는 인물은 가장 가까운 친구, 경아입니다. 데이트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재인의 손톱이 무기 역할을 하여 구하게 됩니다. 재인이 가장 싫어하는 가족 인물 중 아빠, 끝까지 이해했다는 표현없이 아빠와는 결별의 과정을 겪습니다. 아마 이에 대한 표현이지 싶습니다. 형편없는데 굳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마무리 짓고 포장하면 결국 불행을 끌어 안는 것 밖에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정세랑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세 남매가 이끌어 내는 세 장소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각 인물의 생각과 대화가 각인되어서 참 오래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인간과 동물의 다정함이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작은 친절과 다정함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올지 아무도 모른다. 작은 친절 혹은 다정함을 베풀었다고 치자. 그럼 나도 기분이 좋고, 도움을 받은 당사자는 곤란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다정함을 베풀 것이다. 그 다정함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우리 사회에 따뜻하게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재인, 재욱, 재훈』은 다정함에 대하여 말하는 소설이다. 작가 특유의 SF적인 요소를 넣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우리에게 작은 초능력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게 될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될 것 같다.
재인, 재욱, 재훈은 보통의 남매들처럼 그다지 친하지 않다. 재욱이 사막의 플랜트 공장으로 출국하기 전 휴가를 보내자는 목적으로 피서를 다녀오는 길이다. 배가 고파 식당에 들어갔다가 미묘하게 형광색이 나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은 뒤로 세 남매에게 조그만 초능력이 생긴다. 대전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재인은 손톱이 계속 자라고, 사막의 플랜트 공장에서 재욱은 온통 붉은 빛이 보이며, 재훈은 엘리베이터를 움직일 수 있다. 어느 날 이들에게 물건이 배달되는데 재인에게는 손톱깎이, 재욱에게는 레이저 포인터. 재훈에게는 정체 모를 열쇠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람을 구하면 되었다. 배달되어 온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을 수 있게 된 재인은 손톱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것을 연구한다. 재인이 구하게 되는 사람은 룸메이트인 경아가 될지 어머니가 될지 잘 모른다. 재욱은 레이저 포인터를 가지고 놀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뛰어나간다. 재훈은 조지아주의 염소농장, 혹은 학교에서 사람을 구하면 되었다.
문제는 무신경 그 자체였다. 사고 이후로 주변의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게속 신경을 쓰는 게 어려워졌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지만 둔해진 게 확실했다. (13페이지)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고 온통 나에게만 시선이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나에게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다채롭고 풍부해질 것이다.
이야기는 아주 짧다. 짧은 소설 속에서 우리는 다정함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 수 있다. 어색한 관계를 뛰어넘어 다정한 관계로 발전한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나타나는 그 감정은 못내 다정하다.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사람도 이제는 마음을 드러내어 결정할 수 있게 돕는다. 사소한 계기와 작은 친절이 필요할 뿐이다.
게다가 어쩌면 구해지는 쪽은 구조자 쪽인지도 몰라. (163페이지)
우리가 누군가를 구하러 나갔을 때 내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를 구하러 나감으로써 우리를 구하는 일인지도. 작은 메시지이지만 정세랑이 건네는 이런 이야기가 좋다. 자꾸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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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은 히어로 소설이다. 치밀하게 엮인 이야기가 시공간에 걸쳐 가지를 뻗으며 다차원 우주의 흥미로운 모습을 생생하게 풀어낸 전우주 대하소설이라고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정세랑 특유의 사소함이 겉면을 살살 핥으며 일상에 둥지를 트는 '평범한 초인'들의 이야기라고 보면 되겠다.
아무리 진지하고 거대한 주제라도 정세랑의 손에만 들어가면 탈탈 털려 빨랫줄에 걸린 무릎 나온 츄리닝이 되는 것 같다. 씹덕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게 모에화 된달까? 물론 근사한 곳에 이 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을 입을까 옷장을 연 순간 거짓말처럼 손이 가는 게 바로 이 츄리닝이다. 입은 것 같지 않게 편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과한 세제 냄새 없는 피부 같은 옷.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강박증 환자라도 정세랑의 소설에서는 안식을 찾을 수 있다. 읽다가 졸아도 상관없고, 두 페이지를 잘 못 넘겨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놓치면 땅을 치고 후회할 대단한 문장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요가로 치면 첫 장부터 끝줄까지 사바사나인데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완독의 추진력을 제공하는 건지, 전 우주를 통틀어도 이런 능력을 가진 건 정세랑 하나뿐일 것이다. 우연히 내가 우주를 구원했고, 그 대가로 신이 내려와 내게 인피니티 스톤 5개가 박힌 파워건틀렛과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래미안 블레스티지 75평 중 하나를 선물로 고르라고 한다면 그냥 정세랑의 능력이나 하나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만큼 이 작가의 능력은 귀하고 신기하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노벨라라는 출판 기획도 정세랑의 능력을 절묘하게 뽐내준다. 양장본 책이 200페이지를 넘기지 않는 건 한때 시대를 주름잡은 열린책의 아멜리 노통 시리즈나 가능했던 기획인데, 전반적으로 긴 글이 장문충으로 폄하되고 진지함이 씹선비로 전락한 현대 사회에서는 훌륭한 셀링 포인트가 된 데다, 이 나른한 오후의 낮잠 같은 소설과 찰떡 케미를 보여준다. 솔직히 편안함도 200페이지가 넘어가면 슬슬 지루함과 함께 졸음이 찾아올 것이다. 그 텐션이 사라지기 전에 <재인, 재욱, 재훈>은 아쉬움까지 남기며 완벽한 이별을 고한다. 질척대는 법 없이 쿨하게. 166페이지 만에 끝. 웹툰처럼 스크롤하듯 읽으면 한 시간 컷도 가능할 듯. 고작 그 정도를 투자해 대한민국 성인 1년 독서량의 반을 채울 수 있다면 뿌듯함까지 챙겨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진정 시대를 읽을 줄 아는 기민한 사람들이다.
정세랑의 소설은 워낙에 많아 작품별로 편차가 좀 있는데 이 책은 10점 척도로 7~8 사이를 오간다. 지금까지 나온 단행본이 한 11권 정도고 나는 그중 5권을 읽었다. 참고로 <보건교사 안은영>이 9였고 <목소리를 드릴게요>가 7, <덧니가 보고 싶어>가 3, <지구에서 한아뿐>이 4다. 워낙에 달달한 건 좋아하지 않아 마지막 두 권에 유독 낮은 점수를 매겼으니 그 점은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