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직 많이 어리군요. 세계 전체가, 아주 다양한 세계들이 당신에게는 닫혀 있어요. 아름다움의 세계는 더더욱 그렇고요. 이 아름다움의 세계는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랑해야 할 것이에요. 모든 교양의 바탕이니까요.”
--- p.28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 웃을 줄도 찡그릴 줄도 아는 인간, 사랑하고 입맞추고 증오할 수 있는 인간, 혈관에 흐르는 피가 살갗에 비쳐 보이는 인간, 벗은 몸의 자연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깃든 인간 대신에 수공업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영혼 없는 인형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입니다.
--- p.29
“이미 당신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이 될 씨앗이 있어요.”
--- p.29
“사람들은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이 신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유롭고 용감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날개가 돋아났습니다.”
--- p.39~40
시트루프의 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오가는 갑론을박, 포도주와 가벼운 대화를 곁들인 남자들만의 느지막한 저녁식사, 천장까지 가득한 책들에 둘러싸여 말로와 스윈번을 탐독하는 서재, 온갖 화장품들이 그득하고 선명한 녹색을 배경으로 암적색의 목신들이 화환 모양으로 춤을 추는 침실, 붉은 구리 식기들이 즐비한 식당, 이탈리아, 이집트, 인도에 대한 이야기들,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대한 열광, 이 섬 저 섬을 넘나드는 산책,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어쩐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논증들, 볼품없는 얼굴에 깃드는 미소, 퇴폐적인 기운을 내뿜는 ‘포 데스파뉴’?의 향기, 야위었지만 반지를 여럿 낀 힘센 손가락들, 비범하게 두꺼운 밑창을 댄 단화들.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몽롱하게 도취되어 그는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 p.54-55
사랑은 사랑 그것 말고는 목적을 갖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떤 궁극적 목적도, 선도 악도 없다.
--- p.56
기적은 바로 우리 주변에, 발걸음 떼는 곳마다 널려 있다. 전율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인간 몸의 근육과 관절들.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남성의 눈을 즐겁게 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에만 연결 짓는 자들은 오직 저열한 정욕만 드러낼 뿐, 진실한 아름다움이라는 관념으로부터 더욱 멀어져간다.
--- p.57
“바냐, 한번 생각해봐요, 완전 낯선 사람이, 그러니까 다리도 살갗도 눈도 아주 다른 낯선 사람이 온전히 당신만의 것이어서, 그 자체로 당신의 것이어서 언제든 그를 바라보고 입맞추고 만질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요. 그의 몸 은밀한 곳 반점까지 하나하나, 팔에 난 금빛 터럭 하나까지도,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살갗의 볼록 튀어나온 곳, 움푹 들어간 곳까지도 말이죠. 그럼 당신은 그가 어떤 모습으로 걷는지, 먹는지, 자는지, 또 그가 미소 지을 때 얼굴에 어떻게 주름이 잡히는지, 또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의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다 알게 되는 거예요. 그때 당신은 더는 당신 자신이 아닌 게 되죠, 당신이 그와 하나가 된 것처럼요.
--- p.79
“사랑이 건드리는 손길을 느끼면 얼마나 두려운지요. 기쁘기도 하지만 정말 두려워요. 날아가는 것 같다가도 꿈속인 듯 끝없이 추락하고 죽어가는 것 같죠. 그럴 때면 어딜 가든 당신을 관통한 무언가가, 사랑스러운 얼굴에 있는 그 하나만 보이는 거예요. 눈이랄지, 머리칼이랄지 아니면 걸음걸이랄지.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죠. 사실 그건 하나의 얼굴일 뿐인데, 그 얼굴에 대체 뭐가 있기에 그런 걸까요? 얼굴 한가운데 있는 코, 입, 두 눈. 그 얼굴에 있는 무엇이 그토록 흥분케 하고 사로잡는 걸까요? 사실 꽃이나 비단처럼 감탄하면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들은 많잖아요. 그런데 그 얼굴은 아름답지 않아도 온 영혼을 뒤흔들어놓고, 모든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내게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거죠. 왜 그런 걸까요?
--- p.81
보통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죠. 그런데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경우도 있어요. 진짜예요, 내가 성자전에서 읽었어요. 성녀 에우제니아, 니폰트, 보롭스크의 파프누티도. 그랬고, 차르 이반 바실리예비치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테죠, 신께서 이 껄끄러운 가시를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으실 리 없다고 믿는 건. 하지만 바냐, 신께서 마음에 집어넣으신 것을 거스르기란 정말 힘든 일일 뿐 아니라 죄일 수도 있답니다.”
--- p.81
육신도 죄고, 꽃이랑 아름다움도 죄고, 몸을 씻는 것도 죄라고 말하는데 그건 다 틀린 말이에요. 모두 죄라면 주님께서 그것들을 만드셨을 리 있을까요? 진짜 죄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거죠. 뭔가에 마음이 가도록 운명이 지어졌는데, 열망이 느껴지는데 그 마음을 허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예요!
--- p.99-100
우리도 때를 놓치지 않고 많은 것들을 실컷 보고 실컷 사랑하고 실컷 숨쉬어야 해요! 우리의 삶이 과연 길까요? 젊음은 더욱 짧고 지나간 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그 사실을 언제나 잘 기억해두어야 해요. 그러면 막 눈을 뜬 아이처럼, 혹은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처럼 삶이 두 배는 더 달콤해질 거예요.”
--- p.100
“자네에게는 정신의 가장 높은 도약을 알아봐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네. 자네는 그에게서 언제든 공감과 사랑을 얻을 수 있어.”
--- p.120
선량한 의사이자 스승인 내가 자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려주겠네. 바로 삶이야. 시트루프는 자네를 위한 바로 그 삶을 구현하고 있네. 이게 전부일세.”
--- p.121
온갖 예술 작품들, 페이디아스, 모차르트, 셰익스피어도 죽고 사라지지. 하지만 작품에 담긴 이상理想, 아름다움의 전형은 사멸하지 않는다네. 아마 이것이야말로 변화무쌍 하게 흘러가는 다채로운 삶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겠지.
--- p.136
날개가 있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연인들, 용감하고 자유롭게 사랑하는 사람들이죠.”
--- p.149
그는 꽃이 꽂혀 있는 유리잔이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아 천천히 적었다. ‘떠나세요.’ 조금 더 생각을 하고는 똑같은, 그러나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갑니다.’ 그리고 거리로 난 창문을 열었고, 거리는 밝은 햇살에 잠겨 있었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