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의 의사 가운은 첫눈처럼 하얬다. 그 안에 입은 흰 와이셔츠는 눈이 부셨고, 검정 구두 끝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올이 풀린 녹색 수술복 위에 소매와 목 부분이 누렇다 못해 검게 변한 가운을 입고 있었다. 신발은 구두 대신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맨발에 뒤가 닳은 크O스 슬리퍼였다.
--- p.6,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에는 〈하얀 거탑〉의 김영민, 〈뉴하트〉의 조재현부터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나오는 정경호나 유연석 같은 의사는 없다. 대신 그런 의학 드라마를 보는 리얼 의사가 있다.
이 책에는 김영민이나 조재현, 정경호나 유연석 같은 의사는 없다. 대신 그런 의학 드라마를 보는 리얼 의사가 있다.
아기는 쉽고도 어려웠다. 금세 나빠졌다, 금방 좋아졌다. 엄마 품에 안긴 채, 칭얼대며 입원해서는 며칠 후면 생글거리며 퇴원했다. 아이들은 말을 못 하는 대신, 몸으로 표현했다……그 어린것은 온몸으로 울고, 온몸으로 웃었다.
--- 「그 아이들은 자주 아팠다」 중에서
"축하드려요. 딸이 어머니를 닮으면 예쁘겠네요."
그러자 할머니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식이 에미를 닮으면 안 되는데........"
--- 「엄마를 닮으면 안되는 아이」 중에서
신이 있어 인간이 있는 걸까, 인간이 있어 신이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고난이 있는 걸까? 신과 인간, 고난에 대한 생각은 돌고 돌아 나에게 왔다. 저렇게 환자가 고통 속에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녕 이게 전부인가. --- p.205, 하나님을 찾는 응급실」 중에서」 중에서
뒤늦게 가족의 사망 소식을 듣고 두려움과 슬픔에 잠긴 보호자가 왔을 때, 의사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죽은 환자를 살릴 수는 없었으니 살아있는 가족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라도 덜어줘야 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을, 세상을 떠난 자보다 이 땅에 남은 사람을, 기억될 사람보다 기억할 사람을 위해서였다.
--- p.286, 보호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중에서
아이가 콧물과 눈물을 쏟아내고, 나는 땀에 젖어갈 때,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작은 관이 아이 코와 입안과 식도를 후벼 대는 동시에 아이 엄마의 가슴을 파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흘렸지만, 엄마에게는 그 눈물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 「한 시간 전에 응급실에 왔던 아이가 다시 왔다」 중에서
“심지어는 응급실에서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바지 내리고 오줌까지 샀어.”
술은 환자가 마셨는데, 숙취는 나에게 온다.
---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 중에서
신생아 중환자실은 1년에 병상 하나당 1억에 가까운 적자가 난다……..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이 텅 비어버린 이대 목동 병원은 오히려 적자가 줄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들린다.
--- 「소아과의 죽음, 그리고 10년후」 중에서
그는 추석에 이어, 설에 또다시 응급실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명절을 쇠었다. 아니다. 그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와 같이 응급실에서 추석에 이어 설을 맞이했다.
--- 「응급실에서 명절을 쇠는 사람」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항상 ‘나’였다.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 중에서
---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하고, 죽어도 혼자 죽는 게 아니었다」 중에서
"환자가 죽고 싶다고 하면, 의사인 우리는 그 환자를 살려야 하나?”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물음이었다
_'살고 싶은 건 생명체의 본질이야' 일ㅂ
나는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볼 때마다 환자 목소리가 들린다. "죽고 싶어요."가 아니라, “제발 도와주세요. 살고 싶어요.”라는.
--- 「왜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중에서
청춘과 연애가 아니라 유급과 과외로 점철된 6년의 의대생 시절이 끝이 났다. 의대가 아니라, 의사가 된다면 그제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의사만 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것이다.
--- 「의대만 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중에서
의대에 가면, 의사가 되면,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면, 작가가 되면, 결혼을 하면, 전문의가 되면, 돈을 많이 벌면, 고생이 끝날 줄 알았다.
--- 「의사만 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중에서
“야,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연애도 잘하는데, 우린 왜 이렇노?” “어떻게 저렇게 매일 머리를 감지?” “오빠, 티브이에 나오는 남자 의사들은 어떻게 저렇게 키 크고 잘 생겼노?” “야, 저기 나오는 여의사랑 간호사들은 어떻고?”
--- 「의사를 망치는 의학 드라마」 중에서
내과 수련을 받으면서, 아무것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일할 때가 많아 라떼를 마신다. 핫? 꿈도 못 꾼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 얼죽아다. 가슴속에서 뭔가 타들어 간다. 갑갑하다. 오늘도 아침 겸 점심은 결국 라떼다. 그것도 항상 그렇듯 아이스로.
--- 「아이스라떼 내과 전공의의 필수품」 중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나 통증으로 오는 환자나 보호자는 물론이고, 의사에게도 응급실은 몸과 마음, 모두 힘든 곳이다.
--- 「골든 타임을 놓치다」 중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인데, 의사인 나의 부주의로 쓸데없는 전투를 거창하게 치르고 말았다. 한라봉은 달콤했지만, 내 입에는 쓰기만 했다 의사나 간호사도 환자에게 멱살도 잡히고 바늘에 찔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뭐 그러려니 한다. 경험은 상상보다 강하다. 계속 닥치면 결국 무뎌진다.
--- 「직장이 병원이라 슬플 때」 중에서
"선생님, 더 싸게 해 주시면 제가 여기 계속 다닐게요. 그럼 선생님도 좋고 저도 좋잖아요?" '자, 연습해 보자.'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 「나는 하수였다」 중에서
“혹시 (전립선) 수술 후에 발기가 잘 안되거나 역행성 사정 같은 부작용 있으신가요?” “아, 예, 그게 제가 스님이어서......”
--- 「그분을 찾게 만드는 비뇨기과 체험기」 중에서
코로나로 가장 슬픈 이는 마스크를 벗고서 만날 이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오아시스 없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혼자 사는.
--- 「마스크로 알 수 있는 인간관계」 중에서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왜 저보고 잘생기셨어요, 영화배우 하라고 그러세요?" 전문의 과정까지 마친 의사였던 그는 환자가 되어 정신병원에서 가끔 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전부였다.
--- 「선생님 정말 잘생시겼어요. 영화배우 하세요」 중에서
“내가 이렇게 팔이 부러져서 입원을 하고 있으니, 집안 구석이 어떻게 돌아갈지 너무 걱정이 되는 거야. 청소는 하는지, 세탁기는 돌릴 줄 아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근데 나 없어도 집이 너무 잘 굴러가는 거야. 애들이 알아서 청소하고, 밥 먹고 다니고, 빨래도 하고. 그래서 조금 섭섭하더라.”
--- 「당신이 아파도 세상을 잘 돌아간다」 중에서
“제가 몇 년 동안 진료받으면서 우울하냐고 물어보신 분이 선생님이 처음이셨어요. 엉엉엉................
--- 「불면증이었지만, 잠이 문제가 아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