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7년 07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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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366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46284 |
ISBN10 | 895464628X |
발행일 | 2017년 07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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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366g | 145*210*20mm |
ISBN13 | 9788954646284 |
ISBN10 | 895464628X |
프롤로그: 죽음의 순간, 그 경계를 긋는 일 지독한 하루 기내 난동 사건을 마주하며 악마를 만나다 라포를 형성한다는 것 인턴 첫날의 일기 하나뿐인 신장 산 채로 불탄 일곱 명의 사내 그들이 사는 세상 질풍노도를 건너는 법 거기 119죠? 지진의 응답자들 ‘밭갈이’를 아시나요? 영민한 외과 인턴의 일 왜 하필 그곳은 양양이었을까 소방본부의 의사 죽음은 평등한가요? ‘매끄러운 뇌’를 가진 열한 살 아이 땡볕에 갇힌 아이 1미터의 경계 조각난 몸 중증외상센터의 현실 외로움 일기 만약은 없다 마지막 성탄절 에필로그: 정우철을 기억하며 |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응급실에는 온열환자들이 밀려든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을 진료하느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의사와 간호사로 생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는 과로 꼽히는 응급의학과에서 10년 남짓 근무한 의사의 하루를 담은 책 <<지독한 하루>>를 읽으며 참혹한 일이 벌어지는 지옥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소명이 연상된다. 갖은 학대로 뇌출혈이 일어난 딸아이의 뇌 손상 부위를 치료하면서 의사가 던진 한마디는 사람으로서 못할 짓을 서슴지 않는 이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환자에게 손대는 일조차 두려웠던 수련의가 하루에도 100여 명을 진료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번잡함 속에 진료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지낸다. 생명의 끈이 끊어져가는 이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을 새롭게 하며 의료기술을 동원해 죽음을 삶으로 치환하는 일에 인술을 더한다. 저자는 여유가 생기면 과학적인 접근으로 응급실 상황을 차분히 정리하며 보호자가 알아야 할 점을 천천히 설명하였다.
전신 화상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쉬고 있는 타과 인턴들까지 소집하는 방송으로 삶과 죽음의 길목에 선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신경을 모으는 긴박한 응급실 풍경이 떠오른다. 입 안이 익을 정도로 심각한 화상으로 치료받던 이가 내뱉은 외마디,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극한의 고통의 임계점에서 감내하기 힘든 통증 앞에 스러져 간 이들은 주검으로 장례식장으로 향하였다. 사소한 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경추가 접혀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리며 쓴 글과 지극한 정성으로 아들을 간병한 아버지의 글은 끈끈한 정을 담고 마음으로 흐른다.
유대하며 함께 했던 시간이 많았던 이의 죽음은 상실의 고통을 더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함께 수련한 외과의가 서른둘에 위암 말기 선고를 받고 산속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일을 끝에 실어 그의 삶을 애도했다. 기적 같은 일을 바라며 새로운 희망을 놓지 않았던 이의 투병은 처연함을 더한다.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 면역력이 떨어진 이들에게 붙을 수 있는 질병으로 응급실을 찾는 이들을 위한 치료는 지금도 계속된다.
각기 다른 사연을 담고 있는 이들의 정확한 치료를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일은 치료에 필수적이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폭행을 받아들이며 항변조차 못하는 소반대원들, 응급실 의사들의 모습을 담은 보도를 접할 때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뭔지 회의하게 된다. 경찰병원과 국군병원과는 달이 소방관들의 안전을 관리하는 전담병원이 없다는 현실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고스란히 방증하는 셈이다. 고통 받는 약자에게 소방 조직의 힘이 충분히 닿게 할 필요가 있음을 밝히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며 오늘도 고통 받는 약자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실천적인 노력에 숭고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님은 2018년 6월 13일 03시 25분에 사망하셨습니다.”
당직 의사는 자신의 뒷머리가 아무렇게나 뻗쳐있는 걸 모르는 눈치다. 아마도 자다가 호출 받고 급히 달려왔겠지. 아직 앳돼 보이는 당직 의사는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미안한 얼굴로 우리 엄마의 죽음을 선고했다.
“죽음의 순간, 그 경계를 긋는 일”. 그것이 의사의 일이라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은 말한다.
죽음에 대한 판단은 심장이 멈춘 사람의 종합적인 상태를 고려해, 현재 할 수 있는 처치와 노력을 감안했음에도(중략) 이 사람이 절대로 돌아올 수 없으리라 확신할 때 내릴 수 있다. 반드시 가능성이 0퍼센트여야 한다. 그렇게 모든 미련을 떨치고 확신이 들면, 의사는 모든 노력을 멈추고 사망선고를 한다.(9쪽)
그날 우리 엄마의 죽음도 의사의 선고로 공식화되었다. 모든 사망 관련 서류의 시작점이었다.
30대 중반부터 죽음에 대한 화두에 시달렸으나 ‘누가 죽음을 선고하는가’에 대한 질문까지는 닿지 않았던가 보다. 그날의 선고는 낯설었다. 죽음과 관련한 나만의 시뮬레이션에는 없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법적으로 의사의 선고가 있어야 죽음이 인정되는 것.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데 나는 몰랐던 것처럼 낯설기만 했다. 생명의 끝은 과학적 판단에 의거한 의사의 입에 에 달려있었다.
남궁인의 두 번째 의학에세이 『지독한 하루』에서 죽음에 대해 한발 더 다가섰다. 남궁인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이다.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사고나 질병의 막다른 곳이다. 그곳에서 삶과 죽음의 면면들을 생으로 대면한다. 응급실로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급한 환자들이다. 당장의 치료를 요하는 환자들이 밀려든다. 그런 상황인 만큼 나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상태의 환자들을 책 속에서 대면한다.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본다 한들 현실만큼 처참할까 싶을 환자의 사연들이다. 폭발 사고로 인해 전신이 불타버린 노동자들, 5층에서 떨어진 남매의 산산이 부서진 몸, 뼈의 강도가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불완전 골형성증 여자 아이, 매끄러운 두뇌를 지니고 태어나 오직 할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으로 보살핌으로 평균 수명보다 훨씬 길게 살고 있는 11살 설희까지, 이건 현장에서 의학을 실행하고 있는 현직 의사들도 보기 드문 환자들이다. 의사 본인도 책에서만 만나던 환자들의 처참한 현실에 놀라움을 감춘 채 시급히 치료를 감행했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흥미적 소재로 재미를 주려한 것만은 아니다. 응급실의 현실에 대한 묘사는 의료진의 노력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의료진을 향해 행사한 폭력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것과 다름 아닌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것이 놀랍다. 이를 넘어 소방관의 노고와 처우에 대한 이야기도 넣었고 의과 대학생들의 흉부외과나 응급의학과 전공을 선택이 적어 전국의 중증외상센터의 부족을 불러왔고 이에 파생된 여러 문제점도 지적했다. 문제 인식은 누군가 문제 제기해야 관심을 불러오고 해결을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이국종 교수가 재조명되면서 그나마 중증외상센터에 관한 문제점을 들어보게 된 것도 어찌보면 기적이다. 내가 겪지 않는 이상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어쨌든, 응급실은 죽음의 문턱에 직면하여 달려온 환자들로 득실댄다. 성형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응급환자는 분초를 따지는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기에 의료진의 더욱 빠른 판단과 처치가 필요한 치열한 공간이다. 그런 곳에서 일하다보면 죽음에 무덤덤해지고 회피하고 싶은 순간도 쌓여갈 것이다. 글쓰는 의사 남궁인은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 만약은 없다고.
“만약은 없을 수 있게, 도저히 생각조차 나지 않아 내가 내뱉은 말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일이다.”(234쪽).
우리가 만난 병원의 의사들은 냉정하고 기계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특히 대형 병원 의사는 바빠서 그런지, 너무 많은 환자들을 만나서 그런지, 정도가 훨씬 심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들도 생사를 다투는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버텨내려면 어쩔 수 없을 것도 같다. 그런 상황에서 남궁인의 소명 잔뜩 묻은 스스로의 다짐 같은 저 말은 환자 또는 보호자 입장에선 고맙고 반갑다. 저렇게 생각하는 의사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죽음에 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그래서 많은 문장들이 내게 닿는다. 자꾸만 여기에 옮겨 놓는 이유다.
인간사에서 가장 극적인 죽음을 한낱 물리법칙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죽음은 그 횡포하고 잔인한 이미지와 놀라운 급작성, 현존 여부와 직결되는 슬픈 성질 때문에 유사 이래 계속 극화되고 신격화되어 왔습니다. 죽음은 처음부터 도저히 평등하다고 언급될 수 없는 성질을 가졌습니다.(156쪽)
요조님의 감상문, 엄지 척!이다.
어두운 밤 불을 밝히고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어떨까. 길을 떠난 사람이 갈 곳이 없어 잠시 쉬어 갈 곳을 찾다 불 켜진 곳을 보면 마음이 따듯할 것 같다. 그게 편의점 불빛이라 해도 말이다. 누군가 찾아와 쉬었다 가기를 바라고 불을 밝힌 곳도 있지만, 밤에 갑자기 아파서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곳도 있다. 그곳은 바로 응급실이다. 응급실에서는 밤에 사람이 적게 오는 걸 더 반길 것 같다. 늦은 밤에도 불을 밝혔다 해서 그곳이 다 사람을 반기는 곳은 아니다. 아니 응급실이 있어서 아픈 사람은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없으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병원에 가야 할 테니. 몸이 아주 안 좋은 사람은 날이 새기도 전에 세상을 떠날 거다. 응급실에 간다고 해서 모두 사는 건 아니다. 응급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보고 먼저 목숨을 이은 다음 검사를 한 다음 전문의사를 부른다.
사람이 벼락을 맞는 일은 아주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언젠가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고도 살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쩌면 그건 벼락이 아니고 전기가 몸을 뚫고 나간 건지도(그것도 살아나기 힘든 일이구나). 일어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건 그 사람이 잘못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날씨가 안 좋은 날 바깥에 있어서 그런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산꼭대기에서 벼락 맞은 사람을 소방대원이 데리고 왔다.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아 헬기는 뜨지 못하고 소방대원 세 사람이 산꼭대기에서 벼락 맞은 사람을 데리고 내려왔다. 그냥 온 것도 아니고 산을 내려오면서 죽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아도 소방대원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까. 심장이 멈췄지만 심폐소생술을 하면 살지도 모른다고 여긴 걸까. 병원에 가니 의사가 보고는 벼락 맞은 사람은 죽었다고 했다. 소방대원 세 사람은 멍 하고 힘이 빠졌겠다. 옮기는 게 힘들었다 해도 그 사람이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어릴 때는 소방대원이 불만 끈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소방대원은 사람을 구하는 일까지 하게 됐을까.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다. 지금 소방대원은 불끄는 일보다 사람 구하는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한다. 소방서에 장난전화 하는 사람 정말 많을까. 그런 건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집에 벌이 한마리 들어왔다고 전화를 하고, 강아지가 아프다고 응급차를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단다. 어디선가는 응급차를 택시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했는데, 한국에도 그런 사람 있구나. 지금 아주 급한 것도 아닌데 지방에서 서울 병원에 가야겠다면서 응급차를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잘 모르고 한 일이다 여기고 그냥 웃어야 할까. 그러면 안 되겠지. 지금은 소방대원도 그리 많지 않을 거다. 일하다 죽을 수도 있고 사람을 구해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단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서 그 일을 하다 무척 힘들다는 걸 알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장난이나 별거 아닌 일로 119에 전화하지 않으면 좋겠다.
응급실 풍경을 실제 본 적은 없다. 본 적은 없지만 그곳이 싸움터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상상이 간다. 다쳐서 왔다가 나중에 나아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병원에 가고도 죽는 사람도 있다. 사고가 나도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기도 하다. 그건 뭐라 해야 할까, 운이 좋고 나쁘다 해야 할까. 응급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면 마음이 조금 뿌듯하지 않을까.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있겠지. 칼에 찔린 조직폭력배 같은 사람과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는 배를 그냥 꿰매달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칼에 찔린 사람은 다른 데서 피가 엄청나게 나왔다. 남궁인이 치료를 하려고 하자 다른 사람이 그걸 방해하고 때리기도 했다. 그런 거 보니 의사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는 술을 마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이런저런 욕도 많이 듣겠지. 응급실 의사도 가끔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쩐지 한국에서는 스스로 이겨내라고 할 것 같다.
지난번에 나온 《만약은 없다》를 볼 때도 죽은 사람을 여럿 보았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 있으면 세상에는 아픈 사람만 있는 것 같다. 세상에 나온 지 두달밖에 되지 않은 아기를 때린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자기 아이가 아니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한테 그럴 수 있는지 그 아기는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응급실에 가서 제대로 치료받는 사람도 있지만, 의사가 제대로 못 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의사는 신이 아니다 생각해야 할까, 의사가 얼마 없을 때 아픈 사람이 밀려와서 일어난 일이다 여겨야 할까. 남궁인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여기에 적었다. 책으로 보고 여러 가지 병을 아는 것과 실제 보는 건 다를 거다. 의사가 조금 더 마음을 써서 아픈 사람을 봤으면 좋겠다. 언젠가 의사는 아픈 사람 얼굴이 아닌 아픈 곳만 본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의사가 아픈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을 봤으면 한다.
지금은 응급의학과 의사뿐 아니라 외과의사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힘들어서 그렇겠지. 의사라는 일을 자부심을 가지고 하면 좋을 텐데, 그것보다 돈을 더 벌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 그렇게 많지 않겠지. 뜻을 가지고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 많다고 믿고 싶다. 아픈 사람이 마음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의사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