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년 전이었다. 만 41세 생일을 앞둔 하루 전날, 쉴 틈 없이 달려오던 내 인생을 180도 우회하게 만든, 지금까지도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몸살과 같은 근육통과 오한을 앓은 이후 나는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몇 달 만에 증상이 급속히 악화되더니, 결국 잠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일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늘 에너지 넘치고 활동적이었던 나의 삶은 마치 햇살에 안개가 걷히듯 한순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현저히 달라진 내 삶에 적응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그제야 나는, 안개가 걷히고 나서 보이는 것들이 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하고 또 더욱 가치 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 p.14 「프롤로그」 중에서
17년간 의사 생활을 해오며 나는 스스로 환자들의 고충을 나름대로 잘 이해하는 의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환자들에게 ‘실신전증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도 나는 이것이 그저 좀 어지럽고 힘든, 실신하기 전 상황을 가리키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직접 온몸의 근육이 다 풀리고 심지어 대변까지도 가리지 못하는, 소위 ‘정신줄을 놓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고 느낄 만큼 괴로운 증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 p.60 「확진으로 가는 여정」 중에서
나는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나머지 반도 채워지려니 믿는다. 특히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맞닥뜨릴 때 이러한 마음가짐은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런 생각을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그만 역경에도 비관적으로 절망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레지던트 과정에 낙방했을 때, 인턴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 언어 장벽으로 바보 취급을 당했을 때 풀이 죽거나 또 실패할까 봐 걱정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으니 내일은 더 나아지리란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나는 더 강하고 단단해질 수 있었다.
--- p.89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 중에서
20년 가까이 의사로 일해오면서 죽음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삶의 연장선 중 한 부분이기도 하고, 혹은 삶의 일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즉, 죽음을 무조건 피하거나 최대한 미루어야 할 절대 악으로 보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더라도 잘 받아들여야 할 내 삶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동시에, 또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지도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 p.147 「병과 죽음 역시 삶의 일부라는 것」 중에서
마치 내버려진 것처럼 자랐지만 역설적이게도 도리어 이런 환경이 나의 생각과 직감을 신뢰하고, 주어진 것이 부족하더라도 잘 활용하며, 문제가 생기면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때로는 가르침의 손길이 덜할 때 오히려 아이들은 더 크게 배우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원망스럽지 않고 오히려 마냥 고맙기만 하다.
--- p.173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유산」 중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영어도 잘 못하고 돈도 별로 없는데, 무엇보다도 미국 의사 면허증을 따서 어디에 쓸지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도 없는데 무작정 미국에 가보겠다는 이 생각은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전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여러모로 현실적인 걱정과 걸림돌도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무도 나를 말리지 못했다. ‘그래, 하고 싶은데 그냥 한번 뛰어들어 보자. 죽기야 하겠나!’
당시 그렇게 무모하게만 보였던 나의 결정이 내 삶의 방향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켰는지 되돌아보면 소름이 끼칠 만큼 놀랍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들과 어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인생을 산다고 해도 그때와 똑같이 무모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두려움을 안고 일단 점프’해보면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경우의 수가 펼쳐지기도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p.187 「두려움을 안고 점프」 중에서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직감을 따라 가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너무 이상적인,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현실이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면 이런 나의 이야기를 꼭 들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현실이 공허하고 힘들다면, 괴롭고 행복하지 않고 우울감에 빠질 지경이라면, 한 번쯤은 현실이 아닌 것을 꿈꾸어도 보고, 또 그 꿈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삶에 변화를 줘보는 것은 어떨까?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지 않은 길일지라도 내가 가고 싶으면 가보고, 또 안 될 것 같다고 미리부터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불가능한 꿈에 도전해보고, 그 꿈의 방향으로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떨까? 꿈은 어차피 꾸는 사람 마음이니까 말이다.
--- p.265 「진심으로 삶에 임한다는 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