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부모 돌봄이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부모의 상태가 어떻든 돌봄이 얼마나 힘든지를 재는 객관적인 척도가 없고 다른 부모의 돌봄과 비교할 수 없으니 힘들지 않은 돌봄은 없다고 누구나 사양 말고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힘들지 않은 돌봄은 없다. 부모 돌봄에 있어 가족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모를 돌보는 현실 속에서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처하면 부모와 쓸데없는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부모의 간병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부모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설령 매일 같은 일이 일어나도 돌봄에 대한 부담이 가벼워진다.
--- p.35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괴로운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버지는 오십대 중반이었다. 아내 없이 살아야 할 남은 시간이 절망스럽고 더 길게 느낀 탓인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전쟁 중 일어난 일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죽음이 전쟁보다 더 괴로웠던 것 같다.
--- p.59
하지만 과연 잊어버린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버지에게 행복한 일인지는 당장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오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꿈속에서) 누가 ‘부인인가요’라고 묻기에 슬쩍 얼굴을 봤는데 글쎄 잘 모르겠더구나.”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하다니 참 씁쓸한 일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기억해내고 싶다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잊어버린 건 어쩔 수가 없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과거는 다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구나.”
--- p.72
과거의 기억이 지워지고 간혹 딴사람이 된 듯 보여도 아버지는 나에게 영원히 ‘아버지’라는 이름을 갖는다. 아버지의 뇌가 어떠하든 아버지는 남은 생을 살아낼 테고, 나도 아버지와 남은 시간을 함께 살아갈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부모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부모는 여전히 부모다.
--- p.108
여름이 되면 무궁화는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운다. 꽃이 활짝 피면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무궁화가 피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아침식사 후에 잠이 들어 낮에 일어났을 때다. “아버지, 오늘도 무궁화가 피었네요!” 그러
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어제 핀 거야.”
아버지는 꿈속에서 시간이 빨리 지나간 모양이다. 오늘 핀 무궁화가 어제 핀 꽃이 되었으니 한 잠을 자고 나면 하루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기다리던 무궁화가 언젠가는 계절이 되어도 좀처럼 꽃봉오리를 틔우지 않아서 애를 태운 적이 있었다. 여름에 접어들고 더위가 찾아오자 꽃봉오리가 날로 자라기에 꽃이 피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날마다 무궁화를 물을 주고 돌봤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도 꽃봉오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이제 무궁화가 시들고 만 것일까.
서글픈 마음에 매일 물을 주며 무궁화를 보살피던 어느 날, 드디어 꽃봉오리 하나가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감격해 마지 않았다. 시들어가는 줄만 알아서 서글펐던 무궁화는 그렇게 그해 첫 꽃을 활짝 피웠다.
‘그래, 오늘 핀 꽃이 시들어도 내일이 오면 변함없이 꽃에 물을 주자. 꽃이 피어나서 돌보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설령 꽃을 피우지 못하는 날에도 돌보기를 멈추지 말자. 꽃은 결코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니까.’
문득 아버지에 대한 내 마음도 한동안 꽃을 피우지 못한 무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사로부터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꽃이 늦는다고 해서 이제 시들 때가 되었다며 물을 주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 아버지도 시들어가는 꽃처럼 나이가 들었지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런 아버지의 손을 놓을 수 없었다.
--- p.110~111
나는 아버지가 테이블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거나 신문을 읽을 때면 그 옆에서 일을 하곤 했다. 아버지가 잠이 들면 그저 가만히 있을 뿐 더욱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에게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하루 종일 주무시니 제가 오지 않아도 되겠어요.”
“아니야, 네가 있으니까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거야.”
누군가 곁에 머무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크나큰 위안을 얻는다.
--- p.123
방에서 잠을 자던 아버지는 책 읽는 소리에 사람들의 기척을 느끼고 이따금씩 바깥 상황을 살피러 나왔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집 안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인사를 했다.
“아이고, 안녕하쇼?”
방에 들어가 한잠을 자고 나오면 아버지는 같은 광경에 또다시 놀라며 말했다.
“아, 다들 안녕하쇼?”
독서 모임에 온 사람들은 아버지를 봐도 크게 놀라지 않고 도리어 아버지를 받아주어 무척 기뻤다. 나는 평소 아버지와 단둘이 있으면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괜시리 마음이 놓였다. 아이가 울 때 혼자서는 차분해지기 어렵지만 둘이라면 우는 아이를 받아줄 여유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아버지와 둘이서 있을 때에도 차분하게, 사소한 일에 일일이 동요하지 않고 아버지를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밥을 먹은 것을 잊어버려도, 사람들한테 몇 번이나 인사를 한다고 해서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 모두, 안녕하쇼!
--- p.134~135
나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랬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어머니 곁을 지켰다.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어느 날,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내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그런데 그 무심한 생각을 하고 얼마 뒤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일로 한동안 나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스스로를 원망하지 않았어도 될걸 그랬다. 부모에게서 잠시 벗어나 있고 싶었다고 해서 부모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나진 않는다. 이러다가 내가 지칠 것 같다는 생각, 커피 한 잔 잠시 여유롭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특별한 사건을 일으킬 리 없다. 두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돌보는 동안에는 헤어짐이라는 예정된 사건 앞에서 자신을 탓하고야 마는 것이다.
--- p.141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돌봄과 간병이 필요한 부모는 실제로 타자에게 공헌하기가 어렵다. 젊은 시절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젊은 사람이라도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더 이상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된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혀 살아갈 용기를 쉬이 잃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가족의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물론 가족의 존재 자체에 대해 고맙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부모여서, 나의 자식이어서, 내 곁에 있어줘서, 열심히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 p.223
언젠가 아버지는 인생의 남은 시간에 대해 나지막이 내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짧을 것 같구나.”
살아갈 날이 더 짧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늘상 앞만 바라보며 전진하는, 시간이 없다고 초조해하는 나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나는 아버지의 돌봄을 받으며 갓난아이에서 어린아이로, 사춘기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어느덧 중년의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그런 내가 노인이 된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아버지로부터, 부모로부터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