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이시우 〈아래쪽〉 7
김동식 〈복층 집〉 42p 허정 〈분실〉 81 전건우 〈Not Alone〉 115 조예은 〈보증금 돌려받기〉 159 남유하 〈화면 공포증〉 191 작가의 말 223 프로듀서의 말 243 |
저이시우
관심작가 알림신청저김동식
관심작가 알림신청김동식의 다른 상품
저허정
관심작가 알림신청Huh Jung
저전건우
관심작가 알림신청전건우 의 다른 상품
저조예은
관심작가 알림신청조예은의 다른 상품
저남유하
관심작가 알림신청남유하의 다른 상품
“왜 상수도 하수도를 도시의 혈관이라고 하잖아? 배수관은 또 어떻고? 아무도 자기 몸속에, 도시의 아래쪽에 뭐가 지나가는지 신경 안 쓰지만, 아무튼 그거 누군가는 관리해야 하는 거잖아?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관리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봐선 안 될 걸 보게 되고, 들어서는 안 될 걸 듣게 되는 거고.”
--- p.32 「아래쪽」 중에서 “… 찜찜하지 않아? 그 집주인 내 몸 훑어볼 때부터 변태 같았어. 조심해라 너.” “아, 진짜 뭐야아….” 울상이 된 홍혜화는 한탄했다. “내가 왜 뭘 조심해야 하는데? 여자 혼자 살기가 원래 이렇게 힘들어?” --- p.67 「복층 집」 중에서 아니, 아직 모른다. 자신에게 아직까지 의식이 있는 이유가 뭘까. … 누군가 나를 봐 준다면, 내 존재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내일 지워지기 전까지가 나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지금 내 존재를 알리지 않으면 나는 이대로 투명하게 지워질 것이다. --- p.112 「분실」 중에서 저는 바로 앱을 종료하고 현관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안전 걸쇠는 걸려 있는지부터 확인했어요.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어요.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고 호흡도 거칠어졌어요.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릴 것 같았죠. … 혹시 앱을 해킹해서 내 주소를 알아내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나를 아는 사람이 지금껏 장난을 쳤던 거라면? --- p.137~138 「Not Alone」 중에서 취했으면 오지 말고 다음 날에 만나자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당장 뭔가를 담판 짓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을 뿐더러, 집주인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을 때 어떻게 구슬리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아는 저도 모르게 부엌의 식칼을 쥐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이 칼로 협박을 한다면, 가능할까? 헛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이렇게까지 매달려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 p.183~184 「보증금 돌려받기」 중에서 귓가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들렸다. 이게 정말 환청이라면, 내가 화면 공포증의 단계를 밟고 있는 거라면… 마지막 단계가 되면 어쩌지? 공포심을 견디지 못하고 화면에 충돌하게 될까? 극장의 남자애처럼? 연구소의 신입처럼? … 젠장, 이 도시에 화면이 없는 곳은 없다. 화면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고, 사람들은 화면을 사랑한다. 21세기의 화면은 신흥 종교나 다름없다. --- p.208~209 「화면 공포증」 중에서 |
〈아래쪽〉
나는 약 1년 전의 경험을 아무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 당시 나는 매일 밤 세 시간씩 서울시 지하 관로 정비 일을 했다. 근무 첫날 팀장님은 관로 내부가 캄캄해도 빛을 비춰서는 안 되고, 이동할 때는 반드시 팀장님의 오른쪽 뒤에서 따라가야 하며,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 준다. 그 이후 사람을 닮은 형상이 기어와 기괴한 신음을 흘려도 애써 무시하며 일해 왔지만 결국 더는 모른 척할 수 없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아래쪽에서 하는 일의 실체와 의미를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날이다. 〈복층 집〉 사회 초년생 혜화는 꿈에 그리던 복층 집을 월세로 구하면서 서울 독립생활을 시작한다. 구질구질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가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새집에서 만족스럽게 지내던 혜화는 집들이 이후로 마음에 불안을 품는다. 초대받은 친구들이 말하길 집주인이 영 변태 같고, 누군가 맞은편 건물에서 혜화네 집을 엿보는 듯하다는 것이다. 집이 안전한 장소가 아닐지 모른다는 혜화의 의심은 물건의 위치가 자기도 모르게 바뀐 것 같다고 느낀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불길한 예감에 힘을 싣는 단서들은 점차 늘어난다. 〈분실〉 6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석진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 들어간다. 낡디낡은 방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침대 쪽 벽에 있는 사람 크기만 한 얼룩이다. 얼룩 부근에서는 누군가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까지 난다. 커터 칼을 동원해도 없어지지 않던 얼룩을 독성이 강하다는 용액으로 처리하고 개운해진 것도 잠시, 문제의 용액은 지워져서는 안 될 것들을 향해 퍼져 나간다. 그즈음부터 소유물을 계속해서 잃어버리게 된 석진은 상황을 되돌리고자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다. 〈Not Alone〉 미수는 경찰서에 찾아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한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이 정당방위였음을 설명하겠다며 긴 이야기를 꺼낸다. 미수는 본디 활달한 성격으로 늘 무리의 중심에 있었지만, 지방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한 뒤로는 화려한 스펙을 지닌 동료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한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미수는 선배로부터 ‘Not Alone’이라는 앱을 소개받고, 그 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커뮤니티 활동에 열중하는 동안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만난 한 친구에 대한 호감은 미수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번진다. 〈보증금 돌려받기〉 성아가 사는 월세 집의 계약 기간이 끝나 간다. 대낮에는 해가 들지 않아 캄캄하고 한밤에는 유흥가가 가까워 시끄러운 집이다. 집주인에게 방을 빼겠다고 전한 성아는 보증금을 돌려받아 이사할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집주인은 방이 나가지 않으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악을 쓰고, 지방에 사는 엄마는 보증금 일부를 동생 학원비로 써야 한다며 독촉하고, 집 앞 밤거리에서는 희뜩한 얼굴의 남녀 무리가 창밖을 내다보는 성아를 빤히 응시한다.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 둘러싸인 성아는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 간다. 〈화면 공포증〉 남자친구와 영화관에 간 나는 기묘한 사건을 목격한다. 한 남자가 상영이 시작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들이받고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것이다. 웹상에는 그 남자가 화면 공포증에 걸렸으리라는 추측이 떠돈다. 외국 네티즌의 정리에 따르면 화면 공포증의 증상은 화면에 대한 불쾌감으로 시작되어 환청, 극도의 공포감을 거쳐 충돌로 마무리된다. 화면을 많이 볼수록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현대사회의 일원이자 회사원인 내가 화면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다. 주변에서 의심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
가깝기에 증폭되는 공포
‘괴담’이란 단어는 흔히 ‘학교’나 ‘도시’ 등 우리 주변의 공간과 결합한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안전해야 할 장소에 위협이 도사린다는 상상이 두려움을 증폭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장르 소설의 주 독자층인 청년은 학교나 직장과 가까운 도시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도시, 청년, 호러》는 호러 독자가 기대하는 기본적인 쾌감을 배경 설정을 통해 이미 준비해 두었다고 제목에서부터 알리는 책인 셈이다. 호러 장르에 꾸준히 관심을 둔 독자라면 작가진을 확인하고 반색할 수도 있다. 호러 콘텐츠의 부흥과 발전을 꾀하는 창작 그룹 ‘괴이학회’의 창립 멤버인 이시우 작가와 남유하 작가, 대형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 활동을 바탕으로 열 권의 단편소설집을 출간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김동식 작가, 〈살인의 추억〉이 세웠던 국내 스릴러 영화 관객 수 1위 기록을 무너뜨린 〈숨바꼭질〉을 통해 괴담과 현실의 오싹한 접점을 포착한 허정 감독, 30년에 걸쳐 호러를 사랑했고 근 15년 동안 공포 소설을 써 온 전건우 작가, 지극히 현실적인 괴로움과 상상에 기반한 섬뜩함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조예은 작가까지, 상대적으로 척박했던 우리나라 공포 문학계에서 굳건한 존재감을 보여 온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가까운 곳에서 건네는 위로 ‘도시, 청년, 호러’는 공감을 위한 테마이기도 하다. 수록 작품들은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우리는 노동의 의미를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알아주는 이 없는 일을 하다 스러진다. 여자 혼자 산다는 것이 알려지면 혹여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허술하게 만들어진 집 안에서 불안에 떤다. 수많은 사람과 얽혀 살면서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지만, 화면 속 세상을 현실로 삼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꿈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주거 환경과 인간관계와 생활 수준을 희생해 봐도 행복이 잡히기는커녕 더 멀어질 뿐이다. 도시민이기에, 청년이기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손을 장르 문법을 통해 맞잡고자 했다. 때로는 고통의 강도를 높이고 범위를 늘려 강조하는 방식을, 때로는 두려움에 통쾌하게 맞서는 방식을, 때로는 누적된 아픔을 견디다 못해 일그러진 존재를 보여 주는 방식을 택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뒤에 내딛는 땅이 이전보다 안전하게 느껴지듯, 《도시, 청년, 호러》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돌아본 독자들의 삶이 조금 덜 외롭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