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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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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202g | 120*190*20mm
ISBN13 9791189623180
ISBN10 1189623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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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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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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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들면 항상 끝이 어떨지를 생각해야 해요(Il faut toujours penser a la chute).
---「첫문장」중에서

평생을 비일상 속에서 살고 싶다.
--- p.12

지금은 보지 않는, 그러나 그 영험함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친구는 말했다. “언니는 원치 않아도 웅크려야 하고 어떨 때에는 싫어도 짖어야 해요, 개처럼. 팔자가 그래요.”
--- p.13

며칠이고 고정되었던 문단은 액체류의 중얼거림이 되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모퉁이를 돌아 홱 하니 사라져버리는 가느다란 꽁무니. 저걸 붙잡아보려고 수없이 시간을 보냈다.
--- p.36

나는 화자를 난감하게 할 정도로 생생하게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 어머, 내가 지금 이런 말까지 왜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입을 틀어막지만 결국은 끝까지 가고 마는 말소리. 혹은 냉정하게 유지하려 했던 얼굴을 결국 터뜨려버리는 웃음소리.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제치고 들어줄 사람에게로 돌진하는 경험이 내는 기차 화통 같은 소리.
--- p.46

2021년 11월 23일, 애인과 친구들의 선물을 부적처럼 두르고 출국을 했다. 이 문장을 쓰는데 눈물이 분수같이 솟구쳐 입을 막아야 했는데, 어쩌면 너무 바보 같은 것을 보면 즉물적으로, 안쓰러움이 성질처럼 솟아나는지도 모르겠다.
--- p.62

프랑스 최고 기관에 명예롭게 입학하여 착실히 수학하는 일상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상상을 하며 살아간다. 가령 저 멀리 높은 곳에서 활시위를 당겨 광장을 절반으로 가르는 불줄기 같은 것. 부글거리는 속으로부터 활활 타오르는 것.
--- p.74

그러니 웃음을 일으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내려오는 막중한 자산을 그 외부로 퍼 내보내면서 가부장제의 철로를 탈선시키기 위해서도 적어도 두 명이 필요하리라는 결론.
--- p.87

어느 날 발신인 ‘.’으로 “당신이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로 시작해 주소와 전화번호를 불러주는 메일을 받았다. 겁도 없이 주소대로 찾아가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더니 철로 된 대문이 열렸다.
--- p.95

중년 백인 남성이 허를 찔린 듯 어휴, 그나저나 프랑스어 끝내주게 잘하네, 하는 무의식적인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어로는 ‘기특하게도 우리 말을 잘하네’보다는 ‘어휴, 저거 징그럽게 기 센 거 봐’ 하면서 튀어나오는 한숨으로 번역해야 하거든.
--- p.103

아마 그들에게 티가 났던 건 나의 계급위반자적 면모였을 것이다. (…) 왜 모든 딸은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할까? 아버지가 분당 어디쯤의 센터장이건,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이건, 집에서 누워 있건, 죽었건, 없건 똑같았다.
--- pp.117~118

‘문밖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들키지 마라.’ 나는 비자를 가진 밀항자였다.
--- p.135

그래서 길을 걷다가 서점(librairie)이 발음되지 않아서 운다. 이백 번도 넘게 발음을 하는 동안 내내 꽁해 있다가 된다! 느껴지는 순간에는 웃는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포도(raisin)가 나온다. 또 분해서 운다.
--- p.149

수없이 귓가에 흘려 넣어준 내 문장의 조각들이 타인의 고유한 질서 위에서 새로운 문장을 내게 돌려주었던 순간을 나는 꽃이 핀 날처럼 기억한다.
--- p.170

만일 그렇게 놀 상대를 대충 이삼십 대에 만난다면, 보수적으로 가정했을 때 그렇게 노는 해를 대충 사십 번쯤 하면 삶이 끝난다. “신나게 놀았다!(It’s been a great ride!)” 하고 죽을 수 있을 정도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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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뱀이 갖는 방향성과 운동성은 어떤 것일까. 그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닿고 싶은 것일까 물리고 싶은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살피며 나는 이런 문장 앞에서 즐거워한다. “이거 좀 봐, 하며 어려서는 청자를 찾아 다닌 내 신기한 경험은 이후에는 청자가 되어주기 위한 성냥으로 쓰였다.” 이 책은 이민경이 청자로 살았던 시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화자로 살았던 기록이다. “길은 주로 사람들 사이에 나 있었다”고 말하며 길 위에 선, 길을 만들어간 문장들이다. 이민경의 결론은 아직 먼 곳에 있다. 기쁜 마음으로 여정에 동참했다.
- 이다혜 (작가)
이 책은 욕조에 물 받아놓고 들어가 읽으면 좋다. 욕조는 집에 달린 자기 것일 필요는 없고 한가한 대중탕이나 남의 집도 괜찮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문을 잘 열어준다. 목욕탕에서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생활과 정신, 저속과 숭고가 맞붙은 게 세상이구나 느낄 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겠지만. 목욕과 남의 욕조 쓰기를 이민경의 글과 행적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해도 좋다. 당신이 목욕하면서까지 읽을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민경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물에 들어가도 좋다.
- 서한나 (작가, 보슈BOSHU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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