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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비밀을 간직한 연인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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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448g | 128*188*30mm
ISBN13 9788925576558
ISBN10 8925576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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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뭔가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기노시타 씨는 기린을 닮았다. 목이 길다든지 눈이 크다든지 눈썹이 구부러졌다든지 그런 부분이 아니라, 분위기라고 할지, 내면에 깃든 정신 같은 것이.
--- p.34

몸속에서 뭔가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조금이라도 뾰족한 것에 닿으면 곧바로 터져 속에서 새콤달콤한 감정이 솟아날 것 같았다.
--- p.41

히메마쓰야의 커튼을 닫으려다가 창밖을 보니 날이 저무는 옅은 먹빛 하늘에 초저녁별이 오도카니 빛나고 있었다. 별사탕 같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더 밝아졌다. 이 순간 기노시타 씨도 같은 별을 보고 있다면 좋겠다.
--- p.62

기노시타 씨를 만나는 것을 상상만 해도 꽃봉오리가 가슴을 가득 메운 것처럼 숨 쉬기 힘들었다.
--- p.78

매화가 질투하는 일이 없도록 장식용 깃에만 눈에 띄지 않게 벚꽃을 넣었다. 기모노의 세계에서는 늘 계절을 앞서는지라 가령 매화 철에 매화 무늬를 맞추는 것은 멋을 모르는 일로 여긴다. 진짜 매화의 아름다움에는 어떻게 해도 이기지 못한다.
--- p.79

머리로는 이래도 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몸은 기노시타 씨가 있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석에 옷을 입힌 것처럼 내 마음은 기노시타 씨를 원하며 똑바로 나아갔다.
--- p.79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모든 게 반전된다는 게 기억났다. 영원처럼 느껴졌던 풍경이 허무하게 스러지고, 행복인 줄 알았던 게 슬픔이 된다. 온 세상 만물이 뒤집히고 뒤바뀐 것 같다.
--- p.91

내게 하루이치로 씨는 양지바른 곳이다. 다른 곳이 아무리 어둑어둑하고 추워도 그곳만 환한 빛이 가득하고 포근하다.
--- p.121

“결혼할 수 없는 상대야?”
또 고개를 까닥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잇세이 씨에게 거짓말할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게 교과서대로 되지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시오리 씨?”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허리띠에 꽂았던 부채를 펼쳐 부쳤다. 살짝 향냄새가 나는 바람이 내게까지 불어왔다.
--- p.192

이렇게 하루이치로 씨와 같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하루이치로 씨의 몸과 내 몸을 구성하는 성분이 차츰 같아진다는 게 기뻤다. 같은 세포, 같은 냄새. 하루이치로 씨와 함께한 식사가 나이테처럼 내 몸에 새겨져 간다. 하루이치로 씨 몸에도.
--- p.201

바람이 살랑 불어 바닐라 에센스처럼 달콤한 향기가 히메마쓰야 안으로 날아들었다. 근처 절 담장 밑에 치자꽃이 활짝 핀 것이다. 이 시기면 자나 깨나 나는 치자 향기에 아련한 사랑을 하는 기분이 든다.
--- p.220

외톨이.
갑자기 그런 단어가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에 휩싸였다. 몇 시간 전 축제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생각나 나만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 p.263

“별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
유키미치는 한 손으로 자전거를 끌며 느닷없이 물었다.
“공기가 맑아서?”
나는 대답했다.
“그것도 있겠지만 어둠이 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
“어둠이?”
“응, 캄캄한 어둠.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별이 아름다워 보여. 그렇잖아, 사실은 낮에도 별은 빛난다고.”
--- p.284

나는 이미 오래전에 기노시타 하루이치로 씨라는 배에 올라탄 것이다. 이제 도중에 내리는 것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물결에 실려 바다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 p.337

내가 바라는 게 대체 뭔지 알 수 없어졌다. 망설인 끝에 다다른 곳에 또 망설임의 문이 있었다. 가고 가고 또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 p.380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다. 마음속에 잔해처럼 무질서하게 쌓인 감정과 감정 사이로, 빛을 구해 지상에 고개를 내미는 꽃처럼 나도 환한 쪽을 향해 살아가고 싶다.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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