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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스러운 사이

: 제주 환상숲 숲지기 딸이 들려주는 숲과 사람 이야기

[ 초판 한정 저자 사인 인쇄본, 엽서 세트 포함 (랩핑출고) ]
리뷰 총점9.7 리뷰 44건 | 판매지수 3,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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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30g | 128*188*20mm
ISBN13 9791167780935
ISBN10 11677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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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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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은 너무 쉽고 가볍다. 명함을 주고받아도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이름은 어찌 외울 수 있단 말인가. 휴대전화다, 인터넷이다, 관계의 폭은 무척이나 넓어졌다. 하지만 그중에 진짜배기들은 누구일까? 잠깐 만나도 삶의 태도를 크게 바꿔주는 귀인이 있을 수 있고, 늘 만나지만 크게 감흥이 오지 않는 인연이 있을 수도 있다. 꼭 누군가의 연락처에 저장되지 않아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 p.22

그렇게 그 꼬마와 나는 손을 잡은 채로 숲을 걸었다. 그다음부터는 질문을 해오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없이 산책하고 조용하게 나의 안내를 들었다. 선생님의 손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인 양 번갈아 가며 손을 잡고는 숲을 걷는 내내 싱글벙글 미소 지어 주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 아이는 나를 귀찮게 하려던 게 아니라 그저 관심이 받고 싶었던 거였구나. 작고 오동통한 그 아이의 따뜻한 손이 종종 생각날 것 같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사랑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가 사랑을 받았구나.
--- p.41

숲을 찾는 이들은 보통 이런 질문을 한다. “이 나무의 이름은 뭔가요?”, “먹을 수 있나요?”
그런데 그들은 달랐다. “왼쪽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데 그 꽃도 돌을 뚫고 자랐나요?”, “잠깐만 멈춰서 나무를 쓰다듬어보아도 될까요?”, “고개를 들면 풍경이 어떤가요? 하늘이 보이지 않을만큼 우거진 숲인가요?”, “나무의 키들이 큰 숲인가봐요. 새들이 저 높이 앉아 있네요.”
그들에게 나무의 이름이나 흐드러지게 핀 꽃밭 풍경은 전혀 매력적인 요소가 되지 못했다. 바닥의 굴곡이 그대로 느껴지는 돌길을 처음 걸어본다는 그들은마치 계단을 처음 내려가보는 아가처럼 한 발 한 발 조심히 내딛으며 산책을 했다. 그들처럼 나에게도 도전이 되는 해설이었다. …중략… 중년의 시각장애인 남편은 앞이 보이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귀 기울일 수 있고, 자연의 풍경도 온몸으로 느끼며 아름답게 상상할 수 있어서 자신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중략… 나는 그저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삶을 살진 않았을까? 그렇게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 p.105

“숲속 친구들이 좋아? 아니면 바닷속 친구들이 좋아?”
그런데 주저하지 않고 아이는 “숲속 친구들!”이라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곤충이나 심지어 노루를 봐도 시큰둥하던 아이였는데, 도대체 숲속 친구들 누굴 말하는 것인가?
“숲속 친구들 누구누구 있는데?”
아이는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말투로 힘주어 대답한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깔깔 웃어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하긴 우리도 숲속 동물이다. 잊고 살지만, 우리 또한 커다란 생태계 안의 한 구성원이다.
--- p.146

옹기종기 모여서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기에 사실 가는쇠고사리는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 곶자왈 숲에서만큼은 가는쇠고사리를 보는 일보다 보지 않는 일이 더욱 어려울 만큼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친구는 속명이 아라크니오데스이다. ‘거미줄 같은’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땅속에서 줄기 뿌리가 거미줄처럼 뻗어나가 한 잎씩 땅 위로 낸 형상이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그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잎들이 지표면을 가득 덮고 있다. 우리가 보는 모습이 완전한 한 개체인 듯하지만, 알고 보면 한 잎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표본 채집을 위해 하나를 잡고 조심조심 당겨보았다가 다른 잎들과 끝도 없이 연결되어 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p.160

착한 딸내미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결국, 올라가지 못할 거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회사에는 조금 더 도와드려야 할 것 같다며 마냥 휴직을 연장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였다. 간혹 친구들이 놀러 올 때면 바쁜 서울 생활을 뒤로하고 잠시 휴직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 그런 날에는 등산복을 벗어 던지고 예쁜 옷을 챙겨 입고는 있지도 않은 사업계획서라든가 숲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교육활동계획안 같은 문서작업을 적었다 지웠다 끄적거렸다. 참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평안하고 아름다운 체하며 쓸데없는 자존심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을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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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인생을, 삶을, 사람을,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 가슴이 답답하고 앞이 안 보일 땐 환상숲으로 가서 매일 숲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사는 요망진 똘(야무진 딸) 이지영과 함께해보시라! 답이 보이고 길이 열릴 것이다.”
- 양희경 (배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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