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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포옹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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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286g | 110*179*20mm
ISBN13 9791189467890
ISBN10 1189467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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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고 삶보다는 죽음을 해석하는 쪽에 가까웠고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것에 이끌렸다. 마음먹고 없앤 나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에는 내가 사진마다 죽음을 연기하고 있었다. 여성들이 연거푸 살해당하는 것이 의아했고, 죽음의 연속성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죽음을 재현하고 이 죽음들이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천에서, 산에서 넘어지고 죽었다. 죽음을 필름에 담고 현상, 인화……. 찰박이는 물에 꺼냈다. 죽음을 물에 내놓으면서 정지가 아닌, 움직임을 갖고 다른 국면을 맞이하길 바랐다.
---「죽음의 계보」중에서

도처에 차별과 폭력이 널려 있고, 폭력 앞에서는 누구 하나 무결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끄러워야 한다. 폭력이 점층적으로 가까워질 때면 보기만 해도 피부가 아리는 그녀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그 시기 그녀가 가진 태도를 떠올린다. 내가 겨루면서 찍은 나의 가족사진을 떠올린다. 까만 방에 있다가도 존재를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 사진의 생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낸 골딘처럼」중에서

한 사람의 눈물을 사진에 담는다. 사진가는 숨을 잠시 멈춘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고 추측한다. 이 아이는 왜 사진 속에서 울고 있는 걸까. 전쟁 사진과 사회 고발 사진이 사진의 역사의 한 시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사진 속 많은 이들은 고통과 사회적 비극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 정지하는 힘은 사진에 있었을까, 사진을 소비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의 이타심에 있었을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우는 사진을 좋아한다. 좋아할 것이며. 이미지 속 그 액체가 내게 넘어와 발산하는 힘을 사랑한다. 그 액체가 유대, 인간성을 건드는 힘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이미지를, 그 액체를 관리하여야 할 책무를 느끼며……. 나는 사람들이 더 시끄럽게 울었으면 한다.
---「Crying Pics」중에서

세월호 참사 6년이 흐른 뒤에 나는 그 배를 마주했다. 모진 풍파와 세월을 맞은 배는 담갈색으로 바래 있었다. 육지에 올라 아주 큰 바위산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배의 크기를 가늠하고 싶어 그 앞을 오래 서성거렸는데 무모한 일이었다. 넋에는 둘레가 없다는 걸 몸으로 고스란히 느꼈다. 넋의 장대함에 길을 잃어 말끝을 흐리는 사진들을 찍었다. 여전히 비극 앞에서는 물음표. 여전히 나는 현장에 사진기를 들고 나가는 일에 주저하는 사람이다. 현장의 발화,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와 굴곡에 대해 고민하지만, 딱히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죽은 자를 발판 삼아 산 자가 기록을 이어나간다는 진리를 겸허히 받아들이나 이 매듭을 잡아채지는 못했다. 돌은 이 답을 아는 듯한데 늘 고요한 침묵으로 화답한다.
---「돌, 기림, 세월」중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을 지운다. 힐난과 손가락질, 수많은 창작자와 겨루었던 무형의 운동장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마분지처럼 힘없는 이 골조를 힘껏 뜯어버린다. 사진이 이 세계를 메울 기세로 배부르게 태어난다 하더라도 창작은 시합이, 운동장이 아니니까. 창작은 내 영토를 세우는 일.
---「무형의 운동장」중에서

도망가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도망갔다가도 돌아와서 내 근원을 집요하게 훑었다. 나와 이들을 모른 체하면 나는 콧대를 쳐들고 사기를 치거나 기만하며 살 게 분명했다. 내 사진을 본 한 작가가 나중에 말해줬다. 보여주긴 다 보여주지만, 절대 동정할 수 없게 하는 태도가 묻어 있다고. 나는 그 이유가 내 방식의 포옹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부끄럽고 싫고 떨어지고 싶고 닦아내고 싶지만, 나는 결국에 껴안는 사람이라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는 삶의 지속성을 보려고 애썼다. 돌아가기. 무작정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또 바라보기.
---「은은한 가난과 사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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