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해가 좀 나서 오후의 기온이 따뜻해지면 미뤄두었던 튤립, 수선화, 알리움의 알뿌리를 심어볼 참이다. 정원 일은 단순하다. 대부분 쪼그려 앉아 뭘 심고, 뽑고, 자른다. 이 단순한 일 속에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다.
--- p.15 「난 매일, 정원에서 안부를 묻는다」중에서
정원에 식물을 심을 때 내 마음은 한결같다. 이 식물이 여기에서 잘 지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종종 내가 심은 자리에서 식물이 힘들어하는 일도 생긴다.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둘 중 하나다. 그 자리에서 잘 자라도록 더욱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도 있지만, 아예 뿌리를 들어내는 위험과 아픔이 있어도 좀 더 나은 자리로 옮겨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p.22 「내 등을 떠미는 누군가도 나의 편이다」중에서
그 시절의 나는 겉으로는 나이 서른 후반에 뒤늦게 유학길에 오른 보기 드문 용감한 아줌마였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수도 없이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나의 삶에 대한 질문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깊숙한 숲속에서 만나는 자욱한 안개가 꼭 내 현실인 듯 묘한 동질감을 느끼곤 했다.
--- p.27 「자욱한 안개가 낀 날에는」중에서
정원 일은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이고,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쪼그려 앉아 쓱싹거리면서 갈대를 낫으로 자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문다. 갈대가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이렇게 질긴 이유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 빈 공간에 채워진 공기로 인해 휘어져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탄성이 좋다.
--- p.35 「갈대를 자르며」중에서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 살게 된 후, 비 오는 날의 일과는 매우 달라졌다. “정원사의 휴식을 위해 신이 비 오는 날을 만들었다” 라는 서양 격언처럼 일단 비가 오면 모든 일을 접는다. 집에 있어도 빗소리는 여전히 들린다. 자세히 들으면 빗소리가 여기저기 다르게 울린다는 걸 알게 된다.
--- p.38 「가을비가 교향곡처럼 내리고」중에서
힘 빠진 정원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해지고 차분하다. 난 그게 식물의 욕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식물도 욕심을 부린다. 더 커지고, 더 피우고, 더 많이 맺기 위해. 그 욕심이 절정을 이루는 게 여름이다. 그러다 욕심이 뚝 멈추는 시기가 찾아온다. 바로 가을이다.
--- p.43 「힘 빠진 정원에서」중에서
지나친 아름다움으로 사람의 정신을 빼앗고 홀리게 하는 것을 ‘미혹迷惑’이라 한다. 그런데 이 미혹의 반대어가 나는 ‘평범함’이라고 생각한다. 정원을 디자인하면서 남의 집에든, 우리 집에든 특이하고 희귀한 식물을 거의 심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해 누구라도 살 수 있고 심을 수 있는 수종을 선호하며, 관리하기 어렵고 까탈스러운 식물 보다는 쉽고 편하게 키울 수 있는 종을 선택한다.
--- p.59 「미혹보단 평범함을 위하여」중에서
식물을 키우려면 당연히 집이 밝고 쾌적해야 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식물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이다. 환기도 잘 시켜야 한다. 둔탁한 공기는 화분 속을 벌레의 온상지로 만들 수 있다. 또 화장실에도 물속에서 키우는 식물 하나쯤 두라고 권한다. 아이비나 고사리가 적당한데 이 식물들이 쾌쾌한 화장실의 환경을 신선하게 만들어주는 데 일조를 한다.
--- p.77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집」중에서
때를 놓친 나의 튤립 알뿌리에겐 그래도 마지막 기회가 한 번 더 있다. 겨울 지나, 땅이 녹는 날 보드러워진 땅에 얼른 알뿌리를 넣어줄 참이다. 세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몇 번의 기회를 다시 준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안다. 그 모든 때를 놓치지 않고 잘 눈치챌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p.80 「‘때’를 놓친 튤립에게」중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아테나 여신이 그리스인들에게 준 선물이 바로 올리브나무다. 어느 나라든 그곳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덕을 베푸는 자생 식물들이 꼭 있다. 우리에겐 콩이 그렇다. 잎과 열매는 먹을 양식이 되고, 껍질은 퇴비가 되고, 말린 몸체는 불을 붙이는 땔감으로 쓰인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구석이 없다.
--- p.92 「올리브나무의 추억」중에서
고질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증이 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막연한 불안함은 매번 어지러운 꿈자리로도 이어진다. 이럴 때면 잠옷 차림으로라도 성큼 마당으로 나가 정원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두 시간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불안함이 낮아지는 걸 경험한다. 그게 베치 박사가 말하는 식물 치유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삶이 무겁게 나를 누를 때 식물에라도 기대보면 어떨까 싶다.
--- p.102 「밤꽃이 피었습니다」중에서
식물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식물의 삶이 제각각 이리 다를 수도 있구나, 그 근본적인 ‘다름’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모든 식물이 매일 아침의 규칙적인 물 주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창가로 쏟아지는 볕을 하루 종일 쬐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다름을 존중해 줘야 식물들도 제자리에서 잘 자라준다.
--- p.115 「공중에 매달려 사는 식물의 삶」중에서
“가드닝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이런 대답도 한다. ‘그런 거 없습니다. 저 역시 아무리 배워도 매번 풀한테 이겨본 적이 없는데요.’ 그런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때론 지지고 볶고, 때론 구질구질하게, 때론 맘먹고 깨끗하게 그냥 정원 생활을 하시면 됩니다” 라고 대답한다. 필요한 건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 p.142 「고달픈 정원 생활이지만 그래도 좋아서」중에서
어느 계절도 쉽고 다정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여름은 모든 식물이 걷잡을 수 없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힘겨움의 시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식물이든, 저절로 자리를 잡은 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성장을 이루는 계절 또한 여름이다. 비발디의 ‘여름’처럼 때론 참을 수 없게 사람을 늘어지게 하고, 그러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통제를 벗어난 식물들은 하루에도 몇 센티미터의 키를 키워 나를 무섭게도 하지만, 여름의 매력도 많다.
--- p.152 「요란한 비바람 속 나의 정원은」중에서
상대적으로 농사가 근간이었던 우리나라는 정복의 역사가 거의 없다. 그러니 원래 있던 자생 식물 이외에 새로운 식물이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었고, 설령 들어왔다 해도 우리나라의 강력한 사계를 견디기도 버거웠다. 그러니 영국처럼 신품종에 열광하기보다는 스스로 살아주는 식물을 더 존중하는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왜 서양과 같은 원예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수년간 생각해 내린 답이다.
--- p.165 「식물, 돈 주고 삽시다」중에서
부족함 없이 온실 속에서 자란 히아신스보다 스스로 날씨를 이겨내는 바깥 히아신스의 삶은 절대 더 편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자란 히아신스는 더 짱짱하고 꼿꼿하게 꽃을 피우고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 과학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고통이 지난 후에 드러나는 편안함이라는데, 참 야속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 p.174 「짱짱하고 꼿꼿하게」중에서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의 시간을 나의 정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선화와 튤립 사이’이다. 붓을 세운 듯, 도톰한 수선화가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반면 튤립은 수선화보다 크고 토끼의 귀처럼 생긴 잎을 열심히 키워낸다. 수선화가 피고 2주쯤 지나 튤립이 피어나니 딱 2주 정도의 시간인 셈이다.
--- p.197 「수선화와 튤립의 시간」중에서
가끔 식물의 흔적이 사라진 겨울 정원을 서성이다 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모든 기다림은 오지 않을 불안함을 안고도 있지만, 다시 올 것이라는 설렘이 더 크기에 추위와 빈곤함도 잘 참아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209 「삶과 죽음, 기다림의 순환」중에서
벌은 식물의 수분을 돕는 가장 큰 그룹의 생명체다. 이 생명체가 이대로 사라지면 곧 식물들의 3분의 2가 열매를 맺지 못할 일이 생기는데, 이런 상황에 이르면 벌들에게만 미래가 없을까. 우리 삶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 p.211 「다시 찾아올 벌들을 위해」중에서
이걸 원예에 적용해 보면 가지치기의 시기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왜냐하면 여름 나무는 이른 봄에 가지를 쳐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의 가지를 이른 봄에 잘라버리면 그해에는 꽃을 피우지 못하거나 빈약해지기 때문이다.
--- p.220 「경쟁이 아닌 선택도 있음을」중에서
하지만 이 자연과의 몸살이 나와 남편의 몸에 변화를 준 것도 사실이다. 추운 날, 더운 날 할 것 없이 자연에 노출이 되다 보니 늘 달고 다녔던 두통과 코막힘 증상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과학적인 분석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몸이 자연에 부대끼며 생겨난 일종의 탄력임을 넌지시 깨닫는다.
--- p.230 「창문을 열자 소리 없던 자연이 나에게 들어온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