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은 티셔츠를 꺼내 들더니 가슴팍에 그려진 거미를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댔어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눈앞에 보이는 옷은 영화에서 본 슈트랑 달라도 너무 달랐거든요.
외삼촌은 옷을 입어보라며 자꾸 내 등을 떠밀었어요.
“어렵게 구해줬더니. 자꾸 그러면 이 삼촌 너무 서운하다!”
나는 마지못해 옷을 갈아입었어요.
“햐, 진짜 스파이더맨이 울고 가겠다. 정말 멋져!”
“이게 뭐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끔찍했어요.
꽉 들러붙은 슈트 때문에 몸매가 다 드러났어요. 볼록 나온 배에 참외 배꼽, 반으로 자른 수박을 엎어놓은 듯한 엉덩이. 고구마 같은 종아리에다가 다리 사이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외삼촌,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나가?”
“스파이더맨이 헐렁한 옷 입는 거 봤어? 스파이더맨이 슈트 꽉 낀다고 밖에 안 나가디?”
외삼촌이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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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제 마음에 구멍이 뚫렸다고요?”
나는 걸음을 멈췄어요. 마음에 구멍이 뚫렸다면 병이 났다는 거잖아요.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뭘 하고 있어도 허전하고, 나만 외톨이가 된 것처럼 느껴지고…….”
“맞아요, 할아버지! 허전하고 심심하고, 뭘 자꾸 건드리고 싶고……. 그러다가 말썽 피웠다고 혼나고요.”
“그게 바로 마음에 구멍이 뚫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야.”
“할아버지는 제 마음이 보이세요? 참, 신기하네요!”
나는 할아버지보다 몇 걸음 앞서 걷다가 뒤돌아보았어요.
“혹시 할아버지 마음에도 구멍이 뻥 뚫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마음을 다 아시는 거잖아요.”
“이 녀석이!”
할아버지가 꿀밤 먹이는 시늉을 했어요.
“난다야, 집에 가서 마음에 뚫린 구멍을 어떻게 메울지 생각해 봐라. 할아버지는 답을 찾지 못했다만 난다는 똑똑한 아이니까 찾을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갈림길에서 손을 흔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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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가 또 잘난 척이네. 너나 내복 같은 슈트 벗어버려라!”
점점 짓뭉개진 풀밭이 늘어났어요.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카메라 동영상 모드로 바꿨어요. 화면에는 풀밭에 난 자전거 바퀴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어요.
“야, 뭐하는 거야?”
악당 범석이가 고함을 질렀어요.
“당장 그만 두지 않으면 학급 톡에 다 올릴 거야!”
“뭐? 저 녀석이!”
“휴대폰 뺏어야 돼!”
자전거 세 대가 나를 향해 달려왔어요. 나는 자전거가 산책길로 나올 때까지 동영상을 찍은 뒤에 헐레벌떡 달리기 시작했어요.
“가짜 스파이더맨이 도망간다. 빨리 잡아라!”
범석이는 자기가 대장인 것처럼 일당들에게 명령했어요. 내가 아무리 빨리 달린다 해도 자전거를 당해낼 순 없을 것 같았어요. 숨도 차올랐어요.
“휴대폰 이리 내!”
자전거 세 대가 나를 에워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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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린 건 바로 그때였어요.
“여보세요? 스파이더맨 외삼촌이하는 집안청솝니다. 네, 바다공원 전망대에서 본 스파이더맨… 맞아요. 네, 네, 맡겨만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에 연락드리고 방문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외삼촌은 얼이 빠진 얼굴이었어요.
“유튜브에 올린 청소업체홍보 영상을 보고 전화했대요. 난다덕을 톡톡히 보네요.”
“삼촌, 첫 주문 축하해!”
“태주야, 축하한다. 잘 해봐라!”
모두들 외삼촌에게 축하인사를 건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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