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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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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36g | 140*200*15mm
ISBN13 9788960868595
ISBN10 896086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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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런던에 갔을 때, 아내는 여성 특유의 강심장으로 자신 있게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내가 구사한 영어는 엉망진창 서툴기 그지없는 수준이었지만, 중학 시절 졸기만 했던 나는 그나마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뭐야.” 집사람은 나한테 젠체하며 말했다. “당신 한마디도 못하잖아요.” 나는 분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어떻게든 이 여자 앞에서 영어를 술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벨보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런던” 거기까지는 말이 나왔다. 나는 ‘런던에는 매일 비가 내린다면서요’라고 말할 참이었다. “저기, 잇 레인즈….” 매일이 영어로 뭐였더라? 에브리… 에브리…. “저기, 잇 레인즈 에브리바디.” 벨보이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다른 데로 가버렸다. 나는 ‘에브리데이’와 ‘에브리바디’를 착각했던 것이다. “뭐야.” 집사람은 경멸하듯 말했다. “런던에서는 사람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나봐요.” 21쪽

대체로 이 단계에서 마누라가 사용하는 전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분을 일부러 확대하여 말하는 버릇이며, 둘째는 논리의 비약이며, 셋째는 과거에 대한 두려울 만큼의 기억력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억지로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부분을 확대하는 마누라의 말버릇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늦을 거면 전화를 해달라고 그랬는데 왜 안 하는 거예요? 나는 어디 괴상한 차에 끌려갔나, 무슨 사고라도 난 거 아닌가 싶어 12시까지 잠도 못 자고 있었다고요. 10분 전에 겨우 잠들었다니까요. 거짓말 같으면 이 소파 시트를 만져 보든지요. 아직 따뜻하죠? 그렇게 매일 밤마다 걱정을 시키다가 내가 병에라도 걸린대도 당신은 알 바 아니겠죠. 분명 그럴 거예요. 내가 병이 나서 혼자 드러누워도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친구와 술이나 마시겠죠. 나는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차가운 방에서 죽어갈 테니까…” 이쯤에서 그 미래의 방 정경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듯 슬픔에 겨워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전화 한 통을 걸지 않은 작은 행위가 마누라의 논리 속에서는 한정 없이 비약하여 어느 새 아내가 병에 걸려도 내버려두는 남편으로 확대 재생산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41쪽

나는 반나절이 걸려 ‘중년 남자를 위한 노래’라는 가사를 썼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여보 나를 무시하지 마 / 결혼 이후 20년 누구 덕분에 먹고 살았나 / 누구 덕분에 자식이 생겼나 / 자꾸 나를 깔보면 / 나는 이 집 나갈 거야 / 아들 나를 무시하지마 / 여드름 난 그 얼굴로 / 자신만이 나라를 / 아는 듯이 말하지 마 / 딸아 나를 무시하지 마 / 헐렁한 잠방이가 왜 나쁘냐 / 지금 네 신랑도 분명 헐렁한 잠방이 입고 있을 걸’ 어떤가? 술집에서 부르기에 좋은 노래 아닌가. 나는 이 노래가 분명 전국적으로 히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떤 음반사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 p.94

노인네 같다거나 일종의 체면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점차 내 인생을 달리 바꾸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겠다거나, 조금만 더 건강한 몸을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이런저런 차이점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나는 나, 이대로 좋다’라고 저절로 생각하게 되었다. 남을 부러워하는 대신에,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것을 향유하고, 모든 각도에서 (문자 그대로) ‘만끽’하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 p.108

나는 소설을 쓰고부터 사람을 판가름하는 일이 차츰 싫어졌다. 나도 같은 입장이라면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람을 판단할 때만,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만 성인군자가 되는, 나는 그런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 p.145

“이 세상에는 마지못해, 혹은 내키지 않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직장에 다니면서 통속적인 출세라는 두 글자 이외에, 일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인생의 하루하루를 보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좋아서 선택한 길을 언제까지라도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일인 이상에는 괴롭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 괴롭습니다. 하지만 왠지 즐겁습니다. 나는 그것을 ‘괴로운 즐거움’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내가 소설가라는 일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괴로운 것은 괴로웠다. 물기 하나 없는 수건에서 물을 짜내야 하는 듯한 괴로움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노고에도 불구하고 항상 즐거움이 따랐던 것만은 분명하다. 행복하게도 소설은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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