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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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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518g | 145*210*30mm
ISBN13 9788932473314
ISBN10 893247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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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소설은 한편으론 나에게 열등감을 심어 줬다. 공터 안 나무에서 남자아이를 밀어 떨어뜨리고 팬티를 치마 밑으로 비어져 나오게 입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다니는 여자아이는 소녀소설에는 조연으로도 안 나왔다. 소녀소설에서는 악역조차 부자에다가 미인이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고함치거나 손을 들어 올리거나 하면 나는 즉각 소녀소설 속 각박한 운명을 견뎌 내는 주인공으로 변했는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쾌락의 하나였다. 밖에서는 남자아이를 울리고 놀다가 집에 와서는 비련의 소녀소설 주인공이 되자니 나도 바빴다.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소녀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답고 다정하고 우아했는데, 그 점은 몇 십 권을 읽어도 예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 p.14

전철 문 옆에 서 있는데 중년의 인품 있어 보이는 점잖은 신사가 내 하반신을 뚫어져라 보면서 때때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전철에서 치한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친구들이 치한이 그 부근을 만졌다며 “기분 나빠!” 하는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근질근질해졌다.
빨리 치한이라는 것과 대면해서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하고 그 손을 비틀어 올리든가, “어딜! 힘들 걸” 하며 요리조리 방어 자세를 취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철이 멈추려 했다. 그때 신사가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게 아닌가. 왔군, 왔어. 그는 내 옆에 바싹 다가와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지퍼가 열렸어요.” 그러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정말로 신사였던 거다. 그때는 창피했다. 열린 지퍼보다 아무도 몰랐던 내 마음이. --- p.56

육체가 없어지는 죽음은 단 한 번뿐인데다가 현실로는 자신의 사후를 체험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별이라고 하는, 인생의 도정에서의 죽음은, 우리의 혼과 육체로 견뎌 내야 한다. 아마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때 마음을 위로해 줄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게 있을까. 헤어지자는 인간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란 게 도대체 있을 수나 있을까.
마음 독하게 먹고 “싫어졌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하고 말을 뱉은 다음, 상대로부터 경멸과 증오를 몸으로 받아 낼 각오가 없다면,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안 하는 게 좋다. 헤어질 때는 괜히 좋은 소리 하지 말고 독하게 말하는 게 정답이다. 단 한마디의 이별의 말이 실로 다양한 드라마를 상상하게 한다. 이별도 상상으로 해 보는 건 재밌네. --- p.214

할 수 있으면, 비척거리는 보이프렌드와 손에 손을 잡고 카페오레를 마시면서 “그 여배우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 안 해요? 도대체가 가슴이 너무 커요.”
“아니, 나는 제법 괜찮은 여배우라고 생각하는데.”
“흐음, 그 가슴이 좋아요? 아, 알았어요” 하고 사랑싸움도 훌륭하게 해 주자.
내 그림에 대한 주문도 없어졌을 테니 서툰 그림이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만 내 맘대로 그리고, 마음 내키면 SF소설도 쓸 거다. SF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해서 어려울 것 같으면, 살인물이라도 써서, 죽이고 싶은 사람을 차례차례 등장시켜 닥치는 대로 산산조각을 내 주는 거다. 나이 먹으면 먹을 것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된다고 하니, 하루가 걸리더라도 감자죽을 만들어 후우 후우 먹겠다. 돈이 없을 게 분명하니, 미식은 몸에 좋지 않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면서. 입이 험한 것은 나의 숙달된 무기니까 험한 입으로 “저 할망구 예쁜 데가 없어” 하고 젊은 녀석들이 나를 싫어하게 만들 거다. 이런 것을 일러 깊은 배려심이라고 하는 거다. 내가 죽으면, 아,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줬으면 좋았을 걸 하고 주위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지 않게 말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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