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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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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8년 08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366g | 153*224*30mm
ISBN13 9788989571513
ISBN10 898957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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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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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이마, 거기에 짝 달라붙듯 늘어져 부드럽게 말린 머리카락을 보는 동안 나는 이 얼굴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세……라고 합니다.”
성과 이름을 다 말했던 것일까? 성 이외의 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말투에는 지방 사람들이 사투리를 애써 감추려 할 때 나타나는 어색함이 묻어났다.
그가 나를 방문한 이유는, 언젠가 내가 어떤 대중잡지에 나폴레옹이 태어난 곳을 여행했을 때 인상적이었다는 내용의 수필을 썼는데, 우연히 그것을 읽은 그는 나를 나폴레옹 연구의 전문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인사 비슷한 대화를 나눈 뒤 그가 갑자기 주뼛거리면서, 그러나 엄숙하게 선언했다.
“저는……, 실은 나폴레옹이 환생한 사람입니다.”
--- pp.17-18, 「나폴레옹광」

“여보세요. 나구모입니다.”
“가게 앞으로 난 거리를 북쪽을 향해서 곧장 걸으라고. 그러고 다마가와 제방이 나오면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라고. 강가를 따라 약 5백 미터쯤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높은 아파트가 나온다. 그 부근에서 차에서 내려 강가 쪽을 잘 보라고. 오늘밤은 달이 밝으니까 물가에 작고 낡은 창고가 하나 서 있는 게 보일 것이다. 돈과 손전등을 들고 그곳으로 가도록. 혼자서 가라고. 아파트 창에서도 제방에서도 물가 쪽은 완전히 다 볼 수 있다고.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려고 했다가는 아이를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알았소. 명령은 그대로 지키겠소.”
“그럼 거기에서…….”
몇 번인가 전화를 거는 사이에 지시를 내리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이제 창고에 가서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한번 보자.
--- pp.105-106, 「사랑은 생각 밖의 것」

요스케가 어렴풋하게 감지한 것은―그 미묘한 불안을 어렵지만, 말로 설명해 본다면―예를 들면 정사 중에 아내가 표시하는 사소한 행동, 이전과는 다른 대담함, 혹은 환희의 깊이 따위가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성행위가 성숙해지면 여자들은 누구라도 그렇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스코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아름다운 여자였고, 그런 만큼 요스케에세는 그 미세한 변화까지 마음에 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런 변화를 대변이라도 하듯 야스코의 행동에서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구체적인 의혹들이 하나둘 확실하게 느껴짐에 따라 요스케의 불안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이 집으로 이사온 후부터였던가―
--- p.119, 「그것의 이면」

기타무라는 혼탁한 의식 속에서 창문 아래 폴크스바겐에게 물었다.
“이제 몸도 완전히 나았고 하니 택시 영업을 다시 시작할까 해서요.”
“이 몸으로는……. 의사 선생님도 아직은 좀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셨어.”
폴크스바겐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냥 그대로 누워 계세요. 저 혼자서 해 볼 테니까요.”
“뭐라고? 너 혼자 영업을 하겠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기타무라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요령도 완벽하게 몸에 익혔습니다. 밤에 긴자의 큰길에 서 있기만 하면 손님이 안을 들여다볼 거 아닙니까. 타이밍 잘 맞춰서 문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도쿄의 길이라면 어디든 알고 있으니까요.”
--- pp.145-146, 「딱정 벌레의 푸가」

당시의 신분의식이 중세에 비해 어느 정도 느슨해지긴 했다 해도 귀족과 서민 사이에는 여전히 엄격한 귀천의 차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시대에 일개 구두공이 나리들과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정신적인 부담이 되었을지. 골프가 심리적인 게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부담은 한층 더 심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라하지만 실질적인 승리의 패를 쥐고 있던 남자는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그의 기량이 당시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것, 그리고 정신적인 핸디캡과 같은 장벽에도지지 않을 정도의 섬세한 기술을 지녔다는 것―그러니까 당시 사람들의 감각으로 표현하자면 ‘악마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거야 어쨌든 간에, 이런 일들을 통해서 드디어 골프 역사의 한 페이지에 한 명의 천재적인 플레이어의 이름이 처음으로 새겨지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존에게 있어서 행복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때문에 그는 악마로 몰리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 p.173, 「골프의 기원」

그러자 그가 잠에 빠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얇은 옷을 걸친 채 옆에 누워 있었다.
“정말로 누구야?”
“이제 그런 말 묻는 거 그만둬. 당신 애인이야.”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내가 싫은 거야?”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어.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이름은 뭐라고 하지?”
“도모코(朋子)야, 달님을 두 개 그려서.”
그 이름도 기억에 없었다.
“성은?”
“야마이…….” 라고 여자는 웃으면서 도시로의 성을 말했다.
“설마. 되는 대로 말하지 말고.”
“정말이야.”
--- pp.201-202, 「뒤틀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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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토 준지를 만난 다음부터는 일본 괴담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무얼 읽어도 그냥 아아, 이토 준지면 충분해, 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야의 전문가가, 그렇다면 아토다 다카시를 읽어보시지요, 라고 추천하였다.

처음에는 다소 심드렁하게 읽었다. 내가 이 세계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웬만한 일본 괴담(추리 · 미스터리) 소설은 에도가와 란포로 시작해서 책장으로 두 서가쯤은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폴레옹광』을 손에 쥐고 문득 세 편째 단편을 넘어갈 때 멈칫하는 기분이 들었다. 깨어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8월의 무더위를 끝내려는 듯 한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읽고 그만 두어야만 해, 라고 다짐했지만 나는 여기 담긴 열세 편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만 읽겠다고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면 왠지 창문 앞에 누군가 서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아, 제발 끝나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책. 반드시 순서대로 읽으실 것.

조금씩 슬금슬금 몽롱하게 만들면서 예기치 않게, 그렇게만은 결말을 맺지 말아 주었으면 하며 가슴 졸이던 엔딩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러면서 그 엔딩이 점점 더 꿈을 꾸는 것처럼 허우적거릴 때, 나는 고개를 들 용기를 잃어버렸다.

다음번에 구로사와 기요시를 만나면 꼭 물어볼 생각이다.
“왜 아토다 다카시의 소설을 아직도 영화로 만들지 않고 계십니까?”



정성일 (영화평론가)
같은 동양문화권이기 때문일까, 일본 작가들이 변주하는 '일상의 환상'이라는 테마는 우리의 정서에 참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아토다 다카시의 감각과 아이디어는 단연 발군이다. 21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장르의 혼성과 교직을 아토다 다카시는 이미 한 발 앞서 구사해왔던 것이다.

나오키상 수상으로 진작 검증된 그의 작품세계는 최근 쏟아지듯 소개되는 일본 장르혼성 소설들의 한 뿌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은밀한 불안이 궁금하거나 혹은 일상의 판타지를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찾는 이에게 『나폴레옹광』은 필독서이다.


박상준 (『판타스틱』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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