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강력추천 오늘의책 2017 올해의 책
미리보기 공유하기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리뷰 총점9.2 리뷰 257건 | 판매지수 30,774
베스트
독서/비평 4위 | 국내도서 top20 5주
정가
15,000
판매가
13,500 (10% 할인)
YES포인트
구매 시 참고사항
  •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리커버
소중한 당신에게 5월의 선물 - 산리오 3단 우산/디즈니 우산 파우치/간식 접시 머그/하트 이중 머그컵
[YES24 단독]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노무현입니다』종이책 오디오북 동시 출
5월 전사
5월 쇼핑혜택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7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524g | 145*225*30mm
ISBN13 9788965962205
ISBN10 896596220X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지식을 넘어 삶의 근본을 다지는 『라틴어 수업』

2017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당해 언론과 서점가에서 올해의 책, 올해의 저자로 선정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라틴어 수업』이 100쇄 출간을 기념하여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민트와 베이지 컬러를 바탕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었던 기존 표지와 달리, 깊고 짙은 먹색 바탕에 금빛 나무와 문을 새겨 넣어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표지에 담았다.

이 책은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인 한동일 교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다.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의 언어들을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사회 제도, 법, 종교 등을 포함해 오늘날의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해 저자인 한동일 교수는 자신의 유학 시절 경험과 공부의 어려움, 장점과 단점에 대한 성찰, 관계의 문제 등 삶의 면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서문
Lectio 1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Magna puerilitas que est in me)
Lectio 2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Prima schola alba est)
Lectio 3 라틴어의 고상함(De Elegantiis Linguae Latinae)
Lectio 4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
Lectio 5 단점과 장점(Defectus et Meritum)
Lectio 6 각자 자기를 위한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pro se quisque)
Lectio 7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Ego sum operarius studens)
Lectio 8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돌리고 신의 것은 신에게 돌려 드려라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Lectio 9 만일 신이 없더라도(Etsi Deus non daretur)
Lectio10 네가 주기 때문에 내가 준다(Do ut Des)
Lectio 11 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Tempus est optimus iudex)
Lectio 12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Lectio 13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Si vales bene est, ego valeo)
Lectio 14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Lectio 15 오늘 하루를 즐겨라(Carpe Diem)
Lectio 16 로마인의 욕설(Improperia Romanorum)
Lectio 17 로마인의 나이(Aetates Romanorum)
Lectio 18 로마인의 음식(Cibi Romanorum)
Lectio 19 로마인의 놀이(Ludi Romanorum)
Lectio 20 아는 만큼 본다(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Lectio 21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Desidero ergo sum)
Lectio 22 한국 사람입니까?(Coreanus esne?)
Lectio 2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Verumtamen oportet me hodie et cras et sequenti die ambulare)
Lectio 24 진리에 복종하라!(Oboedire Veritati!)
Lectio 25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Vulnerant omnes, ultima necat)
Lectio 26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Dilige et fac quod vis)
Lectio 27 이 또한 지나가리라!(Hoc quoque transibit!)
Lectio 28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Dum vita est, spes est)

감사의 글 : ‘삶의 책장’을 세우는 라틴어 수업을 기억하며 - 제자들의 편지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아지랑이를 뜻하는 라틴어 ‘네불라(nebula)’만 해도 그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참으로 긴 시간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지랑이’라는 단어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고 시시때때로 그렇게 우리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 p. 37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가 나를 ‘숨마 쿰 라우데(최우등)’라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숨마 쿰 라우데’라는 존재감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스스로 낮추지 않아도 세상은 여러 모로 우리를 위축되게 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니까요.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대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스스로에, 또 무언 가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 p. 74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즉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 p. 128-129

Hodie mihi, cras tibi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관이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았고, 제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이제 거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봅니다. 부모님이 남긴 향기는 제 안에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 다음을 만들어가는 것은 제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내 삶의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p. 156

새들을 각자 저마다의 비행법과 날갯짓으로 하늘을 납니다. 인간도 같은 나이라 해서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있고 저마다의 날갯짓이 있어요. 나는 내 길을 가야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 p. 174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디엔가 끝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마침표가 찍히기를 원하지만 야속하게도 그게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끝이 날 거라는 겁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그러니 오늘의 절망을, 지금 당장 주저앉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끝 모를 분노를 내일로 잠시 미뤄두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 나를 괴롭혔던 그 순간이, 그 일들이 지나가고 있음을, 지나가버렸음을 알게 될 겁니다.
--- p. 274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 『라틴어 수업』 100쇄 기념 한정판 리커버 ★
★ 제25회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 도서 ★


“『라틴어 수업』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삶과 배움의 자세를 배운다. 저자의 글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가 득세하는 시대에서 저자는 공부란 어제와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것, 그래서 남과 나누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경향신문 ─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우리 사회의 청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문창용

“라틴어가 지닌 언어의 체계성과 지혜라는 측면에서 ‘나무’라는 상징을 끌어내 디자인해보았습니다. 나무를 둘러싼 아치 형태의 문에는 ‘지혜의 문’으로서의 의미와 새로운 발견을 향해 나아가는 문의 의미를 부여해보았습니다. 삶이란 이 나무처럼 중심을 잡아 뻗어나기기도 하고, 그곳에 앉아 쉬었다가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다시 한 번 『라틴어 수업』을 통해서 삶의 지혜와 자유를, 그리고 쉼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라틴어 수업』리커버 디자이너의 말

25만 독자가 선택한 스테디셀러『라틴어 수업』
지혜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힘


2017년 초여름 출간 이후 3년 간 25만 부 가까이 판매되며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이 책은 2010년 하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됐던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강의를 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저자의 강의는 입소문을 타고 서강대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연세대, 이화여대를 비롯해 신촌 대학가를 벗어난 지역 학교 학생들과 일반인들까지 찾아왔고, 이것이 당시 언론에 ‘화제의 명강의’로 기사화되어 더 주목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 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라는 저자의 이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저자의 강의가 인기를 끈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라틴어의 체계, 라틴어에서 파생된 유럽의 언어들을 배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음식, 놀이 문화, 사회제도, 법, 종교 등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가 유학 시절 경험했던 일들, 만난 사람들, 공부하면서 겪었던 좌절과 어려움, 살면서 피할 수 없었던 관계의 문제,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성찰 등 우리 삶에 맞닿아 있는 화두들이 수업에 녹아 있었다. 종합 인문 교양 수업과 같았던 저자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사고의 깊이를 더할 수 있었다고, 더 나아가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수업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서양 문명의 근원, ‘라틴어’로 들여다보는 그리스 로마 시대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이기도 한 저자는 라틴어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회상과 문화,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저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도 맞닿아 있다. 한 예로, 책 속에서 소개하는 라틴어 ‘도 우트 데스(Do ut Des)’를 생각해보면, 이 말은 ‘네가 주면 나도 준다’라는 뜻으로 로마법의 채권 계약에서 나온 법률적 개념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해 과거 로마법상 계약의 기준이 되는 네 가지 도식에서부터 유럽의 세속주의와 상호주의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아가 상호주의 원칙이 흔들리는 오늘날의 국제 사회에서 이 개념이 왜 과거의 것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재에도 중요한지 설명한다.
또 다른 예로 젊은이를 뜻하는 라틴어 ‘유베니스(iuvenis)’는 만 20세부터 25세까지를 가리키는데, 로마법에서 젊은이를 규정하는 연령대가 이렇게 길었던 이유가 군대에 충원할 병사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것이 지금에 와서는 유럽인들에게 나이에 대한 강박을 덜어주는 순기능의 역할을 했음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저자가 로마 유학 시절 당시 만난 이탈리아 친구들이 70세 노인을 향해서도 ‘당신은 아직 젊다’라고 말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더하며, 우리 역시 나이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삶을 단단히 세우기 위한 뿌리를 자라게 만드는 수업

저자의 수업을 들었던 한 제자는 아직 꽃피지 못한 청춘인 20대에 자신은 이 수업에서 ‘꽃’이 아니라 그 ‘뿌리’를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수업이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단점이 공부하는 데 장점이 되었지만, 그 장점이 훗날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단점이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나 자신의 장단점과 집착, 아집은 무엇이었는지 성찰하게 한다. 로마의 묘지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 ‘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의 뜻이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것을 설명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풀어놓고, 그를 통해 ‘죽음’이 언젠가는 나의 몫이라는 걸 일깨우며 삶과 죽음이 멀지 않다는 화두를 던진다. 또한 유학 시절 이탈리아어와 영어, 라틴어가 뒤섞인 수업에 대한 어려움, 공부하면서 겪었던 좌절, 한국에 돌아와서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에 절망했던 날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이야기하지만 그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

삶의 태도와 방향을 배우다

책 말미에는 당시 수업을 마치며 저자가 학생들에게 받았던 손편지와 책 출간을 기념해 보내온 제자들의 편지 글이 실려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중간고사 과제로 제출하는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로, A4 한 페이지로 ‘내 인생에 대하여’ 적어내는 일이다. 제자들은 이 과제를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과거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지금의 자기를 인정하며, 미래의 자기를 꿈꿀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수업을 통해 삶의 대한 태도와 방향을 성찰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제자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자신들이 수업을 통해 얻었던 위로와 힘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회원리뷰 (257건) 리뷰 총점9.2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라틴어 수업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l*****2 | 2022.01.1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너무 유명한 책이죠? 작년에 코로나 블루인지, 자존감이 떨어져서 인지... 그냥 읽고 싶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한동일 교수님 인터뷰를 들은지 얼마 안지나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아요. 힐링되는 책? 삶에 쉼을 주는 책? 이런 느낌이 들었고 지금 대학생들, 더 크면 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태교 중인 제 친구에게도 이 책을 선물 했어요 ^^;
리뷰제목

너무 유명한 책이죠?

작년에 코로나 블루인지, 자존감이 떨어져서 인지...

그냥 읽고 싶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한동일 교수님 인터뷰를 들은지 얼마 안지나서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같아요.

힐링되는 책? 삶에 쉼을 주는 책? 이런 느낌이 들었고

지금 대학생들, 더 크면 내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태교 중인 제 친구에게도 이 책을 선물 했어요 ^^

우리는 왜 나를 소모하며 살까요?

우리는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소모하지 말고 채우며 살아가요.

오늘도 고생한 당신 우리 모두 숨마쿰라우데 입니다.^^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구매 주간우수작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d*****e | 2021.11.02 | 추천19 | 댓글12 리뷰제목
저자 한동일 교수는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가 설립된 이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려면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법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라틴어는 물론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라틴어로 진행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수료해야 하고 이 과정을 다 마쳐도 실제 변호;
리뷰제목

저자 한동일 교수는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가 설립된 이래, 700년 역사상 930번째로 선서한 변호인이다.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려면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법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라틴어는 물론 기타 유럽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라틴어로 진행하는 사법연수원 3년 과정을 수료해야 하고 이 과정을 다 마쳐도 실제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는 비율은 5~6%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로마를 오가며 이탈리아 법무법인에서 일했고, 20102학기부터 2016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초급·중급 라틴어강의를 맡아 진행했다. 첫해 수업에는 24명의 학생이 수강 신청을 하였지만, 두 번째 강의부터는 수강을 허락해달라는 학생들의 메일이 밀려 들어와 67명의 학생이 수강하였으며, 이후 매 학기 서강대를 넘어, 연세대, 이화여대, 심지어 일반 청강생, 학점 교류가 안 되는 다른 학교의 학생들까지 찾아오며 200명 이상의 수강생을 기록한 수업이다. 이 책은 한동일 교수의 6년간의 강의 노트를 28개의 장으로 정리한 책이다.

 

초급과 중급의 외국어 수업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수강생이 학교 밖에서까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수강하려고 매달리게 된 것일까? 그것도 죽은 언어인 라틴어 학습이 목적인 수업인데, 취업에 바쁜 청년 실업의 시대에 실상 자격증이나 소위 스펙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강의에 대학생을 넘어 일반인까지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책 마지막 수강생들의 감사의 글을 통해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상처가 어떤 것이었고 수업을 통해 어찌 치유되었는지가 한동일 교수에 대한 감사의 내용 상당수를 포함하고 있다. 특별한 삶의 목적의식 없이 남들이 다 대학을 위해 달려가기에 멋모르고 달려갔던 청년들에게 자기 현주소 파악을 위한 훌륭한 인문학적 예시를 이 수업이 제공하였던 것이다. 신부(神父)의 신분인 한동일 교수가 가진, 라틴어와 성경에 기반한 높은 삶의 지혜와 포용력 또한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까지 이어져 온, 지식과 암기 위주의 평가 방식에 신물이 넘어오는 수강생들에게 정말 신선한 청량제의 역할을 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수업은 새로운 단어나 문장이 등장하면 단어의 어원을 설명하고 이 단어나 문장이 로마 시대에 어떤 경우에 사용되었는지 그 활용 예시를 제시하였다. 그다음 이를 강의자 본인이 직접 겪은 일화나 생각을 곁들여 설명해주고 마지막에는 수강생들이 스스로 문장에 대해 생각해볼 질문을 던졌다. 굴절어로서 라틴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와 변화를 일방적 주입이나 암기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경험과 대화를 통해 접근하여 학생 자기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하였던 것이다. 강의 평가 방식도 주목할만하다. ‘나의 인생에 대하여(De mea vita)’를 주제로 A4 한 장 분량을 적어내는 것이 중간고사의 과제인데 이는 첫 수업에 미리 알려, 수업과 평가의 방식을 짐작하게 만든다. 단답형의 정답 선택에만 익숙해 온 학생들에게 던져진 이 과제는 처음에는 그저 막막함을 느끼게 하지만 수업을 듣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자신을 파악하는 자기성찰적 기회를 제공한다. 수업을 통해 그들은 단련되며 두려워 마라(Nolite timere!)’라는 한동일 교수의 가르침처럼 자신의 자아를 자신의 이성으로 비로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표지를 넘기며 드는 두 가지 생각 중 첫 번째는 읽는 진도가 참 빠르다고 느낄 정도로 쉽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감사의 글에 실린 성인(成人), 속된 말로 인 서울(in Seoul)’ 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청년들이 왜 이 수업을 듣고서야 이런 감상과 자각을 느끼게 되었느냐는 점이다. 왜 이 세칭 우수한 재원들의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 정도의 수업과 화두를 던져줄 수 있던 수업은, 또 교사는 없었느냐는 점에 나는 아쉬움을 넘어 탄식을 느낀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타인은 나에게 목적인가 수단인가?’, ‘나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인문학적 소양을 배양해 줄 수 있는 계기는 왜 없었느냐는 말이다. 그들의 반응은 마치 이런 유형의 수업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쪽에 가깝다는 점에 나는 대체 우리나라 공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를 묻고, 또 강하게 질책하고 싶다. 중고등학교에서 다루기에는 어렵고 아이들의 인지 수준에 비해 버거운 질문이라고 당신이 반응한다면 당신은 중고등학교의 존재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저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교육으로 교육의 수준을 천박하게 낮추어 보고 있는 학부모, 교사의 문제는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무슨 과목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만 확인하는 것, 몇 등인지 물어보는 것, 친구 누구보다 앞섰냐는 것만을 확인하는 것이 중등교육의 원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나는 묻고 싶은 것이다.

 

취미와 적성에 맞춘 진로가 아니라 부모의 강요와 사회적 압박으로 선택되었던 진로였기에, 진학 후 뒤늦게 찾아온 허무와 무기력감에 취한 청년들의 실존적 허기를 한동일 교수의 이 인문학 교양수업이 채워 주었던 것이 높은 수업 인기를 낳은 배경이 아니었을까? 속칭 SKY 대학의 인기 높은 학과에 입학하고서도 의대, 치대, 수의대, 약대를 위해 재수와 반수를 거듭하는 이유가 인문학의 부재에 있지는 않을까? 조국 교수의 딸 조민 양의 의과대학 입학 과정에는 막상 분노의 감정을 공식적으로 표출하던 명문대생들이 정작 분노해야 할 사안인, 서른도 넘지 않은 한 국회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소동에는 침묵하는 이유의 원인도, 기득권층, 특권층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공정성에는 분노하지만, 그 불공정한 특권에 소속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에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 모든 배경 뒤에, 교양과 인문학의 부재가 공교육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교학점제를 통해 철학, 교육학, 심리학, 논리학, 환경 등 많은 교양과목이 개설되었지만 대부분 3학년 과목으로 편성되어 실제 자습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학교 현실은 공교육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를 생산하고 있다. 이 과목들을 자습으로만 대체한다면 학교 현장에서 교과 수업을 진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진학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자습으로 구성하는 것이 더 훌륭한 결과를 만들지 않을까? 교육기본법 제2조의 핵심 단어 3가지는 홍익인간, 인성교육, 민주시민으로 교육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대학 진학과 입시는 그저 교육의 방편, 뗏목일 뿐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교육의 본래적 목적을 고민하게 만드는 양서이다.

 
댓글 12 1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9
만들어진 신을 만나는 종교의 정원을 알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e | 2021.10.2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이번 책은 [라틴어 수업]입니다. 저자는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이기도 했던 한동일입니다. 저자는 공부가 일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하여 2017년에 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가는 그 당시에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이 써 준 추천글에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추천글 일;
리뷰제목

이번 책은 [라틴어 수업]입니다. 저자는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이기도 했던 한동일입니다.

저자는 공부가 일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을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하여 2017년에 출간한 것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가는 그 당시에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이 써 준 추천글에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추천글 일부를 인용해 봅니다.

 

라틴어는 죽은 언어라는 말도 있지만 수업에서 배운 라틴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수업을 듣다보면 어학 공부가 아닌 인문학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무엇보다 강의를 통해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연습할 수 있었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수업은 단순히 라틴어를 가르치는 외국어 강좌가 아니라 고대 로마로부터 현대 이탈리아까지 아우르는, 유럽의 역사에서부터 철학, 신학, 지리, 사회, 어학에 이르는 통합 교양강좌였다. 교재나 이론에 갇힌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다른 강의들과 달리 아주 특별한 점이 있었다. 라틴어만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로마 시대의 교육과 법, 사회 문화와 여러 제도 등을 배우면서 안목이 확 트였다. 한평생 대한민국에서만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좁은 세계관을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이 강의를 통해 내 인생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점이 이 강의를 인생의 배움터라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제자 여덟 명이 정성껏 써 준 추천글들은 저자가 했던 수업 현장의 진실한 열기를 충분히 상상하도록 해줍니다. 저자의 첫 수업을 수강했던 사람은 24명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학기에는 67명이 되고 이후에는 200명이 넘게 되어 강의실은 늘 만원이었다고 합니다. 비대면 코로나 시대 이전, 대학 현장에서 이루어졌던 활기찬 강의를 청강하는 기분으로 책을 펼칩니다. 강의에 매진하던 저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의 서문을 옮겨봅니다.

 

매일 열심히 강의 준비를 했다. 강사라는 직업은 정말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며칠 꼬박 준비를 해도 한 시간 강의를 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늘 바쁜 나날들이었고, 한 학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저자가 강의에 바친 순정이 오롯이 느껴집니다. 그 열정은 당연히 수강생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책은 한 학기를 마치면서 수강생들이 건네준 손편지와 카드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그것들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만, 동시에 저자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강의를 했는지 한껏 자랑하는 우쭐함도 읽혀집니다. 가르치는 자로서 지극히 마땅한 직분을 수행한 담대한 모습이 혹시나 희석되지는 않았을까하는 노파심이 듭니다. ‘학문 앞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는 겸손밖에 없다고 말한 저자의 본 모습과 괴리되어 보이니 말입니다. 그렇더라하더라도 당시의 강의를 생생하게 추억하기에는 안성맞춤으로 만들어진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책은 젊은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자기계발서 혹은 고상한 동기유발서, 혹은 진솔한 심리치료 서적을 방불케 합니다.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그런 사실들을 시사해 줍니다.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실패한 나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은 일종의 자만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는 나의 수많은 부분 들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 또 다른 의 여집합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집합들이 잘해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부에 지치지 않도록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조절해야 한다. 때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공부를 항상 열심히 할 수는 없다. 또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을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다. 꾸준히 자기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한다. 이것이 좋은 두뇌나 남다른 집중력보다 더 중요한 자세이다.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모른 척한다. 자신의 약점과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점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 몸이 약한 편이라 시험 기간에 공부를 몰아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매일 시간을 쪼개 규칙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을 가졌다. 몸이 약한 단점이 공부를 규칙적으로 하는 장점이 된 것이다.

 

라틴어는 로마제국의 언어였습니다. 제국이 패망한 후에는 가톨릭 교회의 공식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럽의 문화, 사상, 종교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언어입니다. 저자는 대학이나 기업이 표방하는 모토 중에 라틴어로 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우선 라틴어가 도대체 어떤 언어인지 저자가 설명하는 라틴어에 관한 배경설명들을 나열해 봅니다.

 

라틴어는 공부하기 어려운 언어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언어이다. 하지만 라틴어는 지금도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유비쿼터스, 비전, 아우디, 에쿠스, 아쿠아, 스텔라, 트라우마 등과 같은 말들이 라틴어에서 온 말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서른여섯에 라틴어를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기 위해서였다. 인문학을 통해 자신의 두뇌를 새롭게 바꾸고 싶어 했다. 다빈치는 타고난 천재들의 사고를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인문학 고전들을 라틴어 원전으로 읽으면서 묻혀 있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라틴어를 잘하지 않고서는 대학에 진학하기가 어렵다. 라틴어는 유럽의 고등학생들에게 그저 죽은 과거의 언어가 아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인 라틴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끈기라면 웬만한 공부들은 능히 해낼 수 있다.

 

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를 사람들이 잘 배우지 못한 이유는 무엇보다 문법이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법 체계를 익히고 나면 확실히 공부하는 훈련이 된다. 라틴어 공부는 평범한 두뇌를 최적화된 두뇌로 활성화시키고 사고 체계를 넓혀준다.

 

저자는 수업 첫날에 칠판에다가 라틴어 문장,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를 씁니다. 저자는 휴강을 선언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덧보태며 강의를 마칩니다. 그러한 수업 풍경 자체가 로마의 문화에 잠시 젖어보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지적 허영을 경계하라는 일침을 날리는 철학 시간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저자는 휴강하는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이 말은 사실 로마 시대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 첫날 하는 말이다. 이제 평소와 다른 잉여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니다. 생각지도 않게 생긴 이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것이다.

라틴어 아지랑이보잘 것 없는 것’, 그런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오리무중이라는 뜻도 있다. 인도 유럽어 작은 구름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을 그리스어가 차용하고 다시 라틴어가 그리스어를 수용한 것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참으로 긴 시간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아지랑이라는 단어가 억겁의 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시시때때로 그렇게 우리 마음을 보아야 한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다.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저자는 라틴어에 정통한 이탈리아 저술가가 집필한 [라틴어의 고상함에 대하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책이 소통의 중요한 도구로서 라틴어가 고상하다는 점을 설파했다고 말입니다. 라틴어가 소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언어였는지 책의 내용을 옮겨봅니다.

 

라틴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어가 참 거칠다고 느꼈다. 연장자는 나이 어린 사람을 쉽게 하대한다. 계급에 따라 말의 태도도 달라진다. 이런 언어 태도에 불쾌했던 적이 꽤 있다. 그에 비해 라틴어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는다. 수평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저자는 라틴어에서 느낀 미묘한 재미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오보에디레 베리타티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진리에 복종하라는 의미이다. ‘오보에디레는 단순한 명령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라틴어의 묘미가 드러난다. 라틴어 명령에는 능동명령과 수동명령이 있다. 여기에 사용된 오보에디레는 수동 명령이다. 수동명령을 사용하는 것은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강압에 못 이겨 순종하는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은 라틴어의 이 미묘한 구분과 차이를 나타내지 못하고 진리에 복종하라는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저자는 학문종교가 모두 닫힌 사고를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는 듯합니다. 저자는 서구 문화와 역사가 그리스도교라는 단 하나의 종교 틀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종교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은 철학이나 법학 등의 학문으로 끊임없이 접근하고 적용하면서 보충해 왔다고 합니다. 호기심을 견지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갔던 저자의 논지를 옮겨봅니다.

 

중세 시대 처음 천년 동안 교회의 권위가 정점에 달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경이 법률적 차원의 공통 규범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성경이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걸 절감하기 시작했다. 결국 중세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를 변함없이 인정하고 유념하면서도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풀고자 했다. 이것이 유럽에서 대학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점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신앙으로 가진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 역사상 종교와 신앙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른 중세 시대에서조차 성경의 가치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성경의 가치는 유념하되, 세속의 학문과 연계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중세 시대에는 하나의 교리와 신조만을 강요했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사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학과 법학이란 학문이 그리고 종교가 경직되고 닫힌 사고의 실타래를 좀 더 유연하게 풀어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우리는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신을 헛되이 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서구의 역사는 그에 대한 반전으로 끊임없이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라는 가정 하에 인간 이성으로 인간과 법, 철학과 윤리를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이를 유럽에서는 세속주의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그 여정은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인간에게 통용될 수 있는 합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땅에서, 그것도 교황청립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의 종교관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옹졸하거나 옹색해 보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라틴어와 그리스도교에 흠뻑 젖어서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저자가 밝히는 종교관이기에 어느 정도 설득되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학문종교를 동시에 심층 탐구해 온 저자가 다음과 같이 종교의 유래를 설명합니다. 귀 기울여 들어보게 됩니다.

 

윤리적 인간이 비윤리적 사회에서 고통 받고 방황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영적인 동물로서 이성적 인간이자 종교적 인간을 지향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라고 자각하고 난 뒤부터 신을 경배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이 단순히 강력한 절대자에게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지배하는 냉혹한 체제와 부조리한 가치관으로부터 고통 받는 삶 속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했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저자는 종교를 일러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원이라고 봅니다. 종교라는 그 커다란 정원 안에는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그리스도교 등과 같은 작은 정원들이 들어있습니다. 종교라는 커다란 정원 밖에는 또 자연이라는 아주 거대한 정원이 있습니다. ‘종교는 정원이다라는 견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종교란 마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정원과 같다. 여기에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종교라는 아주 큰 정원과 각각의 종교라 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이 있다. 그 안에 여러 가지 다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뿌리 내리고 있는 그 정원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큰 정원, 나아가 자연이라는 더 큰 세상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제각각의 정원들이 자기들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정원 안에서는 각각의 생각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잡풀, 잡목인 것이 없다. 더 넓은 자연에서는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것, ‘틀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는다. 지금 나는 어느 정원에 있는가?’하고 묻게 된다.

 

저자의 논지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다양한 정원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이 끌리는 정원이면 어떤 정원이든 괜찮다로 이해했습니다. 가톨릭 종교와 밀착된 라틴어를 가르치는 저자이지만 치우친 종교적 설명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편협되지 않은 종교관을 가진 저자는 라틴어 카르페 디엠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쾌락주의 철학을 끌어옵니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붙잡게나는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이다. 호라티우스가 속했던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추구한 쾌락은 정신적인 쾌락, 다시 말해서 충만한 삶과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 동양식으로 표현하자면 안분지족을 의미한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는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하여 살라는 뜻이 아니다.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욕망하는 자신을 긍정합니다. 욕망에 휘둘리는 노예가 아닌 욕망을 자신만만하게 다스리는 주인인 냥 말입니다. 그런 저자가 언급하는 라틴어가 데지데로 에르고 숨,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입니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욕망관을 지지하는데, ‘인간의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과는 다른 견해입니다. 욕망에 대한 스피노자의 견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스피노자에게 욕망이란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자연 만물이 따르는 자연법칙에서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신체에서 일어나는 충동이나 정신에서 일어나는 의지의 원천이 똑같이 욕망이라고 본다. 욕망을 없애려 하거나 억압하려고 하면 오히려 인간을 무기력하고 굴종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이성으로 인간 욕망을 지배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자신의 욕망을 타클라마탄 사막 여행에서 직시하게 됩니다.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외면하고 포기하려고 했던 공부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반드시 해내고 싶었던 욕망의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나 봅니다. 타클라마탄 사막을 여행하던 때의 저자 심경을 옮겨봅니다.

 

사실 전부터 사막에 가보고 싶었다. 왜 신에 대한 믿음, 즉 신앙은 풍요로운 땅보다 사막과 같이 거칠고 메마른 땅에 그렇게 쉽게 뿌리를 내리고, 또 뿌리를 내렸다 하면 그렇게도 깊이 뿌리박히는지 궁금했다.

사막을 여행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막 한가운데 섰을 때 인간의 시선이나 생각을 가로막는 인위적인 장애물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막에서 인간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절대 자연의 무한과 마주한다.

고대부터 수많은 인간들이 진리를 찾아, 또 신을 찾아 사막으로 갔다. 사실 아라비아 반도의 뜨거운 모래땅에서 인간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신과 조우했다. 사막의 거친 자연환경은 인간을 정화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랫길은 눈길을 걷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었다. 의식을 읽고 쓰러졌다. 응급처치를 하고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로는 줄곧 호텔에 머물렀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됐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나쁜 기억을 품고 죽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충실히 하고 싶었다. 중단했던 공부를 마치기로 결심했고 다시 로마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결국 죽을 뻔했던 타클라마칸 사막 한복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저자는 다시 공부하는 노동자가 되기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공부가 일상인 지극히 어려운 삶을 또다시 살아보기로 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자는 공부의 희열보다는 노동의 고달픔과 공부를 동일시 하는 듯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할 수도 있다. 안 그래도 힘든 공부가 더 처절한 고통으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지 않은가? 이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에는 즐거움보다 고통이 더 크다. 햇수로 따져보면 30여 년간 공부를 해왔다. 하지만 단 한순간도 편안했던 적이 없다. 물리적인 어려움이든 심리적인 어려움이든 육체적인 고통이든 늘 괴로움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공부는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로 하여금 공부의 고달픔을 뼛속 깊이 새겨지도록 했던 공부가 라틴어 공부였습니다. 저자는 라틴어 공부를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합니다. ‘언어는 공부가 아닌 습관으로 익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자가 설파하는 외국어 학습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 갓난아기가 엄마라는 단어를 인지하고 처음 발음하기까지 아기에게 그 단어를 1만 번 이상 들려줘야 한다. 아기는 엄마의 말을 통해 뇌의 용량을 늘려나가고 세상을 이해해 나가는 것이다. 아기들이 말을 배우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언어를 학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 수 있다. 바로 공부하지 않고 흡수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하다에 대한 라틴어를 설명하면서 퇴계의 경() 사상을 거론합니다. 정신으로 하는 공부가 실은 몸이 공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몸에 배도록 하는 공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라틴어로 공부하다란 동사의 원형은 스투데레이고 여기에서 영어의 스터디가 유래했다. 본뜻은 전념하여 노력하다, 갈구하며 몰두하다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노력하는 것이 공부하다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퇴계의 경 사상을 학습법에 적용하면 한곳에 몰입하여 다른 쪽으로 마음을 쓰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퇴계는 이를 학습의 으뜸 중의 으뜸으로 꼽았다. 아울러 그는 공부가 에 배도록 익히는 작업이 중요한데, 익히는 일은 어떤 것이든 하나에 몰입하는 이른바 정신 집중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저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를 설명할 때는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나오는 부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1241년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부처님 말씀에 본래 얻고 잃는 것은 없고 잠시 머물 뿐이라 했다. 불가에서 완전이란 없다. 진정한 완전이란 완전의 상태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웃고 울 일들이 일어나고 또 지나가고 그렇게 반복해가는 것이다. “완전이란 이미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라 시시각각 새로운 창조다라는 말은 그래서 생각해볼 만하다.

 

저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심정으로 사는 사람은 얼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매일 걱정에 파묻혀 잠 못 이루거나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과 근심을 훌훌 털고서 잘 웃어넘기는 사람은 표정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성정과 감정이 쌓여서 표정이 된다는 내용은 새겨두고 싶어서 옮겨보기로 합니다.

 

표정은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보고 웃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이다. 또 다른 타인에게도 웃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우리가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힘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웃음을 주는 내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저자는 라틴어 수업 첫날, 라틴어 아지랑이를 설명하면서 각자 마음 안에 있는 허풍을 직시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 주문을 책을 덮는 이 시간까지 쭈욱 마음에 품어 왔습니다.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라는 이름으로 책맛보기를 하는 저의 보잘 것 없는 허풍을 들여다보면서 말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유치한 책맛보기를 이어가는 저를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도 넌지시 건네줍니다. 책을 덮으며 옮겨봅니다

 

내 안의 유치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비난하거나 부끄러워하기보다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될까, 끝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Uwe8b86T1dk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한줄평 (732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재밌네요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e*******l | 2022.05.07
구매 평점5점
추천합니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플래티넘 c********5 | 2022.05.06
구매 평점5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거 같다.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YES마니아 : 로얄 c*******살 | 2022.04.14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3,5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