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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마음으로 바라보기 마음으로 바라보기 여덟 가지 이야기 |
저이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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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삶과 세상과 사람을 더 정확히,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깊은 시선은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펭귄이네요. 펭귄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펭귄은 비행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물개가 펭귄을 향해 “너는 날개도 있으면서 왜 날지 못하니? 네가 가진 것은 날개가 아니라 지느러미구나. 그것이 날개라면 하늘을 날아 봐.”라고 놀렸습니다. 펭귄은 비행에 성공했을까요?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았던 펭귄은 포물선을 그리며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펭귄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펭귄은 하늘을 날거라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미판다와 새끼 두 마리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별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한밤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눈 내리는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도무지 쟤를 이해할 수 없어.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냐. 제정신이라면 저럴 리 없잖아.” 강아지는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보았던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누구를 보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한 것일까요?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나무 위에 올라가 눈을 맞고 있는 어미판다를 보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미 판다의 행동이 정말 이상했습니다. 어미 판다는 눈만 내리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숲속에 일주일이나 열흘 동안 눈이 내리면 어미판다는 일주일이나 열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나무 위에만 올라가 있었습니다. 어미판다는 눈이 그쳐도 금세 나무를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쨍쨍한 햇볕에 눈이 녹아 군데군데 땅이 보이면 그때서야 어미판다는 기진맥진한 채로 나무를 내려왔습니다.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눈으로만 어미판다를 바라보고 함부로 어미판다를 조롱한 것입니다. 그들이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미판다를 바라보았다면 어미판다에게 다가가 진심을 다해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판다야, 왜 그래? 숲 속의 모든 친구들이 너보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 솔직히 말하면 내가 보아도 그렇게 보여……. 그런데 네가 괜히 그럴 리 없잖아. 네가 왜 그러는지 내게 말해줘. 너를 돕고 싶어서 그래…….” 강아지와 사막여우가 어미판다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면 어미판다는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어미판다를 바라보고 어미판다를 조롱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유난스러운 행동은 대부분 그가 겪은 지난날의 상처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강아지와 사막여우는 몰랐던 것입니다. 어미판다는 왜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요? 도대체 어미판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밖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가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당당히 걸어갑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며, 타인이 함부로 내게 던진 시선과 말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부질없이 애쓰지 않을 수 있으며 나를 쓰러뜨리려는 것들과 용감하게 맞서 싸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려운 삶의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삶의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6년 전 왜 어미판다는 혼자 울고 있었을까요?
한 명이라도 직접 가서 왜 울고 있냐고 물었다면, 이 이야기의 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위로』 후 다시 시작하는 어미 판다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삶의 언어, “마음으로 바라보기” 참 팍팍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모두 날카롭게 날이 서 있습니다. 작은 말 한 마디에도 모두가 파르르 분노합니다. 작은 글 하나에도, 작은 사건 하나에도, 시선 하나, 눈길 하나 그 모든 것에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예민한 반응이 시끄럽다 보니,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같이 동요하며 피곤합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된 걸까요? 왜 우리는 이렇게 피곤하고 힘들게 살까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지치게 만들었을까요? 아무리 ‘힐링’을 외치고, 음악을 듣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해도 우리의 삶은 쉽게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누가 말을 걸으면 피곤하고, 누군가의 말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주위를 차단하면 외롭고, 슬픕니다. 우리 모두의 외로움은 어디서 시작한 걸까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모두가 이렇게 시끄럽게 서로의 말에 반응을 하는데 왜 우리 모두는 외로울까요? 작가는 왜 우리 모두가 외로울까를 고민했습니다. 2011년 『위로』가 출간되었을 때, 이철환 작가님이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혼자 울고 있던 어미판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몇 명 독자님들이 물어오셨습니다. “왜 어미판다는 울고 있었나요?” 사실 작가님 마음속에는 어미판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 담기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미판다의 슬픔을 어떻게 전달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만약 이야기 속의 누구라도 어미 판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어미판다’ 이야기의 끝은 달라졌을까라는 점이었습니다. 위로를 위해 우리가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미판다’의 눈물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독자분들로 인해 작가는 진정한 위로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3편의 그림과 1편의 우화, 그리고 8가지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그림으로 나의 상처가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책으로 치유 받는 ‘마음치료 미술관’ 이 책을 작업하면서 편집자와 작가는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처음 만난 편집자에게 작가는 판다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보여주시면서 모든 문장을 천천히 읽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사람이 많아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카페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편집자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에서 어미판다의 아픔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이 느껴졌습니다.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편집자는 저도 모르게 선생님의 공감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원고를 몇 번이나 보면서, 원고를 작업하는 모든 사람들이 조용히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긴 하는 걸까? 우는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슬픔에 공감할까요? 내 슬픔에 지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바라보지도 못한 것은 아닐까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까요? 울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누구는 다른 사람이 우는 모습 따위는 눈에도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누구는 그 이유를 오해하고 위로받을 자격도 없다고 비난합니다. 누군가는 내 아픔이 너무 크고, 눈앞에 놓인 과제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막여우도, 파란토끼도, 펭귄도 모두 그랬습니다. 고슴도치는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깊이 다른 사람의 슬픔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작가는 『위로』에서 우리의 아픔은 지나친 ‘경쟁’으로 모두가 ‘타인’이 되고자 꿈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2017년 우리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슬픔에 빠져서 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아픔에 지쳐 넘어진 사람들을 봅니다. 나의 ‘자존감’을 세우다 상처 준 타인을 만납니다. 나의 꿈 때문에 그냥 스쳐가면서 상처를 준 사람들도 만납니다. 돌아서면 사실 나도 그렇게 울고 있었습니다. 타인의 말에 상처입고, 그냥 지나친 타인 때문에 울고 있는 나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까요? 작가는 말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우는 것도, 상대가 우는 것도 우리 모두가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상대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의 ‘눈’이 그저 바라보는 데에만 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말들은 ‘나의 외침’이지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왜 우리 모두가 이렇게 외롭게 울고 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 위로받지 못한가에 대해서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위로받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마음으로 바라보기』에는 지난 5년간 작가가 그려왔던 163편의 그림이 들어있습니다. 작가는 상처받았을 때, 혹은 외롭고 지쳤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 마음속에 찾아오는 위로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심리적인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나 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를 위해 생각한 것은 “그림”이라고 말했습니다. “글과 색상과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고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린 그림과 색상과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었고 삶의 방향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림으로 상처를 치유 받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원래 이 그림들을 그리면서 작가는 제목을 ‘마음치료 미술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독자 분들이 느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슬픔에 공감하며 받는 따스한 마음, 마음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슬픔도, 외로움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8가지를 가슴에 새기고 다시 생각해보면 됩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잠시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내 멋대로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않고 그에게로 다가가 진심을 다해 묻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상대방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여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나를 정성껏 보살피며 나를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가시’를 나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가진 ‘가시’를 긍정할 수 있을 때 상대방의 ‘가시’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편견 없이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의 상황을 바라보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째서 ‘마음의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할까요?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밖에서 정한 기준을 따라가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발을 맞추며 당당히 걸어갑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긍정할 수 있으며, 타인이 함부로 내게 던진 시선과 말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부질없이 애쓰지 않을 수 있으며 나를 쓰러뜨리려는 것들과 용감하게 맞서 싸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려운 삶의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삶의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 이 책을 위해 163장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과 이야기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을 통해 저는 인간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저는 내내 ‘마음으로 바라보기’에 대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삶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깊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다가 제 영혼을 흔드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껍데기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이 세 문장을 만난 이후로 ‘마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저는 비로소 중요한 것을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보았더니 모두 여덟 개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여덟 개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으로 바라보기’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책 속에 담은 한 편의 우화(寓話)와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여덟 가지 이야기’는 단지 저의 경험이나 상상력을 통해서만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책을 통해 공부한 인류의 탁월한 경험과 생각 중 제 삶을 통해 공감되고 제 것으로 내면화 된 내용을 저의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삶으로 공감되지 않은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삶과 세상과 사람을 더 정확히,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깊은 시선은 혹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마음으로 바라보는 법 여덟 가지 이야기’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어 제가 만났던 ‘판다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판다 가족’의 우화(寓話)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짧지 않은 ‘판다 가족’의 우화를 위해 149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화 뒤에 다시 12장의 그림이 나옵니다. 책장을 넘기시다보면 글 없이 그림만으로 흘러가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글 대신 그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