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7년 1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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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28g | 128*188*30mm |
ISBN13 | 9788984373396 |
ISBN10 | 8984373397 |
출간일 | 2017년 1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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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28g | 128*188*30mm |
ISBN13 | 9788984373396 |
ISBN10 | 8984373397 |
새로운 생은 언제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서 시작된다! - 2017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 전 세계 27개국 출간! 『세 갈래 길』은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사는 세 사람을 하나로 엮어낸 장편소설이다. 세 인물은 최악의 빈곤부터 치유가 어려운 질병까지, 각자의 삶에 나타난 장애물을 마주하고 있다. 『세 갈래 길』의 원제인 ‘La tresses’는 ‘세 갈래로 나눈 머리카락을 서로 엇걸어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 혹은 ‘세 가닥을 하나로 땋아 엮은 줄이나 끈’을 의미한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세 가닥의 삶을 엮어 하나의 세계를 짜내는 데 완벽하게 성공하며 독자와 언론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 프랑스 출간 직후 일평균 2500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현재까지 프랑스에서만 약 25만 부 판매, 27개국 해외 판권 계약을 마쳤다. 이례적으로 높은 판매량과 평단의 호평, 해외 출간 계약은 프랑스 대선 직후 출간된 책이라는 시기적 악조건을 이겨낸 터라 출판계는 물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편한 길처럼 보일 때, 다른 삶을 선택하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삶에서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여전함을 깨닫는다. |
책 제목이 '세 갈래로 땋은 머리'로 번역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문화도 종교도 인종도 다른 세 여성의 삶이 머리카락으로 연결되는 결말의 의미가 더 잘 담기지 않았을까.
영화처럼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이야기를 따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세 주인공의 삶에 푹 빠져 인도와 시칠리아, 캐나다를 몇번이고 오갔다.
국가를 막론하고 여성의, 약자의 삶은 고단하다. 어렵고 험난하다. 하지만 힘을 내야한다. 그래야만 한다.
삶의 의미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순간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삶의 의미가 싹을 틔운다.
저마다의 연대 속에서 삶의 가치가 꽃을 피운다.
■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 인생은 그럴 만한 사정과 까닭들로 가득하다. 그 덕분일까? 모든 삶은 한 편의 이야기다. 아름답기만 하면 좋으련만 모진 삶도 많다. 고통과 슬픔에 짓눌려 한(恨)이 서리기도 한다. 허나 삶을 통째로 기쁨이나 행복, 슬픔이나 불행으로 단정지을 순 없다. 삶은 어느 노래의 제목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격정의 연속이다.
여기 처절한 사연에 몸부림치는 세 여인이 있다. 우리의 어머니이고 자매이자 아내이며 딸이다. 가혹한 처지에 내몰린 그들 삶의 굴곡은 숨이 막힌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같다. 한번 밟으면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는 덫 같다. 만약 내가 그런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이겨냈을 거야!'라며 호기를 부릴 순 있겠지만, 그들처럼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다.
제도의 탄압을 피해 인간의 존엄성을 갈구하는 스미타, 통념의 속박을 무릅쓰고 공동체의 존속을 사수하는 줄리아, 편견과 이기주의의 억압을 거부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사라. 참 고무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그들의 삶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처참하기 그지없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처참함의 끝에서 희망을 찾는다. 고단한 삶이지만 고무적인 이유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내가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나는 처참했다. 세상이 밉고 억울했다. 후회와 증오가 뒤섞여 살아야 할 이유를 기억해낼 수조차 없었다. 일종의 억압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섰다. 이제는 내 삶도 희망을 본다. 후회하지만 후회스럽지 않다. 내 삶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사연을 품게 됐다.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삶의 의미가 싹을 틔운다.
■ 저마다의 연대 속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억압, 차별 등은 직접 당사자의 감당치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를 둘러싼 공동체의 문제는 아닐까? 스미타의 남편은 그녀의 탈출을 반대한다. 줄리아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의 도전을 의심한다. 사라의 동료들은 그녀의 침몰을 즐긴다. 체념과 의구심, 이기주의는 슬픈 사연을 더 아프게 한다. 누군가의 사연 속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숨어 있는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책임감은 사명감을 발휘한다. 나는 그런 책임감을 '연대의식'이라 부르고 싶다. 거대한 이념의 횡포로부터 우리를 지켜내는 힘이다. 이는 '모두가 하나'여야 한다는 통합주의가 아니다. 자칫 전체주의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작은 연대'다. 미약하고 불완전하지만, 현실적이고 개방적이다. 소소하지만 단단한 결속은 오히려 강력하고 완전하다.
저마다의 사연을 오로지 제 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연대하는 이유다. 한 자루의 화살은 약하지만 세 개를 묶으면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거센 바람에 대나무는 부러지지만 갈대는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연대는 미약함을 모아 위대함을 이루어낸다. 세 여인이 희망을 품고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사연도 있었다.
그들의 삶은 숱한 사연들 가운데 혼재하는 파편일 뿐이지만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비효과처럼 알아차릴 순 없지만 분명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연대도 그렇다. 작은 연대는 나비의 날갯짓이다. 그 날갯짓은 어딘가에서 날갯짓을 시작한 또 하나의 작은 연대 덕분일지도 모른다.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에 저마다의 사연들이 위로받고 힘을 낸다.
나의 사연이 삶에 중요한 가치를 품고 후회스럽지 않은 자취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작은 연대 덕분이었다. 나는 어떤 이들에게 기댔고 그들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같이 아파해주고 위로해주고 희생해주었다. 나는 이제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일 수 있게 됐다.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고 나 자신을 증오하지도 않는다. 나는 거창한 세상이 아닌 작은 연대 속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간다.
저마다의 연대 속에서 삶의 가치가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