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오로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이 체험하게 되리라고 확신했던 그 최후의 날들, 그러니까 죽은 자들이 다시 일어나고 세상의 심판이 이루어지게 될 그 최후의 날들을 얘기하고 있어. 〈부활〉이라는 경악스러운 사건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내쳐진 사람들과 선택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얘기하고 있지. 불가능한, 그렇지만 실제로 일어난 무언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거야. --- p.13
나는 누군가가 기독교로 돌아설 때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든 문장이, 그를 위해 존재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저마다의 문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먼저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내려놓아라. 이제부터 인도하는 것은 더 이상 네가 아니다. 그리고 일단 이 첫걸음을 떼고 나면, 어떤 항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크나큰 안도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이게 바로 〈포기〉라는 것이며, 내가 간절히 바랐던 것은 바로 이것, 나 자신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었다. --- p.57
루카는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 - 바오로, 티모테오, 리디아, 심지어 예수까지 -
을 그들의 조그만 신흥 종파 밖에서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고,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달리 이 점을 가지고 고민했으니, 그가 글을 쓰는 대상은 이 종파 외부의 독자들이었기 때문이다. --- p.243
그는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운 좋은 사람들의 집단, 이 땅의 삶이 행복하므로 다른 삶을 원치 않는 그 운 좋은 집단에 속하지 못했다. 그는 다른 집단, 불안한 이들, 우울한 이들, 진짜 삶은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이들의 집단에 속했다. 우리가 상상하기에, 고대에 이들은 어둠과 침묵에 내몰린 소수자들이었으며, 그들이 권력을 얻어 그것을 오늘날까지 지켜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우리의 음울한 친구 바오로 덕분이었다. --- p.322~323
이게 좀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루카의 머릿속에서 아직은 모호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프로젝트가 떠오른 그 밤에, 그는 바오로를 생각했고,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바오로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치, 갈릴래아와 유대 땅에서 살았던 그리스도의 자취를 따라가 보고, 그분을 실제로 알았던 사람들을 찾아보는 일이 바오로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복음을 배신하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 p.378~379
아니, 난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지 않는다. 나는 한 인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돌아왔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그걸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 자신도 한때 그걸 믿었다는 사실이 날 궁금하게 만들고, 날 매혹시키고, 날 불안하게 하고,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어느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내가 더 이상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이들보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던 나 자신보다 더 잘 안다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두둔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쓴다. --- p.389
산은 산처럼 보인다. 그 길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그것은 더 이상 산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길 끝에 서면 그것은 다시 산처럼 보인다. 그것은 산이고 , 그 산이 보이는 것이다. 지혜는 산 앞에 서서 다만 이 산을 보고, 다른 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삶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p.453
이 왕국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이것은 어떤 이가 자기 정원에 던져 놓은 아주 작은 겨자씨와도 같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는, 어느 날 큰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들에 둥지를 틀게 된다. 너희들은 내게 묻는다. 하지만 그 왕국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하고. 그것은 손으로 붙잡을 수 없다. 왕국이 여기 있다! 왕국이 저기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그것은 너희들 가운데, 너희들 안에 있는 것이다. --- p.464
그렇다면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 나로 하여금〈그렇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대답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간단히 그의 심연과도 같은 의혹 앞에서 〈혹시 누가 알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478
루카는 도적들과 창녀들과 부역자들과 세리들을 좋아했다. 어떤 성서학자가 루카의 이런 성향에 놀라며 말했듯이, 그는 〈타락한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을 선호했다. 예수에게도 이런 성향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예수의 이런 측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복음서 기자마다 저마다의 전문 분야가 있고, 루카의 그것은 그 자신 의사이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의사는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병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 p.637
그녀는 내 앞에 딱 버티고 서더니, 미소를 짓고, 두 팔을 하늘로 번쩍 들어 올리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빤히 쳐다본다. 마음껏 즐기라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격려하는데, 그 시선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한지, 얼마나 천진하고, 얼마나 신뢰에 차 있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기쁨으로 가득한지,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춤추고, 예수님은 나의 친구라고 노래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이제는 다른 파트너를 고른 엘로디를 쳐다보고 있는 내 눈에 눈물이 솟구쳤고, 나는 이날, 왕국이 무엇인지 잠깐이나마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p.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