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작 부인이 도착한 직후 우람하고 뚱뚱한 남자가 들어왔다. (…) 사실 피에르가 응접실의 다른 남자들보다 좀 더 크긴 했지만, 그 두려움은 오로지 그를 응접실 안의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드는 지적이면서도 소심하고, 예리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1권 1부 2장」중에서
맞은편에 앉은 나타샤는 열세 살 소녀가 이제 막 첫 키스를 나누고 사랑하게 된 소년을 볼 때와 같은 얼굴로 보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이따금 피에르를 향하곤 했다. 이 재미있고 발랄한 소녀의 눈길을 받을 때면 그는 이유도 알 수 없이 괜히 웃고 싶어졌다. ---「1권 1부 15장」중에서
둘씩 짝을 이룬 이들이 자리를 잡고 악사들이 음을 맞추는 동안 피에르는 자그마한 숙녀와 나란히 앉았다. 나타샤는 더없이 행복했다. 어른과, 그것도 외국에서 돌아온 남자와 춤을 추는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 앉아서 마치 어른처럼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권 1부 17장」중에서
“자, 이제 작별이구나!”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손에 입을 맞추게 하고 아들을 안았다. “한 가지를 기억해라, 안드레이 공작. 네가 죽는다면 나는, 이 늙은이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는 뜻밖에도 침묵에 잠기더니 갑자기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네가 니콜라이 볼콘스키의 아들로서 제대로 처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수치스러울 것이다!” 그가 날카롭게 외쳤다. ---「1권 1부 25장」중에서
이 순간 그에게는 나폴레옹을 사로잡은 모든 관심거리가 몹시 초라해 보였다. 자신이 보고 헤아리게 된 드높고 공평하고 선한 하늘에 비하면 그 저급한 허영과 승리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는 자신의 영웅이 너무도 졸렬해 보였다. ---「1권 3부 19장」중에서
“소냐! 소냐!” 다시 첫 번째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니! 너도 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 정말 아름다워! 눈을 떠 봐, 소냐.” 그녀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아름다운 밤은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었어.” ---「2권 3부 3장」중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타샤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아나톨일까, 아니면 안드레이 공작일까? 이 풀리지 않는 문제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안드레이 공작을 사랑했다. 자신이 그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러나 아나톨도 사랑했다. ---「2권 5부 13장」중에서
이날 전장의 소름 끼치는 광경은 그가 자신의 뛰어난 점이자 위대함이라고 여겨 온 그 정신력을 압도해 버렸다. (…) 누렇게 뜨고 부석부석하고 괴로워 보이는 얼굴, 흐리멍덩한 눈, 불그레한 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폴레옹은 자기도 모르게 포성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내리깔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병적인 울적함에 빠져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3권 2부 38장」중에서
백작 부인은 안드레이 공작이 여정에서 딸아이의 팔에 안겨 죽을 수도 있다는(의사의 말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생각에 두려웠지만 나타샤에게 반대할 수 없었다. (…) 볼콘스키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에 드리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다른 모든 예측을 가로막았다. ---「3권 3부 32장」중에서
하지만 삶의 환영, 삶의 물그림자에만 신경을 쓰는 평화롭고 화려한 페테르부르크 생활은 예전처럼 계속 흘러갔다. 이런 생활의 흐름 속에서 러시아 국민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위기를 인식하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4권 1부 1장」중에서
모스크바의 화재를 보면서도 프랑스군에게 복수하겠다고 맹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다음 분기 월급, 다음 숙영지, 종군 매점의 여주인 마트료시카 등에 대해 생각했을 뿐이다. ---「4권 1부 4장」중에서
“형제들! 이보게!” 늙은 병사들이 코사크들과 경기병들을 얼싸안고 울면서 외쳤다. 경기병들과 코사크들이 포로들을 에워싸고 서둘러 어떤 이에게는 옷을, 어떤 이에게는 부츠를, 어떤 이에게는 빵을 권했다. 피에르는 그들 가운데에 앉아 흐느꼈다. 입 밖으로 한마디도 낼 수 없었다. 그는 자기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병사를 얼싸안고 울면서 입을 맞추었다. ---「4권 3부 15장」중에서
자유,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충만하고 절대적인 자유, 그가 모스크바를 떠나 첫 번째 휴식지에서 난생처음으로 자각한 자유가 회복기 동안 피에르의 영혼을 가득 채웠다. ---「4권 4부 12장」중에서
피에르의 광기는 예전처럼 그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개인적 동기?그 자신이 사람의 미덕이라 부르던?를 기다린 게 아니라,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차올라 그가 이유도 없이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할 분명한 동기를 찾아냈다는 사실에 있었다.
---「4권 4부 19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