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에게 몇 안 되는 순수한 취미다. 순수란, 아무 도움 안 돼도, 혹은 손해를 보더라도 도저히 그만 좋아할 수가 없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 절대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늘 생각해왔다. 순수한 취미는 그 선을 넘어선 안 된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떻게든 글이 쓰고 싶어진다. 카메라에 미처 다 담을 수 없었던 것을 적어두고 싶어진다. 그래서 카메라에는 담지 못하는 이야기만 잔뜩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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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나는 남들보다 몇 배는 소심하다. 이런 압력에는 완전히 약하고 어조가 강할수록 위축된다. 때문에 여권을 달라는 거인 직원의 명령에 흠칫 놀라 몸이 굳었다. 내 긴장이 전해졌는지 후쿠도메 씨도 고바야시 씨도 서둘러 여권을 찾아, 고바야시 씨가 세 사람 것을 모아 상납금처럼 거인 직원에게 내밀었다. “각자 하나씩!” 거인 직원이 또다시 소리쳤다. 나는 한층 움츠러들어 고바야시 씨의 손에서 내 여권을 빼앗아들고 “여, 여, 여기……” 하고 거의 넙죽 엎드릴 것 같은 기세로 내밀었다. 그들은 우리 여권을 모아들고, 눈빛을 번득이며 객실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나갔다.
--- p.67~68
이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서른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따분한 자전거 소풍이 유일한 대모험이었던 네팔 여행은 그전의 여행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뭔가를 시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친절한 누군가가 어딘가로 데려다주기를 기다려도 달라지는 건 없다. 이 앞에 뭐가 있는지 몰라도,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혼자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반드시 있다. 그래도 걱정할 건 없다.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주위를 돌아보면, 누군가가 반드시 내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여행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사실을 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알아간 것은 서른을 넘어서부터였다.
--- p.92
여행에 매력을 느낀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소설은 이미 쓰고 있었지만, 의뢰 받는 일이 너무 적었다. 시간은 있는데 돈은 없는 매우 일반적인 젊은이의 상황. 그래서 필연적으로 싸게 먹히는 여행을 하게 됐다. 싸구려 숙소에 묵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돈이 적게 드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레스토랑보다 값싼 노점에서 밥을 먹는다. 체재 시간에 비례해 이동 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캐리어가 아니라 데이팩을 택한다. 짐은 최대한 적게 가져간다. 옷은 현지 조달. 데이팩도, 몸에 걸치는 옷도, 나 자신도 자연스레 더러워진다. 브랜드 상점에 가고 싶지만, 어쩐지 개처럼 쫓겨날 것 같아 가까이 갈 수가 없다.
--- p.136
“이 도시에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흑맥주 공장이 있어. 이 냄새는 거기서 풍기는 거야. 낮에도 물론 나지만, 아무도 몰라. 밤이 되면 냄새가 한층 진하게 느껴지지.”
맥주 냄새 때문에 밤만 되면 술에 취한 것 같았다. 인적이 전혀 없는 밤길도, 그래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 분명 낮보다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많은 유령도 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공장에서 흘러나온 맥주 냄새에 가볍게 취해 있을 테니.
--- p.214
말레콘 거리가 통행금지인데도, 여전히 밴드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던 적이 있다. 분명히 축제라고 생각했는데, 정치 집회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노래 부르며, 춤추며, 정치에 개입하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여기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추구하는 감각을 여행자인 나는 머리로는 그럭저럭 이해해도 몸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쇼를 봐도, 정치 집회를 봐도, 아니면 마을에서 우연히 밴드 연주를 봐도, 완벽하게 동화될 수 없었다. 나는 노래에 목마른 적도, 춤이 고팠던 적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피부 깊숙이 알지 못해서 쓸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기뻤다. 미국 달러 여행자가 ‘알지 못했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