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9년 11월 25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454g | 125*190mm |
ISBN13 | 9791162730652 |
ISBN10 | 116273065X |
KC인증 | ![]() 인증번호 : |
발행일 | 2019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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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76쪽 | 454g | 125*190mm |
ISBN13 | 9791162730652 |
ISBN10 | 116273065X |
KC인증 | ![]() 인증번호 : |
*매니페스토: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 1.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왜 구태여 침묵했는가 자유주의 송편 모순과 함께 걸었다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마르크스‘도’ 읽어야지” 2.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 ― 仁 미워하라, 정확하게 ― 正 삶이라는 유일무이의 이벤트 ― 欲 해도 안 되는 줄 이미 알았던 사람 ― 禮 우유부단함은 중용이 아니다 ― 權 실연의 기술 ― 習 완성을 향한 열망 ― 敬 알다, 모르다, 모른다는 것을 알다 ― 知 3.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 자성,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통 ― 省 “빡센 삶, 각오는 돼 있어?” ― 孝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 ― 無爲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지배당하는 거다 ― 威 너의 존재는 거짓이 아니다 ― 事 지구의 영정 사진 찍기 ― 再現 돌직구와 뒷담화의 공동체 ― 敎學 4.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 새 술은 헌 부대에 계보란 무엇인가 ‘유교’란 무엇인가 *에필로그 |
김영민 교수는 그의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글은 거칠었지만 품격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가 다음에 또 다른 책을 쓰게 된다면 그의 글쓰기가 달라지지 않기를 기대했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라고 한다. 신문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책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글들이었다. 새삼 신문을 다시 구독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어느 신문에 어떤 칼럼을 쓸지 모르기에 한낱 상상에 그칠 뿐이다.
이 책은 [논어]에 대한 에세이라고 한다. [논어]라면 공자의 말을 기록한 책으로 대표적인 동양고전으로 꼽힌다. 또한 [맹자], [중용], [대학]과 더불어 사서의 하나로써 전통시대부터 우리의 말과 행동을 규정짓기도 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논어] 혹은 그 주역서를 읽으며 뜻을 새기고 삶의 지혜를 구하고자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젊어서는 멋모르고 읽은 [논어]이기에 다소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알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는 과연 [논어]를 어떻게 읽을까? 호기심과 함께 궁금증이 일었다.
먼저 ‘만병통치약을 표방하는 고전해석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동양고전에 대한 상대적으로 정확한 지식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전시하는 지적권위에 대한 화급한 욕망, 사회인들의 전방위적 멘토가 되어보겠다는 허영, 그리고 무엇보다 지성계에 광범위하게 뿌리 내린 허위의식이다.’(10쪽)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은 아마 [논어]를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조금은 삐딱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동양고전을 읽을 때 역자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전을 해석할 수 있다면 별개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역자의 해설과 그의 해석이 반영된 번역물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읽는 [논어]에 대한 기대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어서 저자는 ‘고전 텍스트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다.’(17쪽)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니, 그럼 이제까지 우리가 읽어온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대로 된 텍스트를 제대로 읽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논어]는 알다시피 공자의 글과 말을 후대의 제자들이 편집한 책이다. 그러기에 [논어]에 나와 있는 글들은 공자의 생각이 맞기도 하겠지만 서술한 사람들의 기대치와 사상 또한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논어]라는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자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논어]의 주제에 대해 읽기 전에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를 살펴본다. 그렇게 공자를 읽으면 [논어]에 드러난 공자의 입장이 당대의 산물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춘추시대라는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72쪽)한다고 말한다. 춘추시대는 전국시대와 달리 주나라 왕실에 대한 존왕양이의 명분을 우선시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차츰 명분보다는 실리, 도덕보다는 현실을 중시했기에 그 시대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또 공자를 읽으면서 그의 침묵에 주목한다. ‘다른 사람이 침묵을 선언할 때, 진짜 침묵하는 사람은 침묵하겠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있다. 침묵을 선언하는 사람은, 선언하는 만큼 침묵하지 않는 셈이다.’(32쪽) 논어속의 공자가 불필요한 과장을 비판하고 삼가 말하기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그의 의도된 침묵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공자를 읽은 저자는 이제 본격적으로 텍스트를 읽는다. 그는 [논어]를 관통하는 여러 주제들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라는 제목아래 仁(인), 正(정), 欲(욕), 禮(예), 權(권), 習(습), 敬(경), 知(지)라는 주제 속에서 공자의 모습을 읽는다. 저자는 공자를 두고 기적과는 인연이 멀었던 사람, 신이 아니라 인간에 불과했던 사람, 결핍을 느꼈기에 과잉을 꿈꾸었던 사람, 안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에 ‘매료된 이들은 텍스트를 남기고, 남겨진 텍스트는 상대를 불멸케’(107쪽)하기에, 필멸자로서의 육체를 가진 공자는 사라졌지만 텍스트를 통해 편집된 공자의 페르소나는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불완전함을 아는 것은 물론, 해도 안되는 줄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실패하기를 선택한 공자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읽어낼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하나의 분류는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점에서’란 제목으로 省(성), 孝(효), 無爲(무위), 威(위), 事(사), 再現(재현), 敎學(교학)의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정치공동체에 대해 공자와 [논어]의 편집자들이 가졌던 생각을 읽는다. 공자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정치공동체와 후대인들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정치공동체의 그 모습이 달랐기에 [논어]는 해석과 재해석의 단계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논어]가 다양한 이들에 의해 기록된 파편들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취합된 불균질한 텍스트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논어]는 공자가 등장하는 많은 고대 문헌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논어]가 고전의 지위를 누리게 된 다음부터 [논어]의 중심성이 역사적 사실이 되었고, [논어]는 어느 순간부터 내용 때문이 아니라 유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한 텍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논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 양자로부터 거리를 둔 어떤 지점에 설 때야 비로소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의 핵심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268쪽)라며, 그 지점이 바로 이 책 논어 에세이가 서있고 싶은 지점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유교라는 말로 지칭하건, 유학이라는 말로 지칭하건, 그 대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불균질하게 전개되어온 전통이기에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유교본질 같은 것은 없지만, 유학이라는 말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도맷값으로 넘기는데 남용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논어]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가 구상하고 있다는 논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전작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글쓰기에 반했다. 글의 품격이란 말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인문 에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동서양은 물론 2500년 전 춘추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논어]의 주제를 찾아 시공을 넘나드는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비로소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철학이나 사상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고 잘 알지도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렇지만 어떤 텍스트를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었느냐가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는 그의 말을 가슴에 담고, 다시한번 [논어]를 읽어봐야겠다. 모처럼 책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철학자의 시선으로 <논어>를 읽고, 그 내용을 소재로 다양한 생각을 펼쳐낸 에세이집이다.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논어의 내용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저자가 바라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그동안 <논어>의 번역본은 적지 않지만, 대체로 주자의 주석본을 근거로 번역과 해설을 첨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책의 편제나 구성이 조금씩 다를지라도, 전반적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논어>를 특정한 해석에 틀에 가두기보다 공자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통해 이해하고, 그 내용을 오늘의 관점에서 음미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유가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논어>는 공자의 어록을 중심으로 엮어낸 책으로, 그 내용에는 공자와 제자들이 펼쳐내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한 경우가 많아, 대화의 전후 맥락을 통해 그 의미를 탐구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대체로 주자의 주석본을 대상으로 강독과 번역이 이뤄져 왔다. 때문에 해석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대신, 주자의 해석에 일방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개인적으로 처음 읽을 때는 주자의 상세한 주석으로 인해 내용 이해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면서 주자의 주석이 공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기존의 <논어>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졋던 것 같다. 때문에 번역이 아닌, 에세이라는 형태로 <논어>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실상 이 책의 내용은 이미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 정독을 한 바 있기에, 나로서는 두 번째로 대하는 내용들이다. 당시에는 2주에 한 번씩 연재되어, 집중해서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논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저자는 주자가 구축한 공자의 ‘신화적’인 모습에 갇히지 말고, ‘인간 공자’의 면모에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모두 24개의 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서문에 해당하는 ‘메니페스토’와 4개의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저자는 ‘생각의 시체를 묻으러 왔다’는 제목의 서문(메니페스토)에서,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고, ‘<논어>의 언명은 수천 년 전에 발화된 것’이기에 ‘그 언명에 의해 원래 의미를 부여하던 맥락들 역시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오래전에 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어떤 생각이 과거에 죽었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함을 통해 비로소 무엇인가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기에,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 하겠다. 이러한 저자의 독법이야말로 <논어>를 하나의 ‘경전’이 아닌 '텍스트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 시각을 획득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논어> 자체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대인들이 간취해야할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어 짚어보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침묵의 함성을 들어라’라는 제목의 첫 번째 항목에서는 모두 4개의 에세이를 통해서, 영화나 책들을 통해서 상기되는 문제들을 <논어>의 문제의식과 연결시켜 논하고 있다. ‘실패를 예감하며 실패로 전진하기’라는 두 번째 항목에서는, <논어>에서 언급되는 유가의 중요 개념들을 저자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예컨대 ‘인(仁)’은 ‘신의 가호에 회의를 품게 된 시대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경(敬)’은 ‘완성을 향한 열망’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식이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키워드는 모두 8개로, 두 개를 제외하고 ‘정(正)’ ‘욕(欲)’ ‘예(禮)’ ‘권(權)’ ‘습(習)’ ‘지(知)’ 등이다.
세 번째 항목 역시 7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서술되고 있는데, ‘회전하는 세계의 고요한 중심에서’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다. 도가(道家)의 핵심적인 사상으로 표현되는 ‘무위(無爲)’라는 표현이 ‘위령공’편에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를 ‘하지 않는 것이 하는 것이다’라는 제목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성(省)’ ‘효(孝)’ ‘위(威)’ ‘사(事)’ ‘재현(再現)’ ‘교학(敎學)’ 등이 여기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스크랩과 대조해 보니 나머지 원고들은 이미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이지만, ‘돌직구와 뒷담화의 공동체 교학’이라는 내용은 이 책에만 수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아무래도 공자와 제자들과의 학문이라는 문제가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첨가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성급한 혐오와 애호를 넘어’라는 제목의 네 번째 항목에는 모두 3개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논어>와 고전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내용들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유교’라는 단어가 오늘날 ‘유용한 동시에 무용한 단어’라 평가하고, ‘사람들이 어떤 때 이떤 이유로 유교라는 말을 환기하고 사용하려 드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에필로그’를 통해서, <논어>를 역사 속의 텍스트로 인정하고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동학(同學)들과 <논어>를 읽으면서 다양한 해석서들에 나타났던 아쉬운 점을 인지하고 있기에, 나 역시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차니)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쩐지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책, 그러나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책, 어쩐지 한 권쯤은 집에 사다 놓아야 할 것 같은 책, 그러나 자기보다는 자식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안다고 주장하고 싶은 책, 그러나 사실 잘 알지도 못하는 책 - p.241 ~ p.242
책을 읽다가 제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뜨금 했습니다. 오랫동안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논어" 완독이고 몇 년째 계속 "논어" 번역본을 예스24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했다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두로 시작한 책 속 문장들이 논어를 읽으려는 이유 중 하나였는데 정확히 제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고전의 지혜"라는 논어를 완독해야 제 독서 목록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 논어 완독을 꿈꾸고 있지만 제 부족한 소양을 탓하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논어와 관련된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논어 완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공자의 언명을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만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마침 작년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김영민 교수가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출간해서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자의 매니페스토부터 박웅현이 <책은 도끼다>에서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다."라고 한 것처럼 제 머릿 속에 도끼 자국을 남기 듯 제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던) 논어와 공자에 대한 생각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전의 지혜가 우리가 현대에 당면한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논어』를 왜 읽는가? 고전을 왜 읽는가? 실로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고 해서 노화를 막거나, 우울증을 해결하거나, 요로결석을 치유하거나, 서구 문명의 병폐를 극복하거나, 21세기 한국 정치의 대답을 찾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현대인의 소외를 극복하거나, 자본주의의 병폐를 치유할 길은 없다.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 매니페스토 중에서(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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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논어를 만병통치약으로 포장해서 팔고 있는 서점의 자기계발서들과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을 감옥이라고 칭하며 요즘의 세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논어』의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저자는 수천 년 전에 발화된 논어를 "살아있는 고전의 지혜"라며 춘추전국시대와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오랜 시간과 맥락의 간극을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무덤을 텍스트text라고 부르고 텍스트가 죽어 묻히는 자리를 콘텍스트context라는 저자는 과거에 이미 죽은 생각은 『논어』라는 텍스트에 묻혀 있고, 그 텍스트의 위상을 알려면 『논어』의 언명이 존재했던 과거의 역사적 조건과 담론의 장이라는 보다 넓은 콘텍스트로 나아가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동아시아 정치사상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통해 공자와 논어에 대한 좀 더 발전된 시각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공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공자는 노나라 사람으로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 제후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혼란의 시기 춘추전국시대. 부패한 시대를 개탄하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꿈꾸며 제자들과 현실 정치에 참여하려 했으나 실패한 사상가였습니다. 공자의 발언들은 갑작스럽게 해낸 말들이 아니라 이미 선례가 있는 입장이나 경향을 나름대로 소화해 냈고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당대 지성인의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공자는 제자의 뒷담화를 할 줄 알았고, 죽기 오래 전부터 신에게 기도를 드렸으며, 원수에게 잘해 줄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갚음을 해주라고 말했던 유골호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인과 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공자는 삶이라는 유일무이한 이벤트에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권력 밖에서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를 꿈꾸었지만 오랜기간 후대 주석가들에 의해 편집 과정을 거쳐 무결점의 성인으로, 공자가 꿈꾸었던 국가가 아닌 주석가들이 꿈꾸었던 국가의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당시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이상, 고난, 실패, 무능했던 모습들을 통해 공자는 우리와 같이 보통 인간에 불과했다는 저자의 시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논어』는 공자가 등장하는 많은 고대 문헌 중 하나였으나 후대에 의해 고전의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논어 관련 자기계발서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고전의 주석이라는 형식을 빌려 책들을 출간하게 됩니다. 저명한 사회과학자 시다 스코치폴의 "새 와인은 새 통보다는 이미 있는 통에 담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 것처럼 유명하고 익숙한 텍스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주석을 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논어』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하거나 현대 사회의 느닷없는 해결책으로 숭배하지 말고 『논어』를 매개로 해서 텍스트를 공들여 읽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제안합니다. 텍스트를 공들여 읽고 스스로 생각한 독자 덕분에 『논어』가 고전의 지혜로 살아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김영민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논어 프로젝트 네 가지 저작 중 첫 번째로 출간된 논어 이야기입니다. 책 속 곳곳에 영화배우 전도연을 닮았다는 김영민 교수의 위트 있는 글들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논어』 이야기에 균형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리뷰를 쓰기 위해 재독을 하고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았던 주요 문장들을 여러 번 읽어보면서 머리로는 이해를 했으나 제 부족한 소양 탓에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한 『논어』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대로 리뷰에 옮겼는지 모르겠습니다.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음에 출간 예정인 김영민 교수의 논어 번역 비평을 기대하게 됩니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사회평론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