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환이는 학교에 가면서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목이 빠지도록 가게를 쳐다보곤 했다. 이상한 가게였다. 간판 글씨가 자꾸 바뀌었던 것이다.
첫날, 그 가게를 보았을 때는 분명히 흰 바탕에 까만 글씨로 ‘세상의 모든 라면’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월요일에 보았을 때는 노란 바탕에 번쩍번쩍 빛나는 글씨로 ‘먹는 게 남는 라면집’이라고 바뀌어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수요일인 오늘 아침에 보았을 때는 간판 모양까지 세로로 바뀐 데다, 초등학생이 쓴 것같이 비뚤비뚤한 글씨로 ‘세상에서 제일 싸고 맛있는 라면, 못 먹으면 후회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환이는 마침내 결심했다. 지난번에 컵라면을 사고도 삼천 원이 남아 있었다. 라면값이 얼마나 비쌀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한번 가게에 가 보기로 했다. 오늘은 학교 수업이 빨리 끝나서 ‘영어 동화책 읽기’ 학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식당에 들르기에 다시없는 기회였다.
(중략)
“야, 약국 옆에 가게 하나 새로 생겼잖아. 간판도 자꾸 바뀌고.”
환이는 진혁이에게 간판 모양이랑 그 위에 적힌 글자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진혁이는 그런 가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가게를 못 봤다고? 그렇게 큰 간판이 달려 있는데?”
환이는 초조하게 주머니에 있는 삼천 원을 만지작거렸다. 손에서 나온 땀 때문에 돈이 축축해져 갔다. 진혁이의 말처럼 그 가게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 p.15~20
마침내 환이의 떨리는 손이 가게의 손잡이를 잡았다. 조심, 조심.
“빼애액----!”
그런데 환이가 손잡이를 잡자마자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우렁찬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환이는 지나가는 사람이 볼까 싶어서 얼른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기적 소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온 뒤에도 계속해서 울렸다. 하얀 연기가 앞을 가로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환이가 다시 나가려고 재빨리 뒤돌아서 손잡이를 잡았다.
“아악!”
환이는 소스라치며 비명을 질렀다. 둥그렇고 딱딱했던 손잡이가 진짜 사람 손으로 변해서 환이의 손을 덥석 잡았던 것이다.
“들어왔으면 먹고 가야지, 어딜 가려고 그래?”
손잡이가 환이의 손을 굳게 잡고 말했다. 쪼글쪼글하고 따뜻해서 더 기분이 나빴다.
“삼천 원에 라면이 무제한이야. 진짜로 그냥 갈 거야?!”
손잡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목소리로 능글맞게 말했다.
환이는 있는 힘껏 손잡이, 아니 손을 뿌리쳤다. 그러고는 무심코 뒤돌아보니 어느새 연기가 걷혀 있었다. 뿌옇던 가게 안이 이제 환하게 보였다.
--- p.27~30
‘뭐야,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작아지고 있잖아?’
처음에 가게 문은 환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컸는데, 어느새 반으로 줄어들더니 곧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이윽고 생쥐 한 마리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작아지더니 이내 엄지손톱만큼, 그다음은 새끼손톱만큼 작아져 버렸다. 가게 문에 그려져 있던 사탕과 젤리 그림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환이는 눈을 마구 비볐다.
“이제 어쩌니? 너는 이렇게 크고, 문은 저렇게 작은데.”
아줌마가 놀라는 환이를 보면서 킬킬 웃었다.
“환아, 겁내지 말고 문을 똑바로 쳐다봐.”
또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용기가 났다. 환이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아줌마에게 말했다.
“아줌마, 제가 지금은 돈이 없어요. 집에 가서 엄마한테 말씀드릴 테니, 저 좀 내보내 주세요.”
아줌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이제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뭐? 엄마한테 말을 한다고? 네가 돈도 없이 가게에서 과자를 잔뜩 먹었다고 말하면, 엄마가 뭐라고 할까?”
환이는 아줌마가 비웃자 화가 났다.
“뭐라고 하긴요? 우리 엄마가 지금 엄청 걱정하고 있을 거니까 보내 주세요!”
“하하하하하하! 뭐? 너희 엄마가 걱정을 한다고? 너, 설마 엄마가 정말로 너를 걱정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줌마가 너무 어이없어 하며 웃어 대는 바람에, 환이는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뭐라고 대답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꼬맹아, 너를 그렇게 걱정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네가 좋아하는 건 아무것도 못 하게 하냐?”
컵라면을 싱크대에 부어 버리고, 과자를 빼앗아 가고, 만화책을 보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전부 환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저 아줌마 말이 맞으면 어쩌지?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 p.7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