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스타급 애니메이션 작가로 유명한 김상진(Jin Kim)은 한국에서 미대에 입학하려 했으나 색약 판정을 받아 낙방했다. 대신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일러스트 담당자로 일하다가 색약문제로 퇴사했다. 어렵게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업했으나 작품 제작 중 망하고 말았다. 그는 낙심하지 않고 색약을 차별하지 않는 해외취업에 도전했다. 월트 디즈니 입사 후 십여 년이 지나 [볼트(Bolt, 2008)],[라푼젤(Tangled, 2010)], [겨울왕국(Frozen, 2013)] 같은 흥행 대작의 캐릭터 디자인을 연이어 담당하며 자신의 기량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우리 주변에는 색각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유전적인 문제이고, 일부는 사고로 색각을 잃은 경우도 있다. 사소한 오해에서 색각이상자의 능력을 무시하고 거부한다면 잠재력이 풍부한 인재를 놓치는 큰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간의 시지각은 누구라도 완전하지 않다. 남이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에 우리의 시각을 맞추자.
---「색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중에서
개에게 빨간 사과와 초록 사과를 동시에 주면 어떤 색을 좋아할까? 적록색맹인 개는 빨강과 초록, 두 가지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빨간 사과는 황토색으로 보이고, 초록 사과는 약간 갈색으로 보인다. 둘의 밝기가 같다면 똑같은 황토색이다. 개는 인간보다 더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눈으로 구분하기보다는 먼저 냄새를 맡을 것이다. 개는 명암, 즉 밝은 정도를 인식하는 능력에서도 인간의 절반 수준만 구분할 수 있다. 더구나 개는 인간보다 디테일 구분 능력도 뒤떨어진다. 미세한 선을 구분하는 테스트에서 개는 인간보다 약 4~8배나 둔하게 나타났다. 그만큼 시력이 나쁘다는 의미다. 고양이도 근시인데 개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의 적록색약이다. 그래서 고양이 장난감은 파란색, 노란색, 갈색, 초록색 계열로 준비하면 구분하기 더 편하다. 그 대신에 인간보다 야간 시력과 동체 추적 능력이 발달했으므로 어둑어둑한 환경을 만들어 움직이는 장난감으로 놀아준다면 더 좋아할 것이다.
---「개와 고양이의 색채 감각」중에서
성차별과 성폭력은 범죄다. 다른 범죄보다 개인의 인격을 모독하고 파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문제다. 성별에 따라 고정색 관념이 강할수록 성차별이 뚜렷한 사회이다. 이에 대항하여 컬러 자체는 강압적인 성폭력에 대해 저항하는 무기로도 활용된다. 지난 2018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된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시상식에 많은 배우와 영화인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등장했다. 가슴에는 영어로 ‘ Time’s Up’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배지를 달았다.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내자는 의미다. 이들은 최근 시작된 ‘미투(Me Too) 운동’의 연장선에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연대감을 표시했다. 참석자 대부분이 입은 검은색 옷은 행사장을 장례식장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성차별과 성폭력의 죽음을 요구하는 컬러 저항이었다.
---「컬러의 성별, 성 소수자의 컬러와 저항」중에서
다채로운 컬러를 억압하는 것은 결국 다양한 개성과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다. 인류는 원래부터 컬러를 인지하고 사용하는 본능을 가지고 진화했다. 붉은 피를 보면 심박 수가 빨라지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무의식적인 반응도 색상 인식에서 출발한다. 푸른 자연에서 살거나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희망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통점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과 희망을 억눌러왔던 통제의 권력은 역사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컬러까지 억압해왔다. 그 결과 아직도 많은 사람이 화려한 색감이나 컬러를 사용하는 데에 겁먹고 있다. 집안에 빨간색 벽이나 장식이 있으면 무당집 같다거나, 보라색 옷을 입은 남자를 보면 동성애자라는 편견을 보이기도 한다. 형광 분홍색은 젊은 여성들도 주저한다.
화려한 색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다는 태도도 알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다수 권력에 대한 공포와 컬러 억압의 전통에서 비롯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불필요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우리 스스로를 구속하는 장치다. 형광 연두색 옷을 입고 주황색 차를 탄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이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짧은 인생인데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컬러가 있다면 죽는 순간에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자유롭고자 하는 자, 컬러를 무기로 들어라.
---「컬러를 허락하라」중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진다’는 표현은 아마도 빛의 입자설에 기원을 두고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2014년 SF 영화[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서는 빛이 파장에서 입자로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쿠퍼(Cooper)의 우주선이 블랙홀 가르강투아(Gargantua)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중력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창밖을 흐르던 빛은 입자로 바뀌어 마치 모래처럼 쏟아진다.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을 통과하며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던 주인공은 혼잣말을 반복한다. “어둡다. 모든 것이 검다.” 영화에서 가르강투아를 감싼 둥그렇고 누런 빛의 흐름은 마치 황천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상징과 같다. 왜냐하면 블랙홀을 통과하여 도달한 시공간의 매트릭스 속에서 주인공은 실체가 없는 유령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은하계에서 날아온 컬러」중에서
노란색을 가장 많이 쓴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다. 특히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Arles)로 이주하여 그린 풍경화와 정물화에는 항상 노란색이 가득 차 있다. 노란 해바라기, 노란 밀밭, 밤하늘의 노란 별과 마을의 불빛들까지 그의 화폭에는 노란색이 자주 쓰였다. 고흐가 왜 그렇게 노란색에 집착했는지를 분석하는 의견도 여러 가지다. 친하게 지내던 의사 가셰(Paul Gachet) 박사가 처방해준 약의 부작용으로 모든 사물을 노랗게 보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아니면 정신착란의 전조 증세로 세상을 노랗게 보고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추측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흐가 자주 마시던 술 압생트(Absinthe)의 독성 때문에 색각에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당시 화가들이 즐겨 마시던 싸구려 독주(毒酒)였던 압생트에 포함된 튜존(Thujone이라는 성분이 뇌세포를 파괴하며 환각을 일으킨다고 알려지면서 고흐를 포함한 많은 예술가가 환각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사회문제로 비화된 환각 성분 때문에 결국 압생트는 수십 년간 생산이 금지되었다가 1981년부터 안전한 성분만으로 다시 시판되기 시작했다. 고흐의 여러 병세 중에서 시지각에 문제가 생겨 세상을 노랗게 본다는 황시증(黃視症, Xanthopia)은 색시증(色視症, Chromatopsia)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압생트의 원료가 되는 쑥 성분에 포함된 산토닌(Santonin) 독성의 중독으로 발생하기 쉬우며 무채색의 물체가 노랗게 보이고, 노란 사물은 더 샛노랗게 보이는 증세이다.
---「노란 색의 화가, 고흐」중에서
파란색은 고귀하다. 안료 자체가 귀해서 흔히 만들 수 없었던 보라색은 최상류층의 상징과 같았다. 종교 지도자의 성스러운 흰색과 검은색도 고고한 색이었다. 그러나 파랑만큼 광범위하게 예술가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은 색도 드물다. 파란색이 고귀했던 이유도 역시 좋은 품질의 안료를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부터 전통이긴 했지만 르네상스 천재 화가들이 그렸던 성모 마리아는 모두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고귀한 성모의 상징색이다. 파란색을 내는 안료에도 여러 재료와 등급이 있었다. 가장 좋은 안료는 발색이 선명하고 오래 보존되는 성분이다.
---「아티스트가 사랑한 블루」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기존 IT 산업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길을 제시한 혁명가이며 천재적인 사업가다. 그런 그에게는 검은 터틀넥 셔츠로 상징되는 몇 가지 이미지가 필요했다. “나는 예술가처럼 창의적이며 수도승처럼 엄격하고 반항아처럼 평범함을 비웃고 있다.”라고 말이다. 검은 옷은 이렇게 서로 다른 속성을 분명하고 세련되게 드러내는 문화적 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창의적인 사람들과 예술가들은 블랙을 즐겨 입어왔다. 블랙의 시크함과 섹시한 느낌을 알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옷장에 검은 터틀넥을 하나 추가하여 창의적이고 진지한 혁명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창의적인 사람들은 블랙을 입는다」중에서
표지판의 색과 글꼴이 제각기 다르면 곤란하다. 신호등과 표지판 주변에는 서로 섞여서 헷갈릴 만한 색상이나 사물이 배치되면 안 된다. 여름에 초록색 나뭇잎과 초록색 표지판이 뒤섞여 있다면 카메라 센서 시스템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주의를 요구하는 장애물에 칠하는 노랑-검정의 사선 무늬와 같은 표식도 선명해야 한다. 도로 가장자리에 불법 주차된 차량과 인도를 점유하는 적치물도 자율 주행 시스템에는 곤란한 요소이다. 먼 미래에는 인도를 따라 로봇이 사람과 나란히 걸을 것이다. 인간에게 쉽고 편안한 환경이라면 로봇에게도 불편이 작다. 요란한 입간판이나 광고물의 현란한 색채는 사람에게도 공해이지만 로봇에게도 인식의 장애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환경과 편안한 컬러는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 트렌드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세상의 조건이기도 하다. 더 늦기 전에 미래의 도시 환경을 예측하고 계획해야 한다. 세상은 컬러로 만들어졌다. 인간과 로봇이 서로를 인식하고 협업하기 쉽도록, 도시 환경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색채 계획이 필요하다.
---「자율 주행 자동차와 로봇을 위한 도시의 컬러」중에서
회색분자(灰色分子)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에는 자주 쓰이지 않지만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회색분자로 지칭되는 사람은 기회주의자에다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민주화 진영이든 권위주의 진영이든 불분명한 입장의 상대를 비난하기에 적합한 단어였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회색분자’라고 불쾌하게 내뱉으면 곧장 싸움으로 휘말리기에 십상이었다. 회색은 이처럼 불분명한 색으로 여겨졌다. 동 · 서양을 막론하고 틈만 나면 홀대받아왔던 색이다. 그래서일까? 회색은 종종 우울해 보인다. 독일어에서는 우울한 하루를 말할 때 회색으로 비유한다. 변화도 없이 침체된 일상도 ‘회색의 일상(Grauen Alltag)’이라고 한다. 막스 뤼셔(Max L?scher)의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회색은 흥분하는 흰색과 가라앉는 검은색의 중간에서 요동치는 심리를 나타내는 색이다.
---「균형의 색 그레이」중에서
컬러는 색상뿐 아니라, 명도와 채도를 포함한 톤의 조절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활용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일상에서 색을 잘 사용하면 생활이 좀 더 윤택해지고, 외모의 장단점을 색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보자. 포스터 디자인 구성을 할 때에는 헤드 카피 주변의 이미지들은 채도 값을 일반적으로 떨어트리는 것이 좋다.
---「컬러매직 지각효과의 응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