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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7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60g | 138*203*15mm
ISBN13 9788954444644
ISBN10 895444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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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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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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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금을 빨아들였을 때 난 나란 사람의 본성을 깨달았다. 마치 수영장 깊이를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잠수한 기분이었다. 곧 숨이 막혀 물 위로 올라왔지만 난 더 깊은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난 더 깊이 갈 수 있었고 더 혼자일 수 있었다.
--- p.14

내가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건 어린왕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왕자라 부르는 건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기의 왕국을 갖고 있어서다. 나는 나팔꽃처럼 소매가 벌어진 흰 셔츠와 그런 셔츠를 입은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 p.21

저는 다만 제가 처음 지위를 지니던 순간에 대해 풀리지 않은 궁금증이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을 뿐입니다. 왜 그 대상이 유파고인지는 앞에서 말씀드렸죠. 저는 유파고의 죽음이란 생각을 만났고 그 생각은 저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 생각은 여자였으며…….
--- p.49

유파고, 계속 보고 있죠?
응, 보고 있어.
그게 궁금해요. 유파고가 날 보고 있는지.
이테가 말했습니다. 저는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ㅅㅅ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누군가를 위해 악수하는 것은 우정입니다. 저는 이테를 위해 저 자신과 악수했습니다. 온전히 학습용으로요.
--- p.80

‘말아먹다.’
나는 부모 없이 자란 초년운을 지나 집안을 말아먹는다는 무당의 저주를 피해 과학의 물리 법칙 세계로 도망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아먹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어 연구실 조교로 내 젊음을 말아먹었다. 내가 김밥집에서 김밥말이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내 인생을 말아먹는 것을 피하려 택한 일종의 방어수단이었다. 사주에선 그런 걸 액땜이라 한다.
‘말아먹는 걸 피하고 싶으면 뭐든 일단 말아라.’
--- p.100

나는 내 배꼽 아래에 집중했다. 레사는 꼭 그곳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다. 숨은 온몸으로 마시며 온몸으로 내보내는 거라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마실 때는 부푸는 풍선처럼 내쉴 때는 쪼그라드는 풍선처럼.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음과 양, 물리와 둘리, 비냉과 물냉, 우리의 트윈베드.
--- p.123

죽지도, 그렇다고 살아 있지도 않은 미아라는 존재는 시간이 갈수록 꽁꽁 얼어붙었다. 불확실함과 모호함이 냉동실 밖으로 냉기를 뿜어댔고 급기야 그 냉기는 부부의 침실로 침입해 두 사람의 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 p.135

물고기 파비앵은 조여오는 얼음의 세계에서 조그맣게 모여 있었다. 그 녹색 점들을 보자 그는 문득 미아가 사라진 후 자신이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59

― 있어요?
나는 가끔 여자에게 대답하고 싶었다.
(있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중에서
--- p.173

그러나 나는 비록 내 쓸모가 소품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소품은 소품의 성실함이 있으며 잘 닦인 소품이라면 언젠가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에 매달려 시간을 흘려보냈다.
--- p.176

“숨기는 만큼 외로워지는 거야.”
세준은 비밀이 많은 동생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 p.195

어머니는 죽는 것만큼이나 사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다. 불을 보면 너무나 두려워 그 두려움이 죽고 싶은 마음마저 삼켜버린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 p.218

“난 예쁜 애들만 골라 죽였어. 몸에 흉터가 있거나 못생긴 애들은 그냥 풀어줬어. 예쁜 애들을 죽여야 사람들이 더 끔찍해하니까.”
--- p.239

“동물이건 사람이건 영혼이 없기는 똑같아.”
삼촌은 홍이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삼촌은 영혼도 없고 부활도 없으며 죽어서 가는 천국도 없다고 했다.
“그래도 지옥은 있을 것 같다. 천국은 몰라도, 지옥은 있을 거야.”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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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당신은 이 소설들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는 읽을 수 없다. 이 책과의 만남이 편안하고 유쾌한 경험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한번 닿으면 뇌리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얼음의 문장과 마취제도 없이 몸속을 휘젓는 그로테스크의 칼날을. 사람이 살아 있는 한 어떻게든 풍기고야 마는 생의 질긴 악취를. 다정한 공감이나 한 방울의 위로 대신, 세상의 어둠 속에서 미량의 빛을 포집하기 위해 확장되는 예민한 동공을. 작가가 제기하는 이의들?보편적 인식 앞에 송곳니를 드러내는 그 지독한 질문들 한가운데 던져진 당신은, 손쉬운 치유나 희망이나 화합이 보이지 않음에도 끝내 좌절에 매몰되지 않는 인물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악수를 청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 구병모 (소설가)
그렇게 미지의 방정식의 답을 구하는 매일의 과정이 훨씬 더 우리의 삶에 가깝다. 주어진 방정식의 고정된 값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수 X가 되는 것. 자신의 정체성 숫자를 스스로 만들고 자신의 몸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정식. 운명이 아니라 여정으로서의 삶. 저들이 확정해둔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관계성과 수행성을 충실히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되는 삶. 김멜라의 소설은 방정식의 답을 이렇게 아름답게 써냈다.
- 김건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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