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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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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94g | 128*188*20mm
ISBN13 9788965964117
ISBN10 896596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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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있을 때는 깜빡 나 자신이 잘나졌다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거리를 내려다본다는 우월감은 물론이거니와 스파이위성에서조차 감시할 수 없는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쾌감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 무척 부끄러워진다. 하잘것없는 유리창닦이 주제에 이게 무슨 생각인가 하고.
--- p.28

한 번 더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직선만으로 구성된 강철과 콘크리트 덩어리는 무척이나 폭력적으로 보였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몇 집인가의 불빛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철벽의 요새라고 여겼던 건물이 지금은 오로지 무기질의 감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부인의 집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그녀의 집을 콕 찍어 구별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 p.60

언젠가 창을 닦고 있어도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날이 오게 될까? 그리고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노부인에게 부탁받은 기록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좀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 같았다.
--- p.103

“베르사유궁전에 가본 적 있어요?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건, 호화찬란한 샹들리에나 한껏 꾸며놓은 거울의 방이 아니라 입구에 틀어놓은 비디오였어요. 그걸 보니까 궁전을 너무나도 넓게 만들어놓은 바람에 왕은 거처하는 동안 거듭해서 방을 작게 만드는 개축을 했다는 거예요. 웃기는 이야기지요? 그래도 무척 솔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왕이든 서민이든 인간으로서의 크기는 별반 다르지 않잖아요.
--- p.118

나도 혼자 사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대학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문득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바로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이대로 죽을 때까지 아무하고도 친해지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 p.131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보상받는 사람은 아주 일부다. 그렇다면 죽은 듯이 살고 있는 내 쪽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와 내 동창들 사이의 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멀어져버린 것은 확실하지만 그건 분명히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 p.148

그 손끝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따뜻했다. 애초에 다친 일이 없는 데도 왠지 상처가 아무는 느낌이 퍼졌다. 손끝은 조용히 이마 위를 이동해갔다. 정말은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지요. 피 같은 건 나지 않았지만 괜찮아요. 당신이 아는 누군가의 경험은 당신의 경험이기도 해요. 아팠네요.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했군요. 우스꽝스러웠겠어요. 그건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 p.169

강 건너의 빌딩군보다 훨씬 밝은 빛이 ‘창’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몇몇 얼굴과 장소가 생각났다. 그중에는 ‘창’에 기록 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제 평생 만나지 못할, 만나기는 커녕 기억에서도 사라져버린 사람도 있었다. 이케마쓰. 뎃페이. 요시다 선생님. 아이코 씨. 미쿠 짱. 야마얀. 왓키. 가노. 모두 어디 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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