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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장 인터넷 속의 ‘나’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5장 엑스터시
6장 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2

지아 톨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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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a Tolentino

1988년생. [뉴요커] 기자. 텍사스에서 성장했고 버지니아주립대학을 졸업했다. 미시건대학에서 예술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헤어핀]의 객원 편집자였고 [제제벨]에서 에디터로 일했으며 [뉴욕타임스 매거진], [피치포크]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다. 현재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다. 현시대의 문화적 균열을 지적 열정과 뛰어난 문장력과 명민한 사고력으로 파고든 이 빛나는 데뷔작은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파리 리뷰]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에 이름을 올렸다.
번역가이자 작가. 달리기와 자전거를 사랑하고 각종 스포츠 중계와 미드,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챙겨 보며,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배우는, 좋아하는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건강한 자기중심주의자’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단순히 ‘라디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라디오 작가가 됐다. 겨우 메인 작가가 될 무렵 아이를 가지면서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번역을 시작해 10년이 넘어가면서 점차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번역가로서 만나온 단어들과 그에 관한 단상들을 쓴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번역가이자 작가. 달리기와 자전거를 사랑하고 각종 스포츠 중계와 미드,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챙겨 보며, 틈틈이 그림도 그리고 피아노도 배우는, 좋아하는 것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건강한 자기중심주의자’다.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단순히 ‘라디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라디오 작가가 됐다. 겨우 메인 작가가 될 무렵 아이를 가지면서 방송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번역을 시작해 10년이 넘어가면서 점차 인정받는 번역가가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자신만의 글을 쓰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번역가로서 만나온 단어들과 그에 관한 단상들을 쓴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로 처음 ‘지은이’로서 독자들을 만났다. 두 번째 책 『오늘의 리듬』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현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했으나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여전히 서툰 어른 생활을 헤쳐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옮긴 책으로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 『케어』 『다만 죽음을 곁에 두고 씁니다』 『센 언니, 못된 여자, 잘난 사람』 『트릭 미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인종 토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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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488g | 135*210*20mm
ISBN13
9791190955089

책 속으로

인터넷에서 더 나은 버전의 나, 더 진실한 나를 보여주고자 하는 꿈은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갔다. 한때 우리는 인터넷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이제는 이것에 팔다리가 묶인 신세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그 사실을 의식한다. 연대와 공감을 약속했던 플랫폼들은 군중 속의 고독을 유발한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했으나, 이제 이 자유라는 것의 가장 큰 잠재력은 얼마나 잘못 사용될 수 있는가뿐인 듯하다.
--- p.28, 「1장 인터넷 속의 ‘나’」 중에서

나는 한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불운의 양에는 한계가 없고,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썼다. 이렇게 동시에 발생하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수용할 만큼 우리의 심장을 넓어지게 해주는 가이드북이 없고, 우리는 시시한 것과 심오한 것을 분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없다. 인터넷은 무언가를 아는 능력은 극적으로 증가시켰지만 무언가를 바꾸는 능력은 그 상태 그대로다. 아니, 어쩌면 우리 눈앞에서 쪼그라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인터넷이 우리 손에 들려준 것은 쏟아지는 비극 앞에서 비통해하다가 냉랭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클일 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지나친 참여가 우리를 점점 더 무감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 p.61, 「1장 인터넷 속의 ‘나’」 중에서

때는 바야흐로 리얼리티 쇼의 전성기라 할 만했다. 이 업계의 암울한 이면이 자신을 서서히 드러내기 전의 비교적 순수한 시대였다고 할까. 리얼리티 쇼가 아직 새로운 타입의 맞춤 출연자, 즉 실리콘과 각종 약품을 이용한 카메라에 잘 받는 얼굴과 체형의 인간을 창조하기 전이었다. 자연스러운 성격이나 개성이 대본 없는 텔레비전 안에서 괴상하게 편집되고, 그들의 나머지 생활이 인스타그램에서 변비 차를 협찬받거나 지역의 삼류 클럽에 돈을 받고 출연하는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이 장르는 아직은 신선한 편이었다. 프로그램 밑에 깔린 개념은 21세기의 기술과 문화를 끌고 가던 것이기도 했다. 즉 무엇이든 팔릴 것 같은 환경 안에서 평범한 사람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내가 계약할 때만 해도 유튜브 채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지도 않았고 소셜 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리지도 않았다.
--- p.75,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중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전형적인 십 대 판타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리얼리티 쇼는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의 다양한 자기기만을 실현하기 위해 깔아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티 쇼는 평범한 당신이 세세하게 관찰되고, 진지하게 해석되고, 어떤 사람인지 정의될 수도 있다는 꿈이다. 당신의 삶 자체가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꿈, 당신이 거리를 걷는 장면은 영화 속 한 장면이 되고 당신에게 맞는 사운드 트랙이 흐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꿈이다. 이 프로에서는 어른들이 우리를 위해 하나의 세상을 건설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캐릭터로 분류했다. 이제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에는 어쿠스틱 발라드와 팝 펑크 음악이 적절히 삽입될 수도 있다. 우리의 정체성에는 명백한 서사적 역할이 주어진다. 나르시시스트들의 판타지가 드디어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드타운에서 함께 와인을 마실 때 프로듀서인 제스는 말했다. “리얼리티 쇼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 있어. 사람들은 계약서에 서명해. 대부분 다 유명해지고 싶어 하거든. 진짜 카다시안보다 더 나은 카다시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우리 핸드폰에 깔린 앱들을 봐. 모두가 관객을 갖고 싶어 하고, 또 관객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 p.82,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중에서

역사적으로 이상적인 여성은 여성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여긴다고 교육받은 모든 일을 추구해왔다. 가정 살림이라든가 외모 관리, 남성의 찬사, 공손한 태도를 위해 노력했고 다양한 형태의 비보수 일을 군말 없이 맡아왔다. 이상적인 여성이란 개념은 쥐꼬리만 한 개성 정도만을 인정한다. 이상적인 여성은 언제나 자기의 의지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고 믿는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다정다감한 성품에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인 “가정의 천사”가 되고 싶다고 믿었다. 1950년대에도 이상적인 여성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다정다감하고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였으나 여기에 가정용품 소비자로서의 힘이 하나 더해졌다. 최근 몇 년간은 어떠할까? 그녀는 자신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 더 완벽해지고 이 세상과 발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면, 직업과 여가를 통해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이상적인 여성은 값비싼 유기농 주스, 부티크 운동 클래스, 피부관리 습관, 그림 같은 여행이라는 휴가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그 안에 행복하게 남아 있기로 한다.
--- p.113,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중에서

주류 페미니즘은 소위 “몸의 긍정”이라 불리는 운동에 앞장서왔다. 이는 어떤 사이즈의 옷을 입건 모든 여성의 미모를 인정하기로 실천하면서 미적인 이상을 다양화하자는 운동이다. 늦었지만 반가운 변화이고 긍정적인 면이 무척 많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한다. 미모의 정의를 보다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도 매우 감사해하고 있다. 이는 평범한 얼굴들이 일상적으로 사진 찍히는 문화에 의해 공식화된, 미모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는 개념에 기초한다. 이 밑에 깔린 기본 가정은 모든 사람에게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며, 모두가 점점 더 아름다워질 수 있고 스스로 그렇다고 느끼도록 하는 일은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러나 왜 우리 문화는 그 반대 방향을 상상하지 못할까? 즉 미모의 중요성을 축소시키는 방향, 미모가 덜 중요해지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 p.135, 「3장 언제나 최적화 중」 중에서

그날은 아마도 자기기만의 시작이었거나 종말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여전히 동화 속 소녀들에게 나를 투영했지만 무언가 확실히 달라졌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린 진정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던 대로 나라는 사람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천국 같은 여름 방학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텍사스 햇살이 네모난 그림을 그리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던 시절 그리고 이미 복잡한 여성 캐릭터가 된 청소년기에도 “복잡한 여성 캐릭터”라는 표현 같은 건 듣지 못했던 그날들이 진심으로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동화 속 소녀들은 모두가 씩씩하고, 어른 여주인공들은 모두 억울해한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이후에 명확해져버린 어떤 사실이 싫다. 이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것과 배제하는 것, 여성들의 용감함과 아픔이 문학에 너무 집중적으로 표현된 것이 싫다. 실제 세상은 여성이 이 모든 감정을 경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 p.162,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중에서

어른이 되면서부터 소설 속 여주인공의 세계에서 나를 찾기가 머뭇거려진 이유는 이 관계가 상호적이지 않으리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에서 조 마치를 보지만 이 세계의 조 마치들은 내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다. 가끔 백인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만약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배우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백인 친구들은 마치 마트의 한 복도를 전부 차지한 진열대에서 시리얼을 고르듯이 비슷비슷한 연예인들을 데리고 온다. 다채롭고 미묘하게 다른 팬톤의 색감처럼 금발, 갈색 머리, 빨강 머리 친구들은 자기와 닮은 캐릭터들을 다양한 선택지에서 고른다 - 장애 유무나 체형으로까지 고를 수는 없다 - 반면 나에게는, 대략 5년 전에 나왔던 영화에서 아시아계 조연 역할을 번갈아서 했던 세 명의 여배우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물론 요즘 출간되는 현대 소설에 나처럼 생긴 여성들도 등장하긴 한다. 지하철이나 저녁 파티에 꽂아놓는 장식품처럼 나오거나 그 주인공 남녀의 백인성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성실함으로 무장한 캐릭터로 나오기도 한다. 여성이 인간의 조건을 대표하는 어떤 상징으로 보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여성의 조건을 대표하는 상징도 아니었다. 더 최악은 문학 속에서 여성이 처한 조건 - 백인이자 억압당하는 조건 - 은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영역에서 차단당했다. 여주인공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여성들이 최대한 잘해봐야, 그러니까 구조적 억압을 최소한으로 받는다 해도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의해 파괴된다는 점이다.
--- p.206,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 중에서

일요일이면 나는 정체된 고속도로를 기어가다시피 하는 자동차의 뒷자리에 순둥이 남동생과 얌전히 앉아 어두운 예배당에서 우리의 영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준비했다. 영적인 문제는 단순하고 확고하게 느껴졌다. 나는 나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고 저주받고 싶지 않았다(이 순서는 뒤바뀔 수 있다). 나는 구원받고 싶었고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신을 믿는다는 건 대체로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일, 가끔은 재미있기도 하고 가끔은 사적이고도 완벽한 떨림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아동기와 기독교는 선과 악을 너무나도 명확하고 깔끔히 정리해준다. 특히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그 모든 성서 속 우화와 시편과 전쟁 이야기를 접하면 강도는 더 심해진다. 성서에서는 천사들이 우리 집 문 앞까지 온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물로 바친다. 물고기들은 몇십 배로 불어나고 도시는 활활 불탄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피, 개구리, 종기, 메뚜기, 흑암 등의 순서로 줄줄이 이어지던 재앙들은 내 머리에 고정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잔혹한 폭력성에는 절대적인 안전이 따라오기도 한다. 종교적 전능과 신비라는 만족스러운 장막 아래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확실한 그림이 있었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하면서 내게 이 복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축복받았다고 느꼈다. 황금빛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 오후, 끝이 안 보일 만큼 너른 들판을 자전거로 쌩쌩 달리다 보면 신성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스케이트장에서 빙그르르 돌면서도 저 높은 곳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 p.214, 「5장 엑스터시」 중에서

하지만 여전히 그때마다 나는 성스러운 기분을 느낀다. 치유된 것 같은, 종교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는 위험할 정도로 대담한 기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체 무엇이 다를까? 당신의 세계는 일렁이는 파도의 아름다운 떨림처럼 재구성된다. 당신의 영혼은 눈부시고, 섬세해지고, 한계라고는 없어진다. 당신은 스스로 고갈되는 느낌 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의 가장 좋은 부분을 내줄 수 있음을 이해한다. 이것이 바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이아몬드 같은 빛이 내 주변에 무릎을 꿇은 신도들의 살갗에 떠다니는 어두운 예배당에서 예수님의 자녀가 느끼는 기분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거의 헐벗은 스물두 살의 내가 몸에는 낮의 온기를 머금고 바람에 머리를 나부끼면서 내 앞에 영원히 펼쳐진 것만 같은 분홍빛 노을을 바라볼 때 느꼈던 기분이 아니었나. 나는 여기 오기 위해 살아왔어. 나는 타락했고 미미하지. 나는 측량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해. 그래도 구원을 받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열일곱 살 때 친구 방에서 처음 엑스터시를 하고 끈적끈적한 밤거리로 미끄러지듯 걸어 나갔을 때, 나는 내 몸의 무게를 전혀 실감하지 못했다. 마치 교회에서 처음 배웠던 그 진실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즉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무슨 일이 생기건 간에 내 안에 혹은 내 밖에 있는 그분의 은혜가 나를 끌어내줄 것이다. 계시의 본질은, 다시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한, 내 앞에 드러난 사실을 믿을 필요도 없다.
--- p.238, 「5장 엑스터시」 중에서

시장 친화적인 페미니즘의 날개 위에 올라와 있는, 개개인의 성취가 정치적 체제 전복의 한 형태라는 개념은 복음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안에 깃든 가장 큰 속임수는 이것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 사기꾼 중 누군가에게 일부러 사기를 치기 위해 나선 사람은 거의 없고, 아마도 누군가는 그녀들이 이 사기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녀는 그저 성공하고 싶었고, 남성들이 너무도 쉽게 가져가는 도구를 얻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녀들은 그것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가? 문제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페미니즘은 언제나 그 근본에서 집단을 우선시하는 페미니즘과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오늘날 여성이 어떤 이상을 붙잡고 믿고 이용하고 차용하지만, 그 방식이 실제로는 이상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성공 생태계가 여성에게 그렇게 하라고 등을 떠미는 행동이다.
--- p.283, 「6장 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 중에서

그런데도 나는 어떤 불변의 수준에서,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인터넷에서 7년 정도 나 자신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다행히 나의 15분과 5달러를 한번에 절약하고자 아마존을 이용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그마한 행동들이 쌓이고 나의 편안함과 여유가 커지면서 결국에는 큰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 언젠가 나는 수많은 일에 매번 타협할 필요가 없는 계층이 되지 않을까. 정말로 사려 깊게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 상상 속 미래의 행동으로 그전에 했던 모든 자기중심적인 짓들을 상쇄시키게 되지 않을까. 이것은 유용한 판타지이지만, 그래도 결국 판타지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고,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행동할 뿐이다. 나도 내 세대의 수많은 사람처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역시 사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연약하고 정신 사납고 불안정한 어른이 되었다.
--- p.304, 「6장 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 중에서

〈롤링스톤〉 기사가 발표되었을 때 나는 페미니스트 사이트인 〈제제벨〉의 피처 에디터로 취직해 뉴욕으로 이사 온 직후였다. 그날 아침 소호에 있는, 공장을 개조한 어두컴컴한 회사로 출근했을 때 동료 직원들은 기묘하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는 파이 프사이의 사진을 보자마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했다. 내 회전의자에 앉아 기사를 클릭해 읽기 시작하면서, ‘전화 거는 사람은 집 안에 있다’는 공포 영화 속 상황을 마주했을 때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이 뉴스는 나에게 너무나도 가까운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기사를 끝까지 다 읽자 현기증과 함께 샬러츠빌에서 보냈던 내 4년간의 대학 생활, 그동안 눈감고 있었던 것, 내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 p.312,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중에서

어떤 범죄도 강간처럼 복잡하고 어리둥절하고 가혹하지 않다. 어떤 범죄도 그 안에 내재된 알리바이가 있어 그 즉시 무죄로 판결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강도나 살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에 무언가 신성한 것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강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섹스를 끌어온다. 판결에 있어 성폭행 피해자에게 가장 최고의 시나리오는 경험에 있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여야 한다. 당신은 상상 이상으로 처참히 당해야만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다. 페미니즘이 지배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도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믿는 이 세상, 실재하는 형태로 만들고자 그토록 노력하는 세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 p.355,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 중에서

하지만 여성의 가치가 그녀가 당한 억울하고 부당한 공격을 기반으로만 평가될 때 자칫 다른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 있는데, 인터넷은 특히 증오를 한없이 확장하고 지나치게 자세히 그 대상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관점이 주류가 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그렇다. 모든 여성은 백래시와 비난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특별하고 비범한 여성들은 더욱 그렇다. 여성은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비난받을 수 있고 성차별적인 방식으로는 언제나 그렇다. 이러한 사실들이 결합하면서 무언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여성에게 냉정한 비판을 가하는 건 그 자체로 성차별적 행동이라는 개념을 만들며 한발 더 나아가, 성차별적 비난을 받는 여성은 그 자체만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가게 하는 것이다.
--- p.368,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 중에서

페미니스트 셀럽 분석에서 시험해보지 못한 가정이 있었으니, 우리가 여성 유명인들에게 부여한 자유가 다시금 우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예상이다. 그 가정 아래에는 또 다른 가정이 있다 - 이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임파워먼트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여자 담론은 종종 엉뚱한 곳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범적인 여성상에 대한 전통적인 남성적 정의, 즉 여성은 상냥하고 얌전하고 고분고분하며 평범한 인간으로서 갖는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개념을 해체하고 거부해왔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그들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다면, 페미니즘은 이제까지 그 작동 순서를 뒤집는 데 성공해왔다. 넘어진 여성을 일으켜 세워서 다시 아이돌화하는 것이다. 여성 유명인들은 계속해서 최대한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지만 이제 그 매력은 “어려운” 자질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아이돌을 찾고 있다. 우리의 복잡한 조건과 용어 안에서 우상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 p.384,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 중에서

“딱 이 문제만 그래. 내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이거 딱 한 가지야. 그리고 이건 돌고 도는 문제야.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걸 자기 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기 일로 받아들인단 말이야. 안 그랬으면 우리가 이딴 이야기를 하고 있을 필요도 없잖아. 그리고 내가 여기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할수록 애초에 나에게 있지도 않은 문제를 만들어내게 된다고. 내가 왜 결혼하고 싶지 않은가에 대한 대답으로 거미줄을 짓고, 그 안에다 가정이나 사랑에 대한 나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잖아. 그럴수록 그 질문이 정말 화가 나. 멍청하고 예상 가능한 데다 나까지 멍청하고 예상 가능한 사람으로 만드니까.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는 메타내러티브가 흐르기 시작해. 이 문제, 이 결혼이란 게 너무 투명하게 멍청하다는 생각까지 가는 거야.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한다는 것부터 그래. 통계적으로 남자가 더 이익을 얻고 여자가 비혼일 때보다 덜 행복한 상황에 남자가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여자는 꾹 참고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촌스러운 반지를 끼는 것도 여자지. 그깟 반지, 남자의 소유물이라는 상징인데 여자는 받고선 좋다고 헤벌쭉해야 해. 그리고 새 인생이라는 의심스러운 걸 직접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여자의 인생 전체를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면…….”
--- p.413,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중에서

만약 오늘날의 여성이 처음에나마 자기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과대광고처럼 과장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독립성이 깎이는 불평등한 관계를 덥석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 속임수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결혼식이란, 아주 잘 먹혀왔고 여전히 잘 먹히고 있는 사기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가장 축하받는 자리에서 신부는 여성성의 이미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가 여성의 삶에서 보편적이자 절대적으로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 p.446,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중에서

출판사 리뷰

* 강화길, 김금희, 김하나, 이길보라, 이다혜, 이슬아, 장혜영, 황선우 추천
*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_리베카 솔닛
*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_〈워싱턴포스트〉
*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클래스”_록산 게이
*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파리 리뷰〉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

모두가 기다려온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
방대하고도 진실한 아홉 편의 에세이


뒤엉킨 갈등이 불타오르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 문화, 테크놀로지, 정치, 담화가 한데 섞여서 부글부글 끓는다. 인터넷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장기 기관이 되었고, 관심을 착취하며 자아를 물화하는 생태계를 건설했다. 부의 불평등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각자의 민주주의를 저버리기 시작했으며, 정치적 행위는 온라인상 구경거리로 축소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경쟁한다. 무대와 관객은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감시당하고 추적당하는 느낌은 늘 쫓아온다. 성과와 끝없는 노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째깍째깍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특히 여성은 시장의 자산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최대화하기 바쁘다. 끔찍한 세상―지금 이곳―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으며 더는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 현시대의 문화적 균열을 지적 열정과 뛰어난 문장력과 명민한 사고력으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책이 출간되었다. 인터넷, 페미니즘, 정체성에 관한 경이로운 통찰을 담은 《트릭 미러》다. “밀레니얼 세대의 독보적인 목소리”로 불리는 〈뉴요커〉의 기자 지아 톨렌티노의 데뷔작으로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뉴욕타임스〉, 〈타임〉, 〈워싱턴포스트〉, 〈시카고트리뷴〉, 〈파리 리뷰〉 등 수많은 매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을 휩쓸며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2020년에는 펜 문학상 에세이 부문 다이아먼스타인-스필보겔 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리베카 솔닛은 “지아 톨렌티노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나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배운다”고 극찬했다. 《트릭 미러》에 맥동하는 도덕적 분노와 냉소적 농담, 학문적 엄격함은 읽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묘한 스릴을 선사한다. 에세이, 문화 비평, 르포르타주의 독특한 융합으로 탄생한 우아하고도 대담한 산문이 한국 사회에 도착했다. 이 시대 가장 손꼽히는 작가가 맑은 눈과 부지런한 손으로 우리 사회 불행의 조각들을 적확하게 집어내는 것을 보는 데에는 부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가 따른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소재로 삼은 글일 때는 더 깊은 쾌감과 각성이 따라붙는다. 책에 담긴 각각의 에세이는 우리 생활, 문화, 관계를 들여다보는 프리즘이다. 유머와 필력을 무기로 한 방대하고도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는 텍스트 안에서 그는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며 독자들을 거울 앞으로 이끈다. 새로운 에세이스트의 탄생을 기다려온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우면서도 섬뜩한 이유다.

지루하고 유해하며 우울한 것이 되어버린
인터넷에 관하여


처음에 인터넷이 출현했을 때는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아빠 회사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을 써보자마자 난 사랑에 빠졌고, 끝장나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_21쪽

강렬한 오프닝 에세이 〈인터넷 속의 ‘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트릭 미러》를 관통하는 가장 큰 소재이자, 지아 톨렌티노를 이루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인터넷이다. 톨렌티노는 인터넷의 역사와 함께 “유저”인 우리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서서히 더듬는다. 1988년생인 톨렌티노가 처음 인터넷과 만난 것은 1999년으로, 당시는 “온종일 인터넷을 들락날락하는 것이 지금과는 다른 일이고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시대였고, 온라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라고 해봐야 내 가게를 위태롭게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 정도”였다. “한때는 나비였고 연못이었고 꽃다발이었던”, 비교적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사적인 취미 같은 일이자 은밀한 즐거움이 그 보상이었던, 평화롭고 단순했으며 건전했던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을 아련한 필치로 회상한다. 그러다 웹 2.0의 세계가 도래하며 한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던 인터넷은 이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명령이 되며, “개인의 정체성을 중심에 놓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이제 내 인생의 대부분은 인터넷이라는 강제 접속의 미로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 광기 어리고 과열된, 우리를 숨 막히게 하는 지옥 말이다. _27쪽

인터넷이 가진 독성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새롭지 않다. 그러나 《트릭 미러》의 흥미로운 점은 작가 자신이 그가 다루는 주제에 매우 독특하게 연루되었다는 데 있다. 엔젤파이어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어깨를 으쓱했던 열 살짜리 인터넷 시민은 지금은 〈뉴요커〉에서 그리고 이전에는 〈제제벨〉과 〈헤어핀〉이라는, 온라인 담론을 이끄는 최전선에 자리했던 사이트들에서 글을 써왔다. 그를 대표하는 특성들, 예컨대 재빠르고 유연하며, 장난스럽지만 설득력이 있고, 자신을 클로즈업할 정도의 대담성을 갖추었으며, 언제나 공격받을 준비가 되어 있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있다는 점 등은 바로 이 온라인 환경에서 차곡차곡 형성되었다. 그리고 지아 톨렌티노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인터넷은 성과 인센티브로 정의된 세계이기에 그 안의 ‘온라인 자아’는 보여지는 것, 성취를 과시하는 것에 집착한다. 트위터의 많은 이들이 올바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옳은 일처럼 행동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톨렌티노는 이 세계에서 의견 형성 자체가 일종의 행동처럼 인식되고 취급되는 것을 추적하는 한편, 실제로 우리가 변화를 실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을 인터넷이 훔치는 방법을 포착한다.

온라인에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미심쩍은 가정들을 정언 명령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피치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향력이 있다는 가정, 말과 행동에 동일한 힘이 있다는 가정, 나의 생각을 공들여서 적어 나가는 일은 매우 정의롭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혹은 이상적이라는 가정을 기반으로 한다. _41쪽

톨렌티노는 1장 곳곳에서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1959)을 소환한다. 고프먼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연극배우와 같고, 이 세상은 연극 무대와 같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는 어떠할까. 무대와 관객에 이어, 악몽 같은 상징 구조가 추가된다. 거울과 메아리 그리고 팬옵티콘이다. 인터넷 안에서는 모든 생각이 우리를 따라오고, 모든 뉴스와 문화와 대인관계와 상호소통은 나의 프로필이라는 기본 필터에 의해 걸러진다. 이를 두고 톨렌티노는 “인터넷이 영구적으로 지속시키려는 일상의 광기는 이 구조의 광기로서, 바로 개인의 정체성을 우주의 중심으로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무언가를 하는 것과 그 행동을 표현하는 것, 무언가를 느끼는 것과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의 차이”를 관찰한 고프먼의 관점을 끌어와서 행동의 재현은 그 행동 자체와는 어느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로지 “이러이러한 나”를 보여주기 급급한 인터넷은 이러한 허위 진술이나 그릇된 설명을 매우 적극적으로 조장한다는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올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지만, 실제로 도덕적으로 사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의견을 표현하는 것―좋아요, 리트윗―과 실제로 정치적 행동을 취하는 것을 혼동한다. 증오와 반목을 부추기는 이 세계의 특성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반대와 분노를 우리 자아의 중심으로 간주한다. 이와 관련해 톨렌티노는 6장(〈일곱 가지 사기로 보는 이 세대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의를 재빠르게 잡아내 착취 가능한 자산으로 재해석하고 분노 같은 감정 호소에만 집중하도록 인터넷 세계를 재편한 마크 저커버그를 향해 비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서늘한 비판의 촉은 예외 없이 자기 자신도 겨냥한다.

실은 내가 이 조건에서 계속해서 이득을 얻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의 경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의 정체성과 의견과 행동을 망가뜨린 인터넷 덕분이었다. _44쪽

끊임없는 자기인식과 내면 탐구, 용감하고도 쓰라린 통찰은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마찬가지로 인터넷 지옥을 헤매는 독자들의 경험과 포개어진다. 특히 온라인 여성 혐오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해시태그 디자인에서 여성이 얻는 것은 무엇이며 놓치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옅은 희망과 절망이 동시에 찾아든다. 우리는 “싫증 난 연옥 안에 앉아서 인터넷이 다시 한번 변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고 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 시대, 새로운 감옥에 갇혀버린
페미니즘에 관하여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 페미니즘 담론을 이끌던 〈제제벨〉과 〈헤어핀〉에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쌓아 올린 만큼, 책의 전반에 걸쳐 페미니즘에 관한 깊고 풍부하며 뾰족한 사유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상적인 여성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완벽한 능력까지 갖춘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그런 사람인 것은 두 가지 다른 개념으로,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이려고 노력하는 건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능력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은 이 문제를 성문화하고 체계화해버렸고 이제 더는 도망갈 수도 없게 만들었다. _149쪽

먼저 3장(〈언제나 최적화 중〉)에서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시장 친화적으로 자리매김한 주류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마치 “인간 인스타그램”과 같은 지위를 구축한 현대 여성의 이상적인 삶의 미학을 탐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여성 인플루언서의 피드를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공통적인 특성이 감지된다. 이들은 사진 찍기에 예쁘게 담긴, 그러나 가격은 무시무시한 샐러드 한 접시를 먹는다. 그리고 마르면서도 탄력적인 몸을 역시 무시무시한 가격의 애슬레저에 집어넣은 채 요가나 필라테스 교실에 다닌다. 머리 모양이나 메이크업은 과해서는 결코 안 되고, “꾸안꾸” 그러니까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럽게 풍성하고 빛이 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모습은 《트릭 미러》 안에서는 조금 더 빡빡하게 그려진다. “바(barre) 교실에서 땀을 흘린 후, 스위트그린(sweetgreen)에서 12달러짜리 샐러드를 사서 이메일을 읽으며 10분 안에 먹어치운다. 이때 당신은 애슬레저를 입고 있어야 하며, 이 모든 일은 점심시간 1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톨렌티노는 냉소적으로 표현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에게 매우 친숙한 일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인위적이면서도 끊임없이 상승하는 의무라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든 그에 맞추어 생활을 효율적으로 조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이 한심해질 때, 그러면서 이도 저도 못 하고 또다시 끌려가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아주 많다. 특히 우리 여자들은 삶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_119쪽

20세기 중반 미국은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가사 노동에 여성들이 온 힘을 쏟게 만들었다. 21세기에 이것은 미모 노동으로 대체된다. 마찬가지로 무궁무진하지만 돌아서면 새롭게 할 일이 또 생기는 노동인 데다가, 수많은 시간과 불안과 돈을 소비해야 한다는 점까지 추가되었다. 통탄스럽게도 이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기준에 매달리기 위함이다. 한편, 여성 개개인이 성취한 성공의 가치를 지나칠 정도로 크게 책정하는 페미니즘은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독재자를 제거하기보다는 이 땅에 더 단단히 자리 잡게 하고 판단하기 복잡하게 해놓았다. 또한 “미모는 선”이라는 개념에 충실하게 종종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매달려오기도 했는데, 톨렌티노가 몸담았던 〈제제벨〉은 “광고나 잡지 표지에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하며 온라인 페미니스트 담론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는 현대 미적 기준의 인공성과 부정직함을 드러낸 긍정적인 시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짜” 아름다움에 대한 강력한 갈망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컨대 아이폰 카메라 앞에서 민낯이어도 물광이어야 하고, 피부에는 모공이 없어야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쪽으로 우리의 관심을 끌고 갔다. 나아가 미모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주류 페미니즘의 도래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신화’라는 패러다임을 낳았다. 이 아래에서 여성은 사용 가능한 모든 기술과 자본과 정치를 끌어모아 이상적인 자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이는 8장 〈어려운 여자라는 신화〉에서 다루는 ‘다재다능 슈퍼 맘’ 개념과 이어지기도 한다). 왜 여성에게는 모든 일이 이토록 어렵고 복잡한 것일까.

여성이 부당한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이 그녀들의 성공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그들이 성공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제 여성 유명인들은 그들의 까다롭고 복잡한 면모 때문에 존중받는다. 그들의 결함, 그들의 문제, 그들의 인간적인 면 때문에 사랑받는다. 우리 평범한 여성들도 결함이 있고 인간이지만 그래서 존중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_377쪽

8장에서 지아 톨렌티노는 “유명인 서사”를 채택한 주류 페미니즘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경계를 흐릿하고 취약하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한다. 주류 페미니즘 아래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남성 권력에 의해 바뀌고 왜곡된 경험이 있는 여성들―그러니까 모든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의해 장사 지내졌다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부활하여 복잡한 영웅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톨렌티노는 유명한 여성의 삶은 인기, 돈, 권력이라는 기준 안에서의 성과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평범한 여성의 삶은 대부분 계층, 교육, 주택 시장, 노동 형태 같은 생활적인 일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꼬집는다. 이를테면 킴 카다시안 같은 여성은 자기 노출로 이익을 얻는 반면, 다른 평범한 여성들―때로는 매우 같은 여성들―은 끝나지 않는 괴롭힘을 당한다. 톨렌티노는 묻는다. 우리가 여성 유명인들에게 부여한 자유가 다시금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떤 여성이 대중에게 비난받고 있다는 무미건조한 사실 하나 때문에 그 여성을 무조건 상찬할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진정 원하는 자유는 우리가 여성들을 사랑할 필요도 없고, 그들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필요도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다―이 모든 것에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세밀하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가치와 해방이라는 그림을 그려야 할 필요가 없는 세상 말이다. _387쪽

그리고 어김없이 톨렌티노는 이 세계를 이렇듯 잘 아는 이유는, “자신 또한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가차 없는 자기 고백을 적는다.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여기는 여성”과 “페미니즘을 개인 브랜드로 파는 여성” 사이에 흐릿한 선이 있다면, 조금은 전자로 향하려는 것뿐이라고 털어놓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생식권이나 노동권을 둘러싼 고된 싸움에 대해 논의하는 것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710달러짜리 디올 티셔츠를 입은 연예인 이야기를 나누고 찬양한다. 우리의 외모와 몸매와 성과는 최적화했지만, 임금이나 육아 제도나 정치적 대표성은 “최적화”하지 않았다. 우리는 시장의 자산으로서 우리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최대화해왔다. 그게 전부다.

관찰되고, 해석되고, 왜곡되는
정체성에 관하여


톨렌티노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나는 언제나 혼란스럽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기에, 진실과는 먼 방향으로 끌려가기에 이 책을 썼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글쓰기는 자기기만을 털어내는 방법이면서 그것을 내 눈 바로 앞에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_15쪽

다시 말해 톨렌티노는 몽테뉴를 잇는―인터넷 세대의―모럴리스트로, 삶과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한 문장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특히 2장(〈리얼리티 쇼와 나〉)과 5장(〈엑스터시〉)에서는 더 많은 자전적 자료가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지아 톨렌티노라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다. 필리핀계 이민자들의 자녀로, 휴스턴의 복음주의 메가 처치에서 자랐으며 초등학교 때는 체조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치어리더로 활동했으며 리얼리티 TV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할 정도로 눈에 띄는 학생이었고, 남부 명문 버지니아주립대학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여학생 사교 클럽 회원이었다. 졸업 후에는 키르기스스탄으로 평화봉사단 활동을 떠났고, 대학원을 거쳐 뉴욕으로 와 〈뉴요커〉의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렇듯 《트릭 미러》의 가장 강력한 조각은 자아의 상품화와 관련이 깊다. 2장에서 톨렌티노는 아직 유튜브가 존재하기 전인 2004년 12월 열여섯 살 때, 〈걸스 대 보이스〉라는 제목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경험을 들려준다. 푸에르토리코의 아름다운 섬에서 십 대 남녀가 대결을 펼치는 포맷의 프로그램으로, 우정과 사랑 이야기는 당연히 따라왔다. 카메라는 열렬히 “보여주고(보여지고)” 싶은 십 대들의 굶주린 욕망을 건드리기에 충분했고 그들을 무한한 자의식의 바다로 떠밀었다. 지금 우리는 채널을 돌리면 종류도 다양한 리얼리티 쇼와 마주한다. 소셜 미디어는 자기 삶을 전시하고, 또 소비하는 삶을 열심히도 부추긴다. 감시되는 쇼에서, 모든 것이 연기로 취급되는 화면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 쇼에서 내가 도덕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진짜 도덕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종교적인 감시 속에서 살다 진짜 감시되는 세계로 가면서 나는 이 두 가지 개념을 구분할 수 있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_89쪽

톨렌티노는 집요하게 카메라가 따라붙던 푸에르토리코에서 딱 한순간, 황홀한 자유를 만끽한다. 와편모충이 서식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스키토만을 헤엄치던 때였다.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반짝이는 물기를 머리카락에서 털어냈다. 내 몸을 감싼 이 모든 행운 때문에 감격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더없이 순수하고 형이상학적인 우연 안에 가만히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주변에 카메라는 한 대도 없었고, 만약 있었다고 해도 이 장면을 잡아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잊지 말자.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말자.”
많은 매체가 이 에세이집의 백미로 꼽은 5장에서도 황홀한 경험은 이어진다. 톨렌티노는 현대의 영적 몽상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밀도 높게 이루어진 5장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요람(메가 처치)과 그와 함께 자란 휴스턴 힙합 그리고 종교를 내려놓던 시기 그에게 또 다른 구원으로 다가온 마약성 약물을 하나로 묶는다. 이 에세이는 일렁이는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것들에 관한 내적 경험을 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집단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기도 한다.

비에케스섬에서 나는 부지불식간에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에는 경험의 맥락과 경험의 기록과 그 경험 자체를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_87쪽

2장으로 돌아가서, 톨렌티노는 리얼리티 쇼를 찍었던 경험을 두고 “인터넷과 동고동락하게 된 생활을 위한 유용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찍고 기록하며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거리낌 없는 표준이 된 시대다. 우리의 사고가 전례 없는 착취와 물질화와 감시에 종속된 이 시대, 마음과 영혼을 왜곡하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빛나는 데뷔작에서 가장 주목받는 특징은 양면성, 요컨대 자기기만이다. 톨렌티노는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조금 더 정직해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싶다”고 적는다. 그러나 곧이어 덧붙인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보다 서사의 일관성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울퉁불퉁하고 난해하다. 모두가 주장하는 마땅한, 도덕적으로 쉬운 결론으로 이끌지 않는다. 명확하고 매끈하지도 않으며, 이는 톨렌티노의 의도적인 저항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배우지 않았는가. 결론을 유보해도 되고,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일이건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대신 그는 익숙한 것에서 어두운 밑바닥을 비추고, 낯선 것에서 친숙함을 찾아내 우리에게 안겨준다. ‘자아’를 중심으로 놓는 문화 안에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야기한다.
한편 록산 게이의 말을 빌려서 이 책을 다른 관점으로 살피자면,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 클래스”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독서가인 지아 톨렌티노는 어빙 고프먼과 도너 해러웨이부터 앤 카슨과 노리치의 줄리안에 이르는 사상가들을 동원해서 이 책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나간다. 철저한 자료 조사가 돋보이는 탁월한 문화 비평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 미국이 안고 있는 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4장 〈순수한 여자 주인공들〉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인용과 여러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용감하다가 백지처럼 되었다가 고난을 겪는 문학 속 여주인공의 여정을 좇는다. 6장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신이 되어버린 사기 행각들을 고찰하는데 금융 위기, 학자금 대출, 소셜 미디어 사기, 시장 친화적 페미니즘, 진정성을 파는 실리콘 밸리, 아마존, 트럼프 당선 등이 그것이다.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쥐어짤 수 있는 것은 모두 쥐어짜 이익을 취하자는 시대적 기조 아래에서 밀레니얼은 이 나쁜 교훈을 몸에 익혀 성인이 되었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로또처럼 보이는”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그저 나 자신만, 오직 나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톨렌티노는 말한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무너지는 것이고, 무너지고 싶지 않으면 하루하루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타협해야 한다 - 즉 난파되거나, 난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7장 〈우리는 올드 버지니아에서 왔다〉에서는 모교 버지니아주립대학에서 겪은 성·인종·권력에 관한 문제를 파헤치는데, 독자들은 이 안에 등장하는 여러 놀라운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비밀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목도하게 된다. 마지막 9장 〈결혼,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에서는 “이 모든 과소비, 거추장스러움, 과도한 열광”에 대해 논하며 자신이 가진 결혼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반발심을 꺼내놓는다. 그리고 이 장은 “나는 여전히 나를 믿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제목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는 그가 2015년 〈제제벨〉에 적었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웹사이트에서 무엇을 얻게 되는가에 대한 에세이 속 한 문장이다. “트릭 미러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숨 막히는 지옥에서 시끄러운 소음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번득이고 까다로운 문장들을 읽으며 거울 앞에 오래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은 무엇일까. 왜곡되는 것은 무엇이고, 왜곡하는 이는 누구일까. 최악의 시대에 탄생한 고전이 우리를 심오한 진실로 이끈다.

추천평

읽는 내내, 나는 단 한 번도 이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인터넷, 리얼리티 쇼, 소셜 미디어, 이상에 대한 기대와 욕망, 노력, 끝없는 질주, 이야기. 내가 만드는 나의 이야기. 그것들이 품은 선의. 꿈은 이루어졌다. 정말 그런가? 우리는 실제로 어떤 시간을 건너왔을까. 그리고 건너는 중인가. 지아 톨렌티노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들에 거울을 비춘다. 그곳에 비친 상(像)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한 꿈인 동시에, 악의로 가득한 악몽이다. 구석구석 어느 곳도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담아낸 이 방대하고 진실된 해석을 읽으며, 나는 계속 가슴이 쿵쿵거렸다. 마침내 책을 다 읽고 거울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 강화길 (소설가)
글을 쓰거나 읽으면서 가장 혹독하게 즐거우면서도 비참해지는 순간은 자기 내부에 있는 기만과 몽상, ‘나른한’ 나르시시즘을 발견하게 될 때다. 그런 욕망을 “최적화”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이 자본의 세계에서 그러한 반성과 각성은 어쩌면 어렵기에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마지막 터닝 포인트일 것이다. 지아 톨렌티노는 자본, SNS, 리얼리티 쇼, 상품화, 페미니즘, 성폭력, 가족제도, 미디어 같은 현세계의 가장 논쟁적인 장들에 자신의 섬세하고도 적확한 촉수를 내밀어 뒤틀린 왜곡을 발견해낸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당신은 놀라고 슬플 것이며, 그의 명랑하고 유머러스한 문장이 이따금 구해주기는 하겠지만, 결국 자본의 ‘트릭 미러’에 갇힌 스스로를 부끄러움 속에 직시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텍스트로 삼아 밀레니얼 세대의 분노와 무기력, 딜레마적 상황을 돌파해가는 지아 톨렌티노의 글은 현시대 가장 뜨겁고 생생한 증언록이자 감동적 성장 서사다. - 김금희 (소설가)
어디서 이런 작가가 튀어나왔지? 지아 톨렌티노의 글은 우리 모두가 휩쓸리고 있는 물살 속에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붙들려는 진지한 노력이고, 자신까지 포함한 가차 없는 성찰이다. 막연한 불안감을 또렷한 언어로 마주하는 일에는 이상할 정도로 쾌감이 있다. 이토록 온갖 생각이 다 들게 하고 구구절절 길면서도 기차게 재미있는 글이라니! 지금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두말없이 『트릭 미러』를 권하겠다. - 김하나 (작가,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신의 개성을 상품화하고 일상을 전시하며 살아가기를 요구받은 우리가 나 자신을, 이 시스템을 정확하게 바라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88년생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한다. 돈이 되는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도 나 자신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SNS라는 도구가 변화와 연대를 이끌고 있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분노, 연대의 감정이 ‘진짜’인지 묻는다. 분노하고 공감하며 국민청원 사이트에 접속하여 로그인하고 청원 버튼을 누르며 안도감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는 이유를 이 책과 함께 돌아본다. 밀레니얼 세대이자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과연 무엇을 마주하고 있는가. 이 책이 당신과 내가 의심하기를 멈추지 않고 질문으로 확장해낼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 이길보라 (영화감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저자)
밀레니얼 세대 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한 진실. “우리는 시장의 자산으로서 우리 자신의 능력을 최선을 다해 최대화해왔다.” 전보다 나아진 줄 알았던 것은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고, 저기는 나은 줄 알았더니 여기와 같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지. 경험에서 시작해 뉴스와 (비)문학을 아우르며, 지아 톨렌티노는 거기 있던 그대로의 세상을 똑바로 보게 한다. 인터넷 속 자아상, 전직 리얼리티 쇼 출연자로서의 경험, 밀레니얼 세대를 상대로 한 세상의 7대 사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여성으로서 읽기, 쓰기, 살기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게 될 듯하다. 경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전과 같이 들리지 않으리라. - 이다혜 ([씨네21] 기자, 작가)
이 책은 피곤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인터넷 자아의 팽창과 분열. 초연결사회에서의 불평등과 사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교차지점에 갇혀 있는 수많은 여성들. 안쓰럽고도 우스꽝스러운 욕망들. 자기기만을 부추기는 시대정신. 요지경 같은 이 세상. 그보다 더 못 말리는 나 자신. 출처가 불분명한 고독과 쾌락……. 그 모든 것을 지아 톨렌티노는 가차 없이 탐구한다. 놀라운 점은 그가 이 모든 것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다. 멀찍이서 팔짱을 낀 채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건 쉽다. 하지만 소용돌이 속에서 온갖 현상에 사로잡히면서도 미치지 않고 좋은 글을 쓰는 건 거의 곡예에 가까운 일이다. 민첩하고 강하고 유연한 작가들만이 그런 글쓰기를 해낸다. 지아 톨렌티노는 나에게 더 많은 일을 겪을 용기를 준다. 그처럼 해석할 수 있다면, 그처럼 쓸 수 있다면, 그처럼 의심할 수 있다면, 나는 혼란 속에 더 오래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 이슬아 (작가, [일간 이슬아] 발행인)
거울에 비춰보지 않고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쇼윈도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본다. 무한히 확장하고 ‘실시간 반응’하는 인터넷이라는 트릭 미러는 종종 우리가 지금 거울을 보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한다.
지아 톨렌티노는 트릭으로 가득한 거울 속을 헤매며 쌓아온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거울에 비친 지나치게 매력적이고도 추한 우리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어버린 평범하고도 오랜 진실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진실, 우리는 끝내 우리가 누구인지 결코 완벽히 알 수 없다는 진실 말이다.
일렁이는 거울 앞에 서서 언제나 자신과 세계를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 매일을 고민하는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친구들과 다른 모든 시민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명확하게 보기 위한’ 노력,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하는 질문 그 자체이다.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필터를 거치지 않은, 혹은 보정이 안 된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마주할 때 감탄하면서도 진저리치는 경험에 가깝게 『트릭 미러』를 읽었다. 정밀하고도 신랄한 세태 비평을 그저 즐기고 덮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 책은 편안한 관람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아 톨렌티노의 뾰족한 펜끝이 테제와 안티테제를 모두 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세상 그 자체와 완전무결하게 매끈한 페미니즘 서사에 대한 환상을 동시에 찌르는 그 날카로운 촉을 피할 데가 없다. 작가 자신까지도 예외 없이 겨냥하니까. 가차 없음의 쾌감과 서늘함이 교차하는, 대담하고 무자비하며 아무래도 2021년다운 책을 만났다. - 황선우 (에디터, 작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저자)
지아 톨렌티노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 중 한 명으로 나는 그녀에게 계속해서 배운다. 『트릭 미러』에서 그녀의 모든 개성과 장점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이 아홉 편의 에세이에 포함된 번득이는 문장들은 익숙한 것을 놀라운 방식으로 보게 한다. 그러면서 서정성과 회의주의라는 흔치 않은 조합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더 광범위하고도 심오하게 확장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는, 우리에게 필요했지만 놓치고 있었던 미국 세계의 사진 한 장을 갖게 된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저자)
내가 원하는 바대로 흘러가는 일에 대해 쓰기는 쉽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마땅한 결론대로 글을 쓰기는 쉽다. 그보다 훨씬 어려운 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며, 현재처럼 우리의 사고가 전례 없는 착취와 물질화와 감시에 종속된 이런 순간에 그 일을 해낸다는 건 더군다나 어려운 작업이다. 『트릭 미러』는 불편한 진실들을 질투가 날 만큼 세련된 스타일로 끝까지 파고든다. 재치있고 명민하면서 까다로운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은 아마 거울 앞에 오래 서서 냉정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희망이 생긴다. - 제이디 스미스 (『하얀 이빨』 저자)
지난 몇 년간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지아 톨렌티노가 그에 대해 글을 쓸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였다. 맑은 눈과 부지런한 손으로 뛰어난 기지와 도덕적 양심을 갖고, 그녀 세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장으로 계속 쓴다. - 패트리샤 락우드 (『프리스트대디(Priestdaddy)』 저자)
지난 10년간 영어권에 ‘새로운 에세이스트’ 열풍이 불었다. 사회 비판과 자전적 에세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목소리들은 어느 순간부터 비슷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자기만의 특별한 내면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려는 작가들, 자신의 본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을 찾는다. 그런 글을 가장 잘 쓰는 작가가 지아 톨렌티노다. 현대 미국 사회, 특히 인터넷 세계라는 비정상적이고 때로는 악몽 같은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심도 있게 관찰한다. - 존 제레미아 설리번 (『펄프헤드(Pulphead)』 저자)
나는 지아 톨렌티노라는 제단에 큰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녀는 의심할 바 없이 이 시대에 가장 탁월하고 예리한 문화 비평을 쓰는 작가다. 지아는 진정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웃기고, 온갖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도 있다. 『트릭 미러』가 다루는 소재 중 하나가 그녀 자신이라는 것은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이 책은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명작이다. - 사만다 어비 (『우리는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다(We Are Naver Meeting in Real Life)』 저자)
『트릭 미러』에서 지아 톨렌티노의 생각들은 통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정적 문체로 녹아든다. 그녀는 냉철하고 준엄하면서도 따뜻하고 연민이 깊다. 그녀는 이 세상을 두려워하면서도 이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있다. 그녀가 말하려는 진실은 울퉁불퉁하고 난해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 진실을 충분히 다룰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명징하다. 그녀는 이 세상이라는 게임에 깊이 발을 들여놓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쉬운 도덕적 결말, 잘못된 이분법, 반짝이는 통찰을 거부하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인간적으로 그리고 가슴 아플 정도로 아름다운 방식으로 거부한다. 우리가 무엇을 갈망하고 어떻게 갈망하는지를 탐구하면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꺼내 펼쳐놓는다. - 레슬리 제이미슨 (『공감 연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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