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여성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형편으로 사십 대에 들어섰다(그럴 만큼 운이 좋은 이들은 말이다). 결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일이 있거나 없거나, 부모님이 살아계시거나 편찮으시거나 돌아가셨거나. 이런 (꽤나 드라마틱할 수 있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년이란 나이에 도달한다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누리는 모든 미덕과 겪어야 하는 모든 상실은 놀라울 정도로 보편적이다.
(……) 우리의 이런저런 경험 주변에 죽음이 서성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음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마흔이 되면 대관람차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경관이 정말 끝내주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얼마나 금방 내려가게 될지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스물다섯 살 때 나는 남자친구가 없었다. 제일 친했던 (여자 사람) 친구는 날 버렸다. 크리스마스 날 나는 집에 혼자 앉아 눈알이 빠지도록 울었다. 내 삶이 열세 살 소녀가 서른 살로 접어드는 내용의 영화였다면 스물다섯의 나는 마흔다섯의 나를 보고 물을 것이다. “잠깐만요, 뭐라고요? 파리에 살았다고요? 귀여운 남편이랑 사랑스러운 딸도 있다고요? 툭하면 저녁에 파티를 열었다고요? 그렇게 잘 풀렸다고요? 직장에서 징글징글하게 긴 하루를 겨우 끝내고 들어와 싱크대 앞에 서서 냉동식품을 먹고 소파에서 잠들지 않는다고요? 잠깐만요, 옷장 안 좀 볼게요. 저 샤넬 드레스와 ‘볼러Baller’라고 새긴 에디 파커 클러치는 누가 사준 거예요? 직접 번 돈으로? 우와, 당신 진짜 볼러네요.”
--- p.62, 「경기는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중에서
“우리 이제 어떡해?”
의사가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설명하는데 나는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대신 우리가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간 다음에 벌어질 상황이 걱정이었다. 우리 가족의 일과를 지장 없이 이어가는 것에 비하면 내 육체의 회복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남편은 매일 아침 6시면 사무실에 출근해 있는데 누가 애들을 7시 15분에 버스에 태우지? 늘 나와 함께 지내고 긴 산책을 해야 하는 혈기 왕성한 래브라도 두 마리는 누가 돌보지? 저녁은 누가 준비하지? 애들 테니스 레슨과 소프트볼 시합, 그리고 친구네 집엔 누가 데려다주지?
“우리가 다 할 수 있어.” 의사가 나가고 간호사가 들어와 나의 통증을 체크하고 수술실로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이 말했다. 나는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방법이 없잖은가? 그럼, 우리가 다 못 할 거라고 하나?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가 스며든 나의 세포들 중 어느 한구석에도 남편에 대한 믿음은 없었다. 콩알만큼도.
--- p.163, 「인생의 은유」 중에서
여러분이 ‘이 히스테릭한 여자 얘기는 더 이상 못 읽겠어.’라고 생각하기 전에 해명을 좀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여러분도 나의 이 히스테릭한 모습을 이해해주시리라.
나는 당시 매우 고통스러운 이혼 과정을 밟는 중이었고, 아주 힘들어하는 딸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내가 쓰던 책의 마감 기한을 이미 훌쩍 넘긴 상태였는데, 그것만 끝내면 정말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금전적으로도 그렇고 무능한 인간이라는 자괴감 도). 하지만 그렇게 못 하고 있었던 이유는 하루하루가 너무 불안한 나머지 늘 와인을 마시고 몽롱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문제가 뭔지 잘 아셨으리라.
--- p.206~207,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사람들」 중에서
마흔이란 나이는 당신을 둔하게 만든다. 나는 잔인하게 굴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우울하게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은 어차피 보습제 광고가 아니니 진실이 아닌 얘기는 하지 않겠다.
마흔이 되면 둔해진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빨리 흘러가므로, 앞으로는 지금보다 일 분이라도 더 빠르게 시간이 흘러갈 것이 라는 걸 당신은 예민하게 감지할 거다. 대신, 세월에 신경 쓰이는 강도가 둔해진다. 혹시 ‘둔하다’는 말이 거슬리는가? 그럼 그 대신 ‘느긋해진다’는 표현을 쓰기로 하자. 사십 대에는 모든 것에 자극받던 당신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이제 당신은 살짝 더 ‘느긋’해진다.
--- p.285, 「생일과 양자물리학」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