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02월 15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28g | 135*194*17mm |
ISBN13 | 9788937473319 |
ISBN10 | 8937473313 |
발행일 | 2021년 0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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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36쪽 | 328g | 135*194*17mm |
ISBN13 | 9788937473319 |
ISBN10 | 8937473313 |
MD 한마디
[어느 여름, 녹지 않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녹지 않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세상, 『스노볼 드라이브』는 한 시절을 눈 아래 박제 당한 채 성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예기치 않은 재난은 일상을 파괴하지만 그 아래서 함께 무너지기보다는 웃고, 온기를 피워내고, 헤치고 달리기를 선택하는 이들의 얼굴이 빛나는 소설 -소설MD 박형욱
스노볼 드라이브 7 작가의 말 227 추천의 말 229 |
가짜 눈, 일상을 묻어버리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서 멀어진 삶이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조예은의 <스노볼 드라이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녹지 않는 방부제, 즉 실리카 겔(Silica gel)과 유사한 성분의 가짜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서 일상에서 멀어진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루 평균 강설량 20센티미터. 총합 150센티미터. 일반 눈과 다른 점은 녹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짜 눈은 성인 남성의 가슴팍까지 잠길 정도로 쌓였다. 거리의 온갖 쓰레기들, 테이크아웃 컵과 깨진 유리 조각, 담배꽁초, 죽은 시궁쥐, 제대로 닦이지 않은 일회용기 따위도 전부 눈 아래에 묻혔다. 더러운 것은 눈송이가 다 감춰 버렸으므로, 거리는 언뜻 평화로워 보였다. 태우지 않는 한 영원히 녹지 않는 눈 결정체는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일렁이는 물비늘처럼 이쪽저쪽으로 반짝였다.” [p. 34]
사람의 온기에도 녹는 진짜 눈과 달리 이 가짜 눈은 발열, 구토, 가려움, 발진, 호홉곤란 등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수분을 빨아들였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진짜 눈처럼 반짝이며 지저분한 것들을 덮어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흡혈귀처럼 수분을 빨아들여 세상을 하얗게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재앙이 일상이 된 삶이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단순히 소설 속의 일이라고 지나가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현상 등을 보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재앙 속의 일상
가짜 눈이 내린 이후 간혹 진짜 눈이 내려도 과거의 삶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평범했던 일상은 이제 오지 않을 꿈 속의 풍경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눈송이가 스며들 일이 없도록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눈을 퍼냈다. 일주일이 꼬박 걸려서야 포크레인과 수거 차량이 지나갈 길을 텄다. 방역 회사와 정비원 등 선발대, 자원봉사자가 아닌 주민들도 전신을 단단히 봉하고 나와 눈 더미 치우는 것을 도왔다. 피해는 더디게 복구되었다. 그사이에 돌이킬 수 없도록 무너지는 것들이 더 많았다.
굶어 죽는 사람들, 외로워서 죽는 사람들, 망하는 사람들, 망해서 죽는 사람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눈 위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발작을 일으킨 사람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외출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다 돌아오지 못하게 된 사람들. 느릿한 복구 과정 중 그들의 시신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는데 몸집이 바싹 말라 줄어들기는 했지만 꼭 잠이라도 든 것처럼 하나도 부패하지 않은 깨끗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p. 35]
이런 상황에서 녹지 않는 가짜 눈을 태우고 묻기 위한 장소, 그러니까 쓰레기 소각 및 매립지로 백영시가 지정되었다. 그리고 타의에 의해 사실상 격리된 이 곳에서 사람들은 녹지 않는 눈을 처리하기 위해 ‘센터’라고 부르는 눈 소각장에서 일하게 된다. 일상이 파괴되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주인공 백모루(이하 ‘모루’)도 이모인 유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센터’에서 일한다. 왜냐하면 모루의 엄마가 ‘센터’에서 일하다가 폐렴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을 지키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그런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처음 가짜 눈이 왔던 중2 진로 상담 때에는 관심 있는 척하며, 되고 싶은 것이 없는 모루에게 장래희망을 계속 캐묻는 담임을 혐오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그때 담임이나 다른 어른들이 바랬던 기업의 성실한 부품이 되었으니까.
“눈 소각장은 하루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일은 단순하지만 힘들었고, 녹초가 되어 퇴근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센터에서 궂은일을 하는 데 나이 제한을 둔 이유가 있었다. 어린애들은 겁이 많고 잘 속으며 체력이 좋지만 뭘 모르니까. 시키는 대로 잘 움직이니까. 처음에는 생기 있던 이들도 점차 피곤에 찌들어 갔다. 생각이라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주어지는 식사와 침대에 만족하며 성실한 부품이 되었다.” [p. 93]
또 다른 주인공 이이월(이하 ‘이월’)은 계모신화의 변형된 형태를 경험해야 했다. 강아지 하루의 환영을 믿어주고 함께 산책해 주면서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주는 친엄마 같은 계모(繼母) 정지수와 아이를 이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차가운 의부아빠 같은 친부(親父) 사이에서 그녀가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기에 이월이 계모의 마지막 부탁인 눈 속에의 매장을 위해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이월은 유진을 만나고, 유진은 이월을 구하기 위해 강도를 유인한다. 마음의 빛을 진 이월은 모루를 만나기 위해 센터로 갔지만, 이모를 기다리는 모루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한다. 고민하는 동안에도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그녀도 기계의 부품이 되었다.
“센터에서는 늘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되어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아닌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 스스로 고민하지 않아도 일거리가 주어졌고, 정해진 일정을 끝내고 나면 진이 빠져 잡생각을 할 힘이 나지 않았다. 눈을 퍼내면 내 머릿속도 비워지는 것 같았다.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내 선택으로 후회할 일도 없다는 뜻이었다. 지루한 수업을 듣는 것처럼 무료하면서 또 안락했다. 구매 식당의 흠집 난 식판이나 주말이면 사람이 바글바글한 매점 같은 걸 볼 때면 내가 제대로 누리지 못한 시간들을 다시 사는 기분도 들었다.” [p. 198]
솔직히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고민하고 준비해 둔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편하다. 어쩌면 모루나 이월에게 미래를 강요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런 삶을 안정된 삶이라 여기고 걷기를 원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의 삶’이 없다.
하선호라는 래퍼는 [고등래퍼 2]라는 프로그램에서
“꿈을 강요하면서
꿈꿀 시간을 주지 않아
모두의 꿈이
책 속에 있다 믿는 거야
괜히 또 남 사는
얘기에 힐끗힐끗해
나 자신을 괴롭히기
이젠 지긋지긋해
철이 없대
하고 싶은 건 없는데
매년 적어 내래
장래 희망 oh ah yeah
없어서 없다 썼는데
그게 왜 의지 부족이고
생각 없는 거야”
라고 미래를 강요하는 어른에 대해 비판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정해준,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트릭스> 시리즈에서의 주인공 네오가 선택한 빨간 약(red pill)처럼 진실을 깨닫게 되면 또 다른 삶이 주어질까? 이 소설에서는 모루가 무심코 본 한 뉴스에서 변화 혹은 각성이 시작되었다. 강도들의 아지트에서 발견된 이월의 계모 시신과 유품들을 본 모루는 ‘센터’로 달려가 근무하고 있는 이월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월이 망설이던 진실을 듣고 가짜 눈으로 인한 눈사태에 휘말린다. 이 사고는 이들에게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 와서 마치 로드무비의 시작점처럼, 그들은 이월의 아빠 차를 빼앗아 유진을 찾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잃어버린 일상이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가짜 눈을 헤집다가 진물이 나고 화끈거리는 아픔을 겪더라도 내 의지로 선택한 일을 시도하는 모습은 새로운 삶을 위한 작은 첫 발이 아닐까.
코로나19보다 훨씬 더 고약한 상황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린 SF소설이다. 초여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녹지 않고 쌓이기만 하는 ‘방부제 눈’이다.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키고 태우지 않으면 녹지 않는다. 방부제 성분처럼 물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눈 속에서 죽은 생물은 바짝 마르게 된다. 한참 후에 이런 눈이 다시 내리고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과거의 평화로운 시기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현실에서도 우린 코로나 이전 시대로 영영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다고 하는데 이런 재앙이 일상이 되어 우리를 짓누를 때 그 억압과 절망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의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 모루와 이월은 녹지 않는 눈을 태워 없애기 위해 특수폐기물 매립지역으로 지정된 백영시에서 자랐다. 눈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고 눈을 소각해 없애는 작업장인 ‘센터’가 유일한 일자리가 되면서 이들은 이곳에서 일하게 된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통근버스로 센터를 오가면서 마치 학교생활을 다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지만 당연히 이 생활은 학교생활과 달리 즐거움이 없다. 이 시간에도 센터 한구석에서는 직원들이 눈사태로 실종되고 있고 구조작업시 죽음을 맞은 동료의 얼굴을 갑자기 마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앙이 삶의 일부로 자리잡은 이후 온통 흰 눈뿐인 도시는 슬프게도 아름답지만 아무도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모루가 눈 소각장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노볼 하나를 남기고 갑자기 행방을 감춘 이모를 눈더미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다. 이모는 트럭운전을 하는데 반사판처럼 반짝이는 설원이 눈 때문에 녹내장으로 눈이 나빠지게 된다. 결국 이모의 트럭은 도로의 절벽 아래로 떨어진 채로 발견되었지만 이모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은 실종된 이모를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이기도 하다. 모루는 이모가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가망없는 일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지는 심리적 갈등과 이중적 심리가 묘사되어 있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소각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 보니 온 세상이 흰눈에 덮인 무채색의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시간은 코로나 시대 의료진 복장을 떠오르게 하는 온몸을 가리는 방역복을 입고 다녀야 하며, 미리 정해진 길로만 다닐 수 있고, 싱싱한 먹거리도 부족하며, 할 일도 즐길거리도 제한된 단순한 무채색의 세상이다. 오직 과거의 기억만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기억속에 존재할 뿐이다. 이들 앞에 놓인 미래도 예측과 대비를 불허하는 회색 공간이다. 흰 눈 이외의 다른 색의 세상이 과연 오기는 할까?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는 세계에서 우린 무엇에 의지하고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이런 재난은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 보인다. 어려울수록 서로의 손을 맞잡고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작가는 주인공인 모루와 이월을 통해 두렵지만 자신이 바라는 바를 위해 함께 내디디는 발걸음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단단한 응원이 되어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젊은 작가의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을 마주치는 기쁨보다는 그가 그린 우리의 미래 모습이 디스토피아란 사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이런 디스토피아를 만든 주인공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코로나 19 또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를 초래한 영향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기성세대들의 책임도 상당히 존재할 것이다. 각자의 욕심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무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린다.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비교적 서늘했었던 외국의 어느 도시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고 있고, 어느 나라는 폭우가 쏟아져 성경 속의 세상, 노아의 방주가 필요할 듯싶어 보인다. 이러한 징조들을 보며 지구가 점점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위기도 그렇고 소설 속 내용도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는 게 많다. 조예은의 소설 『스노볼 드라이브』도 그렇다. 방부제처럼 생긴,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세상이다. 녹지 않는 눈은 그저 녹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피부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과 유사하다.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실험용 쥐를 넣었을 때 부패가 되지 않고 바싹 마른 형태가 된다. 마치 미이라처럼.
스노볼 안의 가짜 눈이라고 보면 된다. 한여름에 가짜 눈이 내린 후 일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내린 녹지 않는 눈은 사람의 삶까지도 바꾼다. 녹지 않는 눈은 산업 폐기물에 가깝다. 사람들은 피부를 드러내지 않게 천으로 감추고 방독면을 쓰고 다닌다. 모루는 폐기물 센터에서 가짜 눈을 치우는 일을 한다. 기숙사를 이용하는 그들은 학교 때의 단체생활을 하는 것 같다.
모루의 이모가 사라졌다. 이모와는 상관없는 스노볼이 트럭 안에 떨어져 있었고, 트럭의 화물칸은 비어 있었다. 이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모를 찾는 모루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모의 의뢰인들을 찾아다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스노볼을 본 모루는 백영중학교에서 처음 녹지 않는 눈이 내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같은 날 눈이 마주쳤던 이월의 기억까지.
백영시에서 특수폐기물을 치우는 사람들은 스노볼 안의 세상에 갇힌 사람들 같다. 가짜 눈이 흩날리는 도시. 진짜 세상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싶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
이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폭우가 내려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고, 폭염 때문에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십대 후반을 잃어버린 스물두 살의 백모루와 이이월은 이모를 찾아 센터를 뛰쳐 나온다. 그들은 젊다. 스노볼 밖의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스노볼 밖의 세상을 향하여 여행을 시작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는데 누군가 의지할 사람이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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