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들이 왜 그렇게 남자들을 싫어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면 나와 있는 수치만 봐도 충분히 이해가 될 텐데 그 이유를 궁금해하는 남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니, 사실은 그게 아니라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일반화는 좋지 않다고 설명하기에만 급급하다. 거기다가 ‘남자들은 쓰레기’라고 하면서 남자들과 척을 지면 남자들이 여성권 운동에 동참하지도 않을 것이고, 〈돕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마치 남자들 없이는 여성권 운동이 제대로 안 된다는 듯이, 그동안 남자들의 도움으로 여성권 운동을 해왔다는 듯이, 그리고 제멋대로 우리 무리에 끼어들거나 멋대로 우리의 투쟁에 동참해서는 분위기를 장악하고 우리를 장악하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우리 목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우리를 모욕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듯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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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혐오는 사전예방법이다. 예전부터 운이 좋으면 남자에게 실망만 하고 끝이 났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게 봤고, 페미니스트 이론 덕분에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무엇인지 이제는 확실히 알기 때문에 〈자신〉은 정말로 괜찮은 남자라고, 그러니 믿어도 된다고 하는 남자에게는 그 사람이 누구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방어막을 치고 더는 그 남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적대감이 가시길 원하는 남자는 자신이 정말 괜찮은 남자임을, 의도가 불순하지 않음을 증명 하면 된다. 그러려면 검증 기간이 필요한데, 검증 기간은 평생이다.
--- p.15~16
분노와 폭력, 이 두 단어는 서로 관련있지도 않은데 우리는 흔히 분노와 폭력을 혼동한다. 열등한 사람 취급을 받아서 느끼는 분노는 여성을 모욕하고,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하는 남성들의 폭력에 비교될 수 없으며 여성을 무시하고, 모르는 척하고, 대놓고 비웃는 남성들의 또 다른 폭력에도 비교조차 될 수 없다. 우리 여성들은 온화하고, 유순하고, 수동적인 제한된 역할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하고, 남성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해야 마땅하다.
--- p.35
남자들은 여자들이 대화에 끼는 것도 싫어해서 말을 계속 끊어 먹고, 상전처럼 답을 하거나, 여자가 하는 말은 못 들은 척한다. 누구한테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어떠냐며 남자들끼리 성적 농담을 하면서 낄낄댄다. 여자들이 원한 거 아니냐며, 누가 알겠냐며, 여자들이 아니라고 할 때는 진짜로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그렇다는 뜻이라고 남자들은 말한다.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남자를 싫어할 이유가 정말 많다. 심지어 사실에 근거한 이유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왜 여자들을 싫어할까? 수천 년 전부터 남자들은 지배자로서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혜택을 누리고 사는데 여자들은 무엇을 어쨌다고 여전히 남자들에게 당연히 폭력을 당해야 하나?
--- p.44
우리 여성들은 끊임 없이 자신을 의심하도록 길러졌지만, 남성들은 턱없는 자신감을 갖고 성장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능력이 있는 척하면서 자랐다. 미국 비즈니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 LinkedIn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채용 공고가 났을 때 남성들은 〈운에 맡기고 ‘일단 지원하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원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들은 그 일자리에 본인이 적합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지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 p.62
여자는 남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함정이다. 남녀 둘 다를 위해 무엇이 남녀 관계를 가치있게 하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반드시 남자와 같이 살아야 하고, 그것이 원래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게 하는 것은 함정이다. 한 남자와 사는 것은 옷을 입거나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여자는 남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인생이 피고 비록 그 남자가 무관심하고, 게으르고, 전체적으로 별 볼 일 없어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말에 여자들은 오랫동안 농락당했다.
--- p.71
남성들이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페미니스트 모임에 격분하는 진짜 이유는 남성들이 권위를 떨칠 수 없는 여성들만의 정치 단체를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단순히 여자들이 함께 모인다고 남자들이 불만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여자들이 뜨개질 모임이나 학부모 모임, 아니면 독서 모임을 한다 고 하면 남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남자들이 참지 못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것은 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액션플랜을 도출할 수 있는 정치 단체를 조직하고, 남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p.83